정부가 올해 3월부터 상법 개정에 착수했으나 관계 부처 간 이견으로 단일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연초에 “소액주주의 이익 제고를 위한 상법 개정을 긍정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힌 후 법 개정 논의가 시작됐다. 이복현 금융감독원장은 ‘이사의 충실 의무 확대’를 담은 상법 개정이 필요하다고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반면 법무부는 21대 국회 때부터 상법 개정에 부정적이었고, 신중론을 내세운 금융위원회도 사실상 반대 입장이다. 최상목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국정감사에서 “상법·자본시장법 중 어느 법을 어떻게 개정할지 여러 안을 놓고 논의 중”이라며 유보적 태도를 보였다.
정부가 결론을 내지 못하고 오락가락하는 사이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경영권 과도 개입 조항을 담은 상법 개정안을 당론으로 채택해 연내에 밀어붙일 태세다. 개정안의 골자는 이사의 충실 의무 대상을 기존의 ‘회사’뿐 아니라 ‘총주주’로 확대하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은 감사위원 분리 선출 확대, 자산 2조 원 이상 상장사의 집중투표제 의무화까지 추진하고 있다. 재계는 이 법안이 통과되면 기업 경영이 크게 위축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대규모 투자나 인수합병을 시도했다가 주가가 하락할 경우 주주들의 소송에 시달릴 위험이 크기 때문에 경영진은 기업의 장기 성장보다는 단기 주가 관리에 치중할 가능성이 높다. 단기 차익을 노리는 투기 자본이 경영권 공격에 나서는 빌미가 될 수도 있다.
‘미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트럼프 2기 정책들이 가시화되면서 한국 경제에 먹구름이 드리워지고 있다. 코스피 지수는 연초 이후 9%가량 떨어져 주요국 가운데 거의 유일하게 내리막을 달렸다. 정부가 기업 규제들을 혁파해 성장을 지원해도 모자랄 판에 경영의 발목을 잡을 수 있는 상법 리스크를 방조하고 있는 셈이다. 미국 연방의회가 제정한 모범회사법은 이사의 의무 대상을 ‘회사’로 한정했고, 독일·일본 등 대다수 선진국들도 비슷하게 규정했다. 정부는 관련 부처 및 기업·국회 등과의 논의를 거쳐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는 상법 개정 대신에 소액주주 보호를 위한 현실적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 거대 야당은 기업의 성장을 저해할 가능성이 큰 상법 개정 강행을 중단하고 중장기적인 밸류업 방안 도출에 협조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