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자본시장법 핀셋 개정으로 '소액주주 보호' 얼마든지 가능"

■"상법개정 멈춰달라" 대기업 사장단 긴급성명

현실적으로 주주 구성 매우 다양

모든 주주의견 반영할 방법 없어

정부 추진 '밸류업'과도 엇박자

규제보다 첨단산업 지원 서둘러야

김창범(앞줄 가운데)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과 주요 기업 사장들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에 참석해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김창범(앞줄 가운데) 한국경제인협회 부회장과 주요 기업 사장들이 21일 서울 중구 롯데호텔에서 열린 '한국경제 재도약을 위한 주요 기업 사장단 긴급 성명'에 참석해 공동 성명서를 발표하고 있다. 조태형 기자




국내 주요 기업 사장단이 9년 만에 긴급 성명을 내고 “상법 개정 등 규제 입법보다 경제를 살릴 수 있는 법안을 만들어달라”고 호소한 이유는 규제 리스크 때문에 기업 경영이 마비될 수 있다는 위기의식이다.



특히 외국계 투기 자본의 공격 가능성이 크다고 재계는 우려하고 있다. 실제 한국경제인협회 분석에 따르면 현재 국회에 계류된 상법 개정안 상당수가 외국계 기관투자가에 유리한 ‘독소 조항’을 포함하고 있다.

대표적인 규제가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다. 감사위원 분리 선출 제도는 3인으로 구성되는 감사위원 중 최소 1인에 대해 대주주 의결권을 3%로 제한하는 제도다. 감사위원 3명 중 1명은 대주주로부터 독립권을 준다는 취지로 마련됐다.

하지만 최근 국회에서는 현재 1명인 분리 선출 적용 감사위원을 2명으로 늘리는 상법 개정안이 잇달아 발의되고 있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감사위원회 과반수가 외부 투기 자본에 휘둘릴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같은 독소 조항이 전부 국회를 통과하면 국내 10대 기업 중 4곳의 이사회가 외국계 투기 자본에 장악당할 수 있다는 게 한경협의 분석이다. 범위를 30대 기업으로 넓히면 8곳의 이사회가 장악당한다. 상법 개정으로 이사회가 위협받는 기업의 자산 비중은 전체 상장사의 13.6%(596조 2000억 원)에 이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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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부 유출 외에도 경영권 방어를 위한 비용이 급증하면 기업 경쟁력이 자연히 낮아질 수밖에 없다. 특히 단기 이익을 노린 외국 기관 연합이 배당 확대 등으로 현금을 소진할 경우 미래 투자에 쓰일 자금이 줄어들게 된다.

사장단은 또한 우리 경제가 극한 위기 상황에 처해 있다고 강조했다. 이들은 “지난해 경제성장률은 1.4%를 기록했고 올해 성장률은 2% 초반에 그칠 것”이라며 “우리 경제는 이제 성장 동력이 약화되면서 2% 성장률 달성도 버거워진 상황이 됐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내수는 가계부채 등의 문제로 구조적 침체에서 벗어나기 힘들고 그나마 버텨주던 수출마저 주력 업종 경쟁력 약화, 보호무역주의의 확산에 따른 글로벌 환경 악화로 앞으로를 장담하기 어렵게 됐다”고 덧붙였다.

사장단은 이러한 상황에서 규제 입법보다 경제 살리기 법안에 힘써주기를 국회에 당부했다. 현재 22대 국회에서는 상법 개정안, 상장회사지배구조법 제정안 등 기업 지배구조 규제 강화 법안이 계류돼 있다. 특히 재계에서는 상법 개정안 중 이사의 충실 의무와 관련해 주주의 이익이 추가되는 것이 기업 경영에 상당한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사장단은 “현재 상법상 이사는 선관주의 의무 개념에 따라 회사에 대해서 충실할 의무를 지고 있지만 개정안이 통과되면 충실 의무 대상에 주주까지 들어가게 된다”며 “현실적으로 주주 구성은 매우 다양해서 모든 주주의 의견이나 권리를 균등하게 반영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이어 “주주에는 외국인투자가, 기관투자가, 단기 투자자, 장기 투자자, 투기 자본이 섞인 투자자들도 있어 다양한 주주에 충실 의무를 지게 된다면 손해배상 소송이나 배임으로 형사 고발을 당할 수도 있고 미국에서도 실제로 사례들이 나온 바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상법을 개정하지 않아도 소액주주 보호는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게 재계의 판단이다. 김 부회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기업 합병이나 분할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소수 주주의 피해를 방지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는 상법 개정안이 아닌 자본시장법에서 사안별로, 핀셋형으로 하는 것이 더 필요하다”며 “예를 들어 사업구조 개편을 위한 합병 시 기업의 실질 가치를 반영해 합병 비율을 산정하는 제도를 도입하거나 합병 시에 손해를 볼 수 있는 주주 권익을 보호하는 맞춤형 제도 등이 있다”고 말했다.

사장단은 또한 지금은 규제가 아니라 지원이 필요할 때라는 입장도 내놓았다. 사장단은 “경제 활성화를 위해 과감한 규제 개혁을 추진하고 각국이 첨단산업 지원에 총력전을 펼치고 있는 만큼 인공지능(AI) 반도체, 2차전지, 모빌리티, 바이오, 에너지, 산업용 소재 등에 지원을 아끼지 말아달라”고 호소했다.


허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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