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형사재판소(ICC)가 21일(현지 시간) 가자지구와 관련한 전쟁 범죄 혐의로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와 요아브 갈란트 전 이스라엘 국방장관에 대해 체포영장을 발부했다. 2002년 설립된 이 법원이 서방 지원을 받는 국가 지도자에게 체포영장을 발부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이스라엘은 물론 이스라엘 맹방 미국도 ICC의 결정에 강하게 반발하는 가운데 체포가 원활하게 이행될 지는 미지수라는 관측이 높다.
이날 ICC는 성명을 내고 “지난해 10월 8일부터 최소 올해 5월 20일까지 저질러진 반인도주의 범죄와 전쟁범죄에 대해 네타냐후와 갈란트의 체포영장을 발부했다”고 밝혔다. 지난 5월 20일 카림 칸 ICC 검사장이 영장을 청구한 지 6개월 만이다. 그리고 이어 “이들이 기아를 전쟁 수단으로 사용하고 살인·박해 등 비인도적 행위를 저지른 공범으로서 형사 책임을 져야 한다고 판단할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다”고 덧붙였다. 특히 ICC는 이스라엘군이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와 전쟁을 벌이면서 네타냐후 총리 등이 가자 민간인의 생존 필수품을 고의로 박탈해 어린이들의 죽음을 초래했다고 강조했다. 또 가자지구 전쟁 관련 사건을 다룰 사법관할권이 ICC에 없다는 이스라엘의 주장도 반박했다.
이로써 ICC 회원국인 124개국은 원칙적으로 네타냐후 총리와 갈란트 전 장관이 자국을 방문할 경우 이들에 대한 체포영장을 집행할 의무가 생겼다. 한국도 ICC 회원국이다. 다만 현실적으로 이들의 체포가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는 시각이 우세하다. 일례로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우크라이나 전쟁 범죄 혐의로 ICC로부터 수배된 대표적인 피의자 중 한 명이지만 여전히 체포되지 않은 채 세계 각국을 순방 중이다. 각국이 영장을 집행하지 않는다고 해서 법원이 이를 강제할 수단도 없다.
미국과 중국, 러시아, 이스라엘 등이 ICC에 가입하지 않은 가운데 네타냐후 총리에 대한 체포영장 발부 자체를 비판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이스라엘의 최우방국인 미국은 이날 ICC 결정을 “근본적으로 거부한다”고 밝혔다.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대변인은 “우리는 ICC의 절차상 오류를 깊이 우려한다”며 “미국은 파트너 국가들과 다음 단계를 논의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당선인이 내년 취임하면 국가안보보좌관을 맡게 될 마이크 왈츠 하원의원(공화·플로리다)도 자신의 X 계정에 “ICC는 신뢰성이 없다. 내년 1월부터 ICC와 유엔의 반유대주의 편향성에 대해 강력한 대응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썼다.
이스라엘의 반발도 만만치 않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연설에서 “우리를 파괴하려는 적들에 맞서 스스로를 방어할 자연적 권리의 행사를 방해하려는 것이 이번 반유대주의적 조치의 목적”이라고 강력히 비난했다. 갈란트 전 장관 역시 X에 “ICC가 이번 결정으로 이스라엘과 하마스의 살인 지도자들을 동일선상에 높고 유아 살해, 여성 성폭력 등을 정당화했다”며 “살인과 테러를 조장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편 ICC는 이날 하마스 무장조직 알카삼 여단 사령관인 무함마드 데이프에 대한 체포영장도 발부했다. ICC가 지난해 10월 7일 이스라엘을 기습 공격한 혐의로 체포영장을 청구한 하마스 지도부는 야히야 신와르와 무함마드 데이프, 이스마일 하니예 등이다. 앞서 이스라엘군은 이들을 모두 사살했다고 밝혔지만 데이프의 사망은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