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그룹의 퍼스트 무버(선두주자) 입지를 실감하는 순간이다.”
현대차그룹과 협력을 다지는 도요다 아키오 도요타자동차그룹 회장의 최근 행보를 두고 내린 재계 고위 관계자의 평가다. 한 달 새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과 두 차례 만나 미래 먹거리인 수소차 사업을 함께 하자고 손을 내밀었기 때문이다. 도요타그룹은 세계 최대 레이싱 대회에서 우승한 현대차그룹과 정 회장을 축하하는 한글 광고를 현지 매체에 크게 실으며 진심을 전했다.
높은 콧대를 자랑하던 도요타그룹을 생각하면 이례적인 장면이 아닐 수 없다. 도요타그룹은 2020년 글로벌 완성차 판매 ‘왕좌’를 탈환한 뒤 지난해까지 4년 연속 자리를 지켜낸 강자다. 일본 재계 맏형으로, 보수적인 조직 문화로도 유명한데 현대차그룹과는 수소와 로봇 등 협업 분야를 넓히며 돈독한 관계를 과시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위상이 그만큼 달라졌다. 패스트 팔로워(빠른 추격자)로서 선두 업체들을 따라가기 바빴던 과거와 달리 높은 기술력을 요구하는 수소차 분야에선 경쟁사를 누르고 주도권을 확보했다. 9월까지 전 세계에서 팔린 수소차 3대 중 1대는 현대차그룹의 제품으로 시장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다. 판매량도 2위인 도요타그룹에 두 배가량 앞섰다.
이런 성과는 뚝심과 결단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청정에너지인 수소에 주목한 현대차그룹은 1998년 외환위기 속에서도 전담팀을 꾸리고 수소차 개발에 착수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격동기에도 개발을 지속한 끝에 2013년 세계 최초 양산형 수소차인 투싼ix를 선보였다. 정 회장은 단순 수소차 개발을 넘어 수소 생산부터 활용까지 모든 과정에서 선순환 구조를 구축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문제는 수소차 선두 지위를 뒷받침할 인프라 구축은 더디다는 점이다. 정부가 8월 말까지 구축한 수소충전소는 14개 소로 연간 계획(36개 소)의 절반에도 못미친다. 지역별 충전 인프라 불균형 문제도 여전하다. 충전 불편 등 문제로 세계 1위 수소차 시장 타이틀은 중국에 뺏겼다. 수소차 패권을 둘러싼 완성차 업계의 경쟁이 치열한 지금 정부의 마중물 역할을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