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마포구에 거주하는 백 모(32)씨는 럭셔리 브랜드의 ‘신품급 중고’ 상품에 눈독을 들이고 있다. 새 상품을 구매한 직후부터 가치가 크게 떨어지는 명품의 특성상 상태가 좋은 중고를 사서 쓰다 질리면 되파는 편이 현명한 소비라는 생각에서다. 그는 “처음부터 재판매를 염두에 두고 보증서와 더스트백 등 구성품이 온전한 상품만 산다”면서 “2~3년이 지나 취향이 변했을 때 제값을 받고 되파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말했다.
글로벌 럭셔리 업체들의 실적이 부진한 반면 중고 명품 시장은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 값비싼 새 상품보다 중고 제품을 바꿔 가며 소비하는 트렌드가 확산되면서다. 국내 명품 플랫폼도 잇따라 중고 거래 분야를 강화하고 있다.
27일 명품업계에 따르면 루이비통·디올·셀린느를 거느린 세계 최대 럭셔리 기업 LVMH의 올해 3분기 글로벌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3% 줄어든 190억 7600만 유로(약 28조 6000억 원)을 기록했다. 이는 팬데믹이 한창이던 2020년 2분기 이후 최저치다. 같은 기간 구찌와 발렌시아가를 보유한 케링그룹 매출도 37억 8600만 유로(약 5조 6600억 원)로 16% 감소했다.
반면 럭셔리 상품의 중고 거래는 활황을 맞고 있다. 미국 최대 규모의 중고 명품 플랫폼 ‘더리얼리얼’의 3분기 매출은 1억 4800만 달러(약 2000억 원)로 지난해 같은 분기 보다 11% 증가했다. 이 기간 총거래액(GMV) 역시 4억 3300만 달러(약 6000억 원)로 6% 늘었다.
이 같은 현상은 국내에서도 관찰된다. 2002년 론칭한 중고 명품 거래 플랫폼 구구스는 올해 들어 10월까지 거래액이 전년 동기 대비 7% 늘었다. 이미 지난해 연간 거래액 2150억 원을 넘은 만큼 최대 실적을 경신할 가능성이 높다.
거래가 침체된 국내 명품 플랫폼들도 중고 거래에 집중하는 분위기다. 발란은 최근 전국 29개 매장을 보유한 중고거래 편집숍 ‘고이비토’와 제휴해 중고 명품 사업을 구입에서 감정, 위탁 판매에 이르기까지 전 영역으로 확장할 방침이다.
트렌비는 지난해 중고 명품 거래 시장에 뛰어든 이후 매출 비중이 40%까지 늘었다. 최근에는 고객이 전국 18개 중고명품센터에서 상품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는 ‘보고구매’ 서비스도 론칭했다. 개인간 중고 거래에서 출발한 번개장터도 정품 검수를 강화하며 럭셔리 카테고리를 노리고 있다. 지난 7월에는 서울 성수동에 명품 카테고리만 전담하는 제2검수센터를 200평 규모로 열기도 했다.
명품업계 관계자는 “제품을 구매한 후 2~3년만에 또 다른 중고품으로 교체하는 소비가 많아졌다”면서 “수량이 부족한 희귀 디자인을 구하기 위해서라면 중고 구매를 감수하는 마니아층의 수요도 고정적으로 있다”고 전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고물가·고금리 국면이지만 젊은 소비자들이 비싸지 않은 가격에 여러 럭셔리 상품을 경험하려는 욕구는 커진 상황”이라면서 “중고 명품을 다루는 플랫폼들이 거래 편리성과 인증 절차를 강화하고 있어 당분간 시장 성장세가 이어질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