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상무부 산하 산업보안국은 1997년부터 국가 안보를 침해할 수 있는 해외 기업의 대미 수출을 제한하기 위해 ‘기업 목록(Entity List)’을 공표했다. 당초 이 목록 작성의 주목적은 군사적 위협 방지였다. 그러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첫 임기 중인 2019년 화웨이 본사 및 68개 해외 자회사들을 이 목록에 포함시켜 대중 무역 분쟁의 수단으로 활용했다. 이후에는 틱톡·텐센트 등 정보기술(IT) 기업들도 추가됐다. 이에 중국도 유사한 방식으로 맞대응에 나섰다. 중국 상무부는 2020년 9월 국가 주권과 안전 등을 해치는 기업을 제재한다는 명분을 내세워 ‘불신 기업 명단(不可靠實體清單)’ 규정을 발표했다.
‘중국판 블랙리스트’에 오른 기업들은 중국과의 수출입, 대중 투자, 직원의 중국 내 취업·거주 등이 금지된다. 그러나 중국은 규정만 발표했을 뿐 실제 제재 기업 명단은 공개하지 않았다. 대미 수출국인 중국의 제재 효과가 떨어지고 미국과의 전면전에서도 불리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2023년 록히드마틴과 레이시온을 불신 기업 명단에 올렸는데 이는 미중 간 정찰 풍선 갈등으로 미국이 먼저 중국 기업을 제재하자 대응하려는 차원이었다.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이후 중국 정부가 ‘블랙리스트’를 더 적극적으로 무역 전쟁의 무기로 쓸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뉴욕타임스는 최근 중국 정부가 미국 기업들을 불신 기업 명단에 포함시켜 희토류 등 핵심 소재·부품의 대미 수출을 차단하는 방식으로 반격할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의 고율 관세나 수출 제재에 맞서 ‘공급망 공격’으로 맞불을 놓을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중국은 이미 미국의 드론 업체인 스카이디오를 ‘불신 기업’으로 규정해 배터리 공급을 끊었고 미국 패션 업체 PVH에 대해서도 면 공급을 중단시켰다. 중국은 과거 무역 갈등에서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트럼프 2기에는 본격적인 대응에 나설 것으로 보인다. 격화될 미중 갈등 속에서 한국이 ‘새우등’ 신세를 면하려면 정교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