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대학교수들이 올해를 대표하는 사자성어로 ‘제멋대로 권력을 부리며 함부로 날뛴다’는 의미를 가진 ‘도량발호’(跳梁跋扈)를 꼽았다. 이들은 “지도자가 국민의 삶을 위해 써야 할 권력을 사적으로 남용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교수신문은 전국 대학교수 1086명을 대상으로 지난달 25일부터 이번 달 2일까지 설문조사를 진행, 총 405표(41.4%)를 받으며 1위에 오른 도량발호가 올해의 사자성어로 선정됐다고 9일 밝혔다. 비상계엄 사태 전날 마감된 설문조사임에도 윤석열 대통령이 권력을 사유화한 현 상황과 맞아떨어진다는 평이 이어졌다. 다만 이번 설문은 12·3 비상계엄 사태만을 의미하지 않는다는 게 교수신문의 설명이다.
교수신문은 해당 사자성어를 선정한 이유로 “권력자들이 자신이 권력의 원천인 것처럼 행동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도량발호를 추천한 정태연 중앙대 심리학과 교수는 “권력을 사유화하는 위정자가 많을수록 국민의 삶은 팍팍하고 고단하다”며 “삐뚤어진 권력자는 권력의 취기에서 깨어나야 한다. 최악의 사례가 지난 3일 심야에 대한민국을 강타한 비상계엄령”이라고 지적했다.
정 교수는 이어 “국민의 이름으로 국민을 겁박하는 이런 무도한 발상과 야만적 행위가 아직도 21세기 대한민국에서 가능하다는 사실이 섬뜩하고 참담하다”며 “권력을 위임한 국민이 그 권력을 다시 회수하기 전에, 우리 사회의 많은 권력자는 권력의 취기에서 깨어나야 한다”고 일갈했다.
2위는 ‘낯짝이 두꺼워 부끄러움이 없다’는 뜻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3위는 ‘머리가 크고 유식한 척하는 쥐 한 마리가 국가를 어지럽힌다’는 의미의 ‘석서위려’(碩鼠危旅)가 각각 307표(28.3%), 201표(18.5%)를 받으며 자리했다.
후안무치를 추천한 김승룡 부산대 한문학과 교수는 “부끄러움을 모르고, 말을 교묘하게 꾸미면서도 끝내 수치를 모르는 세태를 비판한다”며 “법은 최소한의 도덕일 뿐, 적극적 가치를 구하기는 어렵다. 인간관계를 인간적인 것으로 만들고, 사회적 질서를 세우려는 노력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석서위려를 추천한 이형식 숙명여대 영어영문학부 교수는 “온 나라가 자신이 똑똑하다고 굳건히 믿고 있는 지도자들 때문에 끊임없는 논란과 갈등으로 점철된 시간이었다는 안타까움과 좌절감이 배어 있는 표현”이라고 밝혔다.
4위에는 ‘가혹한 호랑이는 호랑이보다 더 무섭다’는 뜻의 ‘가정맹어호’(苛政猛於虎)가, 5위에는 ‘기본이 서야 나아갈 길이 생긴다’는 뜻의 ‘본립도생’(本立道生) 등이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