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중기·벤처

[여명]'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사는 힘

정영현 성장기업부장

환율 급등·성장률 전망 하향 등 우려

자영업자·소외계층 등은 연일 한숨만

정치인 국민·기업 위한 입법 매진 등

우리 모두가 담담하게 제자리 지켜야

‘비상계엄 사태’ 이후 관광·유통 업계에서 연말 특수 위축이 우려되는 가운데 12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비교적 한산하다. 조태형 기자‘비상계엄 사태’ 이후 관광·유통 업계에서 연말 특수 위축이 우려되는 가운데 12일 서울 중구 명동 거리가 비교적 한산하다. 조태형 기자




북한 관영매체 조선중앙통신이 11일 12·3 계엄 사태에 대해 내놓은 보도문은 치욕적이다. 사태 발생 후 일주일이 넘도록 아무런 언급을 하지 않더니 고르고 골라 우리를 향해 던진 단어가 ‘아비규환’이다. 북한의 막말 도발이 하루 이틀된 일도 아니지만 가진 게 없어 주민들이 배를 곯는 게 일상이고 군인들을 남의 나라 전쟁터에 총알받이로 실어 나르는 북한이 ‘차마 눈뜨고 보기 어려운 참상’이라고 대한민국을 비웃었다. 북한만큼 공식적으로 노골적이지는 않지만 이웃국들의 시선도 수치스럽고 모욕적이다. 중국의 한 매체는 “한국 드라마가 흥미롭다고는 하나 한국 현실은 더 흥미진진하다”고 했다. 일본에서는 극우 정치인들 사이에서 “다케시마 탈환 기회가 왔다”는 ‘헛소리’가 나왔다. 혈맹 미국은 국방부 장관이 방한 일정을 연기하는 식으로 점잖게 한국을 패싱했다. 모든 게 불난 집에 부채질하는 형국이다.



문제는 이 불길이 국민들의 마음속에서만 치솟고 있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정치는 물론 경제·사회·외교·안보 전반으로 화염이 실질적으로 번지고 있다. 정치적 자해를 한 대한민국 최고 통치자와 외교를 하겠다고 나설 상대국이 없다. 호시탐탐 군사적 위협을 하는 북한에 대응할 안보 태세에도 차질이 빚어지고 있다. 환율 급등으로 유동성에 비상등이 켜졌고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한국 성장률 전망치 하향 가능성을 경고했다. 수출 계약을 위해 해외 파트너사를 찾았던 중소기업인은 당분간 보류하자는 날벼락 같은 소리를 듣고 현장에서 발길을 돌렸다. 연말 단체 모임 줄취소로 가뜩이나 어려운 자영업자들은 한숨만 거듭 내쉬고 있다. 연말에 집중해 소외 계층 후원을 계획했던 단체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하고 있다.

현재 우리에게 닥친 재앙이 누구 탓인지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하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고만 하다가는 다 같이 침몰할 수 있는 위기 상황이다. 화가 나더라도 소리만 지를 게 아니라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한다.



발등의 불을 끄기 위해 우리가 지금 당장 할 일은 뭘까. 어렵겠지만 아무렇지 않게 일상을 사는 것이다. 어떠한 고난과 위기 속에서도 일상을 지키는 힘이 있음을 서로에게 보여줘야 한다. ‘이 시국에도 모여서 밥을 먹고 한 해를 돌아보며 내년을 기약하고’ ‘주말에 가족들과 지역 축제를 찾는’ 일상이 비난의 대상이 돼서는 안 된다. 오히려 누군가의 생계 유지를 돕는 소중한 행위임을 존중해줘야 한다. 그게 서로를 위한 진정한 연대다. 국민 개개인이 크고 작은 일상을 놓지 않아야 대한민국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불안감도 잦아든다. 대한민국이라는 나라가 한 사람의 자충수로 무너지는 나라가 아님을, 우리가 증명해야 할 때다. 우리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일수록 대한민국에 대한 국제사회 신뢰도는 더 떨어진다. 쉽지 않은 일임을 잘 안다. 하지만 국민들이 모두 담담하게 그리고 담대하게 제자리를 지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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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국민들과 함께 사회의 리더들도 각자의 자리에서 소임을 다해야 한다. 어려울수록 은화처럼 맑은 정신으로 나라를 지켜야 하는 군인, 특히 지휘 체계 상단에 있는 장성들은 국민들 앞에서 더 이상 눈물을 보이지 말라. 군인이 국민을 지켜야지, 왜 국민이 군인 걱정을 하게 하나. 국회의원들도 정신을 차려야 한다. 이때다 싶어 시위에 나가려고 아이돌 응원봉을 고르거나 유튜브 실시간 방송에 신경 쓸 때가 아니다. 시위 현장은 시민들이 알아서 잘 지키고 있으니 의원들은 국민과 기업을 위한 법 만드는 데 더 매진하는 게 옳은 일이다. 지자체장들도 1인 탄핵 촉구 시위할 여유가 있으면 혹한기 민생을 더 살피시라. 이럴 때일수록 소외되기 쉬운 취약 계층과 위험 시설 현장을 한 번이라도 더 찾는 게 마땅하다.

미국 수필가 해리 골든은 단편 ‘쇼는 계속돼야 한다’에서 이렇게 말한다. “얼마나 많은 노동자들이 아이를 묘지에 묻고 집으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작업대 앞에 앉았던가. 얼마나 많은 어머니들이 등골이 휘는 괴로움과 슬픔에도 자식을 챙기고 잡다한 집안 일을 했던가. 우리는 단 한 순간도 쇼를. 감히 멈출 수 없다.”

가장 쉬운 듯 보이지만 몹시 어려운 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을 이어가는 일이야말로 지금 우리에게 가장 절실하다.



정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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