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취임을 앞두고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일본·유럽연합(EU) 등은 트럼프의 보편관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반면 정치 리더십 공백 상태인 한국은 그렇지 못할 가능성이 높다는 진단이 나왔다.
여한구(사진)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선임연구원은 15일(현지 시간) 서울경제신문과의 전화 인터뷰에서 “트럼프가 특정 국가를 그룹으로 묶어 보편관세를 부과하는 ‘그물망 전법’을 쓸 수 있다”며 “이후 개별 국가들로부터 얻어낼 것을 얻어내는 거래에 나설 수 있다”고 밝혔다. 미국 워싱턴DC에 자리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는 국제경제 분야에서 영향력이 큰 싱크탱크다.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 출신인 여 연구원은 “일본·EU 등은 이미 트럼프 측과 관계를 맺어왔다”며 “이들 국가는 보편관세율을 낮추거나 면제받을 수 있지만 한국만 정치적 공백 때문에 보편관세를 부과받을 경우 타격이 크다”고 지적했다.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와 탄핵소추안 가결 등 혼란스러운 상황으로 트럼프 측과의 관계 구축이 중단되면서 보편관세에 고스란히 노출될 수 있다는 것이다.
여 연구원은 “한국의 수출 주력 제품은 글로벌 무역 시장에서 일본·유럽 제품과의 경합도가 높다”며 “일본과 EU는 관세를 면제받는데 우리만 관세가 부과된다면 타격이 더 클 것”이라고 강조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한국과 일본·유럽의 경쟁은 치열하다. KOTRA에 따르면 올해 3분기 현재 우리나라 10개 주력 수출품을 기준으로 주요국과의 수출 경합도를 분석한 결과 일본이 46.8로 가장 높았고 독일이 39.8로 2위, 네덜란드가 32.9로 5위, 프랑스가 32.1로 6위였다. 수치가 100에 가까울수록 경쟁이 치열하다.
여 연구원은 “트럼프 1기 취임 때인 2017년 당시도 한국이 탄핵 국면이기는 했지만 그때와 지금은 상황 자체가 다르다”고 말했다. 당시 트럼프 캠프조차 당선을 예측하지 못했기 때문에 취임 직후 분위기가 어수선했다는 것이다. 단적으로 미국 무역 협상을 총괄하는 미국무역대표부(USTR)의 대표인 로버트 라이트하이저가 취임하는 데 4개월이나 걸렸다는 점을 꼽았다. 하지만 지금은 USTR 대표로 라이트하이저의 수제자인 제이미슨 그리어가 이미 지명됐고 상무장관(하워드 러트닉), 재무장관(스콧 베센트), 무역 및 제조업 선임 고문(피터 나바로)까지 트럼프의 보호무역주의를 실행할 진용이 갖춰졌다. 여 연구원은 “실무 선이나 장관급에서 트럼프 측과 계속 접촉하는 등 할 일은 해야 한다”면서도 “트럼프는 기본적으로 정상 간 협의, ‘톱다운’ 방식을 선호하기 때문에 큰 효과를 발휘하기 어렵다”고 우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