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의 한 고등학교 학생들이 비상계엄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게시했다가 학교 측이 제지한 사실이 알려져 논란이 확산하고 있다.
17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서울 은평구의 한 고등학교 학생 167명은 지난 15일 학생회 SNS를 통해 비상계엄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문을 게시했다.
‘우리는 침묵하지 않는다. 우리의 목소리가 미래에 닿기까지’라는 제목의 시국선언문에는 학생들의 실명도 담겨있었다. 학생들은 선언문에서 “모든 정치적 행위와 언론의 자유를 통제하겠다는 포고령 등은 우리가 배운 민주주의와는 맞지 않는 내용이었다”며 “선대로부터 이어받은 민주의 불씨가 꺼지지 않도록, 후대에 전달한 불꽃이 더 당당히 타오를 수 있도록, 연대의 촛불로서 지켜낼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고등학교 측은 학생들의 실명이 포함된 만큼 공격받을 수 있다는 이유로 제지했다. 이에 학생들은 실명을 지우고 총학생회 이름으로 시국선언문을 다시 게재했다.
학교 측은 ‘정치 관여 금지 조항’이 있는 학칙을 근거로 공격이 들어올 수 있으니 시국선언문을 내릴 것을 재차 요구했다. 학생들 사이에선 최대 퇴학까지 가능하도록 한 해당 학칙이 공유됐고, 현재 SNS에서 해당 게시글을 삭제한 상태다.
학교 측은 “학생들에게 징계를 압박하며 게시물을 내리라고 한 것은 아니다”면서 "학생들이 피해를 볼 수도 있을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해명했다. 학생들을 징계할 계획도 없다고 밝혔다.
논란이 일자 시교육청은 해당 학교를 상대로 관련 내용 파악에 나섰다. 시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학교에 대한 장학과 컨설팅을 계획 중"이라고 했다. 이와 더불어 “서울시내 모든 고등학교에서 학생의 정치 관여 행위를 막는 학칙이 있는지를 전수조사하겠다”고 덧붙였다.
공직선거법 개정으로 2020년부터 선거연령이 만 19세에서 만 18세로 낮아졌다. 2022년에는 정치관계법이 개정돼 만 16세부터 정당에 가입할 수 있다. 관련법이 개정되면서 정치 관여 행위를 징계하는 학칙도 사라지는 추세다. 서울시교육청도 법 개정에 맞춰 2020년 3월과 2022년 4월, 올해 3월과 10월에 규정을 점검해달라는 공문을 일선 학교에 보낸 바 있다.
하지만 일부 학교에서 학생들의 피해가 우려된다는 이유로 여전히 관련 학칙을 유지하고 있어 문제가 된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 관계자는 "이번 기회에 학칙을 정확하게 고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앞서 윤석열 대통령의 모교인 충암고와 김건희 여사의 모교인 명일여고 학생들을 비롯한 몇몇 고등학교에서 비상계엄 사태를 규탄하는 시국선언문과 대자보를 작성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