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외칼럼

[기고] 고려아연 사태와 자본 시장의 역할

◆한순구 연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

주주·경영진 상호감시, 순기능 많아

금융회사 경영 참여, 투명성 높여

'기업의 적' 편협한 사고 바뀌어야





MBK파트너스라는 사모펀드 회사가 고려아연의 경영권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일어난 분쟁과 갈등이 심화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받고 있다.



특히 최근에는 금융감독원이 이런 고려아연의 갈등 상황에 대한 의견을 내놓으면서 금산분리와 같은 금융과 산업의 관계에 대한 해묵은 논쟁이 다시 시작되는 느낌이다.

고려아연의 입장을 옹호하는 측에서는 단기간의 이윤만 추구하는 사모펀드가 기업의 경영을 맡는 경우 장기적인 산업 발전을 저해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막대한 자금을 투자하는 MBK파트너스와 같은 사모펀드의 입장에서 장기적인 수익 구조가 훼손돼 고려아연과 같은 기업의 가치가 하락하면 큰 손실을 입게 될 것이므로 장기적인 이윤을 무시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든다. 오히려 해당 기업의 장기적인 미래 가치를 높여서 보다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것이 사모펀드와 같은 금융회사들의 목적일 것이다.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는 부작용에 대해 경고하는 과정에서 자주 느끼는 역설이 있다. 아주 작은 기업의 지분만을 소유한 특정 개인들이 기업의 모든 의사 결정을 좌지우지하는 소위 재벌의 문제에 대한 언급이 어느새 사라진다는 것이다.

재벌이 지배하는 기업 구조는 분명히 추진력이라는 장점이 존재하지만 반대로 재벌의 잘못된 의사 결정으로 주주는 물론이고 국가 경제 전체가 큰 피해를 본 과거의 경험을 우리는 기억하고 있다.



금융이 산업을 지배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가 있다면 다른 한편에는 특정 재벌이 기업의 의사 결정을 완전히 독점하는 상황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양쪽 모두 장단점을 가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쪽의 단점만 강조해 정책을 수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하다는 뜻이다.

관련기사



현재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는 고려아연도 상대적으로 작은 지분을 가진 소수가 기업의 모든 의사 결정을 하고 있다. 이런 과정에서 소액주주들의 이익이 침범되는 경우가 충분히 발생할 수 있다. 다수의 투자자들을 대표하는 사모펀드와 같은 금융회사들이 기업의 경영에 참여해 투명성을 높일 필요는 분명히 존재한다. 기업의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전문가는 경영진이지만 그 기업에 자신의 돈을 투자한 소유자는 주주이기 때문이다. 경영진과 주주의 이런 균형적인 상호 감시가 국가 경제적으로도 많은 순기능을 할 수 있다.

적과의 동침이라는 말이 있다. 사모펀드와 같은 금융회사는 제조업 분야의 기업을 위협하는 존재일 수도 있으나 이런 적과의 동침, 즉 감시와 협력을 통해서 제조업에 내재된 취약점을 보완하며 경영진에 건강한 긴장감을 부여할 수 있는 것이다. 그 어떤 개인이나 조직도 견제와 균형이 없는 상황에서 오랫동안 문제 없이 지속되기는 어려운 것이다. 당장 불편함이 있더라도 다른 의견을 듣고 적대적인 상대방을 설득하는 노력을 계속하면서 조직이 더욱 건전해질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금융은 단기적 이윤만 추구하는 경제에 해로운 존재이고 현실의 경영진은 조직을 위해서만 생각하고 장기적 안목에서만 활동하는 존재라는 일차원적인 사고방식은 지양돼야 한다. 오히려 더 넓은 투자 정보를 가지고 있는 금융 기업들이 기업의 경영에 참여함으로써 국가 경제 전반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는 균형 잡힌 인식이 필요하다.

세계 경제를 주도하는 국가는 미국이며 그 미국 경제의 중심은 월스트리트로 대표되는 미국의 금융 산업이다. 한국에서는 금산분리와 같은 해묵은 논쟁을 하는 동안 전 세계의 많은 일반 투자자들이 미국의 금융 산업에 많은 재산을 투자하고 자신의 노후를 맡기고 있다. 실제로 현재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인 제롬 파월을 비롯해 역대 미국의 재무부 장관들 중에도 월스트리트 출신이 즐비하다. 미국 국민들도 월스트리트의 부유한 금융가들에 대한 반감이 있지만 영리한 금융가들을 이용하는 것이 오히려 국가 경제와 개인의 경제 생활에 유리하다는 것을 현명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은 기업이나 국민의 적이 아니라 오히려 든든한 아군으로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의 국민들과 기업들은 얄미울 정도로 돈을 잘 운영하는 월스트리트와 적과의 동침을 통해서 함께 번영하고 있다. 오히려 미국 국민들은 월스트리트의 금융가들이 자신들을 위해서 더 많은 돈을 벌어주기를 바라면서 재무장관이나 Fed 의장과 같은 정부 요직에 금융 산업 출신의 인물들을 임명하는 것이다.

이제 한국의 금융 산업도 현실의 기업 경영에 일정 부분 참여해 경영자들을 감시하고 주주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돌아갈 수 있도록 하는 분위기가 만들어져야 한다. 금융감독원을 포함한 금융 당국도 금융 기업들이 산업에 진출해 경영에 참여하는 상황을 무조건 견제해 제조업 기업들을 보호하려고만 할 것이 아니라 금융회사들의 참여를 통해 기업의 경영이 투명하게 이뤄지고 주주와 국민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배분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한국 기업들이 세계를 이끌고 있는 상황에서 언제까지 기업을 미성년의 어린이 취급하며 보호하는 것이 답일 수는 없다. 한국 경제의 우수한 기업들의 가치가 제대로 평가받을 수 있도록 금융 당국과 국민들의 새로운 시각이 필요한 시점이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관련 태그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