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꿈꾸는 아부다비의 황금바위

이수경 신작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

공공미술 아부다비 비엔날레 초청받아

AI생성한 집단상상의 바위에 24K금박

"기원 담은 상상의 돌, 화합·평화 기원"

이수경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 2024년, FRP에 24K 금박, 160x185x183cm /사진=작가 제공 ⓒYeesookyung이수경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 2024년, FRP에 24K 금박, 160x185x183cm /사진=작가 제공 ⓒYeesookyung




이것은 바위다. 육중한 바위다. 오랜 시간, 모진 풍파를 견뎌낸 바윗덩이다. 자, 이제 연금술을 통해 돌이 금으로 변하노니, 이것은 더 이상 돌이 아니다. 커다란 금덩이다. 언덕 위 나무 옆에 놓인 빛나는 금덩이를 보면, 지나던 사람들 누구나 감탄하며 반길 것이다. 마치 수 천 년 전부터 이곳을 지켜온 듯 정겹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변치 않을 것 같은 든든하고 신비로운 황금바위다.



작가 이수경의 2024년작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이다. 이수경 작가는 지난 11월 15일 개막해 2025년 4월 30일까지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에서 진행되는 ‘공공미술 아부다비 비엔날레(Public Art Abu Dhabi Biennial) 2024’에 한국 미술가로는 유일하게 초청받아 신작을 선보였다.

‘공공미술 아부다비 비엔날레’는 올해 처음 열린 국제 미술제로, ‘공공의 문제(Public Matter)’라는 주제 아래 전 세계 70여 명의 작가를 초대했다. 프랑스의 다니엘 뷔렌, 덴마크 코펜하겐을 거점으로 활동하는 작가그룹 슈퍼플렉스, 이집트 출신 와엘 샤키, 인도네시아의 에코 누그로호, 콜롬비아 태생의 오스카 무리조 등 쟁쟁한 작가들과 함께 한국미술로 이수경이 이름을 올렸다.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의 알 아인(Al Ain) 힐리 고고학 공원(Hili Archaeological Park)에 옿인 이수경의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 설치 전경 /사진=작가제공 ⓒYeesookyung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의 알 아인(Al Ain) 힐리 고고학 공원(Hili Archaeological Park)에 옿인 이수경의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 설치 전경 /사진=작가제공 ⓒYeesookyung


이 신생 비엔날레는 이름처럼 ‘공공미술’로 특화해, 도시를 오가는 누구나 마주하고 교감하는 설치미술을 통해 공공 공간의 문화적 중요성을 보여주고자 한다. 이수경의 작품은 아부다비 헤리티지 공원(Heritage Park)과 알 아인의 힐리 고고학 공원(Hili Archaeological Park)에 설치됐다.

“전통이 강한 샤르자, 첨단 도시 두바이와 비교할 때 아부다비는 이민 온 다국적 사람들과 함께 성장한 정치와 산업의 중심 도시에요. 지금의 아부다비를 구성하는 공공의 개념과 가치를 생각했고, 문화적 상상력으로 만들어진 일시적 공동체가 대중화되는 조건은 무엇인지를 고민했어요. 황금덩이처럼 생긴 이 작품에 평화와 상생, 화합의 의미가 담기길 바라며 작업 했습니다.”

사실은 진짜 바위도 아니었다. 작가는 인공지능(AI)으로 생성한 바위 이미지를 기반으로 형태를 만들었고, 그 표면을 24K 금박으로 빈틈없이 에워쌌다.



“AI가 그려낸 이 바위는 익명의 사람들의 상상에서 탄생한 돌이죠. 제 작업에서는 금(金)이 중요한 역할을 하는데, 상상으로 만들어진 돌을 영원한 불변성을 지닌 영속적 존재로 환원하는 소재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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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경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 작품의 세부 모습. /사진=작가 제공 ⓒYeesookyung이수경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 작품의 세부 모습. /사진=작가 제공 ⓒYeesookyung


바위 형태를 택한 이유에 대해 작가는 “약 70%가 암석으로 이루어진 한국에는 선사시대 고인돌 문화의 흔적과 고대 의식의 자취를 간직한 다양한 이름의 바위들이 있다"면서 “나에게 바위는 우주의 탄생 이후 모든 시간을 담고 있는 신비롭고 매력적인 존재”라고 설명했다.

AI를 활용해 만든 ‘복제 바위’를 아부다비로 보내기로 한 작가는 “애틋한 마음”이 들었다 한다. 바위에게 노래를 들려주기로 결심했다.

“너는 가짜가 아니라 돌에서 금으로 변한 연금술로 태어난 돌이니, 타국에 가서 평화와 상생의 정신을 펼쳐 다오.”

그런 마음을 담되 구음(口音), 즉 가사 없이 멜로디로만 감정을 표현하는 전통 음악의 방식으로 바위의 앞날을 축복해 주기로 했다.

퍼포먼스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의 김태영 공연 장면 /사진=작가 제공 ⓒYeesookyung퍼포먼스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의 김태영 공연 장면 /사진=작가 제공 ⓒYeesookyung


퍼포먼스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의 사이프 알 알리 공연 장면 /사진=작가 제공 ⓒYeesookyung퍼포먼스 '그곳에 있었다_아부다비'의 사이프 알 알리 공연 장면 /사진=작가 제공 ⓒYeesookyung


한국에서의 구음은 국가무형유산 진도 씻김굿 전수자인 김태영 씨가 공연했다. 황금 바위가 도착한 아부다비에서는 현지 전통 음악가 사이프 알 알리가 환영의 노래를 불러줬다. 새로운 집으로의 도착을 축하하는 마음으로. 작품은 아부다비의 두 곳에 놓인 조각 외에, 두 가수들의 퍼포먼스 비디오까지 포함한 총 3점으로 구성됐다. 전시개막 후 한 달을 넘겨 현지 반응을 살펴본 작가는 “다문화, 다국적 사람들의 교차로가 되고 있는 아부다비의 맥락 안에서 ‘공공’의 개념을 정의하고자 했는데, 작품이 지역사회 뿐만 아니라 이주노동자 등 다양한 방향으로 소통하는 듯해 보람있다”고 말했다.

꿈과 말과 노래는 형체는 없으나 힘을 가진다. 작가의 염원에, 한국과 아랍에미레이트 아부다비의 전통 공연까지 더해져 ‘상상으로 만들어진 돌’은 영원성을 지닌 돌로 변모했고, 평화와 공존을 상징하는 매개체가 됐다.

작가 이수경이 올해 처음 열린 '공공미술 아부다비 비엔날레'에 한국 미술가로는 유일하게 초청됐다. /사진출처=Public Art Abu Dhabi Biennial 홈페이지작가 이수경이 올해 처음 열린 '공공미술 아부다비 비엔날레'에 한국 미술가로는 유일하게 초청됐다. /사진출처=Public Art Abu Dhabi Biennial 홈페이지


서울대 회화과를 졸업한 이수경은 풍부한 서사적 상상력을 바탕으로 설치·조각·퍼포먼스·비디오아트·회화·드로잉 등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작가다. 깨진 도자기 파편을 금으로 이어붙인 ‘번역된 도자기’ 연작으로 유명하며, 이 작품으로 2017년 제57회 베니스 비엔날레 본전시에 초청됐다. 꾸준히 국내외 주요 미술관과 비엔날레에서 전시하고 있으며, 국립현대미술관과 리움 같은 국내 미술관 뿐만 아니라 영국 대영박물관·브리스톨미술관, 미국 시카고미술관·보스턴미술관·LA카운티미술관 등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돼 있다.


조상인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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