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시우(사진) 코치는 골프볼이나 종이에 사인하는 일이 이제 어색하지 않다.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대회장이나 연습 현장에서 심심찮게 사인 요청을 받기 때문이다. 투어 프로도 아닌데 골프 팬들은 이 코치 곁으로 몰린다.
“(레슨 방송에 꾸준히 출연해서 그런지) 이전에도 가끔 사인 요청을 받긴 했어요. 근데 올해는 유독 많이 알아봐 주시네요.” 올해 유독 알아보는 이가 많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코치가 운영하는 빅피쉬아카데미는 올해 정말 마르지 않는 샘처럼 끊임없이 우승 소식을 들려줬다. 대회가 끝나는 일요일이면 “또 이시우네가 했어?”라는 말이 유행어처럼 돌았다.
이 코치가 가르치는 선수들, 이른바 ‘이시우 사단’의 정규 투어 대회 승수는 올해만 14회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의 리디아 고, 일본여자프로골프(JLPGA) 투어의 이효송, 한국프로골프(KPGA) 투어의 김민규를 포함해서다. 14승에 포함하진 않았지만 일본의 오니시 유리라는 선수가 일본 여자 2부 투어에서 우승해 내년 JLPGA 투어 시드를 따낸 성과도 있다. 틈 날 때마다 한국을 찾아 이 코치한테서 보름씩 지도를 받던 열성파다. 역시 14승에 포함 안 된 우승 중에는 리디아 고의 파리 올림픽 금메달도 있다. 이 코치는 ‘올림픽 금메달 코치’다.
이 코치는 천장을 보면서 손가락을 꼽아보다가 “아, 열 네 번 중에 연장전 우승이 네 번인데 연장에서 진 것도 세 번이네요”라면서 살짝 아쉬운 듯한 표정을 지었다. 올해 KLPGA 투어 상금 랭킹 2위에 오른 박현경(시즌 3승), 5위의 김수지(1승), 9위의 배소현(3승) 등이 이시우 사단의 간판들이다. 여기에 올해 이소영과 전예성, 조혜림이 들어왔고 1월 시작될 베트남 호치민 훈련 캠프에는 베테랑 이정민도 새로 합류한다. LPGA 투어 고진영도 여전히 이 코치한테서 배운다. 내년에 이시우 사단이 또 몇 승을 가져갈지가 새 시즌의 관전 포인트 중 하나일 정도다.
성공 비결을 물으면 이 코치는 늘 알듯 모를 듯한 옅은 미소를 짓는다. 동료 교습가들에 대한 예의 때문인지 교습에 비결은 따로 없다고 하는데 정성이 남다른 건 확실해 보인다. 이 코치는 올해 KLPGA 투어 대회 현장을 2·3개 빼놓고 다 찾아다녔다. 연습 라운드 때 동행은 당연하고 정규 라운드 때도 갤러리로 돌았다. 이게 선수들한텐 보이거나 보이지 않는 믿음이 됐고 의지가 됐다. 영상 통화로 하는 레슨에도 도가 텄다. 지난 겨울훈련 동안 새벽 4시에 일어나 미국의 리디아 고를 원격으로 봐주고 6시부터 하루 종일 캠프의 선수들을 직접 챙기는 생활을 계속했다.
이 코치는 “선수와 코치의 관계가 영원할 순 없다. 갑자기 관계가 끊어질 수도 있는 거다. 하지만 함께하는 동안엔 최대한 신뢰를 쌓고 소통하려고 노력한다. 그걸 1번으로 생각한다”고 했다. 지독하게 풀리지 않는 선수와 밥을 먹다가 같이 운 적도 여러 번이라고.
투어 프로 레슨 쪽은 아무래도 선수 이동이 잦은 편이라 가르치는 입장에선 갑자기 떠나는 선수가 야속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이 코치는 그럴 때 이렇게 생각한다고 한다. ‘선수들이 오죽하면 그랬을까’라고. “그러고 보면 저도 이 일을 한 해 두 해 거듭하면서 알게 모르게 성장하고 있나 봅니다.” 선수 시절 주로 KPGA 2부 투어를 뛰었던 이 코치는 2009년부터 레슨 일을 하고 있다. 여자 선수들을 가르치기 시작한 건 2017년부터.
이제 또 새로운 한 해 농사를 결정짓는 지옥 훈련을 준비해야 한다. 이 코치는 “두 달 가까운 시간 동안 ‘허투루 쓴 시간이 1시간도 안 되는 것 같다’ 이런 생각이 들 만큼은 해야 한다고 선수들한테 강조한다”고 했다. “저는 선수들이 안주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올해 1억을 벌었으면 내년엔 2억을, 그다음엔 4억을 벌도록 계속 해야죠. 그게 프로 아닙니까. 2등을 하고 돌아오는 선수한텐 ‘2등이 지금의 네 실력이니 더 채워서 1등을 하자’고 해요. 트로피에 이름을 새기고 가져가는 건 한 명만 할 수 있는 거잖아요.”
이 코치는 ‘나쁘지 않아’라는 말을 입에 잘 올리지 않고 선수들이 스스로 그렇게 생각해버리는 것도 용납하지 못한다. 듣다 보니 안주해선 안 된다는 말은 이 코치 본인을 향한 채찍질 같기도 하다. 무시무시한 이시우 사단. 내년엔 또 몇 승을 쓸어 담으려고.
[서울경제 골프먼슬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