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공지능(AI) 전문인력이 최근 10여 년 동안 빠르게 늘었지만 임금 수준은 여전히 글로벌 표준과 격차가 크다는 분석이 나왔다. 인재의 양적 확대는 이뤄졌지만 보상체계·산업 생태계 등 질적 기반은 세계 경쟁국에 크게 뒤처져 있다는 지적이다.
한국은행이 5일 발표한 ‘AI 전문인력 현황과 수급 불균형’ 이슈노트에 따르면 2024년 기준 국내 AI 전문인력은 약 5만 7000명으로 2010년(2만 8000명) 대비 두 배 이상 증가했다. 링크드인 온라인 프로필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한 결과 한국의 AI 인력 증가 속도는 미국·영국·프랑스·캐나다 등 주요국보다 더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다만 절대 규모는 미국 78만 명, 영국 11만 명 등에 크게 못 미쳤다.
AI 인력의 학력 수준은 매우 높았다. 석·박사 학위 보유자가 전체의 58%에 달했고, 서울대·연세대·고려대·KAIST 등 소수 대학 출신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전공은 공학계열이 64%로 가장 많고 경영학(12%)이 뒤를 이었다.
기술 스펙도 꾸준히 고도화됐다. 2024년 기준 AI 인력이 보유한 기술은 클라우드(41%), 머신러닝(40%), 딥러닝(17%), 신호 처리(11%) 순이었다. 특히 머신러닝과 딥러닝 기술 보유 비중은 2010년 대비 각각 14%포인트, 8%포인트 확대되며 글로벌 트렌드와 비슷한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임금 측면에서는 AI 기술 보유자의 임금이 비보유자 대비 평균 4.3% 높았고, 임금 프리미엄은 2010년 1.3%에서 2024년 6%로 꾸준히 상승했다. 임금 프리미엄은 동일 직무·학력·산업 대비 AI 기술 보유자가 받는 추가 임금을 뜻한다.
패턴 인식(17.9%), 뇌과학(15.8%), 신호 처리(11.8%), 클라우드(11.3%) 등 일부 기술은 높은 프리미엄을 형성했다.
그러나 국제 비교에서는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미국 AI 인력 임금 프리미엄은 25%, 캐나다 18%, 영국·프랑스·호주 15% 수준이다. 한국은 6%로 주요국의 절반에도 못 미친다.
한은은 △연공서열 중심의 임금체계 △성과가 임금에 반영되는 속도가 느린 구조적 경직성 △노동시장 이동성 제약을 원인으로 지목했다.
낮은 보상 수준은 인재 유출로 직결되고 있다. AI 기술 보유자의 이직률은 링크드인 기준 고학력 전문직 평균보다 훨씬 높았고, 해외 기업 이직 비중도 컸다. 해외 근무 인력은 15년간 꾸준히 증가해 전체의 16%(약 1만1000명)를 차지했다. 이들이 가장 많이 향하는 국가는 미국이었다.
딥러닝·머신러닝·로보틱스 등 고급 기술 보유 인력의 해외 근무 비중은 특히 높았다. 한은은 “국내 임금 프리미엄이 낮은 분야일수록 해외로 더 빨리 빠져나가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AI 인력은 팬데믹 기간을 제외하고 15년 내내 순유출 상태였다. 이동이 봉쇄됐던 시기만 순유출 규모가 ‘0’에 가까웠다가 이후 다시 증가하는 흐름이 확인됐다.
기업 서베이에서도 수급 불균형이 뚜렷했다.
연구진이 400개 기업 인사담당자를 조사한 결과 대기업·중견·중소기업 모두 70% 이상이 “AI 인력을 더 뽑겠다”고 답했다.
연봉 제시 의향을 묻자 대기업은 이미 현행보다 평균 13% 높은 급여를 지급하고 있으며 “22%까지 인상할 의향이 있다”고 답해 인재 확보 경쟁이 매우 치열한 것으로 나타났다.
한은은 “양적 확대는 분명하지만, 국제 인재 경쟁에서 한국은 구조적으로 불리한 위치”라며 “AI 핵심 인력의 해외 유출을 막고 산업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글로벌 수준의 보상체계, 연구·산업 생태계 조성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