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005930)가 50조 원 이상을 투입할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 파운드리(반도체 위탁 생산) 팹 가동을 앞두고 안정적 양산 체제 구축에 속도를 내고 있다. 고대역폭메모리(HBM) 시장 회복에 성공한 삼성전자가 파운드리 1위인 대만 TSMC 추격전에도 고삐를 당기는 모습이다.
8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 미주 총괄(DSA)은 최근 파운드리 ‘고객 엔지니어링(Customer Engineering)’ 분야 시니어 매니저 채용을 시작했다. 근무지는 실리콘밸리인 미국 새너제이에 위치한 삼성전자 미주 총괄 사옥이며 자격 요건은 학사 기준 15년, 박사 기준 10년 이상의 경력자다.
삼성전자 DSA는 앞서 9월 테슬라 등이 설계한 칩이 현지 파운드리에서 양산될 수 있게 돕는 ‘기술 지원(Technology Enablement)’ 직무 경력직 채용에 나선 바 있다. 기술 지원 직무는 양산 전 팹리스가 설계한 도면을 파운드리에서 원활하게 생산할 수 있게 가다듬는 작업을 맡는다. 이번 CE 직무는 실제 수주한 칩의 양산 직전 발생하는 기술적 난제를 해결하고 수율을 끌어올리는 ‘현장 해결사’ 역할을 맡게 된다.
이번 인력 확충은 삼성전자가 테슬라에서 수주한 AI5 칩의 양산 준비 작업이 본격화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AI5 칩은 테슬라가 자율주행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에 탑재할 차세대 AI 가속기 칩이다. 내년부터 초도 물량을 만들기 시작해 2027년 대량 양산할 것으로 전망된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10월 “AI5 칩은 TSMC와 삼성전자 모두 제조하게 될 것”이라고 밝혀 당초 TSMC가 독점할 것이라는 업계의 예상을 깬 바 있다. 삼성전자는 테슬라와 AI5 칩의 후속작인 AI6 칩은 이미 23조 7000억 원 어치를 수주해놓고 있다.
AI5 칩 양산 일정이 다가오며 테일러 공장 가동 준비도 막바지 단계다. 3분기 말 기준 테일러 팹의 공정 진행률은 93.6%로 내년 7월 완공 예정이다. 삼성전자는 초기 수율 확보가 용이한 4㎚(나노미터·10억 분의 1m) 공정을 우선 도입해 테슬라 등 핵심 고객사의 물량을 안정적으로 소화할 계획이다. 이후 국내에서 수율을 끌어올리고 있는 2나노 공정 노하우를 테일러 팹에 이식해 선단 공정에 대응할 것으로 보인다.
삼성전자가 공격적으로 파운드리 인력 채용에 나서는 배경에는 글로벌 고객사들의 ‘탈 TSMC’ 기회를 선점하기 위함이다. 글로벌 빅테크들은 TSMC의 가격 인상과 공급 불확실성에 대안을 모색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TSMC는 미국 애리조나에서 생산되는 4나노 공정 물량에 대해 현지 비용 상승으로 내년부터 최대 30% 가격을 높일 것으로 알려졌다.
공급 불확실성도 변수다. TSMC 3나노 공정은 내년 생산 물량이 사실상 모두 예약된 상태로 2나노 라인은 애플이 선점한 것으로 전해졌다. 영국 반도체 설계 기업 암(Arm)은 최근 삼성전자 2나노 공정으로 만든 차세대 서버용 칩 네오버스 V3를 공개하며 협력 관계를 과시했다.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 격차를 좁히기 위한 추격전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세계 파운드리 시장 점유율은 TSMC 71%, 삼성전자 8%다. 점유율 격차는 크지만 테슬라 등 대형 고객사 확보와 수율 안정화가 맞물리면 삼성에 반등 계기가 될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테일러 공장 성공 여부는 결국 얼마나 빨리 안정적인 수율을 확보해 고객 신뢰를 얻느냐에 달렸다”며 “미국 현지에서 즉각적인 기술 대응이 가능한 베테랑 인력을 확보하는 것은 TSMC와 서비스 격차를 줄이는 핵심 열쇠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