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정부의 기획예산처 첫 장관 후보자로 보수 진영 이혜훈 전 의원이 지명되면서 다방면에서 파격적인 인사가 이뤄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자타 공인 ‘경제통’으로 꼽히지만 현 정부의 경제 기조와는 먼 인물로 평가됐기 때문이다. 민생·경제의 영역에서는 이념을 가리지 않고 운동장을 넓게 쓰겠다는 이재명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인사로 해석된다.
이 후보자는 28일 기획처 장관 지명에 대한 입장문을 내고 “무거운 책임감을 느낀다”며 “정치적 색깔로 누구든 불이익을 주지 않고 적임자는 어느 쪽에서 왔든지 상관없이 기용한다는 이 대통령의 방침에 깊이 공감한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제와 민생 문제 해결은 정파나 이념을 떠나 누구든지 협력해야 한다”며 “성장과 복지 모두를 달성하고 지속 성장을 이뤄내야 한다는 이재명 정부의 국정 목표는 저의 입장과 같으며 모든 것을 경제 살리기와 국민 통합에 쏟아붓겠다”고 강조했다. 다음 달 2일 출범하는 기획처는 정부 조직 개편에 따라 기획재정부에서 예산 기능을 분리해 국무총리실 산하에 신설되는 기관으로 예산 편성과 중장기 국가발전전략 수립을 담당하는 경제 부처다.
이 후보자는 국민의힘 계열 정당에서 17·18·20대 국회의원을 지낸 3선 의원으로 보수계를 대표하는 의원으로 꼽힌다. 한나라당·새누리당 등 보수 정당에서 정치 경력을 쌓았고 바른정당 대표를 지낸 뒤 국민의힘 소속으로 활동해왔다. 2021년 9월 국민의힘 대권 주자였던 윤석열 전 대통령 캠프에 합류해 국가미래전략특위 위원장으로 일하기도 했다. 지난해 22대 총선에서는 국민의힘 서울 중구·성동구을 후보로 출마했다가 낙선했으며 올해 대선에서는 김문수 국민의힘 후보 캠프에서 정책본부장을 지낸 바 있다. 전 정부 인사로 분류되는데도 현 정부의 핵심 경제 부처 장관으로 기용된 셈이다.
출신 역시 파격적이라는 평가다. 이 후보자는 1964년 부산 출생으로 마산제일여고와 서울대 경제학과를 졸업한 뒤 미국 캘리포니아대 로스앤젤레스캠퍼스(UCLA)에서 경제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당초 기획처 초대 장관 후보자로 전남 출신 인사들이 하마평에 올랐던 만큼 부산·울산·경남 출신이 기용된 것은 편견을 깬 인사라는 평가다. 내년 6월로 다가온 지방선거를 앞두고 지역별 인사를 적절히 배분한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게다가 이 후보자는 현 정부의 경제 정책과 다른 기조를 보여온 인물이다. 그는 박사 학위 취득 후 한국개발연구원(KDI) 연구위원으로 재직하던 당시 재정·사회보장 분야 연구위원으로 활동했다. 국회의원이 된 뒤에도 공무원연금과 군인연금 개혁 등에 힘썼으며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간사, 조세소위원장, 예산결산소위원장 등을 지냈다.
특히 확장재정을 강조하는 현 정부의 기조와는 달리 재정 건전성의 중요성을 역설해왔다. 이 후보자는 바른정당 대표였던 2017년 당시 문재인 정부의 재정 정책에 대해 “재정을 감당할 생각은 없고 표를 얻으려는 포퓰리즘 정책만 쏟아내고 있다”며 “연일 쏟아내는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이 나라 곳간을 거덜낼 판”이라고 강하게 비판한 바 있다. 이에 적극재정에 방점을 찍는 현 정부의 기조와 충돌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나온다.
이규연 대통령실 홍보소통수석은 이에 대해 “대통령과 어떤 소통이나 협의 없이 지명되지는 않았을 거라고 생각한다”며 “야당 내에서도 합리적인 인사로 꼽히는 분이므로 합리적인 부분, 전문가적인 부분을 높이 샀다고 본다”고 설명했다.
한편 국민의힘은 이 후보자가 사전에 당협위원장 사퇴나 탈당계 제출 등 최소한의 조치조차 취하지 않았다며 강하게 반발했다. 아울러 이 후보자가 서울 중·성동을 당협위원장을 맡고 있는 상황에서 이재명 정부 초대 기획처 장관직을 수락한 것이 해당 행위라고 보고 이날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이 후보자 제명 안건을 의결했다. 국민의힘은 “지방선거를 불과 6개월 남기고 국민과 당원을 배신하는 사상 최악의 해당 행위를 했다”며 “국무위원 내정 사실을 밝히지 않은 채 선출직 공직자 평가를 실시하는 등 당무 행위를 지속함으로써 당의 질서를 어지럽히고 당무 운영을 고의적으로 방해했다”고 설명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