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지며 국가는 이를 위해 노력할 의무가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그런데 복지 정책에는 많은 예산이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사회복지 지출은 국내총생산(GDP)의 15% 수준으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보다 낮다. 고령화의 여파로 현행 제도를 유지하더라도 앞으로 사회복지 지출은 빠르게 늘어날 것이다. 그만큼 빠듯한 살림살이에 부담스러운 지출이므로 신중할 필요가 있다. 게다가 이 지출은 불가역적인 만큼 더욱 신중해야 한다.
그렇다면 우리나라 현실에서 가장 바람직한 복지제도는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복지 정책의 주요 대상은 노동시장 취약 계층이다. 따라서 즉각적인 효과만 보면 복지 예산은 소모적일 위험이 크다. 복지를 너무 강화하면 일할 의욕을 잃고 복지에만 의존하는 결과가 초래된다. 이른바 ‘복지 의존성’이 커지면 항구적인 빈곤층이 생겨 예산 부담은 더 커진다. 이는 개인에게도 결코 바람직한 결과가 아니다. 복지 의존이 아무리 합리적 선택이었더라도 이를 헌법이 보장하고자 했던 인간다운 생활이라고 보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제적이나 도덕적인 관점에서 바람직한 복지제도는 모든 국민이 최소한의 생활 수준을 ‘스스로’ 유지하는 게 궁극적 목표여야 한다. 또 만약 자신이 통제할 수 없는 원인 때문에 최소한의 생활을 하는 것이 불가능할 경우에 한해 도움을 주는 제도여야 한다.
서울시가 ‘디딤돌소득’이라는 이름으로 3년간 시행한 복지제도 실험은 최적의 복지제도 설계에 필요한 중요한 단서들을 제공했다. 우선 식료품·의료비·공공요금 등의 지출이 늘어난 사실이 발견됐다. 이는 상당수 가구가 디딤돌소득을 받기 전에는 필수재 소비를 충족시킬 최소한의 소득에 미치지 못했음을 의미한다. 소득 지원이 너무 적거나 사각지대가 있다는 의미로 최소 필요 기준에서 보더라도 현행 복지제도 아래서 추가 지원이 필요한 빈곤 가구가 존재함을 확인할 수 있다.
무조건부 소득 지원이 근로 참여를 감소시킨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통제된 실험이라는 과학적 방법을 통해 근로 참여가 얼마나 줄고, 나아가 어떤 계층에서 이런 영향이 크게 나타나는지를 계량적으로 확인한 점은 디딤돌소득 실험의 중요한 성과다. 가령 단시간 일자리에서 일하던 이들의 근로 참여는 더 줄었는데 이는 ‘복지 의존성’ 위험 최소화를 위해서는 비정규직이나 파트타임 근로자 대상 재취업 교육 훈련이나 구직 지원 서비스 등을 병행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시사한다. 복지 정책은 보건복지부가, 노동 정책은 고용노동부가 독립적으로 관리해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최근 인공지능(AI) 기술의 급속한 발전과 플랫폼 경제의 확산으로 창업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새로운 복지제도는 창업에 도전했으나 실패한 이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줄 수 있는 안전망이어야 한다. 다만 도덕적 해이는 경계해야 한다. 경제적 자립 능력이 원천적으로 없는 이를 제외하면 실업급여처럼 수혜 기간을 제한하는 방법도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이제 ‘구빈(救貧)’을 넘어 경제 활력을 뒷받침하는 복지제도가 필요한 시점이다. 우리는 디딤돌소득 실험을 통해 새로운 시대에 맞는 복지제도는 추상적인 가치 판단이 아닌 실증적 근거에 기반해 설정돼야 한다는 점을 확인했다. 지금 필요한 것은 더 크거나 더 작은 복지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정교한 설계에 대한 고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