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헨티나는 내년 2월을 앞두고 이른바 ‘빙하법’ 개정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쟁이 뜨겁다. 환경 보호를 이유로 한 반대와 이제는 개발을 통해 국가의 돌파구를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우리들에게는 다소 생소한 주제다. ‘빙하법’이라는 말부터 낯설고, 빙하가 왜 한 나라의 경제 문제와 직결되는지 쉽게 와닿지 않는다. 그러나 이 논쟁은 단순한 환경 법률 문제를 넘어 아르헨티나와 중남미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구조적 단서를 제공한다.
이 법의 이름부터 오해를 부른다. 빙하법은 빙하라는 얼음을 보호하는 법처럼 들리지만 실제로는 상류 수자원 관리가 핵심이다. 안데스 고산지대의 빙하와 만년설은 녹아 계곡을 따라 내려오며 하천의 기저 유량을 유지한다. 이 물은 농업과 지역 공동체의 생존과 직결된다. 광산 개발이 물의 흐름을 바꾸거나 사용량을 늘리고 수질 오염 가능성을 높일 수 있다는 우려가 이 법의 출발점이다. 그런 의미에서 빙하법은 환경 상징을 앞세운 법이라기보다 수자원을 보호하기 위한 매우 강력한 사전 차단 장치에 가깝다.
빙하법은 2010년에 제정됐다. 비교적 최근의 법이다. 그럼에도 “이 법 때문에 아르헨티나는 광산 개발을 못 해왔다”는 말이 나온다. 이는 절반만 맞는 이야기다. 사실 아르헨티나는 빙하법 이전부터 이미 광업 개발이 뒤처진 나라였다. 문제는 자원이 아니라 국가가 선택해 온 발전 전략과 제도 구조에 있었다.
아르헨티나는 전통적으로 농업 중심 국가였다. 곡물과 축산 분야에서 비교우위가 있었고 국가 성장 전략 역시 농업과 내수에 무게가 실려 있었다. 광업은 중앙정부와 지방정부의 권한이 복잡하게 얽혀 있고 환경·외환·조세 문제까지 동시에 다뤄야 하는 까다로운 산업이었다. 그 결과, 광업은 정책 우선순위에서 밀려났고 국가 전략의 중심에 서지 못했다. 같은 안데스 산맥을 공유하면서도 칠레와 페루가 일찍부터 광업을 국가 경제의 축으로 키운 것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셈이다.
이런 구조 위에서 2000년대 후반 환경 갈등이 겹쳤다. 일부 광산을 둘러싸고 수질 오염과 물 부족에 대한 불안이 커졌고, 정부와 기업의 관리 약속에 대한 불신도 확산됐다. 정치권은 ‘관리된 개발’이라는 복잡한 해법 대신 가장 확실한 선택을 택했다. 아예 문을 닫아버리는 것이었다. 빙하법은 광업이 활발해서 이를 통제하려 만든 법이 아니라, 애초부터 관심과 역량이 부족했던 광업을 제도적으로 더 멀리 밀어낸 결정이었다.
그러나 환경은 그대로인 반면, 경제 환경은 달라졌다. 에너지 전환 시대가 본격화되면서 구리는 전기차, 신재생에너지, 전력망 확충에 필수적인 전략 자원이 됐다. 이 과정에서 아르헨티나가 보유한 구리 잠재력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업계와 국제기구의 분석에 따르면, 현재 보류 중인 주요 구리 프로젝트들이 빙하법 개정을 계기로 본격 가동될 경우 아르헨티나는 세계 구리 수출국 순위에서 네 번째 수준까지 도약할 가능성이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같은 안데스를 공유한 칠레·페루에 이어, 글로벌 구리 공급망에서 의미 있는 축으로 편입될 수 있다는 의미다.
이 지점에서 같은 안데스를 공유한 칠레와 페루의 사례는 중요한 대비를 이룬다. 흔히 이들 국가에서 광업이 국내총생산의 약 10% 안팎을 차지한다고 말하지만, 이는 광산에서의 직접 생산만 반영한 보수적인 수치다. 실제로 광업은 물류와 운송, 에너지, 건설, 장비 산업은 물론 금융, 법률, 회계, 엔지니어링 같은 전문 서비스까지 함께 움직인다. 이러한 간접 효과와 유발 효과까지 포함하면, 광업은 이들 국가에서 국내총생산의 4분의 1 이상을 떠받치는 산업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광업은 단순한 채굴 산업이 아니라, 국가 경제 구조 하나를 통째로 가동시키는 플랫폼 산업인 셈이다.
반면 아르헨티나는 이 구조를 거의 활용하지 못했다. 광업의 직접 효과만 놓고 보면 경제 기여도는 미미했고, 그에 따라 광업을 중심으로 형성될 수 있었던 산업 생태계 역시 작동하지 못했다. 같은 안데스를 가지고도 주변국들이 수십 년에 걸쳐 누려온 경제적 효과를 아르헨티나는 얻지 못해 온 것이다.
그래서 지금의 빙하법 개정 논쟁은 ‘광산을 더 파느냐 마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이는 수자원을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그리고 그 보호를 과학과 제도, 나아가 신뢰 가능한 절차로 관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가깝다. 절대적으로 보호해야 할 지역은 분명히 보호하되, 모든 고산 지형을 동일하게 취급하는 일괄 금지에서 벗어나 사전 검증과 독립적 판단을 통해 관리 가능한 영역을 구분할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아르헨티나의 빙하법 논쟁은 중남미를 바라보는 시야를 넓혀준다. 중남미는 단순히 자원이 많은 지역도, 개발이 더딘 지역도 아니다. 그 이면에는 자원을 둘러싼 제도와 신뢰, 그리고 역사적 선택이 켜켜이 쌓여 있다. 같은 안데스를 공유하고도 서로 다른 길을 걸어온 이유는 지질이 아니라, 바로 그 선택의 축적에 있다. 아르헨티나는 이제 다시 한 번 그 선택의 기로에 서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