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동산 정책·제도

[단독]노후청사·유휴부지 '장관 직권 개발' 가능…지자체 '패싱' 논란

■與 발의 ‘노후청사 복합개발 특별법 제정안’

시·도지사와 합의 못해도

국토부장관 지구 지정 가능

인허가권도 통심위에 위임

"정부 권한 예상보다 크다"

지자체들 패싱 우려 반발

국토부 "충분한 협의 거칠 것"





국토교통부가 도심 주택 공급을 위해 지방자치단체 합의 없이도 장관 직권으로 유휴부지와 노후청사를 개발하는 방안을 추진한다. 정부가 9·7 공급 대책에서 예고했던 복합개발 특별법안이 발의되며 이 같은 구상이 공개된 것으로, 일선 지자체에서는 벌써 지방 자치 단체 ‘패싱’ 우려가 터져 나오고 있다. 국토부는 지자체가 반대할 경우 무리해서 사업을 강행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지만 법안 심사 과정에서 논란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30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토부는 박상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통해 최근 ‘도심 내 주택공급을 위한 노후 공공청사 등 복합개발 특별법안’을 발의했다. 앞서 정부는 9·7 대책에서 공공청사와 유휴 국공유지를 개발해 2030년까지 수도권에 2만 8000가구를 공급하고, 이를 위해 특별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명칭은 노후청사 등 복합개발 특별법이지만 실제로는 국가·지자체·공공기관이 보유한 유휴 국·공유지를 모두 대상으로 한다. 이론적으로는 서울 용산구 용산국제업무지구, 노원구 태릉CC 같은 대규모 유휴부지도 이 특별법을 활용해 개발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이 때문에 노후청사 등 복합개발 특별법은 정부가 연초 발표할 추가 주택공급 대책의 핵심 기반으로 여겨지고 있다.



문제는 현재 법안대로라면 관계 기관 합의와 무관하게 국토부 장관이 직접 개발 대상지를 결정할 수 있게 된다는 점이다. 법안에 따르면 국토부 장관은 복합개발심의위원회가 수립한 사업시행계획 중에서 주택 공급이 시급한 지역을 골라 ‘복합개발지구’로 지정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국토부 장관은 관할 시·도지사와 사전 협의를 해야 하지만 30일이 지나면 합의 여부와 상관없이 협의를 거친 것으로 간주한다. 복합개발심의위원회 역시 정부·지자체·공공기관 협의체로 구성되긴 하나, 위원장을 국토부 차관과 재정경제부 차관이 맡게 돼 있어 정부 입김이 클 수밖에 없는 구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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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욱이 법안은 노후청사·유휴부지 개발 인허가권을 국토부 내 공공주택통합심의위·중앙건축위원회에 위임하는 내용도 포함하고 있다. 사실상 개발 계획 수립부터 인허가까지 개발의 전 과정을 국토부가 가져가는 것이다.

이를 두고 일선 지자체에서는 정부 권한이 예상보다 크다는 불만이 나오고 있다. 수도권의 한 지자체 관계자는 “현재 법안 내용대로 법이 제정된다면 지방자치 권한을 다 가져간다는 것과 다름없지 않겠느냐”며 “사업비를 전액 국비로 조달하는 수준의 지원을 해준다면 모를까 이 정도로 지자체 협조를 이끌어내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꼬집었다. 실제로 일부 지자체는 실무진 논의 과정에서 국토부에 지자체장 권한 침해 우려, 재정 지원 필요성을 제기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를 반영해 법안에도 국가의 재정 지원 의무가 명시됐다. 하지만 동시에 지자체의 예산 확보 노력도 들어가 있어 비용 부담 주체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반면 국토부는 도심 주택 공급 정책의 실효성과 안정성을 담보하기 위해 이번 법안이 꼭 필요하다고 보고 있다. 앞서 문재인 정부 때인 2020년 국토부는 20여 개 국·공유지에 2028년까지 3만 3000가구 주택을 짓겠다고 밝혔지만 주민과 자치구 반대로 대부분 실패했다. 이에 이번 정부는 직접 사업을 관리하겠다는 구상을 세우고 이번 법안을 추진해 왔다. 노후 공공청사가 공공주택·상업시설로 복합 개발되면 청년 유입이 많아져 지역 경제 활성화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국토부의 시각이다.

국토부는 법안이 이제 발의된 만큼 심사 과정에서 지자체 의견을 더 듣겠다는 입장이다. 국토부의 한 관계자는 “지방 분권 시대에서 강압적으로 사업을 강행하지는 않을 것”이라며 “공공주택지구를 만들 때도 지자체와 관계 기관 의견을 들어가며 계획을 수립하듯 공공청사·유휴부지 개발도 지자체와 충분한 협의를 거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도심 유휴부지 개발은 지자체 의견 수렴이 특히 중요하다는 조언이 나온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교외 나대지를 개발하는 공공주택지구와 달리 도심에 있는 유휴 부지나 공공 청사는 주변 지역과 관계를 명확하게 고려해야 한다”며 “관련 법을 만들더라도 지자체 합의가 없다면 사업을 추진하기 쉽지 않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태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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