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스포츠 문화

[북스&]울다가 웃다가…복잡미묘한 감정, 뇌에서 시작됐다

■감정의 기원(칼 다이서로스 지음, 북라이프 펴냄)

노벨상 단골 후보인 신경과학자

뇌서 발생하는 감정의 실체 추적

내향·외향성 차이도 뇌에서 비롯

신경회로 고장땐 조울증 등 발병

‘완벽한 이해 불가’ 솔직 고백 속

문학적이고 우아한 글솜씨 빛나





결혼한 지 얼마 안 된 26살 신랑 마테오는 한밤중 어두컴컴한 시골 고속도로에서 임신 중인 아내를 태우고 운전 중이었다. 불쑥 튀어나온 밴을 피해 핸들을 왼쪽으로 급격히 돌리자 이들이 탄 차는 전복된 채 도로 끝 나무에 거꾸로 걸렸다. 마테오는 거의 다치지 않았지만 옆에서 배를 감싼 채 차갑게 식어가는 아내의 죽음을 옴짝달싹 못하고 한 시간 넘게 지켜봐야 했다. 삶을 송두리째 뒤흔든 비극이었지만 이상하게도 이 사건 이후 그는 눈물을 한 방울도 흘리지 못하게 됐다. 오히려 이 사연을 듣는 신경정신과 의사가 눈물 콧물 쏙 빠지게 울고 있었지만 말이다.



도대체 사람은 왜 슬픔을 느끼지 못할까, 혹은 왜 슬플까. 반대로 왜 기쁘거나, 비정상적으로 기쁜 상태가 이어질까. 신경과학자이자 정신과 의사인 칼 다이서로스는 저서 ‘감정의 기원’에서 감정의 근원과 뇌의 작동 방식에 대해 집요하게 파고든다. 그는 노벨상 시즌마다 생리의학상 유력 후보로 거론되는 세계적인 신경과학자다.

응급 정신의학 의사로서의 임상 경험은 그의 연구 방향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 마테오의 비극에 함께 눈물 짓던 다이서로스는 현장에서 수많은 환자를 만나며 세포 덩어리인 뇌에서 일어나는 감정의 실체를 추적하기 시작했다. 그 결과 탄생한 것이 뇌과학의 패러다임을 바꾼 광유전학이다. 광유전학은 뇌세포에 빛에 반응하는 특수 유전자를 주입한 뒤 특정 부위에 레이저를 쏘아 신경세포를 마치 전등 스위치처럼 켰다 껐다 조절하는 혁신적인 기법이다. 이 기술 덕분에 인류는 우울, 공포, 갈증 같은 본능적 감정이 뇌의 어느 지점에서 시작되는지를 실시간으로 관찰할 수 있게 됐다.




그에 따르면 인간의 마음은 수백만 년에 걸쳐 형성된 생물학적 기반을 ‘날실’로, 개개인이 살아가며 겪은 경험을 ‘씨실’로 삼아 직조된 태피스트리와 같다. 그런데 외부 충격이나 유전적 요인 등으로 씨실이 해지면 그 아래 감춰져 있던 날실의 속살이 드러난다. 이렇게 드러난 마음은 인간의 감정과 본성을 정밀하게 들여다볼 수 있는 창이 된다. 저자는 전기 신호를 전달하는 신경회로에 문제가 생기면 우울, 조울, 불안 같은 감정이 정상 범주를 넘어 병리적 상태로 치닫는다고 설명한다.

관련기사



책에는 감정이 왜곡되고 변형되는 다양한 임상 사례가 등장한다. 갑작스러운 사고 이후 성격이 완전히 달라진 정년퇴직자의 이야기는 뇌 회로의 변화가 한 사람의 인격과 사회적 행동을 어떻게 뒤흔드는지 보여준다. 외향성과 내향성 같은 기질의 차이도 단순한 성격 문제가 아니라 뇌의 반응성 패턴 차이로 해석한다.

망상과 환각 역시 인간의 정신을 이해하는 중요한 단서다. 주변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해킹한다고 믿어 집에 전자기 차단 장치를 설치한 한 여인의 사례를 통해 저자는 망상이 허무맹랑한 상상이 아니라 뇌의 물리적·화학적 상태가 빚어낸 ‘절박한 현실’일 수 있음을 짚는다. 거식증 환자가 생존 본능인 식욕마저 억압하는 ‘내면의 폭군’에 굴복하는 과정, 치매로 기억을 잃어가면서도 마지막까지 남는 ‘감정의 잔향’ 역시 뇌세포의 변화와 깊이 맞물려 있다.

저자는 최첨단 기술을 통해 과거에는 알 수 없었던 마음과 감정의 작동 원리를 밝혀냈지만 동시에 과학의 한계도 솔직하게 고백한다. 뇌를 조절하는 기술은 비약적으로 발전했지만 과학이 인간의 고통을 완전히 대체하거나 제거할 수는 없다는 것이다. 인간의 마음과 감정을 완벽히 이해하는 일 역시 불가능하다고 인정한다. 신경회로의 결함을 찾아내는 기술이 정교한 ‘지도’는 될 수 있어도 그 결함이 개인의 삶에 남긴 상처를 메우는 일은 결국 상상력과 공감의 영역이라는 게 그의 결론이다.

뇌의 지도를 그리는 과학자가 오히려 미지의 영역이 인간다움을 만들어낸다고 강조하는 점은 이 책의 가장 큰 반전이다. 어려운 최신 과학 기술을 설명하지만 문학적이고 우아한 문체는 매력적이다. 한때 문학도를 꿈꿨던 과학자의 글솜씨와 인간에 대한 따뜻한 시선이 돋보인다. 2만 1000원.

이혜진 선임기자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