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과 중국의 자율주행 산업이 상용화 단계에 접어든 가운데 한국이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고 있다. 현대자동차 등 완성차 기업을 비롯해 카카오(035720)모빌리티·쏘카(403550) 등 플랫폼 기업, 라이드플럭스·오토노머스에이투지 등 기술 스타트업이 추격 속도를 높이고 있다. 한국이 독자 기술을 확보해서 교통 주권을 지키고 미래 사회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전폭적인 규제 철폐와 산업 진흥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이재명 정부는 ‘자율주행 3대 강국 도약’을 국정 목표로 천명한 바 있다.
“美中은 사회인, 韓은 초딩”
김윤덕 국토교통부 장관은 이달 14일 국토부 산하기관과 유관단체를 대상으로 한 업무보고에서 “자율주행 분야는 그간 우리가 초등학생 수준이라면 저쪽(미국·중국)은 대학생 정도라고 알고 있었는데 이번 CES에 가서 보니 저쪽은 사회인이 된 것 같다”며 “늦은 만큼 지금부터라도 서둘러 따라잡아야 한다”고 밝혔다.
류제명 과학기술정보통신부 2차관도 13일 페이스북을 통해 “현대차(005380)가 우리나라 규제 때문에 미국에서 시험 운행하고 있다는 이야기에 안타까웠다”며 “우리나라가 이렇게 하다가 자율주행차 시대에 낙오하거나 도태되겠다는 절박한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美中, 이미 상용화 단계 접어들어…웨이모·테슬라·죽스, 질주
한국에서 운전자가 없는 레벨4 실증이 라이드플럭스 단 한 곳에 그치는 반면 미국과 중국의 자율주행 산업은 질주하고 있다. 알파벳(구글 지주사)의 자율주행 계열사 웨이모가 대표 기업이다.
2020년 12월 미국 애리조나주 피닉스에서 상용 자율주행차 서비스를 시작한 뒤 데이터를 축적해왔다. 미국 피닉스, 애틀랜타, 오스틴, 샌프란시스코, 로스앤젤레스 등에서 1500대 이상의 로보택시를 운영하고 있다. 우버와 협업해 호출 편의성도 높였다. 오스틴이나 애틀랜타 등에서는 우버앱을 통해 로보택시를 이용할 수도 있다. 지난달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피츠버그, 세인트루이스 등에서 서비스를 시작했고 올해 영국 런던 등까지 사업을 확대할 예정이다. 웨이모는 올해 기업가치 1000억 달러(약 148조 원) 이상을 목표로 50억~200억 달러(약 22조 2000억~29조6000억 원) 규모의 자금 조달을 논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테슬라는 현재 FSD(Full Self-Driving)를 이용해 오스틴에서 제한적으로 로보택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샌프란시스코에서는 안전 요원이 운전석에 탑승한 상태로 차량호출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한국에서도 FSD를 이용할 수 있다.
아마존 자율주행 자회사 죽스는 지난해 9월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도심 인근에서 일반인 대상 무료 서비스를 시작했다. 죽스는 샌프란시스코로 주행 지역을 확장했다.
중국 기업, 유럽·중동 향해
중국 바이두의 아폴로는 베이징과 우한, 선전 등에서 자율주행 서비스를 운영하고 있다. 레벨4 누적 거리만 2억 4000만km를 돌파했다. 위라이드, 포니AI, 디디추싱, 모멘타 등도 주목받고 있다. 이들 기업은 중국을 넘어 유럽과 중동으로 향하고 있다. 포니AI는 한국 기업 젬백스링크와 합작법인 포니링크를 세우고 한국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정부, 3대 강국 목표로 규제 철폐…여당도 적극 지원
한국 자율주행 업계에서는 올해 추격에 실패할 경우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정부는 글로벌 3대 자율주행차 강국을 목표로 규제 합리화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정부는 레벨4 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 원본 영상데이터의 자율주행 연구개발(R&D) 활용을 허용하는 등 자율주행 규제 문턱을 낮추는 방안을 발표했다.
여당도 규제 개선과 지원책 마련에 나선다는 방침이다. 박상혁·김한규·김우영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이날 국회에서 ‘테슬라 FSD 국내 상륙과 우리나라 모빌리티 산업의 미래’를 주제로 간담회를 열고 자율주행 규제 개선 방안을 논의했다. 김한규 의원은 “국민의 안전을 최우선에 두면서도 국내 모빌리티 산업이 미래 핵심 산업으로 도약할 수 있도록 제도 개선과 정책 마련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현대차, 인재 영입 속도…로보택시 운영 연내 시작
현대자동차그룹의 행보가 빨라지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AI·로보틱스·자율주행 분야의 세계적 전문가인 밀란 코박 전 테슬라 옵티머스 엔지니어링 부사장을 현대차그룹의 자문역으로 선임하고 보스턴다이내믹스의 사외이사로 임명할 예정이다. 코박은 2016년 테슬라에 입사한 후 최근까지 자율주행 시스템 ‘오토파일럿’과 휴머노이드 로봇 옵티머스 개발을 총괄했다. 일론 머스크 테슬라 최고경영자(CEO)는 지난해 코박이 회사를 떠나자 X(구 트위터)에 “지난 10년간 테슬라에 기여해줘 감사하다”며 “함께 일할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현대차그룹은 최근 박민우 전 엔비디아 부사장을 그룹 첨단차플랫폼(AVP) 본부장 겸 포티투닷(42dot) 대표로 선임했다. 현대차그룹은 이번 영입을 통해 소프트웨어중심차(SDV)·자율주행 기술 개발과 사업화를 가속하겠다는 구상이다.
현대차그룹의 자율주행 합작법인 모셔널이 연내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서 무인 로보택시 서비스를 상용화한다. 모셔널은 올해 초부터 시범 운영을 통해 서비스 안전, 고객 경험 등을 최종 검증할 계획이다. 시범 운영과 상용화 서비스는 글로벌 차량공유 기업과의 협업을 통해 이뤄질 예정이다. 현대차그룹은 엔드투엔드(End-to-End·E2E) 기술을 통해 자율주행 시스템을 고도화하는 동시에 장기적으로 국내에도 로보택시를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예정이다.
카카오모빌리티, 생태계 확장 속도
카카오모빌리티는 산업통상부 ‘AI 미래차 M. AX 얼라이언스’에 합류했다. AI 미래차 M. AX 얼라이언스는 산업부와 대한상공회의소가 지난해 9월 출범한 제조 AX 얼라이언스의 세부 얼라이언스로 현대자동차, LG전자(066570), 네이버클라우드 등 완성차, 부품, IT 분야 기업과 연구기관이 참여하고 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자율주행, 로봇, 디지털트윈 등 피지컬 AI 역량을 바탕으로 얼라이언스의 기술 완성도를 높인다는 목표다. 특히 인지부터 제어까지 과정을 AI 모델로 통합하는 엔드투엔드 자율주행 기술을 고도화해 국내 도로 환경에 최적화된 엔드투엔드 한국형 표준 모델을 마련한다는 계획이다. 자율주행 AI 학습과 고도화를 위해 데이터 구축, 데이터 개방, 공동 연구와 실증으로 사업 전반에서 활용 가능한 기술을 마련하는 데 주력할 예정이다. 류긍선 카카오모빌리티 대표는 “자율주행 기술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다해 산업부 AI 대전환 비전 달성에 힘을 보태겠다”고 강조했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최근 전국택시운송사업조합연합회를 비롯해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및 에스더블유엠(SWM) 등 기술 스타트업과 자율주행 사업 관련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서울 강남구에서 시범 운행 중인 레벨3 자율주행 택시도 1분기 중 평일 주간 운행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쏘카, 조직 정비…스타트업도 기술 고도화 박차
쏘카도 자율주행을 비롯한 신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이재웅 전 쏘카 대표가 이사회 의장으로 복귀하고 박재욱 대표가 신사업을 전담한다. 이정행 전 토스페이먼츠 상품 총괄도 쏘카 신사업 분야 기술 총괄로 합류해 차세대 기술 부문을 이끈다. 쏘카 관계자는 “국내 모빌리티 시장의 패러다임을 바꿨던 주역들이 다시 한번 쏘카에서 모빌리티 신사업을 위해 의기투합했다”고 말했다.
휴맥스모빌리티는 지난달 퓨처링크 및 반반택시 운영사인 코나투스와 자율주행 로보택시 사업 추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라이드플럭스와 오토노머스에이투지, 마스오토, 에스더블유엠 등 스타트업도 기술 고도화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규제 철폐·제도 재정비 필요…기존 산업과 갈등 조율 필수
자율주행 업계는 글로벌 3강 도약을 위해 대대적인 규제 철폐와 제도 재정비를 요구하고 있다. 컨트롤타워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현재 자율주행 산업은 과학기술정보통신부·국토교통부·산업통상자원부 등 다수 부처가 얽혀 있어 정책 실효성을 높일 수 있는 컨트롤타워 구축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실제로 부처 간 엇박자가 기술 발전 속도를 저해했다는 지적도 있다. 정부는 2027년 완전자율주행 상용화를 위해 차량 간 통신 방식을 2021년까지 결정하기로 했지만 국토부는 와이파이 방식을, 과기정통부는 롱텀에볼루션(LTE) 방식을 주장하며 2023년까지 갈등이 지속됐다. 감사원 주도로 진행된 실험에서 LTE가 더 우수하다는 결과가 나왔고 정부는 같은 해 12월 LTE 방식을 채택하기로 합의했다. 감사원은 “자율주행 인프라 구축이 최대 6년 이상 지연될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택시 등 기존 산업과 갈등을 조율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한국은행은 지난해 9월 보고서를 통해 “준비 없이 자율주행택시가 도입되면 우리나라 택시 시장 구조가 급격히 바뀌고 이 과정에서 택시 기사를 포함한 관련 종사자들의 피해가 커져 사회적 부작용을 초래할 가능성이 있다”며 “도입 여건이 상대적으로 양호하고 기존 택시 면허 매입 부담이 적은 지방 중소도시부터 여객자동차법 등 규정을 고치고 기존 택시면허 매입이나 이익공유 정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어 “결과적으로는 혁신 기술이 불러올 택시 산업의 변화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점을 국민과 이해당사자들이 공감하고 기존 택시 산업 연착륙 비용을 사회가 분담하는 방향으로 여론 수렴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경쟁력 강화 위한 전방위 지원책 필요
강력한 산업 진흥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정하욱 라이드플럭스 부대표는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자율주행 기술 관련 산·학·연 간담회에서 “1000억 원 미만 투자금을 받고 수십 대의 자율주행차량을 운영하는 회사는 전 세계에서 손에 꼽을 정도”라며 “정부 지원사업이 자유 공모 형태로 진행돼 조금더 속도감 있게 진행돼야 한다. 공공 사업이 마중물이 돼 민간 사업으로 확대되는 것도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건우 카카오모빌리티 미래플랫폼경제성장연구소장도 같은 간담회에서 “국내 기업들 간 ‘팀 코리아’ 형태 연합을 만드는 등의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며 “엔비디아 등 글로벌 첨단 기술들을 도입할 필요가 있지만 국내 플랫폼이 실증 서비스 상용화로 가는 길목에서 역할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줬으면 한다”고 전했다. 민경욱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 자율주행진흥연구실장은 “정부가 주도적으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 동일한 데이터셋을 구축해 시행착오를 최소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