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정책

"철암저탄장 복토 걷어내니 절반이 ○○○"…무슨 일?[Pick코노미]

[공공기관부터 진짜 일 하자]

<2> 구조조정 미룬 석탄公의 비극

폐타이어·각목 등 폐기물 무단 혼입

강원 삼척시 도계광업소의 폐광에 반대하는 시위 전경. 연합뉴스강원 삼척시 도계광업소의 폐광에 반대하는 시위 전경. 연합뉴스




대한석탄공사가 비축한 1000억 원 규모의 무연탄에 폐타이어·돌·각목 등 각종 폐기물이 무단 혼입돼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석탄공사는 2014년부터 강원 태백시 철암저탄장에 42만 톤에 이르는 무연탄을 비축해왔으나 보관 물량의 절반가량이 폐기물인 것으로 밝혀지면서 파장이 일 것으로 전망된다.

22일 산업통상부 등 관계부처에 따르면 석탄공사는 최근 무연탄 비축 기지 내 폐자재 무단 혼입 사건을 확인해 강원경찰청에 수사 의뢰했다. 석탄공사의 한 관계자는 “비축 기지에는 선별 과정을 거쳐 순수한 석탄만 쌓여 있다가 연탄 공장에 판매하는 구조”라며 “비축 물량의 절반 이상이 경석(輕石)이나 나무토막 등으로 구성된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곳에 보관돼 있어야 할 무연탄 42만 톤은 국내 1년 치 석탄 사용량(34만 톤)을 훌쩍 뛰어넘는 물량이다. 석탄공사는 연내 사실상 청산을 앞두고 비축 사업을 한국광해광업공단으로 넘기는 과정에서 이 같은 사실을 발견하고 비축 기지 등에 대한 재고 물량을 전수조사한 뒤 수사 의뢰를 최종 결정했다. 현재 석탄공사는 정직원이 모두 퇴직하고 비정규 계약직 30여 명만 남아 청산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건이 국내 공기업의 방만한 경영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고 지적한다. 석탄공사는 국내 삿사실상 경쟁력을 잃은 뒤에도 문을 닫지 않고 명맥을 이어가면서 2조 4000억 원에 이르는 막대한 부채를 남겼다. 2014년에는 100억 원이 넘는 자금을 투자해 강원 원주시에 신사옥을 짓기도 했다. 선거 때마다 표를 의식한 정부와 정치권이 구조조정을 미룬 대가다.



한국석탄공사가 1000억 원대 비축 무연탄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인지한 것은 지난해 11월께다. 석탄공사는 광해광업공단에 정부 비축탄 관리 업무를 넘기는 과정에서 자사 무연탄 창고가 사실상 폐기물 무덤으로 변해버린 사실을 뒤늦게 인지하고 이를 경찰에 수사 의뢰했다. 경찰은 장성광업소 옛 직원들이 부실한 선별 작업을 하고 비축량만 부풀렸을 가능성과 정상적으로 비축된 무연탄이 폐광 등 업무 공백을 틈타 빼돌려졌을 가능성 모두를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 한 공기업의 고위 관계자는 “석탄공사가 각종 내홍을 겪은 지 오래되면서 내부 관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국내 1호 공기업 석탄공사의 비극은 탄광 산업이 사양 업종으로 분류되기 시작한 199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서울 등 주요 도시의 열원이 액화천연가스(LNG) 등으로 교체되고 수입산 물량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경쟁력을 잃었지만 지역 표심 때문에 구조조정을 차일피일 미루다 수술이 어려울 지경에까지 이르렀기 때문이다. 실제 석탄공사의 부채는 2조 4000억 원에 달해 완전자본잠식에 빠진 지 오래다. 지난해 하루 납부 이자만 2억 4000만 원에 이른다.

2024년 폐광한 국내 최대 탄광인 장성광업소 갱구 전경. 이곳에서 생산된 무연탄은 비축 기지로 옮겨 저장된다. 연합뉴스2024년 폐광한 국내 최대 탄광인 장성광업소 갱구 전경. 이곳에서 생산된 무연탄은 비축 기지로 옮겨 저장된다. 연합뉴스


이런 상황에서도 무책임한 방만 투자는 끊임없이 이어졌다. 20일 원주혁신도시에 위치한 석탄공사 본사를 방문하자 한창 일할 낮 시간에도 불 꺼진 사무실과 빈 책상이 곳곳에서 눈에 띄었다. 이 건물은 2014년 공사비 182억 원을 들여 105명의 직원이 근무할 수 있도록 준공됐지만 현재는 사장과 30여 명의 초단기 계약직들만 남아 해산에 대비한 마지막 업무를 진행하고 있었다. 이들의 주요 업무는 만기가 돌아오는 기업어음(CP) 물량을 차환 발행하는 일이다. 시한부 선고를 받고 산소호흡기로 연명 치료만 받고 있는 셈이다. 석탄공사 관계자는 “원주 입주 당시만 해도 국내 탄광들의 폐광 시기가 이렇게 빨라질지 몰랐다”며 “역사적 자산을 남겼다는 측면도 고려해달라”고 해명했다.

재무구조를 고려하지 않는 방만 사옥의 문제는 비단 석탄공사뿐만이 아니다. 석탄공사와 비슷한 시기에 울산으로 본사를 옮긴 한국석유공사는 재무구조를 개선하겠다며 완공된 지 3년도 지나지 않은 신축 사옥을 팔고 그 자리에서 셋방살이를 하는 촌극을 빚기도 했다.

원주에 위치한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사무 공간 부족으로 여러 민간 건물에 흩어져 있는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등이 석탄공사 사옥을 매입해 활용하는 게 그나마 현실적인 대안일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공공기관 방만 경영의 고리를 끊어내기 위해 공공기관 통폐합 작업이 속도를 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도 취임 직후부터 공공기관 개혁과 기강 확립을 수차례 주문한 바 있다.

현재 국토교통부가 한국철도공사(코레일)와 SR의 통합 로드맵을 내놨고 기후에너지환경부 역시 6·3 지방선거 이후 발전 5사 통폐합 논의를 본격화할 것으로 전망된다. 김성환 기후에너지환경부 장관은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국립생태원과 호남·낙동강 생물자원관의 통합 운영 체계 마련을 지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노력이 무색하게 정치권에서는 공공기관을 신설하기 위한 법안을 쏟아내고 있다. 국회 의안정보시스템에 따르면 22대 국회 들어 발의된 법안 중 새로운 공공기관을 설치하는 게 골자인 제정법만 최소 10건이 넘는다. 지역 투자를 담당하는 동남권투자공사와 충청권산업투자공사·지역공공은행·공공보건의료대학 등을 내세워 지방 인프라를 확충하겠다는 목적이다.



하지만 이 같은 공공기관 신설은 결국 호화 청사 건설과 같은 혈세 낭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결국 정치인들이 공공기관 이전을 주도하기 때문에 기존 법을 개정하는 과정에서 각종 위원회나 전시 시설, 기금을 설치하는 조항을 슬그머니 끼워 넣는 경우가 많다”며 “지선이 다가올수록 이런 선거용 법안이 많아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정부가 추진하는 2차 공공기관 이전에도 이런 문제점이 나타날 수 있다. 정부는 153개 기관이 참여한 1차 이전에 이어 내년부터 본격적인 2차 이전에 착수한다는 목표로 이전 기관 명단 작성에 나선 상태다. 이미 대전·충남 등은 중소기업은행과 한국벤처투자 등을 잠재 후보군으로 보고 물밑 유치전에 돌입했다. 광주·전남은 한국에너지기술평가원 등을 점찍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내의 한 공기업 관계자는 “한국전력이나 한국수력원자력 등 대형 공공기관이 지방으로 이전한 뒤 인재 확보에 어려움을 겪는 등 본질적 경쟁력 측면에서는 모두 사실상 퇴보했다”며 “나눠 먹기식 표가 필요한 것인지, 공기업들을 글로벌 수준으로 키워 국민 경제에 도움을 주겠다는 것인지부터 명확히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밀어낼 수도 없고 인선은 늦어지고…기관장 부재 장기화에 국정도 차질
-공공기관 4곳 중 1곳 리더십 공백
-李정부 출범 후 13명 임명 그쳐
-200여명은 '어색한 동거' 이어가
-부처간 잡음·정책동력 약화 반복


12일 정부세종청사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열린 에너지 분야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박상형(맨 오른쪽) 한전KDN 사장 등 기관장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12일 정부세종청사 기후에너지환경부에서 열린 에너지 분야 산하기관 업무보고에서 박상형(맨 오른쪽) 한전KDN 사장 등 기관장들이 국기에 경례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의 주요 정책을 수행하고 뒷받침하는 공공기관들의 리더십 공백이 길어지고 있다. 새 정부가 출범한 지 7개월이 훌쩍 지났지만 공공기관장 인선은 이제야 하나둘 절차를 시작하는 등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다. 윤석열 정부 당시 임명된 공공기관장과의 ‘어색한 동거’가 이어지는 경우도 있어 정부 정책이 현장에서 힘을 받지 못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22일 공공기관 경영 정보 공개 시스템 ‘알리오’에 따르면 공기업,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 등 344곳의 공공기관 중 45곳은 기관장이 공석 상태인 것으로 나타났다. 42곳은 기관장의 임기가 만료됐음에도 불구하고 새 기관장이 임명되지 않아 자리만 유지 중인 곳이었다. 전체 공공기관 4곳 중 1곳은 기관장이 없거나 사실상 부재 상태인 셈이다. 이재명 정부 출범 후 7개월 동안 새로 임명된 공공기관장은 김은경 서민금융진흥원장, 김성식 예금보험공사 사장, 김성주 국민연금공단 이사장, 최재관 한국에너지공단 이사장 등 13명에 불과했다.

문제는 이 같은 공공기관 리더십 공백이 수개월 더 이어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우리나라의 전력 수급을 24시간 책임지는 한국전력거래소는 지난해 5월 정동희 전 이사장 사퇴 후 8개월 만인 이달 14일에야 신임 이사장 공모 절차에 착수했다. 한국산업기술진흥원·기초과학연구원·한국교육과정평가원 등의 신임 원장 후보자 모집 공고는 이번 주에야 올라왔다.

후보자 자질 부족이 드러나 인선 절차가 원점으로 되돌아간 사례도 있다. 에너지 업계에 따르면 산업통상부는 19일 한국가스공사에 신임 사장 후보자를 다시 선발하라고 주문했다. 앞서 가스공사는 지난해 11월 13일 신임 사장 인선 절차에 착수해 최종 후보자를 5명으로 압축했는데 산업부가 최종 후보자들에 대해 부적합 결론을 내린 것이다. 실제로 유력한 사장 후보였던 이인기 전 이재명 대통령 대선 공동선대위원장(전 한나라당 의원)의 경우 수차례의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2031년까지 피선거권이 제한된 상태였다.

이와 관련해 가스공사 노조 측은 “정부의 재공모 결정을 환영하지만 이는 현재의 사장 선임 절차에 문제가 있음을 정부 스스로 인정한 결과”라며 “이로 인해 국가 전체의 천연가스 수급을 책임지는 가스공사는 사실상 사장이 없는 상태로 4개월 이상의 경영 공백기를 더 갖게 되는 심각한 상황에 이르렀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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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뿐만 아니라 다른 한쪽에서는 지난 정부 당시 임명된 기관장과 불편한 동거를 이어가는 사태도 벌어지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 당시 임명된 기관장 208명은 최소 올해 6월까지 임기를 이어가기 때문이다. 이 중 12·3 비상계엄 사태 이후부터 새 정부 출범 전까지 어수선한 틈을 타 임명된 기관장도 55명에 달했다. 공공기관장의 임기가 통상 3년임을 고려하면 이들은 이 대통령의 임기가 반환점을 돌 때까지 새 정부와 함께 일하게 되는 셈이다. 정부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정부 정책과 기조가 온전하게 실현되기 위해서는 산하 공공기관과의 합이 잘 맞아야 한다”며 “대통령과 공공기관장 간 임기가 일치하지 않다 보니 일부 부처에서는 잡음이 생기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했다.


주재현 기자·원주=유현욱 기자·조윤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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