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던 중 지난 2005년 밴스 박사팀은 개구리 30마리의 사체가 호수에 떠있는 것을 발견했다. 사인은 키트리드(Chytrid) 병이었다. 이 호수에 서식하는 개구리 1만 마리 중 대부분이 이 병에 감염돼 죽었으며 지금은 약 100마리만 남아있는 상태다.
키트리드의 원흉은 '바트라코키트리움 덴드로바티디스'라는 진균이다. 이 진균은 양서류의 호흡 및 체액조절 기능을 파괴, 죽음에 이르게 하는데 지난 10여년간 지구상에 존재하는 6,600여종의 양서류 중 최소 200종이 키트리드 감염으로 멸종됐다.
전염 속도도 빨라 어떤 종(種)은 1년 내 전체 개체수의 90% 이상이 사라지기도 했다. 때문에 학계에서는 키트리드를 양서류의 생물학적 다양성에 대한 역사상 최대의 위협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치료법 마련에 골몰한 과학자들은 양서류의 피부에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다. 지난 2009년 미국 제임스매디슨대학의 생물학자 레이드 해리스 박사팀이 몇몇 노란발 개구리의 피부에서 찾아낸 '잔티노박테리움 리비둠'이라는 박테리아가 키트리드 진균을 사멸시킨다는 사실을 확인한 것.
이 효과를 극대화하고자 연구팀은 양서류를 박테리아로 목욕시키는 기술을 개발했고 실험실 규모의 연구에서 박테리아 목욕을 한 개구리는 키트리드 진균에 완벽한 저항력을 나타냈다.
이런 결과에 고무된 밴스 박사는 이 기법이 야생에서도 효과가 있는지 알고 싶었다. 그래서 국립공원 관리소로부터 어렵게 허가를 얻어 킹스캐니언 계곡의 노란발 개구리 80마리를 잡아 박테리아로 목욕시킨 후 방사하는 실험을 실시했다.
작년 가을 시행된 예비조사에 의하면 박테리아 치료를 받은 개체는 그렇지 않은 개체에 비해 키트리드 진균의 양이 10%에 불과했다.
그는 올봄 킹스캐니언을 다시 찾아 이 효과의 지속여부를 확인할 예정이다. 그리고 효과가 확인되면 올 여름 박테리아 용액을 들고 양서류 살리기에 본격 나설 계획이다.
그는 "이때는 킹스캐니언은 물론 전 세계에 서식하는 수백여 종의 양서류를 멸종위기에서 구해낼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런데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박테리아 목욕은 이 박테리아를 조금이나마 이미 보유하고 있는 양서류에게는 도움이 되겠지만 애당초 이를 갖고 있지 않은 종에게는 오히려 새로운 위협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황소개구리, 배스 등 외래종 유입이 국내 생태계에 미친 영향에서 알 수 있듯 인위적으로 박테리아를 다른 종에 퍼뜨리는 것 역시 파국적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다.
최악의 경우 이 박테리아가 식물 생존에 필수적인 진균을 사멸시켜 생태계를 파괴함으로써 또 다른 양서류 멸종 위기를 유발할 수도 있는 것이다.
하지만 버지니아텍의 매튜 베커 박사는 이 기법이 주는 잠재적 이익이 위험보다 크다고 믿는다. 양서류는 민물과 육지 생물을 이어주는 중요한 가교이며 질병을 퍼뜨리는 곤충들을 잡아먹는다는 이유에서다.
또한 양서류 피부에서는 HIV 등 병원균 퇴치에 유용한 화합물을 얻을 수도 있다. 이에 베커 박사는 멸종위기에 처한 파나마 금개구리의 보호를 위해 박테리아 목욕법을 사용할 예정이다.
현재 이 종은 야생에서는 멸종했으며 인간에 의해 사육되는 개체만 남아있다고 여겨지는데 키트리드에 오염된 하천에 방사할 경우 죽을 가능성이 높다. 다만 베커 박사는 잔티노박테리움 리비둠을 처방할 계획은 아니다.
생태계에 미칠 악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해 파나마 양서류와 근친관계에 있는 양서류 440마리의 표본을 채취, 이들 고유의 항(抗) 키트리드 박테리아를 찾고 있다. 이처럼 박테리아 목욕법의 도입에 있어 가장 큰 걸림돌은 시간이다. 박테리아의 안전성을 확고히 입증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요구되지만 개구리들에게는 시간이 없기 때문이다.
밴스 박사는 말한다. "실험실에서의 테스트를 마쳤지만 현장 실험에도 5년 정도가 소요될 것입니다. 하지만 5년 뒤에는 개구리가 이미 멸종됐을 수도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