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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흑물질 지하연구소

미국 사우스다코타주의 지하 1,478m 폐광에서 물리학계의 최대 미스터리를 풀기 위한 연구가 진행되고 있다

지난 1876년 이래 미국 사우스다코타주 리드의 홈스테이크 광산에서 는 총 35억 달러어치의 금이 채굴됐다. 이처럼 금광은 이 마을의 핵심 산업이었지만 금값 하락과 매장량 감소로 지난 2002년 130여 년의 영화를 뒤로하고 광산은 문을 닫았다. 이후 누구도 2.4㎞ 깊이의 광산을 어떻게 활용할지 알지 못했다.

그러던 중 지난 2007년 미국 국립과학재단(NSF)이 이곳을 '지하 심부 과학·공학 연구소(DUSEL)'의 최적지로 결정하며 전 세계 물리학계의 주목을 받고 있다. 대규모 연구단지인 DUSEL에는 세상에서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지하연구실을 운용할 계획이다.


현재 물리학 연구자들과 전직 광부들은 과거 홈스테이크 광산의 배송창고를 DUSEL에 입주한 샌포드 지하연구소의 지상기지로 개조 완료했다. 벽과 굽도리 판자를 흰색으로 칠하고 바닥에는 노란선을 그어 방문객들이 대형 질소탱크와 캐비닛 크기의 컴퓨터 그리고 다양한 기계부품들 사이로 지나다닐 수 있도록 해 놓은 상태다.

연구자들은 머지않아 이 기계장치와 부품들을 청정실로 옮겨 조립함으로써 '대형 지하 암흑물질 탐지기(LUX)'를 만들 계획이다. 완성된 LUX는 탄광의 절반 깊이로 내려보내지며 모든 것이 예측대로 되어 준다면 언젠가 암흑물질의 존재를 탐지해낼지도 모른다.

이론상으로 알려졌을 뿐 아직 실체가 증명되지 않은 암흑물질이 실제로 발견될 경우 현대 우주론의 허점으로 남아 있는 많은 수수께끼들이 풀릴 수 있다. 학자들은 암흑물질이 우주를 하나로 붙들어주고 있는 근원일 수도 있다고 보고 있다.

LUX 프로젝트와 마찬가지로 암흑 물질을 찾으려는 노력은 전 세계적으로 최소한 10여건이 추진 중이다. 하지만 노벨재단 및 연방정부의 장기자금 지원을 받고 있는 LUX 프로젝트의 연구자 50명과 리드의 주민 2,848명은 자신들이 세계 최초의 암흑물질 발견자가 되고자 열의를 불태우고 있다.

LUX 프로젝트와 암흑물질

작년 6월 필자는 수시간 동안 청정실의 창문을 통해 청정복과 라텍스 장갑, 수술용 마스크를 구비한 4명의 물리학자들이 LUX 탐지기의 주요 구성품 2 개를 연결하는 모습을 지켜봤다. 그중 하나는 연구자들이 단순히 '캔'이라 칭하고 있는 내부 저온유지장치로서 쓰레기통 크기의 빈 실린더였다.

물리학자들은 이 장치를 쇠살대가 쳐진 틀 사이로 넣었다. 틀 상단에는 뚜껑에 해당하는 돔 형태의 부품이 있었고 돔에는 골격이라 불리는 복잡한 집합체가 달려있었다. 연구자들이 이날 하고자 했던 작업은 틀 속의 저온유지장치를 조심스럽게 들어 올려 마치 러시아산마트료시카 인형처럼 집합체 내부로 넣은 뒤 뚜껑과 연결, 완벽히 밀폐하는 것이다.

향후 집합체 속에는 영하 103℃의 액체제논 117ℓ가 충전되는데 이 액체제논이 암흑물질을 탐지하는 요체가 된다. 이 작업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완벽한 밀폐다. 서로 다른 곳에서 가공 제작된 수많은 부품들이 철저히 밀봉되지 않으면 공기와 불순물이 집합체 안으로 유입되면서 실험결과를 망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 케이스웨스턴 리저브대학의 물리학자이자 LUX 프로젝트의 공동 창설자인 톰 셔트 박사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이 장치의 기밀성 확인을 위해 핀과 바늘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온유지장치를 들어올리기 전에 연구자들은 집합체부터 완성해야 했다. 관찰 당시 집합체는 돔의 안쪽 테두리에 매달린 6개의 얇은 티타늄 띠로 이뤄져 있었다.

여기에 3장의 두꺼운 구리 디스크를 삽입해야만 집합체가 완성된다. 이에 물리학자 1명 이 소형 지게차를 활용, 디스크 한 장을 허리 높이까지 들어 올렸고 다른 3 명은 디스크의 위치와 자세를 정확히 하는 한편 볼트를 이용해 티타늄 띠에 고정시켰다. 이렇게 바닥에서 15㎝ 높이의 마지막 디스크까지 모두 결착이 완료됐다.

이제부터는 저온유지장치 제작의 총괄책임자인 셔트 박사가 나설 차례였다. 그는 복장을 갖추고 클린룸으로 들어갔다. 셔트 박사의 설명에 의하면 먼지 한 톨에서도 탐지기의 암흑물질 감지 신호를 교란시키기에 충분한 방사능이 방출되기 때문에 청정실에 들어가려면 단 한 톨의 먼지도 용납되지 않는다.

이후 더 많은 대학원생들이 청정실로 들어갔고 그중 한 명이 저온유지장치와 집합체를 도르래가 달린 케이블로 연결했다. 그리고 저온유지장치를 집합체 쪽으로 끌어올렸다. 셔트 박사는 마치 선물 포장이 끝나기를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두 손바닥을 합장하고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이를 지켜보고 있었다.

LUX 프로젝트에 참여 중인 다른 연구자들도 이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기 위해 필자 곁으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두 장치의 결합을 불과 2.5㎝ 가량 남겨두고 저온유지장치가 무언가에 끼인 듯 움직이지 않았다. 장치를 아래로 조금 내렸다가 다시 올렸지만 문제는 해결되지 않았다.

이처럼 명백한 차질이 발생했지만 청정실의 연구자들은 투지를 잃지 않고 몇 장의 사진을 촬영한 후 저온유지장치를 바닥으로 내려놓았다. 셔트 박사는 이번 문제의 원인을 저온유지장치의 규격이나 집합체의 모양이 제대로 맞지 않은 것이라 추측하면서도 내일 다시 도전을 재개할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뉴턴의 물리학 법칙과 윔프 이론

현재 암흑물질의 정체를 명확히 아는 사람은 없다. 실존 여부조차 과학적으로 확인된 바 없다. 현 단계에서 암흑 물질은 하나의 '미지수'라고 볼 수 있다. 뉴턴의 물리학 법칙에 기반한 천문 관측에 있어 여러 계산식에 넣을 'X값'에 해당하는 것이다.

암흑물질이라는 명칭은 스위스의 천문학자 프리츠 츠비키 박사가 붙였다. 그는 지난 1933년 두 가지 방법을 사용해 1,000개 이상의 은하로 이뤄 진 머리털자리 은하단의 질량을 계산한 바 있다.

먼저 뉴턴의 제2 운동법칙 인가속도의 법칙에 의거, 은하가 클수록 더 빨리 회전한다는 판단 하에 머리털자리 은하단을 구성하는 8개 은하의 움직임으로 질량을 계산했다. 그리고 은하단을 이루고 있는 항성들의 광량을 계량화하는 방식으로 재차 은하단 전체의 질량을 계산했다.

두 방법 모두 머리털자리 은하단의 질량을 계산한 것인 만큼 결과는 같아야 했다. 하지만 전자의 계산값이 후자보다 훨씬 컸다. 은하단의 회전 속도가 광량으로 계산한 회전값보다 훨씬 빨랐다는 얘기다. 가속도의 법칙이 성립하려면 은하단의 질량이 더 커야했기에 츠비키 박사는 나머지를 암흑물질의 질량이라 판단했다.

이 연구성과는 무려 40여 년간 학계의 무시를 받았지만 1970년대에 이르러 미국 천문학자 베라 루빈이 안드로메다 은하에서 동일한 불일치를 발견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이후 많은 연구자들이 눈에 보이는 질량이 너무 작아서 기존 물리학적 계산으로는 결코 빠르게 회전할 수 없지만 실제로는 너무도 빨리 회전하고 있는 수백 개의 은하들을 더 찾아냈다. 이뿐만이 아니다.

천문학자들은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자신의 주변을 통과하는 빛을 굴절시키는 '중력렌즈(gravitational lens)'도 발견했다. 중력렌즈에는 시공간의 평면을 왜곡시키거나 빛을 굴절시킬 만한 질량이 없는데도 이런 현상을 일으킨다.

이 모든 상황은 우주를 구성하는 물질 중 무려 80% 이상이 우리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한 가지 사실로 귀결된다. 우리는 이미지의 물질을 암흑물질(암흑에너지)이라 부르고 있다. 현재 대다수 물리학자들은 이 같은 암흑물질의 존재에 동의한다. 그리고 암흑물질이 '윔프(WIMP)'라는 미약한 상호작용을 하는 소립자로 이뤄져 있을 것으로 추측한다. 이 윔프는 질량이 있어 중력의 영향을 받으며, 중력 생성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단지 다른 물질들과의 거의 상호작용하지 않고 눈에 보이지도 않아 검출이 매우 어렵다. 윔프 이론의 지지자들은 또 윔프가 전자기적으로 중성이라고 가정한다. 우리가 윔프를 보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주지하다시피 아직 누구도 암흑물질을 직접 관찰한 바 없다. 이 모든 논제는 그저 추론일 뿐이다.

이 때문인지 루빈 박사를 포함한 많은 연구자들은 윔프 이론에 회의적이다. 몇몇 연구자들은 아예 암흑물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기도 한다. 이들은 단지 뉴턴의 물리학 법칙이 완전치 못 해 은하 단위의 움직임을 명확히 설명하지 못할 뿐이라고 생각한다.



눈처럼 내리는 암흑물질

필자는 셔트 박사의 동료이자 LUX 프로젝트의 책임연구자인 댄 에이크리브 박사에게 왜 윔프가 암흑물질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지 물었다. 그의 대답은 과학적으로 증명되지 않은 이론에 대한 과학자들의 일반적인 입장을 벗어나지 않았다.

여러 이론 중 윔프가 가장 말이 된다는 것. LUX 프로젝트를 비롯해 윔프의 존재를 전제로 한 여러 연구프로그램들이 출범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천문학자들이 우주에서 암흑물질의 증거를 찾았을 때 암흑물질의 분포는 균질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중력적 측면에서도 암흑물질은 여타 일반적인 물질들과 크게 다르지 않게 서로 모여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현재 암흑물질 이론가들은 암흑물질이 대부분의 은하를 둘러싸고 있는 구(球)형태로 존재한다고 본다. 이 점에서 우리 은하에 속하는 태양계도 암흑물질 구름 속을 떠다니고 있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지구에는 윔프로 이뤄진 암흑물질이 눈처럼 떨어져 내리고 있을 것이라는 게 물리학자들의 판단이다. 그 양은 1㎠의 면적에 1초당 약 10만 개 정도일 것으로 추정된다. LUX 프로젝트 등 암흑물질 탐색프로그램의 궁극적 목표는 이렇듯 지표면에 쏟아지는 윔프의 포획이라 할 수 있다.

이들 연구자들은 예외 없이 오래 된 광산이나 하수관, 그리고 산 속의 지하에 탐지기를 묻는다. 그렇게 해야만 윔프로 오인될 수 있는 다른 우주입자들의 간섭을 최소화할 수 있는 탓이다. 윔프의 탐지 물질로는 액체제논이나 게르마늄을 사용하고 있다. 물론 윔프가 지표면에 쏟아지고 있 다고 해도 대부분은 이 장치를 피해 갈 것이 확실하다.


하지만 LUX 프로젝트 팀은 적어도 1년에 3 ~ 4개의 윔프가 LUX 탐지기 속 액체제논이 가지고 있는 1.6×1027개의 제논 원자에 충돌할 것으로 예상한다. 이렇게 윔프와 제논 원자가 충돌하면 미세한 빛이 방출되는데 연구팀은 이 빛이 암흑물질의 존재 증거가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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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UX의 경쟁자들

LUX 연구팀의 경쟁자들은 LUX팀보다 뛰어난 부분도 있지만 나름대로의 문제도 안고 있다. 일례로 미네소타의 낡은 철광산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초저온 암흑물질 탐색 Ⅱ(CDMS Ⅱ)' 프로젝트 팀은 지난 2009년 12월 윔프 신호를 두 차례 탐지했다고 주장, 신문의 머리기사를 장식했다. 하지만 모두 탐지기의 오작동으로 밝혀져 체면을 구겼다.

현재 이 연구팀은 충격을 추스르고 '슈퍼 CDMS'라는 기존보다 큰 탐지기를 활용해 암흑물질 탐지에 재도전하려 하고 있다. 또 다른 유력 경쟁팀으로는 '제논 100(Xenon100)' 팀이 있다. 이탈리아 중부의 그란사소 산 속에 연구소가 있 으며 명칭에서 느껴지듯 LUX와 유사한 탐지방식을 사용 중이다. 하지만 제 논 100팀의 탐지기는 LUX에 비해 작고 감도도 약하다.

그래서인지 지난 2006년 탐지를 개시한 이래 아직까지 아무것도 탐지해내지 못했다. 이 같은 직접적인 윔프 탐지 외에도 간접적 방식으로 윔프를 찾으려는 연구도 진행되고 있다.

한 연구팀은 입자 이론에 근거하여 지구 또는 우주에 쏘 아올린 망원경을 이용, 두 개의 윔프 입자가 만나 소멸할 때 발생한다는 특이한 입자를 찾으려 한다. 또한 유럽원자핵공동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 연구자들의 경우 양자를 충돌시켜 직접 윔프를 만들어내는 시도를 진행 중이다.

이들이 인공 윔프 생성에 성공한다면 물리학자들은 이를 참고해 자연 상태의 윔프를 더욱 잘 찾아낼 수 있도록 탐지기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다. 당연한 얘기지만 방법이 어찌됐든 이들 프로젝트의 수행을 위해서는 막대한 자금 투입이 요구된다. 따라서 암흑물질 연구는 그 연구소가 세워지는 지역에 적잖은 경제 활성화를 불러온다.

샌포드 지하 연구소가 들어선 리드의 경우에도 활발한 부동산 매매, 상가와 음식점의 호황, 그리고 주민 수백 명에 대한 고용창출이 이뤄졌다. 특히 샌포드 지하 연구소는 DUSEL이라는 대형 연구단지에 입주한 제1호 연구소에 불과하다. DUSEL 프로젝트는 미국 연방정부로부터 무려 8억 7,500만 달러 이상의 자금지원을 받을 예정으로서 이미 주정부와 개인독지가로부터 각각 4,730만 달러, 7,000만 달러를 지원 받았다.

이 자금들은 향후 홈스테이크 광산의 총연장 595㎞ 갱도와 75만㎡의 부지를 연구단지로 탈바꿈 시키는 데 쓰일 것이다. DESEL 에 입주할 물리학 연구실 중에는 LUX의 뒤를 이을 후계자도 포함돼 있다. LUX보다 큰 규모의 제논탱크를 채용한 윔프 탐지 연구실이 그것이다.

80달러 vs 300만 달러

과거의 홈스테이크 광산기업들은 단순 한 일자리 제공을 넘어 리드 지역 전반에 영향을 미쳤다. 할아버지와 아버지, 형이 광산에서 일했다는 리드의 톰 넬슨 시장은 이렇게 말한다. "지역사회가 원했던 모든 것을 홈스테이크 광산기업들이 제공해줬습니다. 상수도, 전기, 철도, 병원, 위락시설, 은행 등 모든 것을 말입니다.

"샌포드 지하 연구소와 DUSEL도 과거의 광산기업과 마찬가지의 역할을 할 수 있을 전망이다. 경제 부흥과 일 자리 창출은 이미 나타나고 있는 현상이며 DUSEL에 7,000만 달러를 기부한 억만장자 기업가 T. 대니 샌포드의 희망대로 2,000만 달러의 기부금으로 DUSEL 연구자들이 강사로 참여하는 지역과학교육센터도 건설될 예정이다.

리드 주민들보다 오히려 DUSEL에 의해 더 큰 이득을 보는 세력도 있다. 전 세계 입자물리학계와 천체물리학 계다. 윔프의 존재 없이는 지금껏 아원 자 입자들 사이에 벌어지는 모든 상호 작용을 설명해줬던 물리학 이론들이 빛을 잃게 되는 탓이다.

또한 윔프를 통해 암흑물질의 실체 규명이 이뤄지지 않으면 종국에는 우주의 구성물질에 대한 인류의 지식 토대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셔트 박사의 말이다. "암흑물질이 윔프가 아니라고 결론 내려지면 개인적 실망을 넘어 철학적 차원의 실망감이 몰려올 것입니다.

우리는 아무것도 찾아내지 못할 상황에 대해 마음의 준비를 하고 있지만 정말로 그렇게 된다면 학계가 느낄 실망감은 상상을 초월할 것입니다."LUX 프로젝트의 학문적 가치를 이해했다면 다시 LUX 탐지기가 조립되고 있는 청정실로 돌아가 보자. 1차 시도의 실패 후 연구자들은 모든 방법을 동원해 해결에 나섰다.

하지만 하루가 지나도 저온유지장치와 집합체는 결착되지 못했다. 이때 셔트 박사가 연구소를 나가 인근의 공구상가로 차를 몰았다. 전동 연마기의 구입을 위해서였다. 그는 저온 유지장치의 실린더 내부에 눈에 보이지 않는 미세한 용접 자국이 문제의 원흉이라며 이를 갈아 없애려 했다.

우주의 미스터리를 밝히기 위한 300만 달러짜리 연구장비의 운명이 100달러도 되지 않는 전동공구의 손에 쥐어진 것이다. 일반적인 상황이라면 연마기로 용접 자국을 제거하는 것은 간단한 작업이다. 하지만 티타늄 소재의 실린더라면 얘기가 완전히 달라진다. 게다가 이번처럼 외부 상점에서 구입한 공구를 사용할 때는 한층 세심한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연마 과정에서 발생하는 금속가루가 저준위 방사능을 방출, 장비가 방사능에 오염될 개연성이 있기 때문이다. 이 방사능은 윔프의 신호를 약화시킬 수 있다. 이는 연구팀이 LUX 탐지기에 사용된 볼트와 너트 하나까지 가능한 모든 노력을 기울여 방사능을 제거했고 LUX와 접촉하는 물체나 LUX 를 놓는 자리의 선정에도 세심한 주의를 기울이는 이유이기도 하다.

셔트 박사 또한 공구상가에서 꼼꼼한 탐색(?) 끝에 80달러짜리 드레멜 전동공구와 방사능이 나오지 않는 다이아몬드 연마 비트를 구입했다. 이렇게 물건을 구매하는 동안 상점의 주인이 도움을 주기 위해 다가왔다. 필자는 그 순간 물리학자와 지역 주민 간의 교류 현장을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대화는 기대와 달리 상점주인과 구매자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95% 완성, 시운전 돌입

어쨌든 아무런 진척 없이 또다시 하루가 흘렀다. 어제와 달라진 것이 있다면 필자가 청정실 밖에 아닌 내부에 들어 왔다는 것뿐이었다. 셔트 박사와 함께 실린더 속을 들여다보니 한 연구원이 자동차 밑에서 수리를 하는 정비공처럼 다리만 내놓은 채 연마에 힘쓰고 있었다.

귀청을 울리는 연마 소리가 멈추자 다리의 주인인 텍사스 A&M대학 출신 의 제임스 화이트 연구원이 얼굴을 들어냈다. 필자와 눈이 맞추진 그가 갑작스레 말했다. "이리 와서 좀 도와주지 않겠어요?" 이곳에서 연구(?)에 직접 참여하게 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지만 결국 그의 요청을 받아들였다.

가까이 다가 간 필자에게 화이트 연구원은 실린더 하단의 용접 자국을 가리키며 전동 연마기를 건넸고 필자는 장갑을 낀 손가락으로 용접 자국을 더듬으며 연마를 시작했다.

작업을 하는 동안 이토록 작은 자국이 이렇게나 많은 사람들을 괴롭혔다는 것이 도무지 믿기지 않았다. 결과는 어떻게 됐을까. 필자의 도움 덕분에 조립이 성공적으로 진행됐을까. 그랬다면 더할 나위 없었겠지만 현실은 해피엔딩이 아니었다. 전동 연마기의 모터가 타버렸을 만큼 몇 시간이나 쉬지 않고 실린더를 갈았음에도 아무런 변화가 없었다.

이 작업이 완료된 것은 그로부터 2 주가 흐른 뒤였다. 지난 9월 LUX 연구자들에게서 들은 바로는 성공의 비결은 실린더의 용접자국 연마가 아니라 골격에 있는 구리 부품 일부를 갈아낸 것이었다. 이것 외에도 9월까지 연구팀은 '사소하지만 전체 프로젝트의 진척을 막는' 문제를 5건이나 겪었다고 한다.

그중 한번은 너무나 철저히 부품을 청소한 결과, 쉽게 빠져야 할 볼트가 너트와 완벽히 붙어버려 낭패를 겪기도 했다는 전언이다. 현재 LUX 탐지기의 조립은 95%가 완료됐다. 이에 연구팀은 시운전을 준비하고 있는 상태다. 시운전에서는 액체제논이 충전된 탐지기를 연구실의 2 층 아래에 위치한 25만ℓ급 대형탱크에 넣어 작동상태를 확인하게 된다.

여기서 문제가 발견되지 않으면 비로소 지하 1,478m로 내려 보내지는 것이다. 그 시기는 아마도 올해 하반기의 어느 때가 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LUX 탐지기 작동 메커니즘

LUX 탐지기는 블랙 힐스의 지하 약 1.5㎞ 아래에서 ‘윔프(WIMP)’라는 소립자로 이뤄져 있다고 추정되는 암흑물질을 탐지하게 된다.

연구팀은 이 탐지기에 액체 제논 340㎏(117ℓ)을 넣을 예정인데 제논 원자핵이 윔프와 충돌할 때 방출되는 광파와 전자를 보고 윔프의 존재를 확인하게 된다.

또한 이때 방출된 빛은 몇 마이크로초만에 LUX 탐지기 상·하부에 장착된 광전자 증배관에 전달돼 원래보다 600배 강한 빛으로 재방출되기 때문에 연구자들은 손쉽게 윔프의 충돌 여부를 알 수 있다.

오동작 방지
LUX 탐지기는 윔프 이외의 다른 입자들에도 반응할 수 있다. 일례로 뮤온은 윔프의 신호를 사라지게 만들 수 있다. 다만 LUX 탐지기 상부의 두터운 지표면이 그 확률을 500만분의 1로 감소시켜준다.

바위에 함유된 극소량의 우라늄도 윔프로 오인될 수 있는 중성자와 고에너지 감마선을 방출, 오작동을 유발할 수 있다. 때문에 탐지기 주변을 30만ℓ 상당의 물로 감싸 중성자와 감마선을 차폐한다. 물탱크 소재인 두께 12㎜의 스테인리스는 방사성 라돈가스의 차폐막 역할도 한다.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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