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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녹색 혁명

18~19세기의 농업 혁명은 지구상의 식량 산출량과 함께 세계 인구도 증가시켰다. 하지만 이는 지속성에 한계를 드러냈고 이미 식량난 부족이 가시화되고 있다. 어울리는 조합은 아니지만 지구촌을 먹여 살리려면 이제 유전공학자와 농부들이 연대해야 한다.

캘리포니아대학 데이비스캠퍼스(UC 데이비스)의 자전거 도로 인근에 있는 자동화 가축 사육장과 강의실 사이의 작은 방에는 대량 살상무기가 보관돼 있다.


그 무기는 중국, 인도, 필리핀, 태국, 베트남,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서아프리카 등지에서 쌀 흉작을 일으킨 산토모나스균이다. 지난 2002년 미국의 '바이오테러 대비·대응법', 일명 바이오테러 방지법 통과 이후 미 농무부는 산토모나스를 공공보건과 안전을 위협하는 병원균 및 생물학 독소를 뜻하는 '선택 물질(agent)'로 분류했다.
때문에 이 방에 들어가기 위해 필자는 사진이 들어간 신분증을 발급 받고 여러 장의 문서에 서명을 해야 했다. 물론 1회용 실험복도 착용했다.


통제구역 내에서 한 연구자가 장갑을 낀 손으로 배양기 를 열어 노란색 점액이 들어있는 배양접시를 꺼냈다. 필 자가 접시에 손을 뻗자 그는 접시를 뒤로 빼며 말했다. "손을 대시면 안 됩니다." 그 점액은 일견 곰팡이 덩어리로 보였다. 하지만 이는 세 계 인구의 절반이 주식으로 삼고 있는 쌀을 썩게 만들어 18~19세기의 녹색 혁명 효과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위험천 만한 신종 박테리아다.

토머스 맬서스가 자신의 저서 '인구론'에서 인구는 기하 급수적,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해 식량부족에 따른 기근·빈곤·악덕이 발생할 것이라고 예견한 이래 많은 과학 자들은 식량 산출량이 급증하는 인구를 감당해내지 못하 는 사태를 두려워했다.

일각에서는 과학기술이 이 난제를 풀어줄 방법을 찾아낼 것이라고 주장했지만 맬서스 이론 추 종자들은 한정된 경작지 면적과 단위면적 및 단위시간당 산 출량의 한계가 분명하다며 부정적 입장을 취했다. 인구 증대에 맞춘 식량 증산 방법은 크게 두 가지다.

경작지 면적을 늘리거나 기존 경작지의 생산성을 늘려야 한 다. 과거의 녹색혁명은 이 모두를 실현했다. 댐 건설과 관개 기술의 혁신으로 경작지 면적이 늘었고 화석연료를 이용한 강력한 합성비료가 개발되면서 생산력도 높아졌다. 또한 화 학자들이 해충 및 바이러스와의 전쟁에서 이길 무기를 찾았 으며 유전학자들은 식물들을 더욱 강하고 생산력 높게 개량했다.

이렇게 식량이 풍족해지자 인구 성장의 지속성도 확보 됐다. 독일 화학자 프리츠 하버가 합성비료 제작법을 처음 개발한 지난 1911년 세계 인구는 약 17억명이었지만 그 수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 현재는 70억명에 육박한다.

지금도 수십억명의 사람들이 관개기술, 합성비료, 화학 살충제, 유전공학 등 4가지 분야에서의 지속적 성공에 식량 을 의존하고 있다. 하지만 1차 녹색혁명의 성공요인이었던 자원의 과도한 사용은 더 이상 지속되기 어렵다. 게다가 생 산성 향상에는 한계가 있다는 멜서스 추종자들의 주장은 옳았다.

현재 우리는 지구의 담수(淡水) 자원을 급속도로 고갈 및 오염시키고 있으며 인구 증대에 발맞춰 유가도 몇 배나 치솟았다. 또한 유독성 살충제·제초제가 무수히 살포되고 있고 농업폐수 때문에 바다가 죽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누구 도 부정할 수 없다. 1차 녹색혁명의 성공요인 중 지속가능한 것은 오직 유전공학뿐이다.

필자가 UC 데이비스의 로널드 연구소를 찾아온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연구소는 이 대학 식물병리학 교수인 파멜라 로널드 박사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그녀는 남편이자 유기농 농부인 라울 애덤첵과 함께 '미래의 식탁: 유기농, 유 전공학, 그리고 식품의 미래'를 저술하기도 했다.

인류가 현 수준의 인구수를 유지라도 하려면 2차 녹색 혁명이 필요하다는 것이 두 사람의 생각이다. 그리고 2차 혁명은 1차 때와 달리 제한된 자원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고 확 신한다. 적은 자원을 가지고 더 많은 성과를 낼 방법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유전공학과 GMO 회의론

연구소 감염관리실의 문을 열자 넓고 환한 방이 나왔다. 로 널드 박사는 살균된 배양접시, 원심분리기, 흄후드(fume hood) 등이 가득한 무균실로 필자를 안내했다. 이곳에서는 10여명의 연구자와 학생들이 '형질전환체'라는 라벨이 붙은 투명 플라스틱 용기들 옆에서 연구에 한창이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돌연변이'라는 단어가 적인 문서들도 곳곳에 보였 다. 로널드 박사는 여기서 기초자료의 수집·분석을 위한 가 장 원초적 단계의 유전자 변형이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로널드 박사팀은 산토모나스균을 포함, 식량공급에 타 격을 미칠 수 있는 병원균들을 막기 위해 유전자 코드를 해 독하고 있는데 최근 홍수에 의해 벼가 침수 되더라도 살아 남아서 쌀을 생산할 수 있는 유전자에 대한 분자단위의 정 보 해독을 완료한 상태다.

전문가들은 전 세계가 가뭄, 태풍, 질병, 토양 침식 등에 고통 받고 있는 현 상황에서 기근을 퇴치하는 과학기술은 한정된 자원의 영향을 덜 받는 정보과학의 모습을 갖는다 고 말한다. 1차 녹색혁명이 수십억 톤의 원료물질에 의존했 다면 2차 녹색혁명은 수십억 기가바이트의 기초 데이터에 의존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모든 사람들이 농작물과 유전공학의 만남을 반 기는 것은 아니다. 토속음식, 슬로푸드, 가족농장, 유기농 등의 지지자들은 유전자변형농산물(GMO)을 일종의 절대 악으로 여긴다. 이들은 GMO가 대기업 농업비지니스 모델의 전형으로서 지구의 생물학적 다양성을 말소하고, 환경을 파괴하며, 대중의 건강을 위협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한 몇몇 다국적 식품기업들이 특허를 무기로 막대한 돈을 버는 수단일 뿐이라고 폄하한다. 이미 유전공학자들과 자연식품 지지자들의 분열은 봉합 이 불가능할 만큼 깊은 골이 패였다. 유전공학자들이 GMO 회의론자들의 주장에 거만함과 무시, 엘리트주의로 맞대응 하는 것이 당연시 됐을 정도다.

때문에 세계인들은 과거의 방식과 미래의 방식, 다시 말해 기존 식품과 GMO 중에서 하나를 선택해야 하는 이분법적 흑백논리에 내몰리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에서 자라며 스키와 화초재배를 취미로 갖고 있는 로널드 박사는 이처럼 편을 갈라 싸우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그녀는 이렇게 말한다. "농업 시스 템이 환경에 미친 피해를 최소화 할 방법은 얼마든지 있습 니다. 하지만 그 모든 방법이 필요할 때 즉시 시행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로널드 박사는 필자에게 '바나나: 세계를 바꾼 과일의 숙 명'이라는 책을 보여주며 덧붙였다. "동아프리카 인구 1억명 이 오직 바나나로만 영양을 섭취합니다.

하지만 모든 바나 나 재배농가가 가장 잘 팔리는 종(種)만을 재배하며 유전자 풀이 좁아지면서 단 한 번의 전염병 창궐로도 바나나 시장이 치명타를 입는 상황이 됐습니다." 많은 학자들이 이 같은 명백한 위험을 경고하고 있으며 동아프리카에서는 이미 바나나 전염병이 확산되고 있다.

로 널드 박사는 자신의 유전자 연구가 이러한 병충해와의 싸움 에 유용하게 활용될 수 있다고 지적한다. "바나나와 쌀은 먼 친척입니다. 우리는 벼에 산토모나스병 면역력을 부여하는 유전자가 바나나에도 동일한 효과를 줄 것이라는 가설을 세우고 있습니다."



분자에 대한 이해

먼지 한 점 찾아볼 수 없는 로널드 박사의 연구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그녀의 남편 라울이 탁트인 하늘아래 서 있 었다. 라울은 지난 1996년부터 2만㎡ 면적의 UC 데이비스 학생농원의 책임자로 일하고 있는데 아내와는 극명히 대조 를 이루는 듯한 모습으로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흰색 가운 이나 실험복이 아닌 밀짚모자를 쓰고 진흙투성이 장화를 신은 채 말이다. 그에게 2차 녹색혁명에서 유기농의 역할을 묻자 무지개 콩이 자라는 작은 텃밭을 보여주며 말했다.

"거시적 관점에 서 농업은 환경을 파괴합니다. 곡식을 기르는 곳에서는 야 생동물, 야생식물, 자연생태계를 볼 수 없습니다. 그 대가로 사람들을 먹여 살리는 것이죠. 우리는 농업의 환경 위해성 을 최소화하며 가능한 많은 식량을 생산하는 기술이 필요 합니다." 유기농 농부로서 라울은 탄소, 질소, 인, 칼륨 등 합성비 료를 구성하는 화합물의 분자단위 작용에 관심이 크다.

또한 이들을 무작정 농지에서 씻어버려 전 세계의 바다와 강, 호수들을 조류(藻類)로 넘쳐나게 만들기 보다는 바이오매 스 내부에 붙들어 두면서 여러 대에 걸쳐 성공적인 작물 생 산을 가능케 하는 방안을 찾고 있다. 사실 인류는 쉴 새 없이 땅이 가진 에너지를 사용해왔지만 사용한 만큼의 에너지를 보충해준 적은 없다.

사막화와 가뭄으로 미국 서부에 '더스트 보울(Dust Bowl)'로 불리는 대규모 먼지폭풍이 불고, 멕시코만의 바다에 생물이 살 수 없는 거대한 데드 존이 생긴 것 모두가 이 결과다. 그리고 현존하는 어떤 농업기술도 땅에서 자라는 모든 작물은 그 근본적인 생장에너지를 태양으로부터 얻는다는 사실만은 바꾸지 못한다.

태양은 광합성에 필요한 연료를 제공하며 식물이 죽으면 자신이 보유한 에너지를 땅에 전달 한다. 이 과정에서 땅이 곡식을 키울 능력을 확보, 사람들의 배고픔을 해소시켜 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 농법은 태양의 에너지를 사람들의 위장으로 전달하는 효율이 짜증날 만큼 낮다.

실제로 우리는 땅에 구 멍을 뚫어 화석연료를 캐낸 다음 이를 비료로 만들어 먼 곳으로 싣고 간다. 이 비료는 작물을 심을 또 다른 구멍에 투 입된다. 이런 복잡한 공정은 땅을 침식시키고 에너지를 낭 비하며 매 단계마다 공해를 유발한다. 반면 무지개콩 같은 지피작물을 심으면 합성비료 사용 량을 줄일 수 있다.



이들은 공기 중의 질소를 흡입하고 뿌리, 줄기, 잎에 질소를 고정시킨다. 이후 생명이 다한 뒤에는 박 테리아에 의해 분해되며 그동안 고정한 질소, 즉 비료의 기본 요소를 흙속에 넣어준다. 이렇게 지피작물은 농업의 에 너지 순환을 돕는다. 그렇다면 라울은 아내의 유전자 연구를 어떻게 생각할 까.


그는 자원이 제한된 지구에서 경작지가 늘어나면 그만 큼 자연 동식물들이 사라질 수밖에 없다며 아내와 자신은 식량의 미래에 대해 새로운 결론에 도달했다고 밝혔다. 미래 의 농업은 유기농 혹은 유전공학만 고집해서는 안 되며 두 학문을 농업생태학적으로 조화시켜야 한다는 게 그것이다. 라울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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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로서 저는 과거의 경험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이 그 리 바람직하다고 생각지 않습니다. 분자에 대한 이해는 산적해 있는 문제의 해결에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개발과 상용화의 괴리

필자는 유전자 변형 과학이 식물 게놈에서 얻을 수 있는 모든 세부 정보를 활용케 해주고 유기농이 태양과 토양, 물의 에너지를 전부 이용할 수 있는 미래를 상상해봤다.

합성비 료나 화학살충제와 달리 유전자나 자연에너지는 태초부터 존재했던 것이기에 이들을 이용해 식량을 얻는다면 그 메리 트는 적지 않아 보였다. 바로 그때 라울이 작은 녹색 플라스틱 바구니를 집어 들 며 공상을 방해했다. "자, 이제는 수확할 시간입니다." 그가 토마토 덩굴 위에 몸을 굽히고 '선 골드(sun gold)' 라는 품종의 토마토에 손을 뻗었다.

이 토마토는 그야말로 모순의 산물이다. 유전자 조작에 의해 개발됐지만 유기농법 으로 재배됐기 때문이다. 이를 보며 필자는 환경운동가와 과학자의 갈등이 떠올랐다. 그리고 동시에 과학자들이 유전 공학을 통해 아무리 많은 성과를 올리더라도 누군가 그것을 땅에 심고, 물을 주고, 잡초를 제거하고, 수확해야만 비로 소 식량이 된다는 점이 뇌리를 스쳤다.

많은 생각을 하게 해준 라울의 유기농 농원을 떠나며 유 전자 조작으로 최적화된 수천 종의 곡식들이 가득한 세상 을 다시 한번 떠올려봤다. 아마도 어떤 품종은 냉해에, 어떤 품종은 홍수에, 그리고 어떤 품종은 병충해에 강하게 개량 돼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모두 방금 봤던 유기농법에 의해 재배될 것이다.

필자의 다음 방문지는 이런 상상을 실현하고 있는 듯 한 거대한 온실이었다. 유리 천장 아래 검은색 플라스틱 통 속에는 길이 90㎝ 정도의 수확을 앞둔 벼들이 금빛 바다 를 형성하고 있었고 그 끝에는 낱알들이 무겁게 달려있었다. 통 마다 별도의 라벨이 붙어 있었는데 로널드 박사는 그 중 유달리 크고 억세게 생긴 벼 앞에서 멈춰 섰다. 라벨에는 'Xa21-106/TP309'라고 쓰여 있었다.

이는 로널드 박사가 개발한 최초의 질병 내성 유전자 조 작 벼다. 그녀는 이 품종을 연구실에서 무려 10년 이상 키워 왔다. "여러 해 전 우리는 중국의 연구자들에게 Xa21 유전 자 보유 품종을 줬습니다. 예정대로라면 벌써 2년 전에 출시 돼야 했지만 중국 농업부가 승인을 내주지 않고 있습니다." 아시아 지역에 벼 전염병이 확산되고, 지금 이 순간에도 기아에 허덕이는 수백만 명의 사람들이 있음에도 왜 로널드 박사의 유전자 변형 벼는 공식적으로 재배되지 못하고 있을 까. 이 벼가 미래의 식량을 상징한다면 도대체 무엇이 이를 출시하지 못하게 하는 걸까.

그날 저녁 필자는 데이비스 중심가의 레스토랑에서 로널 드 박사와 라울을 만났다. 머리 위의 천막에는 죽은 밀이 장 식되어 있었고 황색이 된 잔디 줄기가 마치 부케처럼 나팔 모양으로 묶여 있었다. 이윽고 주문한 와인과 유기농 과자 가 도착하자 라울이 과자를 먹으며 말했다. "이 모두가 생물 학 실험이죠. 농부들은 언제나 유전자 조작을 해왔습니다."

정보 기반 비즈니스

실제로 1만여년 전의 어느 날 인간이 처음 정착생활을 시작 했을 때 어떤 씨앗은 버리고 어떤 씨앗은 내년의 파종을 위 해 저장됐다. 그날 이후 우리는 가장 큰 곡물, 가장 빨리 자라는 곡물, 그리고 가장 많은 열매를 맺는 곡물의 씨앗을 선 택해왔다. 또한 더위와 추위, 병충해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종자만을 원했다.

선사시대의 농부들은 자신이 키운 곡물이 곰팡이처럼 보이는 산토모나스균에 감염돼도 시들거나 죽지 않는 정확 한 이유를 알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무수한 남녀 농사꾼 들은 여러 세대를 거치며 경험을 통해 정보를 얻었고 그에 따라 움직였다.

나름의 의도를 가지고 야생의 잡초를 산출 량 높은 곡식으로 개량하고 있었던 것. 결국 그들은 농부이 자 종자 학자였던 셈이다. 그러던 중 지난 1866년 종자 선택 기술은 크게 진일보하 게 된다. 그레고르 멘델이라는 수도사가 완두콩 3만종의 특 성을 비교한 후 이른바 '유전 인자'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그가 알아낸 우성 유전자와 열성 유전자는 현재 종자 교잡(交 雜)의 토대가 됐다. 교잡은 유전적 조성이 다른 두 개체 사이 의 교배를 말하는데 멘델의 계산으로 인해 식물 혈통의 미 스터리가 풀렸고 추측에 의존했던 교잡 육종법의 불확실성 도 수학적 확률의 범주로 들어왔다.

이보다 더 매력적인 것 은 멘델의 계산이 항상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점이다. 여기까지 듣고 난 필자는 부부에게 물었다. 그럼에도 불 구하고 왜 오늘날의 많은 사람들이 유전자 조작을 절대악으 로 묘사하고 있는지에 대한 것이었다. 두 사람은 지난 1930년 미국의 식물 특허법을 지적했다.

식물 품종의 특허를 인정하는 이 법이 발효되면서 식물학 자들은 자신이 이룬 혁신에 대해 경제적 이익을 보장받았고 농업은 '정보에 기반한 과학'에서 '정보에 기반한 비즈니스'가 됐다. 신종 작물이 사고, 팔고, 독점할 수도 있는 수익성 높 은 지적재산이 된 것이다.

물론 그 이후에도 병충해 및 악천후에의 저항성과 영양 적 우월성은 신품종 개발의 핵심 요소로 남았지만 수익성이 라는 새로운 가치가 추가됐다. 따라서 종자회사들은 특허 를 획득, 수익을 낼 수 있는 품종을 찾기 위해 혈안이 됐고 더 우수한 품종으로의 개량 방안도 개발했다. 방사선 유기 무성(無性) 돌연변이법, 클로닝 등이 이렇게 탄생했다.



특히 놀라운 사실은 현재의 농업 과학도 이때와 다를 바 없이 수익창출을 위한 유전자 개선에 치중하고 있다는 점이다. 농 작물 구매자 중 대다수는 이를 모르고 있지만 말이다. 이야기가 여기까지 진행되었을 때 야채를 잔뜩 썰어 넣 은 스프와 후무스 피자, 채식주의자를 위한 파스타, 옥수수 팬케이크가 나왔다.

이를 본 로널드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가 먹는 거의 모든 것은 자연 상태에서는 찾아볼 수 없 는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모두 비자연적인 식품이죠."

의미 있는 첫걸음

저녁식사를 마치고도 아직 인류의 미래 식량에 대한 궁금 증은 완전히 해소되지 않았다. 그래서 산토모나스균에 대 한 대책은 무엇인지, Xa21 벼의 정확한 정체는 무엇인지 등 계속 질문을 이어갔다.

로널드 박사의 얘기는 자신의 대학 원 재학 시절로 돌아갔다. 당시 그녀는 국제미작연구소(IRRI)에 말리공화국의 벨 라 부족이 오래전부터 재배하고 있던 야생 벼 '오리자 롱기 스타미나타(Oryzae longistaminata)'의 교잡종 샘플을 요 청했다. 이 품종은 맛도 없고, 산출량도 많지 않다.

하지만 더 없이 매력적인 특성이 하나 있었다. 벼를 공격하는 병충 해로부터 사실상의 면역력을 가졌다는 부분이다. 이에 그녀는 코넬대학과 UC 데이비스에서의 재임 기간 을 통틀어 5년간의 연구 끝에 이 교잡종에서 산토모나스균 저항력의 근원이 되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이 유전자를 분리해낼 수 있다면 장립종, 단립종, 찹쌀, 초밥용 쌀 등 연구 팀이 원하는 모든 벼에 그 유전자 염기서열을 이식할 수 있 음을 그녀는 알고 있었다. 이 연구는 지난 1995년 완성됐다. 산토모나스균 내성 유 전자를 타이베이 309라는 벼 품종에 이식하는 데 성공한 것. 이 벼는 전례 없이 높은 수준의 병충해 내성을 지녔고 면역력은 다음 세대로 자연스럽게 전이될 수 있다.

로널드 박사와 UC 데이비스는 이번 연구 내용을 특허 출원했으며 산토모나스균 면역 유전자의 열쇠를 자신들의 지적재산권으로 만들었다. 그러자 얼마 후 다국적 농업기업 몬산토와 파이오니어가 이 유전자를 개량형 Xa21 종자에 심어 판매하겠다며 라이센싱을 요청했다.

하지만 UC 데이 비스의 기술이전 담당부서가 Xa21 유전자를 IRRI에 반환 해야한다는 조건을 내걸면서 두 회사는 흥미를 잃었다. 이 후 커다란 잠재력을 지닌 이 종자의 상업적 개발은 지금껏 답보를 거듭하고 있다. 사실 로널드 박사의 연구 성과는 그녀의 생각만큼 두 기 업에게 큰 메리트로 받아들여지지 못했다고 보는 것이 옳다.

두 기업은 이미 그보다 더 수익성 좋은 농업기술혁신, 이 를테면 제초제에 내성을 가진 유전자조작 콩 '라운드업 레 디'로 떼돈을 번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라울은 "몬산토, 신젠타 같은 다국적 종자기업은 특허법 의 이익을 취하고 있다"며 "이들이 수익성에 더해 유전자와 특허, 그리고 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더욱 잘 이해해줬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 법무부의 법률가들은 작년 가을 "누구도 유전자에 대한 소유권을 가질 수 없다"는 취지의 주장을 폈 다. 유전자는 게놈에서 추출한 것으로써 일종의 자연법칙인 데 자연법칙은 특허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미국 특허청 은 이 같은 주장에 아직까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따라서 유전자 조작 종자의 판매와 라이센싱, 대량 생산 과 대량 판매는 계속 진행 중이다. 만족스런 결과는 아니지만 유전자가 특허의 대상이 아닐 수도 있음을 인지하는 것만으로도 지구촌의 기아 해결을 위한 의미 있는 첫걸음을 내딛었다고 할 수 있다. 단적으로 말 해 현재의 특허법은 거대 종자기업에게 막대한 이익을 보장 하면서 소작농들에게는 복종만을 강요하고 있는 모습이다.

Xa21의 개발도상국 출시를 지연시키고 일을 복잡하게 만드 는 것 또한 특허법이라 할 수 있다. 유기농과 GMO 사이의 전쟁을 촉발시킨 이면에는 특허법이 숨어 있는 것이다. 로널드 박사와 UC 데이비스가 Xa21 벼를 개발하며 특 별조항을 둔 이유도 이것이다.

이들은 특별조항에 의거해 Xa21 벼의 유전자 정보를 무료로 제공할 것이며 자신이나 라이센싱 기업들이 얻은 이익을 이 유전자의 고향인 말리공 화국 같은 가난한 아프리카 국가들과 나눌 계획이다. 이렇 게 해야만 품종개량이 가장 시급하고 필요한 곳에 품종개량 의 성과가 발현될 수 있기 때문이다.

로널드 박사가 꿈꾸는 2차 녹색혁명의 가속화도 이러한 바탕에서 가능해진다. 그녀는 말한다. "과학에 새 시대가 올 것입니다. 다만 충분히 빠른 속도 로 다가오지는 않겠지만요."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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