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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 혁명을 꿈꾸는 파워 브로커

미국 에너지고등연구계획국(ARPA-E)의 아룬 마줌다르 국장은 수백만 달러의 자금을 어느 연구자에게 지원할지 신속 정확하게 결정해야 한다 .

민간에서 수행하기 어려운 고위험·고수익 연구에 대규모 정부자금을 지원하는 ARPA-E 의 수장으로서 향후 20년 내 지구온난화와 화석연료 고갈이라는 위기를 타개할 에너지 혁명을 일으켜야 하는 게 그의 임무다 . 그의 실패는 인류의 실패가 될지도 모른다 .


에너지 혁신의 주도자

평소 미국 미시간주립대학의 엔진연구 실은 평온하다. 하지만 작년 8월의 어 느 아침, 이곳의 모든 사람들은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이윽고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기 몇 분 전 노르베르트 뮐러 교수에게 모두 가 기다렸던 한통의 전화가 걸려왔다.

미국 에너지 연구계에서 가장 큰 영향 력을 가진 인물이 그의 연구를 보기 위 해 학교에 도착했다는 내용이었다. 전 화를 내려놓은 뮐러 교수는 곧장 건물 정문으로 향했다. 그의 동료들과 학생 들도 뒤를 따랐다. 그리고 얼마 후 건 물 앞에 승용차 한 대가 서더니 몇 사 람이 내려 이들에게 다가왔다.

가장 앞선 사람은 미국 에너지고등 연구계획국(ARPA-E)의 아룬 마줌다 르 국장이었다. 그는 마치 매 걸음마다 자신이 소비하는 열량을 계산이라도 하듯 신중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뮐러 교수 앞까지 다가온 국장은 손을 내밀 며 말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열유체공학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 인 뮐러 교수는 이 손님을 맞이하기 위 해 바쁘게 움직이며 만반의 준비를 갖 췄다. 지금까지 뮐러 교수는 여러 곳에 서 수만, 혹은 수십만 달러의 지원금 을 받아 연구를 진행해왔지만 마줌다 르 국장은 그에게 무려 250만 달러를 지원했기 때문이다.



현재 마줌다르 국장은 뮐러 교수의 연구처럼 지원금을 날려버릴 위험성이 큰 프로젝트에 수억 달러의 자금을 지 원할 권한을 갖고 있다. 한마디로 에너 지 연구계의 거대 권력자이자 파워 브 로커다. 이런 그가 연구비 지원의 성과 를 알아보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다.

ARPA-E는 에너지의 생성·증폭· 저장을 위한 혁신적 방법을 연구하고 있는 기업 및 대학 연구자들에게 수백 만 달러의 자금을 지원하기 위해 설립 됐다. 이러한 연구들은 인류가 직면한 에너지 위기 극복의 열쇠를 제공할 수 있지만 실패 확률도 높아 투자가 원활 치 못하다. 때문에 관련연구들 역시 발 전 속도가 매우 느리다.

하지만 ARPA-E의 지원을 받은 연 구자들은 늘어난 지원금에 힘입어 한 층 새롭고 혁신적인 연구에 매진할 수 있게 된다. 이산화탄소로 휘발유를 만 드는 박테리아, 용융 실리콘 태양전지 웨이퍼, 공중 풍력발전기 등이 개발될 수 있었던 것도 모두 ARPA-E의 힘이 었다.

이런 ARPA-E의 수장인 마줌다르 국장은 몇 주마다 한 번씩 지원금 수령 자들의 연구 진행상황을 직접 점검한 다. 이는 흔히 생각하는 검열이 아니지 만 마줌다르 국장을 안내하는 뮐러 교 수는 분명 초조해하고 있었다.

DARPA와 ARPA-E

소년 시절의 마줌다르 국장은 전기통 신 전문가로서 여려 공항의 무전장비 를 손봤던 아버지를 따라 인도 전역을 떠돌아다녔다. 공항에서 항공기의 이 착륙을 보고 마음이 설렌 그는 목제 글라이더를 만들었고 자신만의 항공 기를 설계해 실험을 하기도 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에는 MIT에 버금간다는 뭄바이 인도공과대학(IIT) 에 입학했다. 당시 IIT에는 15만명이 지원했지만 그를 포함한 1,500명만이 합격했다.

이후 그는 IIT에서 최고의 학생이 됐다. 이것이 인연이 되어 미국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의 제안 으로 장학금을 받고 미국으로 건너왔 으며 이 대학의 전 총장이었던 창린 티 엔 박사에게 열(熱)과 에너지복사 분야 를 배웠다.

마줌다르 국장은 그때의 창 교수를 이렇게 회상했다. "항상 극한을 추구 하는 것이 그의 연구 철학이었습니다. 아주 작거나 아주 큰 것을 연구했죠. 흥미로운 과학연구는 그런 데서 태어 납니다." 졸업 후 버클리대학의 교수가 되고 나서는 나노기술, 교통기술, 에너지변 환 등을 연구했으며 남는 시간을 할애 해 실리콘밸리의 신생 벤처기업들에게 자문을 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세 계적 종합연구소인 로렌스버클리국립 연구소(LBNL) 산하 에너지·환경연구 소의 부소장으로 취임, 노벨물리학상 수상자이자 현 미국 에너지부(DOE) 장관인 스티븐 추 박사와 함께 일했다. 당시 추 박사는 청정에너지 육성 프 로그램의 필요성에 대해 주창하고 있 었다.

지난 2006년에는 사기업들이 감히 투자를 하지 못할 정도로 위험도가 높은 에너지 기술에 대해 대규모 자금 을 투자하는 정부기구의 창설을 DOE 에 제안하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오바 마 대통령은 지난 2008년 추 박사를 DOE 장관으로 임명했고 그 이듬해 미 국 경기부양법(ARRA)에 의거, 투자에 필요한 2,750억 달러 중 3억8,800만 달러의 예산이 처음으로 배정됐다.



이 과정에서 설립된 ARPA-E는 지 난 1957년 소련이 세계 최초의 인공위 성 스푸트니크1호의 발사에 성공하자 우주항공분야에서의 기술적 우위를 탈환키 위해 출범시킨 미 국방부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과 목적 이 비슷하다.

당시 DARPA는 유도미사 일, 스텔스 기술 등 군사분야는 물론 오늘날 일상생활에서 유용하게 쓰이 는 휴대폰, GPS, 인터넷 등에도 아낌 없이 자금을 지원해 현재의 IT강국 미 국을 만드는 데 이바지했다. 마줌다르 국장은 말한다. "우리 시대의 스푸트니크는 과거와 달리 1대가 아니라 3대입니다. 에너지 안보, 경제 안보, 환경 안보가 바로 그것이죠."

선택과 집중형 투자

사실 지난 1970년대 석유 위기 이후 부터 에너지 연구는 정부의 자금 지원 에 목말라하고 있었다. 지난 2009년 ARPA-E가 자금을 지원할 연구 프 로젝트의 선정을 위해 관련 논문을 공 모하자 무려 3,700개의 논문이 도착, DOE의 컴퓨터 시스템이 마비됐을 정 도였다.

물론 그 모두가 설득력 있는 제 안은 아니었다. 마줌다르 국장에 의하 면 약 27%는 무한동력처럼 열역학 제 1법칙(에너지보존법칙), 또는 제2법칙 (엔트로피증가법칙)에 위배됐다. 이들 논문의 심사는 미국 최고의 과학자 수백명으로 구성된 평가인단 이 맡았다.

이들은 논의를 거듭한 끝 에 1차로 300개의 논문을 추렸고 작성 자들에게 정식 제안서 발송을 요청했 다. 그 결과 1차로 평균 400만 달러의 지원금을 받을 37개의 연구가 최종 확 정됐다.

이에 대해 마줌다르 국장은 "한 연 구에 10만 달러씩 1,500개 연구에 자 금을 나눠 줄 수도 있지만 우리는 그렇 게 하지 않는다"며 "위험부담이 크더라 도 확실한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연구를 선정, 충분한 자금을 투자한 다"고 밝혔다. 다양한 분야를 대상으로 한 1차 선 발에 이어 2차 선발에서는 차세대 배 터리, 이산화탄소 포집, 대체연료 등의 기술에 초점이 맞춰졌으며 3차 때는 배 전망 단위의 전력 저장, 태양전지용 전 자장치, 공기조화장치(HVAC) 등 새로 운 접근방식에 선정의 중점을 뒀다.

향후에는 열 저장, 파워 일렉트로닉스, 광합성 효율 증대, 차세대 희토류 원소 채굴 기법에 주안점을 둘 것으로 알려 져 있다. 마줌다르 국장에 따르면 DARPA 가 지원한 연구는 펜타곤이라는 든 든한 내부고객을 활용할 수 있지만 ARPA-E가 지원한 연구는 다르다. 시 장 경쟁 속에서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

게다가 ARPA-E의 지원금은 여러 민간 자본들과도 결부돼 있다. 벤처 자 본가 등 여러 투자자들이 미국 최고 과 학자들이 뛰어든 연구프로젝트에 홀 려 ARPA-E의 지원대상자가 발표된 지 2달도 되지 않아 3,300만 달러나 되는 자금을 투자했기 때문이다. 물론 DARPA와 공통점도 있다.

ARPA-E가 지원한 매력적인 에너지 혁신 콘셉트 중 상당수가 실험실 밖 현 실세계에서 구현되지 못한 채 사장될 것이라는 점이 그것이다. 그래도 ARPA-E는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ARPA-E의 지원을 받아 액체 금속 배터리를 개발 중인 MIT 재료화 학과 도널드 사도웨이 교수의 말을 빌 리자면 이들 중 극소수만 상용화되더 라도 그 파괴력은 어마어마할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이들로 인해 에너지 위기의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다면 미국은 화석 연료 의존도에서 벗어나 한 차원 강력 한 에너지 안보를 구축하게 된다. 적어 도 태양에너지와 풍력에너지가 미국의 에너지 포트폴리오에서 차지하는 비중 이 크게 높아질 것이다. 이는 미국에게 돈으로는 환산할 수 없는 메리트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

발전을 위한 건설적 대립

ARPA-E를 설립한 지 2년여가 지난 현재, 마줌다르 국장의 투자 중 일부 는 이미 성과를 거두고 있다. 뮐러 교수 팀의 '웨이브 디스크 엔진(Wave Disk Engine)'이 그 중 하나다. 디젤 엔진과 터빈 엔진을 융합한 이 엔진은 충격파 를 이용해 연료를 압축하고 그 에너지 를 전달하는 방식으로 구동된다. 마줌다르 국장이 뮐러 교수 연구실 을 찾은 이유도 바로 웨이브 디스크 엔 진의 첫 시제품을 보기 위해서였다.


마줌다르 국장은 뮐러 교수가 여러 면에서 ARPA-E 지원금 수령자의 표 본이라고 설명한다. "뮐러 교수팀은 특 출한 아이디어에도 불구하고 몇 해 동 안 거의 지원을 받지 못한 채 힘들게 연 구를 해왔습니다. 안 그래도 미국은 새 로운 엔진 개발에 필요한 기술을 잃었 습니다. 이 상황을 반전시키려면 이런 사람들에게 기회를 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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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이 오래 전 달에 사람을 보낼 수 있었던 것도 이 같은 방식의 노력이 있었기 에 가능했던 것입니다." 마줌다르 국장이 방문한 날 뮐러 교 수는 ARPA-E의 손님들을 연구실로 안내했다. 그곳에는 냄비만한 동그란 장비가 탁자 위에 놓여 있었다. 웨이브 디스크 였다.

뮐러 교수는 보조금 덕택에 웨이 브 디스크를 기존 자동차 엔진보다 가 볍고 저렴하며 5배나 큰 효율성을 갖도 록 만들 수 있었다고 설명했다. 또한 이 엔진을 하이브리드 자동차에 채용하 면 1회 연료주입 만으로 800㎞ 이상의 주행거리를 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지나치게 야심차게 들릴지 모르지만 ARPA-E의 핵심이 여기에 있다. 마줌다르 국장의 말이다.

"현재의 위기를 타개하려면 홈런을 날리는 수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향후 20년 내에 그 이후의 100년을 담보할 혁신적 기술을 찾아야 합니다." 다수의 센서와 피더 튜브(feeder tube)들에 연결된 시제품 엔진을 접한 마줌다르 국장의 표정이 밝아졌다. 그 리고는 코트에 윤활유가 묻는 것도 전혀 개의치 않고 쭈그려 앉아 기계를 만 지작거렸고 새 장난감을 선물받은 아 이처럼 엄청난 질문공세를 펼쳤다.

"균 형이 문제인가요? 유출이 문제인가 요?" "최적 속도는 얼마나 되죠?" "충 격파가 엔트로피를 발생시키지는 않나 요?". 뮐러 교수는 처음에는 충격파의 역 할을 이해하려면 폭탄을 떠올리면 된 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곧바로 정정했 다. "아니, 폭탄은 적당한 비유가 아니 군요."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호박벌을 상상해 보세요. 호박벌의 날개는 호박 벌을 띄우기에는 너무 작습니다.

때문에 호박벌은 음속으로 날갯짓을 하면 서 압력파를 생성, 공기를 압축하여 추 가 부양력을 얻습니다. 웨이브 디스크 엔진 내에서도 충격파가 연료를 압축, 연료가 가진 에너지의 운동에너지 변 환을 돕는 것입니다." 마줌다르 국장은 만족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이며 다음 질문으로 넘어 갔다.

뮐러 교수는 모든 질문에 상세히 대답을 하면서 마줌다르 국장이 자신 의 연구에서 흠을 찾고자 하는 것이 아 니라 좀 더 낫게 개선하고자 한다는 것 을 깨달았다. 그래서 조금씩 긴장도 풀 렸다. 실제로 마줌다르 국장은 전 인텔 CEO 앤디 그로브가 제창한 '건설적 대 립'이라는 조직문화를 ARPA-E에 도 입했다.

그는 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과학과 공학을 논하고 새로운 프로그 램과 제안을 평가할 때 저는 더 이상 국장이 아닙니다. 우리 직원들은 모두 평등한 관계에서 논의를 합니다. 이를 통해 정말로 강하고 뛰어난 아이디어 만 살아남게 됩니다. 과학은 그래야만 효과를 발휘할 수 있습니다."



에너지 패권을 선점하라

한바탕의 질문폭풍이 지나고 뮐러 교 수와 ARPA-E 관계자들은 보호유리 판 뒤에서 연구팀의 대학원생이 컴퓨 터 단말기를 이용, 전기모터를 구동시 켜 엔진의 내부 블레이드를 회전시키 는 것을 지켜봤다. 전기모터가 구동한지 얼마 되지 않 아 회전속도계는 1,000rpm을 가리켰 고 이내 1,500rpm도 넘어섰다.

계기가 2,000rpm에 도달하자 뮐러 교수는 대 학원생에게 신호를 보내며 이렇게 말 했다. "이제 프랑켄슈타인이 생명을 얻 는지 지켜봅시다." 신호를 받은 대학원생이 엔진에 연료를 주입하고 점화를 시켰다. 그러자 웨이브 디스크 엔진이 떨리기 시작하 더니 '털털' 소리를 내며 작동을 시작했다.

마줌다르 국장의 얼굴에도 미소가 번졌다. "마치 심장박동 소리 같군요."` 이후에도 그의 기술적 질문은 계속 됐지만 마치 대견스러운 아들에게 질 문하는 아버지의 태도였다. 시연을 마치고 연구실 옆의 회의실 에서 도시락으로 점심식사를 마칠 무 렵 ARPA-E의 자금을 받은 미시간 주립대 연구팀이 자신들이 연구 중인 생물반응기의 최근 소식을 알려왔다.

MIT와의 공동프로젝트인 이 연구는 수소를 먹는 박테리아를 이용, 이산화 탄소를 수소(연료전지)자동차용 연료 로 전환하는 기술을 개발 중이다. 하지만 마줌다르 국장은 이곳에서 다른 프로젝트에 대한 내용을 듣고 싶 어 하지 않는 눈치였다. 몇 차례 고개 를 끄덕이고는 뮐러 교수와의 대화에 집중했고 연구팀원 모두와 악수를 하 고는 다른 곳을 향해 떠났다.

정부의 자금 지원 프로그램이 기술 혁신을 이끌어낸 사례는 ARPA-E 이 전에도 많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인터넷의 역사를 돌아 보자. 지난 1963년 DARPA의 전신인 미 국방성(DOD) 산하 고등연구계획국 (ARPA)은 MIT 연구팀에 260만 달러 를 지원, 컴퓨터 시간공유시스템을 개 발토록 했다.

이들의 초기 연구는 '아르파넷 (ARPAnet)'이라는 세계 최초의 광역 패킷 전환 네트워크를 낳았고 이는 오 늘날 전 세계를 하나로 묶어준 인터넷 의 시초가 됐다. 260만 달러를 투자한 지 40여년이 흐른 지금 그 경제적·사회적 가치는 실로 어마어마하게 커졌다.

지난 1990 년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인 터넷의 경제적 가치를 미국 내에서만 약 2,500억 달러에 달하는 것으로 추 산했으며 지난해 실시된 한 연구에 의 하면 인터넷 광고와 연계한 미국 내 온 라인 비즈니스 종사자는 120만명에 이른다. 20세기에 인터넷이 있었다면 21세 기의 화두는 청정에너지다.

이미 청정 에너지, 다시 말해 미래에너지의 패권 을 놓고 수십 개의 국가가 국운을 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이 시장의 규모는 오는 2020년경 무려 2조2,000 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예견된다. 따라서 미국은 청정에너지 시장에 서의 경쟁력을 잃지 않기 위해 에너지 분야 연구개발에 40억 달러를 쏟아 붓 고 있다.

최대 경쟁자인 유럽은 33억 달러, 일본은 31억 달러를 쓴다. 하지만 투자비의 규모만 보고 속아 서는 안 된다. 국내총생산(GDP)에서 에너지 연구개발 비용이 차지하는 비 중을 보면 미국은 한참 뒤진다. 한국, 일본, 중국, 프랑스 등은 GDP를 기준으로 미국보다 훨씬 높은 비율의 자금을 투자하고 있다. 특히 중국은 앞으로 10년 동안 연평균 약 740 억 달러를 에너지 연구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이러한 투자를 통해 중국은 청정에너지 기술 분야에서 세계 최강 의 개발력과 생산력을 얻고자 한다. ARPA-E가 투자한 돈의 효과는 향후 석유 소비 절감량,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량, 태양에너지 발전의 효율 성 상승률, 배터리의 에너지밀도 증진 률 등에 의해 평가될 것이다.

그리고 ARPA-E의 지원금은 후속 민간 투자 를 유도하는 일종의 종자돈이기 때문 에 프로젝트의 실질적인 성패를 판가 름하는 데는 종종 10년 이상의 시간이 필요할 것이다. 뮐러 교수와 헤어지고 다음 목적지 로 가는 차 안에서 마줌다르 국장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휴대폰에 대고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 사람들이 태양에 너지 발전 단가를 지금의 절반으로 낮 출 수 있다고 했다고요? 어떻게 그런 가격이 나왔는지 계산과정을 보여줬 나요? 아니라면 계산과정을 알려달라 고 하세요." 통화를 마친 그는 필자에게 설명 했다.

"현재의 태양전지는 발전단가 가 1W당 8~10달러 정도입니다. 특별 히 손을 쓰지 않아도 10년 내에는 자 연스럽게 단가가 1달러로 낮아질 것입 니다. 하지만 우리가 이 목표를 5년 내 이룬다면 시장의 패권을 거머쥘 수 있습니다."





ARPA-E와 GM의 미래

마줌다르 국장의 차가 향한 곳은 미시 간주 워런에 위치한 세계적 완성차 메 이커 GM의 기술센터였다. ARPA-E 는 대학이나 신생기업은 물론 GM과 같은 대기업 연구자들에게도 자금을 지원하고 있다.

대기업이라고 해서 회 사 내의 창의적 아이디어에 항상 풍족 한 연구비를 지원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1만6,000명의 엔지니어와 설계사, 기술자들이 일하는 GM의 워런 기술 센터는 지난 50여년 동안 GM이 선 보인 독창적 기술의 인큐베이터였다.

이곳의 연구개발동 로비에 도착하니 GM 차량개발연구소 잰 아즈 소장과 ARPA-E의 자금으로 개발 중인 경량 열회수 시스템 '라이터(LighTer)'의 연 구책임자 앨런 브라운 박사가 기다리 고 있었다. 두 사람의 설명에 의하면 현재는 연 료가 가진 에너지 중 약 60%가 폐열이 라는 이름으로 냉각장치인 워터재킷이나 배기 파이프를 통해 사라진다.

브라운 박사는 이처럼 기존 기술로는 이용 하기 어려웠던 저품위 폐열을 회수해 엔진출력 향상을 꾀하고자 한다. 라이터의 핵심은 니켈과 티타늄으로 만든 신축성 있는 형상기억합금 와이어다. 이 와이어는 열이 가해지면 줄 어들고 차가워지면 늘어난다. 브라운 박사가 마줌다르 국장 일행을 연구실로 안내하며 말했다.

"이 와 이어를 채용한 루프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에서 폐열로 발전기를 가동시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일반 내 연기관 엔진에서도 엔진에 전혀 부하 를 주지 않고 교류발전기를 대체할 수 있죠." 연구실의 테이블 한쪽에 놓인 라 이터는 배배 꼬인 와이어와 톱니바퀴로 구성돼 있었다.

마치 무한동력 신 봉자들이 만든 영구동력장치처럼 보였다. 브라운 박사는 사람들에게 보안 경을 나눠 주고 열풍기를 작동시켜 일 반 자동차의 배기 파이프 내부 온도를 재현했다. 그러자 곧바로 라이터의 형 상기억합금 와이어가 배기열에 의해 수축과 팽창을 반복하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브라운 박사가 자랑스럽게 말했다.

"이 기계의 출력은 기존의 어떤 열 회 수기보다 뛰어납니다. 다만 냉각 부분 은 향후 풀어야할 최대 난제로 남아있 습니다. 열 교환 분야에서 마줌다르 국 장님이 일가견이 있으신 걸로 압니다. 혹시라도 라이터를 신속히 냉각시킬 좋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면 조언을 부탁드립니다." 이 말은 언뜻 지원금 수혜자가 물주 에게 하는 아부처럼 들릴 수도 있었다.

하지만 마줌다르 국장은 의자를 박차고 일어나 칠판으로 향했다. "당신에게 필요한 건 난류인 것 같군요" 그리고는 분필을 집어 들고 자신의 장기인 질문 폭탄을 적어나갔다. 열 교 환을 극대화할 방법은? 어떤 형상의 와이어가 열을 가장 빨리 방출할까? 와이어의 형상은 어때야 할까? 이렇게 질문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 며 이어지며 다양한 이론들이 도출됐고 브라운 박사와 함께 여러 방안을 놓고 논의가 벌어졌다.

ARPA-E 일행을 배웅하며 연구실 을 나갈 준비를 하고 있던 젊은 엔지니 어들도 멈춰 선 채 이 기묘한 광경을 구 경하고 있었다. 한 엔지니어가 고개를 저으며 옆에 있던 다른 동료에게 이런 말을 했다. "우와, 저것 봐. 날이면 날마다 볼 수 있 는 광경이 아니야." 한동안의 토론을 마친 후 마줌다르 국장은 워싱턴으로 돌아가기 위해 주 차장으로 향했다.

하지만 GM측은 그 에게 보여줄 것이 하나 더 남아 있었다. 새로 개발 중인 수소자동차의 프로토 타입 모델이었다. 그날은 실로 기나긴 하루였지만 마줌다르 국장은 이 차량 의 운전 기회가 주어지자 기쁜 기색이 역력했다. 그는 그 차를 몰고 GM 기술 센터의 인공호 한쪽을 돌아 가속하며 달려 나갔다.

By Tom Clynes
PHOTOGRAPHs BY JOHN B. CARNETT
ILLUSTRATIONS BY Tadaomi Shibuya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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