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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제역 살처분과 동물의 기본권

동물답게 살고 동물답게 죽을 권리

동물권(animal right)은 건강하고 쾌적한 생활을 영위할 동물의 권리로 인권과 대응되는 개념이다. 이는 현대의 급진적 환경운동가, 동물애호가들만의 주장이 아니다.

고대시대 때부터 동물권 보호를 주장한 사람들은 줄곧 있어왔다. 그리고 현대에 들어와 동물권은 환경적, 생태적 측면에서 그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 수많은 가축들이 구제역 확산 방지라는 명목 하에 비참하게 살처분되고 있는 오늘, 역사를 관통해 온 동물권 논쟁을 다시 한 번 돌아본다.



작년 11월 국내에 구제역이 발생하며 이의 확산 방지를 위한 가축 살처분이 한창이다. 1월 18일 현재 살처분 된 가축은 무려 200만 마리가 넘는다. 이는 국내에서 기르는 소와 돼지의 10%가 넘는 수치며 돼지는 국내 전체 사육 두 수의 20% 이상인 약 190만 마리가 살처분 됐다.

정성스럽게 기른 가축들이 방역당국의 손에 죽음을 맞고, 혹은 산 채로 파묻히는 상황을 하릴 없이 지켜봐야 하는 축산농가의 시름이 얼마나 클지 상상조차 어려운 상황이다. 얼마 전에는 안락사 주사를 맞고도 끝까지 송아지에게 젖을 먹이고, 송아지와 함께 매장된 어미 소의 이야기가 언론을 통해 전해지면서 시민들의 심금을 울리기도 했다.

어차피 사람에게 잡아 먹혀지기 위해 키우는 이들 가축의 살처분에 왜 사람들은 이리 슬퍼하는 것일까. 소와 돼지, 인간 모두가 결국 생명이라는 요소를 공유한 동물이라는 사실에서 연유한다고 할 수 있다. '동물권'이라는 개념은 바로 이런 인식에서 출발한다.

현재 거의 모든 나라는 인간이 인간다운 삶을 누리기 위한 기본적 권리, 즉 인권을 법적으로 보장한다. 차별을 받지 않을 평등권, 사회적이고 건강한 생활을 유지할 생존권, 생명 자체를 유지할 생명권이 그것이다. 그렇다면 생명을 가진 동물에게도 동물권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현대적 개념의 동물권은 이렇듯 동물도 인간과 동일한 권익을 누려야 한다는 정서가 담겨있다.

특히 우리나라와 달리 서구국가에서 동물권은 그리 생소한 개념이 아니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180여개의 법과대학원 중 97개소에서 동물권이 포함된 동물법을 강의하고 있으며 대학에서도 윤리학, 철학의 한 과목으로 동물권 강의가 정기 개설되는 등 비교적 활발한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

어떤 동물에게, 어느 정도의 동물권을 적용할 것인지는 철학적, 이념적 배경에 따라 옹호론자들 사이에서도 상당한 이견이 있지만 말이다.

동물권, 그 장구한 역사

사실 아직도 인권은커녕 당장 세끼 밥이 아쉬운 사람들이 많다. 그런 마당에 동물권을 논하는 것은 사치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동물권에 대한 논의는 고대시대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아마도 고대에 가장 강력하게 동물권을 주장한 사상은 인도의 종교 자이나교일 것이다. 기원전 6세기경 생겨난 자이나교는 모든 동물에 대한 철저한 불(不)살생과 비폭력을 주장했다. 종교시설에는 상처받은 동물들이 쉬거나 보호받을 수 있는 피난처까지 있었다고 한다.

고대 그리스 철학에서도 동물 처우의 논의는 대단히 중요했다. 당시의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사상은 물활론, 생기론, 기계론, 인본주의 등이었는데 유명한 철학자이자 수학자인 피타고라스는 중요한 물활론자였으며 동물권을 최초로 논의한 철학자였다. 그는 인간과 동물의 영혼이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으며 사후의 영혼이 인간에서 동물로, 또는 동물에서 인간으로 환생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17세기에 들어 서양에서의 동물권 논의는 그 이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향으로 향한다. 그 선두에는 철학자 데카르트가 있었다. 근대의 과학 혁명과 더불어 과학적 세계관을 구축한 데카르트는 동물을 살아있는 기계로 여겼다. 그는 인간의 정신과 영혼은 신에게서 부여받은 인간 고유의 것이기에 동물에게는 영혼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따라서 슬픔이나 고통을 느끼지 못하기에 동물권은 일고의 가치도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었다.

이는 근대 세계관의 중심이 과학이었기에 가능한 해석으로 판단된다. 동물의 영혼은 과학적 증명이나 객관화가 불가능한 가치였으며 인간의 삶을 살찌우는 과학의 발전을 위해 동물의 희생은 당연시됐다. 이러한 가치관은 과학만 능주의에 휩싸였던 당시에 큰 인기를 얻었고 지금까지도 상당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하지만 그런 와중에도 17세기 아일랜드에서는 동물에 대한 가혹행위를 금지하는 성문법안이 만들어졌고 18세기와 19세기에 이르러 철저히 부정당했던 동물권이 다시금 화려하게 부활하게 된다. 1800년 영국은 그때까지 성행했던 전통놀이 '불베이팅'을 불법화시켰다. 불독과 황소를 싸우게 하는 동물학대적 놀이라는 이유에서다. 또한 1822년에는 소와 당나귀의 학대를 금지하는 마틴법이 제정됐으며 1824년에는 동물학대금지협회가 창설되기도 했다.







인권 보호를 위한 동물권 침해


20세기 들어 각국의 동물학대 금지 법안은 더욱 많아졌다. 아이러니한 일이지만 가장 적극적 행동을 보인 곳은 유태인 과 전쟁포로에게 잔악한 만행을 저질렀던 나치 독일이었다. 말굽에 편자를 박을 때 고통을 주면 안 됐고 바닷가재를 산 채로 삶는 것도 금지됐다. 동물의 생체 해부도 제한적으로만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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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틀러를 비롯한 나치의 고위 지도자들이 건강과 동물보호를 위해 채식을 장려하고 몸소 실천에 옮겼 을 정도였다. 이 같은 행보는 각국이 동물을 아껴서 사용하지 않으면 고갈될 수도 있는 일종의 유한 자원으로 인식한 것과 궤를 같이 한다. 동물들이 전쟁, 산업 발전을 위한 남획으로 멸종의 위기를 겪거나 실제 멸종한 사례를 경험한 탓이었다.

게다가 동물의 멸종은 곧 생태계의 먹이사슬을 따라 올라오며 인간에게도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 인간들은 20세기 중엽에 들어서야 이를 깨달았지만 이미 많은 야생동물의 생활여건은 심하게 나빠져 있었다.

기본적 권리를 누리지 못한 것은 야생동물만이 아니다. 가축을 포함해 인간이 키우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각종 과학실험을 위해 무수히 희생되고 있는 실험동물이 그 좋은 예다. 영국만 봐도 1875년에는 실험동물의 수가 300마리에 불과했지만 1903년 1만9,000마리, 2005년 280만 마리 등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이는 다른 국가도 다를 바 없으며 실험동물의 상당수가 신약이나 화장품 개발을 위해 피부와 내장, 팔·다리, 그리고 목숨을 내놓고 있다. 인권을 지키기 위해 동물을 사지로 몰아넣고 있는 셈이다.

동물권 침해의 또 다른 원인으로 기업형, 공장형 영농을 들 수 있다. 가축의 수명주기 결정에 있어 과학화, 효율화를 통한 수익 증대라는 요소가 개입되면서 동물들이 최소한 도축되기 이전까지라도 쾌적한 삶을 영위토록 하는 방법에 대한 고민은 온데간데 없이 사라졌다. 어떻게 하면 같은 양의 사료로 더 빠른 시간 내에 많은 살을 찌우고 산출량을 극대화할지만이 최대 관심거리가 된 것.

이 점에서 우리나라는 동물권이 가장 열악한 국가로 꼽힌다. 국토 면적 대비 가축 사육 규모가 명실공이 세계 최고며 가축 보유 두수가 많은 농가일수록 가축 1두당 점유면적은 줄어드는 경향을 보인다. 2009년 현재 소의 밀도는 1㎢ 당 무려 31마리에 달한다. 반면 청정우로 유명한 호주의 경우 1㎢ 당 3.5마리의 소가 사육된다.

인과응보, 그리고 자성의 목소리

서구에서는 지금 이 순간에도 동물권에 대한 다양한 철학적, 과학적 논의가 진행 중이다. 과학 발전에 힘입어 동물의 생명도 기본적으로 인간과 다르지 않으며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고통을 느낀다는 게 객관적으로 밝혀지면서 동물에게 고통을 주는 행위를 하면 안된다는 공리주의적 시각이 동물권 증진 운동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특히 호주의 과학·철학자 피터 싱어가 지난 1975년 만 29세의 나이로 펴낸 저서 '동물 해방'은 오늘날까지 동물권 옹호론자들의 성전(聖典)이 되고 있다. 이듬해인 1976년에는 영국의 법대생 로니 리가 '동물해방전선'이라는 과격 동물권 옹호단체를 창립하기도 했다.

동물해방전선의 주된 활동은 동물을 이용해 실험을 하는 연구 시설에 난입, 실험동 물들을 방생하는 것이었다. 창립자 로니 리는 자신의 단체가 저지른 각종 불법행위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았지만 옥중에서조차 동물해방잡지 '아케인절'을 창간하며 활동을 이어간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동물해방전선의 불법행위를 옹호하자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 정도의 사고와 행동을 가능케 했던 서구의 지성적 환경은 동물권에 대한 논의 자체를 그저 '배부른 소리' 정도로 치부한 우리의 실정과 극명한 대비를 이룬다.

이보다 더 분명한 사실은 우리도 더이상 동물권 문제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할 수만은 없다는 점이다. 구제역, 조류독감, 조류결핵 등 각종 가축 관련 질병들이 전 세계적으로 창궐하고 있는 것은 앞서도 지적한 동물권을 극도로 무시한 사육 환경과 절대 무관치 않기 때문이다. 항생제의 오·남용이 슈퍼박테리아의 탄생을 불러왔듯이 동물 전염병도 인간들이 더 많은 이윤 창출을 위해 동물권을 빼앗으면서 나타난 인과응보라는 말이다.

실제로 현재 항공여행과 항공화물운송의 활성화로 대변되는 세계화는 지구 어디라도 병원균이 신속히 전파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다. 이런 상태에서 고밀도로 사육되고 있는 가축들에 감염된 병원균은 그 자체로 기름통 속에 던져진 다이너마이트와 다르지 않다.

그리고 이러한 병원균 중에는 동물과 인간 모두를 감염시키는 인수공통 전염병도 적지 않다. 게다가 구제역 살처분 과정에서 볼 수 있듯 동물들은 삶을 마감하는 방식까지 동물권과 거리가 멀다. 애당초 살처분이라는 행위 자체도 소생 가능성이 없는 동물을 안락사시키는 개념이 아닌 병원균의 접촉 개연성만으로 생명을 빼앗는 강제적 박멸의 개념이다.

백신이나 항생제로 동물들의 생명을 연장시킬 수도 있지만 그랬다가는 우리가 누리던 구제역 청정국의 지위를 유지할 수 없고 육류 수출시장에서 타격을 입을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다는 논리인 것이다.

살처분 집행 단계에서도 생명에 대한 예의는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구태여 동물에 대한 완전한 비폭력과 불살생을 규정한 여러 종교의 계율을 들먹일 것조차 없다. 현재 우리나라의 구제역 집행방식은 동물에 대한 인간의 절대적 우위를 인정한 상태의 시각으로 봐도 0점에 가깝다. 우리는 지금 안락사 과정도 거치지 않은 채 상당수의 동물을 죽여 마치 산업 폐기물마냥 대량으로 매몰하고 있는 탓이다.

동물권을 무시한 결과로 초래된 구제역에 대응하면서 재차 동물권을 무시한 대가는 앞으로 우리에게 부메랑이 되어 고스란히 돌아올 수 있다. 벌써부터 매몰 지역의 토양 및 지하수 오염 문제가 심각하게 대두되고 있는 것이 그 방증이다. 결국 동물권을 고려하지 않은 현 가축 사육 방식을 고집한다면 구제역 등 가축전염병의 악몽은 언제라도 다시 현실이 될 수 있다.

인간은 이성과 사고능력으로 문명을 건설,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올랐다. 하지만 문명을 남용하고 다른 생명체의 권리를 침해하면 자신에게도 그 피해가 돌아온다는 것 역시 이성을 통해 알게 됐다. 구제역 살처분으로 죽어간 가축들과 썩어가는 매몰지의 모습은 우리가 애써 무시해왔던 이러한 사실을 깨우쳐줌으로써 인식의 전환을 촉구하는 계기가 될지도 모른다.

글_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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