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신동빈VS정용진

유통전쟁 2nd ROUNDlt;BRgt;롯데-신세계 유통전쟁 2라운드


롯데에 '신동빈 회장 체제' 가 출범했다. 2004년부터 이미 신동빈 회장이 롯데그룹의 선봉장 역할을 해온 게 사실이지만 그의 승진은 의미심장하다. 롯데의 공격 경영이 한층 더 거세질 수밖에 없다. 신세계 정용진 체제는 2010년 공식 출범했다. 유통 라이벌 롯데와 신세계가 모두 전열 정비를 마무리 지었단 뜻이다.

이제 더 치열한 경쟁만이 남았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여러모로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두 사람의 상반된 경영 스타일은 한국 유통 시장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 또 싫든 좋든 말든 소비자들의 생활패턴마저 변화시키고 있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한국 장터를 어떻게 변화시켰나. 두 사람은 어떻게 닮았고 무엇이 다른가. 신기주 기자 jerry114@hk.co.kr


"일반인은 들어 가실 수 없습니다." 운영자가 막아섰다. 신동빈(56) 회장은 세븐일레븐 상품 전시회장을 둘러 보려던 참이었다. 2001년 3월 30일이었다. 강남 코엑스 그랜드 볼룸에선 신동빈 회장이 직접 쓴 책 '유통을 알면 당신도 CEO' 의 출판 기념회가 열리고 있었다. 당시만 해도 신동빈 회장은 베일에 싸인 인물이었다.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 롯데를 진두지휘하고 있었다. 그런 그가 유통에 관련된 해박한 저서를 내놓자재계와 언론에선 화제가 됐다. 막상 신동빈 회장은 출판기념회에서 또 다른 공부를 하고 싶어했다. 바로 옆 전시장에서 열리고 있었던 세븐일레븐 전시회장을 둘러보고 싶어했다.

'유통을 알면 당신도 CEO'는 일본 세븐일레븐의 성공 방정식을 분석한 책이다. 하지만 들어갈 수조차 없었다. 신동빈 회장의 얼굴을 모 르는 세븐일레븐 관계자가 막아선 탓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묵묵히 발길을 돌렸다. 자신이 롯데그룹 최고 경영진이란 사실을 끝까지 말하지 않았다.

"I'm at 하노이." 정용진(43)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소문난 트위터 애용자다. 자신이 지금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는지부터 키우는 강아지 소식까지 트위터를 통해 알린다. 정용진 부회장의 트위터를 팔로잉하는 사람들은 9만 3,000명이 넘는다. 정 부회장은 거리낌이 없다. 가끔은 트위터로 설전까지 벌인다. 2010년 10월 29일엔 나우콤 문용식 대표와 SSM에 관해 논쟁을 벌였다.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까지 끼어들면서 언론 지상에 오르내릴 정도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정용진 부회장이 즉석 피아노 협연을 펼쳐서 화제가 된 적도 있다. 2010년 8월 25일 광주신세계 개점 15주년 기념식에서 정 부회장은 시각 장애를 가진 어린 천재 피아니스트 유지민 양과 함께 '월광' 와 '녹턴' 을 연주했다. 예정에 없던 즉석 행사였다. 그날 정용진 부회장은 트위터에 이렇게 썼다. "준비 안 된 연주라서 많이 허접했어요. 월광 딱 30소절 치니 지민양이 나머지 완성해주더군요. ㅎㅎ."

신동빈의 반격

2010년 벽두부터 롯데쇼핑과 신세계는 같은 고지를 노려보고 있었다. 국내 유통 업체로선 처음으로 영업이익 1조 원 클럽에 가입하는 일이었다. 그럴만한 여건이었다. 금융 위기는 일단락됐다. 시중엔 돈이 풀려서 소비 심리도 살아난 상태였다. 유통으로 돈이 몰릴 시기였다. 하지만 고지에 오른 건 롯데쇼핑뿐이었다. 롯데쇼핑은 영업이익 1조 1,465억 원과 당기순이익 1조110억 원(잠정치)을 기록하며 목표를 초과 달성했다. 신세계는 73억 원이 모자라 1조 원 클럽 가입에 실패했다. 2010년 신세계의 영업이익은 9,927억 원이었다. 신세계의 영업이익도 2009년에 비하면 8%나 늘어났다. 하지만 롯데쇼핑의 영업이익은 30.8%나 증가했다.

신동빈 효과 덕분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2010년 2월 GS그룹한테서 GS리테일의 백화점과 마트 부분을 1조3,400억 원에 인수했다. 2010년 1월엔 편의점 체인 바이더웨이를 2,740억 원에 사들였다. 5월엔 애경그룹한테서 인천공항 AK면세점을 인수하는 데 성공했다. 2002년 7월 미도파백화점과 9월 동양카드를 인수하면서 개막된 신동빈 M&A 경영은 2010년 절정을 맞았다. 롯데쇼핑 관계자는 말했다. "롯데백화점 부산 광복점을 증축했고 서울 청량리점을 오픈한 데다가 GS백화점과 마트를 인수한 게 영업 규모를 확대하는 데 결정적인 촉매제가 됐습니다."

2009년엔 양상이 좀 달랐다. 신세계가 매출과 영업이익 면에서 모두 롯데쇼핑을 앞질렀다. 영업이익에서 신세계는 3년 연속 롯데쇼핑을 눌렀다. 2009년 신세계의 영업이익은 9,193억 원이었다. 롯데쇼핑은 8,785억 원이었다. 400억 원 차이가 났다. 롯데쇼핑 측은 롯데백화점 노원점과 영등포점과 대구점이 롯데미도파와 롯데 역사점으로 분산되어 있는 법인 구조 탓에 매출과 영업이익 비교에서 손해을 봤다고 불만을 터뜨렸다. 롯데쇼핑이 신세계에 밀렸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 없단 입장이었다. 매출은 덩치 싸움이다. 차포 떼고 장기 뒀다는 롯데쇼핑의 논리가 설득력이 있었다. 영업이익은 실력 싸움이다. 3년 연속 신세계에 밀린 건 변명의 여 지가 없었다. 신세계가 장사를 더 실속 있게 잘 했단 뜻이 기 때문이었다.

신동빈 회장이 1년 만에 판을 엎어버렸다. 법인 합병 얘기가 나오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롯데미도파와 롯데 역사가 분리되어 있는 상황이다. 사실 두 회사 매출까지 합하면 롯데쇼핑의 덩치는 11조 원을 넘어선다. 그러나 코레 일과의 지분 문제나 주가 문제까지 겹쳐서 합병이 그렇게 간단치만은 않다. 롯데쇼핑이 자력으로 신세계를 물리친 건 오직 신동빈 회장이 주도한 공격적인 인수 합병 경영이 일궈낸 역전극이었단 얘기다.

유통 업계에선 한동안 업치락뒤치락했던 롯데와 신세계의 격차가 앞으로 더 벌어질 거라고 예상한다. 역시 신동빈 효과 때문이다. 지난 수년 동안 꾸준히 전개한 인수 합병의 결실을 거둬들일 수확기에 접어들었기 때문이다. 2002년부터 2010년까지 신동빈 회장이 인수한 기업만 19개에 이른다. 금융 위기가 롯데그룹이 기업 쇼핑에 나서는 촉매제가 됐다. '처음처럼' 을 만드는 두산주류BG 같은 알짜 회사가 싼 값에 매물로 나왔다. 신동빈 회장은 5,000억 원에 두산주류BG를 인수했다.

재계에선 롯데쇼핑과 신세계의 유통 매출 격차뿐만 아니라 롯데그룹과 신세계그룹의 위상 차이도 더 커질 거라고 관측한다. 롯데그룹은 신동빈 회장의 공격 경영 덕분에 재계 서열 5위를 굳혔다. 신세계 그룹은 22위다. 신동빈 회장은 지난 2월 10일 정기 인사에서 롯데그룹 회장으로 선임됐다. 2010년의 성취가 반영된 인사다. 1997년 부회장이 된 지 14년 만이었다. 말수 적고 보수적인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도 "14년(이나) 됐네" 라는 말로 아들의 승진을 공인했다.

정용진의 일격

"롯데가 국내 최고 유통업체임은 분명하지만 의사결정 시스템에 있어선 밀리지 않았나 싶습니다. 신세계는 이 땅을 살 거냐 말 거냐 하는 데 있어 우왕좌왕하지 않고 한두 시간 만에 결정이 끝났습니다." 2009년 5월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독일 뒤셀도르프에서 가진 기자간담회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암스테르담에서 열리는 '세계자체 브랜드 박람회' 에 참석하러 가는 길이었다.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가 롯데가 먼저 탐냈던 경기도 파주 일대 아울렛 부지를 선점할 수 있었던 건 신속한 의사결정 덕분이었다고 설명했다. 신세계와 롯데가 유통 라이벌인 건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하지만 라이벌 기업의 CEO가 경쟁사의 약점을 공개적으로 성토한 건 이례적인 일이었다.

2009년 신세계는 부산 센텀시티점을 제대로 성공시켰다. 부산은 롯데의 아성이었다. 이마트 역시 후발주자인 롯데마트를 따돌리고 대형할인점의 대표주자가 된 지 오래다. 이마트 지수는 표준 물가 지수의 하나로 자리잡았다. 정용진 부회장은 2010년 1 월 신세계그룹의 총괄 부회장이자 대표 이사로 정식 취임했다. 이마트의 성공을 일궈 냈던 구학서 부회장 체제가 물러가고 정용진 체제가 명실상부한 신세계 그룹의 중심이 됐다.

2010년 대표이사로서 정용진 부회장이 첫선을 보인 승부수는 이마트 상시 할인정책이었다. 이마트는 지난해 3,700여 개 품목을 대상으로 상시 저가 할인판매를 실시했다. 그것도 모자라서 정용진 부회장은 꾸준히 상시 할인 품목을 늘려 잡아왔다. 신선 식품과 생필품에서 가전 제품에 이르기까지 이마트 물가가 시장 물가보다 싸다는 인식을 확산시키는 데 주력했다. 하지만 상시 할인정책은 이마트 내부적으론 영업이익률 감소로 이어졌다. 납품 업체한테 부담을 주지 않고 가격을 동결하거나 내리려다 보니 이마트가 일부 손실을 떠안는 구조가 됐다. 2010년 이마트는 2009년 대비 0.8% 정도 영업이익률이 줄었다.

그런데도 정용진 부회장은 상시 할인정책을 밀고 나갔다. 당장의 영업 이익보단 장기적인 입소문을 믿은 탓이다. 이마트 관계자는 말한다. "상시 할인정책으로 이마트 가격이 싸다는 인식을 소비자들한테 심어줄 수 있었습니다. 시중 물가가 계속 오르는 상황이었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더욱이마트로 몰려드는 집객효과를 거둘 수 있었어요." 약간의 손실을 감수하고서라도 할인 정책을 계속 할 수 있었던 건 지난 수년 동안 이마트와 신세계 백화점을 통해 충분한 체력을 비축했다는 자신감 덕분이었다. 정용진 부회장이 롯데에 대해 공공연하게 자신감을 드러낼 수 있었던 것도 같은 맥락이었다.

하지만 2010년 4분기에 신세계는 롯데한테 한 방 얻어맞고 만다. 롯데마트가 내놓 은 통큰 치킨 열풍은 1년 내내 이마트가 지속했던 상시 할인 정책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통큰 치킨은 단명했다. 영세 치킨 사업자들과 프랜차이즈 업자들의 반발이 워낙 거셌다. 연말 대목 시즌을 앞두고 펼쳐진 통큰 치킨 논쟁은 롯데마트에 대한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꿔놓았다. 통 크게 싸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롯데마트로 소비자가 몰리는 효과가 생겨났다. 신세계의 영업이익이 4분기에 기대 이하로 나빴던 건 한편으론 통큰 롯데의 전략 때문이었다.

2010년은 승승장구했던 2009년에 비해 정용진 부회장과 신세계한텐 아쉬운 한 해였다. 야심차게 시작한 온라인 쇼핑몰에선 34억 원의 영업 적자가 났다. 한상화 동양 종금증권 연구원은 말한다. "신세계는 작년 상반기까지는 가격할인정책으로 인한 수익성 둔화를 이마트의 점포 효율성 개선으로 상쇄해왔습니다. 하지만 하반기 이마트 쇼핑몰의 영업적자가 확대되면서 수익성 하락으로 직결됐습니다." 2009년의 업적을 바탕으로 정용진 부회장은 대표 이사가 됐다. 2010년의 실적을 바탕으로 신동빈 부회장은 회장이 됐다. 정용진과 신동빈의 주거니 받거니다.

닮았지만 다르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1988년 일본 롯데상사에 입사했다. 1981년 노무라 증권에 입사해 8년 동안 런던 지점에서 일하고 난 다음이었다. 정용진 신세계그룹 부회장은 1995년 12월 신세계 전략기획실 전략팀 대우이사로 입사했다. 1994년 2월 미국 브라 운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한 지 1년여 만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 롯데상사에서도 2년 동안 막일을 했다. 영업 현장을 누비며 유통의 밑바닥부터 배웠다. 1990년 호남석유화학 상무로 발령을 받은 후 처음 한국에 왔지만 한국어가 능숙하지 않아서 애를 먹었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을 들여와서 코리아세븐 대표를 맡았지만 롯데그룹의 경영 전략은 여전히 그의 몫이 아니었다. 정용진 부회장은 곧바로 그룹의 전략기획실로 합류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신세계 그룹에 입사한 뒤로 16년 동안 그룹의 핵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전략기획실이 1998년 경영지원실로 개편된 뒤에도 상무와 부사장과 부회장으로 조직에 깊숙하게 관여했다. 신동빈 회장은 한때 '마이너스의 손' 이라고 불렸다. 손 대는 사업마다 성과가 좋지 않아서 얻은 오명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그런 역경을 뚫고 공격 경영의 대명사로 불리게 됐다. 정용진 부회장은 사업에선 손꼽을 만한 실패를 경험한 적이 없다.

신동빈 회장은 유통뿐만 아니라 금융에도 관심이 많 다. 노무라 증권 시절의 경험이 녹아 있다. 유통은 결국 물자를 현금으로 바꾸는 사업이다. 손에 쥔 현금을 무엇에 쓸지가 유통 회사의 최종 관심사가 될 수밖에 없다. 신동빈 회장은 지금은 롯데카드가 된 동양카드를 인수할 때에도 깊숙하게 관여했다. 2007년 대한화재를 인수해서 롯데화재로 재편한 것도 신동빈 회장이었다. 화재와 카드를 인수한 만큼 신동빈 회장의 다음 관심사는 증권사가 될 거란 관측도 피어나고 있다.

정용진 부회장은 아직까진 유통 이외의 사업 분야에 대해선 관심을 보인 적이 없다. 구학서 부회장과 함께 2000년대 내내 이마트의 전성기를 이끌면서 공격적인 점포 확장 영업을 해오긴 했지만, 기업 인수 합병에는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신세계 그룹 9개 계열사 가운데 이마트와 백화점, 호텔 같은 유 통 영역 밖에 있는 기업은 아직 없다. 신세계 건설조차 신세계 백화점이나 이마트 건축을 주로 맡는다.

오히려 정용진 부회장의 관심은 중국 시장이다. 이마트는 국내 시장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진작부터 중국 진출을 시작했다. 롯데보다도 빨랐다. 정용진 부회장은 중국에 이마트를 장기적으론 1,000개까지 늘릴 수 있다 고 보고 있다. 1997년 상하이에 이마트 1호점을 열었다. 중국 유통 시장이 개방된 2004년부터 점포망을 확대하고 있다. 2014년까지 매출 2조 원을 달성한다는 게 목표다. 신동빈 회장은 잘 알려진 국제통이다. 가족은 아직도 일본에 있다. 한국어보다 일본어와 영어가 더 편하다. 신동빈 회장이 크게 역점을 두고 있는 지역은 베트남이다.


롯데그룹은 브릭스 BRICs 라는 이름을 재해석해서 쓰고 있다. 원래 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을 일컫는 말이지만 롯데에선 브라질 대신 베트남을 넣어서 브릭스 VRICs라고 부른다. 러시아 진출도 활발하다. 2010년 9월 개장한 모스크바 롯데호텔은 6성급이다. 롯데호텔의 첫 해외 체인이다. 신동빈 회장은 이미 2007년 모스크바에 롯데프라자를 개장했다. 롯데프라자에 롯데호텔까지 더해지면서 거대한 롯데복합단지가 모스크바 한복판에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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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유통의 꼭지점에서 마주하게 됐지만 그곳까지 걸어온 길은 판이하다. 한 사 람은 유통의 실무부터 배웠고 한 사람은 유통 전략부터 공부했다. 한 사람은 유통과 금융을 연결짓고 싶어하고 한 사람은 유통 자체에만 집중한다. 두 사람의 차이는 롯데와 신세계의 사업 방식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롯데는 원래부터 매출의 원 단위까지 계산하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과자나 껌 같은 소액 매출로 성장한 기업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신동빈 회장은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 못지않게 현장에 불쑥불쑥 나타나기로 유명하다. 결과적으로 롯데는 이문이 남는 곳이라면 이유를 막론하고 공략하는 근성을 드러낼 때가 많다. 유통 업체들을 공공의 적으로 만들어버린 SSM이 대표적이다. 신세계는 초창기에 세운 몇 개의 이마트 에브리데이 점포를 제외하면 SSM에선 사실상 손을 뗀 상태다.

롯데쇼핑은 기존의 롯데슈퍼뿐만 아니라 GS리테일의 SSM망까지 덧붙이면서 골목 상권에 깊이 침투하고 있다. 반대로 신세계가 오히려 통큰 전략을 밀어붙일 때가 많다. 초창기에 이마트가 국내 대형 할인마트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것도 카르푸나 월마트 같은 해외 유통 공룡들과의 정면 대결을 두려워하지 않아서였다. 롯데는 그때 주춤하다가 뒤늦게 롯데마트를 만들었다. 정용진 부회장은 성격대로 의사 결정도 시원 시원하다. 중국 시장에서 공격적인 영업 확장에 나설 수 있었던 것도 정용진 부회장의 진취성 덕분이었다.

다르지만 닮았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에서 태어났다. 일본 아오야마대학교에서 경영학을 전공했다. 컬럼비아 대학교에서 MBA과정을 거쳤다. 일본어와 영어는 유창하다. 한국어는 능숙하지만 아직도 일본어 억양이 남아 있다. 한국에서 일하기 시작했을 무렵 신동빈 회장은 한국어를 배우느라 일부러 한국어 노래를 따라 부르곤 했다. 신동빈 회장의 아내도 일본인이다. 오고 마나미 여사는 일본 황실의 며느릿감으로 물망에 올랐던 명문가 규수였다.

후쿠다 전 일본 수상이 신동빈 회장과 오고 마나미 여사의 중매를 섰다. 결혼식엔 나카소네 전 일본 수상을 비롯해 일본 정계의 거물들이 대거 참석했다. 신동빈 회장의 큰 아들은 한국과 일본과 영국 국적을 소유하고 있었다. 지금도 신동빈 회장의 가족은 일본에 산다. 아버지 신격호 총괄회장이 홀수 달엔 한국에서 짝수 달엔 일본에서 사업을 챙기는 것과 달리 신동빈 회장은 일본에서 머무는 시간이 길다. 한국 롯데의 수장을 맡고 있지만 신동빈 회장의 뿌리는 일본이란 얘기다.

정용진 부회장은 한국의 명문가인 삼성가의 3세다. 경복고등학교를 졸업했고 미국 브라운대학교에서 경제학을 공부했다. 정용진 부회장은 이재용(43) 삼성전자 사장과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과 이서현 제일모직 부사장과 외종 사촌간이다. 한국 재계 3세 경영인 그룹의 간판 격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작 한국 재계와 좀 더 깊숙하게 관여하고 있는 쪽은 정용진 부회장이 아니라 신동빈 회장이다. 신동빈 회장은 2001년 전 경련 부회장으로 선임됐다.

10년째 전경련 관련 업무를 계속해오고 있다. 한국의 차세대 최고 경영자들의 모임인 'V소사이어티' 에 가입해서 화제를 모은 적도 있다. V소사 이어티는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정몽규 현대산업개발 회장과 이재웅 다음 사장이 주축이 된 모임이었다. 신동빈 회장은 한국 재계에 뿌리를 내리기 위해 10년 동안 정성을 기울여왔다. 정용진 부회장은 재벌 3세라는 민감한 위치 때문에 오히려 재계에선 별다른 활동을 하지 않는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 모두 소문난 멋쟁이다. 신동빈 회장은 일본 신사를 연상시킨다. 항상 깔끔한 넥타이와 슈트 차림이다. 좀처럼 넥타이를 푼 흐트러진 모습을 보이는 일이 없다. 정용진 부회장은 남성 패션지 '루엘'을 꼼꼼하게 챙겨볼 만큼 패션에 관심이 많다.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급 백화점인 롯데 에비뉴엘과 신세계 명품관을 소유한 경영인답게 둘 다 패션 리더들이다. 둘 다 소문난 스포츠맨이란 점도 닮았다.

신동빈 회장은 못 하는 운동이 없다. 골프와 테니스는 수준급이다. 소문난 야구광이다. 일본 롯데가 소유한 지바 롯데 마린스의 구단주 대행이다. 당연히 부산 롯데 자이언츠의 구단주다. 비교적 저렴한 호주와인인 ' 옐로 테일'을 즐겨 마신다. 정용진 부회장은 피아노가수준급이다. 역시 만능 스포츠맨이다. 정용진 부회장의와 인 사랑은 유명하다. 계열사인 신세계L&B에서 수입하는 와인들 가운데 정용진 부회장 이 모르는 게 없을 정도다.

대중들에게 대기업 CEO는 너무 먼 존재들이다. 이병철 창업주나 정주영 창업주 정도가 전설로 회자될 뿐이다. 해당 기업체 직원이 아니라면 일반 시민들한테 기업 회장은 딴 나라 사람들이다. 예외가 있다. 유통 대기업의 CEO들이다. 장바구니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치는 탓에 가정 주부들까지도 경영진의 이름을 기억하게 된다. 장안의 화젯거리였던 통 큰 치킨을 선보였던 롯데마트의 노병용 대표는 9시 뉴스의 스타가 됐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이 여느 대기업 CEO들보다 좀 더 특별한 이유다. B2C 사업가들인 데다가 시장 지배적 사업자들인 탓에 그들의 행보는 그대로 뉴스가 되기 일쑤다. 드라마에서만 백화점 사장님이 주인공인 게 아니란 얘기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닮았다. 또 정반대다. 국내 유통 시장에서 두 사람의 영향력은 점차 커지고 있다. 개인적인 취향과 작은 말 한 마디까지도 유통 시장에 큰 변화를 몰고 온다.

그 여파는 곧바로 소비자의 생활패턴을 바꿔놓는다. 신동빈 회장은 야나이 다다시 유니클로 회장을 설득해서 한국에 유니클로를 들여왔다. 곧바로 SPA 패션이 붐을 이뤘다. 신동빈 회장이 일본통이기 때문에 가능했다. 신세계 본점 명품관과 부산 센텀 시티는 한국 명품 쇼핑의 메카다. 정용진 부회장은 루이비통 아르노 회장과 알고 지내는 한국 멋쟁이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은 한국 유통의 왕자들이다. 두 사람의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유통 시장은 더 빨리 변화되어 왔다.

2011년이 고비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롯데는 유일한 유통 공룡이었다. 마땅한 경쟁자가 없었다. 하지 만 2000년대로 접어들면서 유통 환경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백화점의 영향력이 감퇴하고 기업화된 대형 유통 할인점이 도입되면서였다. 국내 유통 시장이 개방되면서 월마트나 까르푸 같은 해외 대형 할인점이 우후죽순처럼 생겨나기 시작했다. 롯데는 그런 변화에 소극적으로 대응했다. 미국이나 유럽과는 다른 국내 소비 시장에서 해외 업체들이 어떻게 버텨나가는지를 보고 대응하자는 입장이었다. 보수 경영의 대명사인 롯데다운 처신이었다.

롯데가 생각하지 못한 게 있었다. 해외 업체들이 복잡한 데다 상당히 왜곡되어 있는 한국 유통 시장에 적응하기 어려울 거란 예견은 맞았다. 그러나 어떤 국내 업체가 나서서 국내 시장에 적합한 대형 유통 할인점 모델을 만들어낼 거란 것까진 짚어내지 못했다. 신세계의 이마트였다. 롯데는 이마트의 공세를 보고만 있어야 했다.

신세계는 이마트 의 약진을 발판으로 유통 공룡 롯데의 맞수가 됐다. 롯데로 선 인정하기 싫은 일이었다. 뒤늦게 롯데 역시 롯데마트로 대형 할인매장 사업에 뛰어들었다. 그러나 이미 상당수 목 좋은 자리는 이마트가 차지한 뒤였다. 그 뒤로 이마트와 롯데마트는 치열한 자리 다툼을 벌여왔다. 왕십리 주상복합 단지 롯데캐슬엔 이마트가 입점해 있다. 롯데캐슬에 롯데 마트가 입점하지 못한 건 두 회사가 워낙 치열하게 경합한 탓에 끝내 제비뽑기로 승자를 가리기로 한 탓이었다.

두 회사의 경쟁은 유통 지형도 자체를 바꿔버렸다. SSM이 대표적이다. 동네 상권까지 위협하는 SSM은 지역 자영업자들한텐 초미의 관심사다. 이마트는 공공연하게 SSM을 포기했다고 말한다. 실제로 이마트보다 더 거칠게 밀어붙이고 있는 쪽은 롯데 마트다. 시장 한쪽에 롯데마트가 갑자기 들어서는 경우가 허다하다. 통큰 치킨 역시 동네 자영업자들의 원성을 들어야 했다. 롯데가 이렇게 무리수를 둬 가면서까지 점포 확장에 나선 건 상권 경쟁에서 이마트를 따라잡기 위해서다. 큰 목은 이마트가 차지했다. 남은 건 동네 상권뿐이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경쟁이 내수 시장에 엄청난 마찰열을 만들어내고 있단 얘기다.

이미 국내 물가는 롯데와 신세계라는 두 유통 회사가 조율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두 회사는 고객확보를 위해 저가 할인 정책을 더 자주 쓰고 있다. 물가 당국 역시 재래 시장 물가보단 이마트나 롯데마트의 물가 지수를 더 유심히 쳐다본다. 그만큼 당국과 소비자의 눈치를 봐야 하지만 그만큼 막강한 힘을 갖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 당장 두 회사의 2011년 사업 계획만 놓고 봐도 내수 시장 전망을 알 수 있을 정도다. 롯데와 신세계 모두 2011년 내수 시장이 위축될 걸로 조심스럽게 내다보고 있다.

인플레이션 압박과 물가 상승 압력에 환율 문제까지 겹쳐 있기 때문이다. 신동빈 회장은 2018년까지 롯데를 매출 200조 원의 글로벌 기업으로 만들겠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아시아 톱10 글로벌 그룹이 되겠다는 2018 비전이다. 내수 시장에 선 더 이상 성장할 수 없다는 한계를 절감했기 때문이다. 이미 롯데는 한국 시장에서 외형적으로 성장할 만큼 성장한 상태다. 그러나 롯데는 얼마전 인도네시아 유통업체 마타하리 인수전에서 월마트한테 패했다. 만만치가 않단 얘기다. 신세계 역시 이미 중국이나 베트남 시장에 더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최고 경영진이 진작부터 해외로 눈을 돌렸다고 해도 남겨진 국내 시장에서의 경쟁이 덜해지진 않는다. 이미 포화 상태에 들어섰기 때문이다. 지난 2010년 12월 열린 2011년 유통산업 전망 세미나에서 롯데쇼핑㈜ 유통산업연구소와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는 공통적으로 한국의 경제 성장률이 2010년 5.9%에서 2011년 3.8%로 낮아질 거라고 내다봤다. 투자 증가폭은 큰 폭으로 둔화되고 반면에 소비자 물가는 2.8% 상승할 거라고 예상했다. 평화로웠던 2010년과는 대비되는 상황이다.

역시 공통적으로 2011년 유통 산업의 성장 전망치는 2010년 7.3%보다 낮은 6.9%로 평가했다. 롯데유 통산업연구소의 백인수 소장은 말했다. "2010년이 경기 상승 국면이었다면 2011년부터는 내수 경기가 조정 국면에 들어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금융 위기 극복 과정에서 소비를 주도해온 정책 효과와 자산 효과가 줄어들면서 민간 소비가 4% 초반대 상승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입니다. 그 안에서 백화점 산업도 2010년에 비하면 성장세가 둔화될 것으로 전망됩니다. 하지만 10.9% 성장률과 26조8,000억 원 매출은 가능할 것으로 보입니다." 신세계유통산업연구소의 김민 소장 역시 2011년이 어려운 한 해가 될 것이란 점에 동감했다.

"신흥국 경제가 2011년부터 출구 전략을 추진하면서 성장세가 둔화될 걸로 보입니다. 무엇보다 2009년 대형 마트 숫자가 400개를 돌파한 뒤부터는 마트 증가 속도가 뚜렷하게 느려지는 모습을 보이고 있습니다. 2010년 SSM 논란이 불이 붙고 유통법과 상생법 같은 규제 법안이 마련되면서 어려움이 가중됐습니다." 김민 소장은 "소비자들의 금융 이자 비용 부담이 늘어나면서 가처분 소득이 줄어들고 있는 것도 어려움 가운데 하나"라고 덧붙였다. 지난해 연말부터 대형 할인마트 시장을 중심으로 롯데가 승부수를 던진 것이나 SSM 출점에 박차를 가한 것 역시 2011년 시장 전망을 어둡게 봤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다시 한번 롯데와 신세계의 명암이 갈릴 수도 있다. 내수 시장은 소비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 롯데 유통산업연구소 백인수 소장은 "국내 명품 시장은 명품 잡화에서 명품 시계로 소비 패턴이 확대될 만큼 크게 성장하고 있다" 며 "국내 내수 시장의 양극화가 점 점 더 뚜렷해지고 있다" 고 말했다. 이마트를 중심으로 하 는 대형 할인마트를 발판으로 빠르게 성장해온 신세계로선 백화점 매출 비중이 줄어든 만큼 경쟁환경이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21세기 초반이 신세계의 시대였다면 2010년대는 다시 롯데한테 유리한 국면이 펼쳐지고 있단 얘기다. 신동빈 회장이 2010년부터 반격을 개시한 배경이 다. 정용진 부회장의 재반격도 이제 시작이다. 명품 아울렛 매장을 확장시켜 롯데가 선점한 명품 시장의 주도권을 잠식해가고 있다. 에르메스 같은 최고급 명품 브랜드는 명동 롯데백화점 대신 신세계 명품관을 선택했다. 점점 더 유통 시장은 통 크게 시끄러워질 수밖에 없다.

2010년에는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경쟁이 시중의 물가 상승 압력을 완화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신세계의 상시 할인정책이나 롯데마트의 통큰 치킨이 대표적 인 사례였다. 하지만 그건 두 회사 모두 대외적 물가 상승 압박을 견뎌낼 만큼 체력을 비축해온 상태여서 가능했다. 2011년부턴 정말 내수 전망이 어둡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이 벌이는 선의의 경쟁만으론 인플레이션 압력을 상쇄하기 어렵게 될 때가 온단 얘기다. 이미 재래 시장은 롯데슈퍼 같은 SSM의 확장으로 물가 완충 능력을 상실한 상태다. 신동빈 회장과 정용진 부회장의 선택에서민들의 호주머니 사정이 달려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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