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특별기획 2

[원자력 공포의 역사] 체르노빌과 스리마일 아일랜드

일본의 후쿠시마 원자력발전소가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 기준 레벨5에 해당하는 사고를 냈다. 추가적인 방사성 물질 누출이 계속되고 있어 레벨 등급의 상향조정 가능성도 배재하기 어려운 상태다.
그동안 전 세계에 불어 닥친 녹색성장 기조를 타고 가장 현실적이고 확실한 친환경에너지로 각광 받았던 원자력. 그 이면에 극히 작은 확률로 숨어있었던 잠재적 위험, 그리고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위험이 또 불거진 것이다. 과거의 대표적 사고사례를 통해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미칠 여파를 예상해 보자.


일본 동북부 지방을 강타한 지진과 후속 쓰나미가 후쿠시마 제1 원자력발전소의 수소폭발로 이어지며 지진 사태가 방사능 공포로 전이되고 있다.


다행히 헬리콥터를 동원한 해수 투하, 목숨을 내놓은 채 원자로 근처까지 다가가 냉각수를 채워 넣은 소방관 등 일본측의 필사적인 노력에 의해 원전의 전원이 연결되면서 3 월 22일 현재 상황은 다소 안정화 국면에 접어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후쿠시마 원전 사고의 파괴력은 일본 정부의 발표만 놓고 봐도 총 7개 등급으로 분류된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 중 그 위험도가 3번째로 큰 레벨5다. 프랑스 원자력안전위원회(ASN) 산하 방사능보호 및 핵안전연구소(IRSN) 는 이번 사고를 레벨6으로 보고 있으며 일각이지만 향후 최고등급인 레벨7로 상승될 것임을 잠정 전망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지금까지 레벨7 판정을 받은 원자력 사고는 지난 1986년 소련 체르노빌 원전의 노심용융 사고 단 한 건뿐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치르며 두 발의 원자폭탄을 얻어맞은 세계 유일의 핵병기 피폭국인 일본이 이렇듯 66년 만에 다시금 핵의 공포에 떨고 있는 것이다.

원전 사고는 그 파괴력과 후유증 면에서 다른 발전소의 사고를 거뜬히 뛰어넘는다. 단적인 예로 인체에 치명적 방사선을 내뿜는 방사성핵종(核種)의 원자 수가 원래의 절반으로 줄어드는 반감기가 무려 7억 년이나 되는 우라늄 235를 연료로 사용하고 있으니 그 위험성은 재론의 여지가 없다.

이에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과연 얼마만큼의 여파를 세계 각국에 미칠지 현재로서는 정확히 예측키 어렵다. 하지만 과거에 일어났던 원전 사고를 거울 삼아 결과를 추정해 볼 수는 있을 것이다.

원자로와 원자폭탄

원자로는 간단히 말해 우라늄 같은 핵연료의 핵분열을 일으 켜 거기에서 방출되는 막대한 에너지를 제어 가능한 상태로 이용할 수 있게 해주는 일종의 난로다. 핵분열은 우라늄의 원자핵에 중성자를 고속으로 충돌시켜 원자핵이 쪼개지면서 질량 결손을 일으키고, 결손 된 만큼의 질량이 에너지로 변환되는 현상을 말한다.

이때 생기는 에너지는 아인슈타인의 '질량- 에너지 등가' 원리에 의거, 결손되는 질량에 광속(초속 30만㎞)의 제곱을 곱한 천문학적 규모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성자가 튀어나와 주변의 우라늄 원자핵을 때려 분열시키기 때문에 연쇄적인 핵분열 반응이 일어나게 된다.

그런데 만일 이처럼 막대한 에너지를 생산해내는 연쇄반응이 통제를 벗어나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빠르게 일어난다면? 그것이 바로 핵폭탄의 핵폭발 원리다. 핵폭발이 일어나면 폭심지의 모든 것은 증발해 없어진다.

남는 것은 잔류 방사능뿐이다. 원자로의 경우 이래갖고 서는 연쇄반응에 의해 생긴 에너지를 효율적으로 회수, 발전이라는 목적으로 사용할 수 없다. 따라서 핵분열 시 나오는 중성자의 속도를 늦춰 연쇄반응의 속도를 적절히 조절하는 방식으로 핵폭발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핵연료의 안전한 사용을 도와주는 물질이 필요하다.

이렇게 연쇄반응의 속도를 조절해주는 물질이 감속재며 통상 경수, 중수, 흑연 등이 사용된다. 이 중 경수는 보통의 물이며, 중수는 중수소와 산소가 결합된 물이다. 이들은 원자로가 과열되지 않게 해주는 냉각재의 역할도 겸한다. 즉 평화적 목적의 원자로와 군사적 목적의 핵폭탄의 기본 메커니즘은 동일하지만 원자로는 감속재와 냉각재를 사용해 핵분열 연쇄반응을 통제 가능한 상태로 제어한다는 점이 다르다.

하지만 어떤 이유로든 감속재와 냉각재가 제 구실을 못 하게 돼 연쇄반응의 통제권이 상실되면 핵 연료봉으로 구성된 원자로의 노심이 연쇄반응 에너지로 인해 녹아버릴 수도 있다. 후쿠시마 원전과 관련 많은 전문가들이 우려를 표명하고 있는 노심용융이 이것이다.

노심용융이 극도로 심해지 면 격납용기가 녹아 폭발, 그 속의 고준위 방사성 물질들을 사방으로 흩뿌려 버리게 돼 글자 그대로 최악의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원전 사고에서 누출되는 방사능 물질로는 플루토늄, 요오드 131, 스트론튬 90, 세슘 137 등이 있다.

스리마일 원자력발전소 사고

현재 후쿠시마 사태와 가장 많이 비교되는 사고는 미국 스리마일섬 원전 사고다. 역시 국제 원자력 사고 등급 중 레벨 5를 받은 사고로서 1979년 3월 28일 오전 4시경 펜실베이니 아주 스리마일 섬에 위치한 원전 2호기에서 일어났다.

비원 자력 보조 시스템에 이상이 발생, 주 시스템의 파일럿 구동 형 릴리프 밸브(PORV)가 열리면서 대량의 원자로 냉각재가 빠져나가버린 것. 이를 조속히 인지하고 제대로 대처만 했어도 사고를 막을 수 있었지만 충분한 교육훈련을 받지 못한 원자로 조작 사의 미숙함이 겹치며 대형사고로 이어졌다.

발전소의 인간-컴퓨터 인터페이스 표시등은 PORV의 파일럿 밸브를 작동시키는 솔레노이드에 전원이 연결되면 점등하게 되어 있었을 뿐 주 릴리프 밸브의 개폐 상태를 알려주는 기능은 없었다. 그러나 미숙한 조작사는 이 신호등이 꺼진 것을 보 고 주 릴리프 밸브가 닫힌 걸로 착각한 것이다.

때문에 조작 사는 원자로 내에 오히려 너무 많은 냉각재가 있는 것으로 착각, 비상 자동 냉각 장치 작동을 막고 냉각재를 비우도록 시스템을 조작했다. 완전히 반대의 조치를 취한 셈이다. 이로 인해 우라늄 100톤으로 이뤄진 노심의 용융이 시작했다. 그제야 이상을 발견한 발전소 측은 비상사태를 발령했다. 냉각제가 빠져 나간지 3시간여가 지난 오전 6시 56 분의 일이었다. 여기서 재차 실수가 벌어진다.

통제실이 비상 발령 후에도 한동안 원자로 내의 냉각수가 반으로 줄어 들면서 핵연료가 노출돼 있다는 사실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것이다. 사고현장의 온도를 계측하고 수거된 냉각재의 방사능을 계측한 후 주 루프 내에 새로운 물을 주입하고 백업 릴리프 밸브를 열어 루프 속에 물이 순환하도록 조치된 것은 비상 발령 7시간이 지난 뒤였다.

또한 이를 통해 주 루프 펌프가 작동, 노심 온도가 내려가기 시작한 것은 16시간 후였다. 하 지만 이때는 이미 노심 상당부분이 녹아버린 뒤였고 원자로는 매우 위험한 방사능을 띠고 있는 상태였다. 실제로 부분적으로 진행된 원자로 노심용융 때문에 핵 연료를 감싸고 있던 지르코늄 피복이 손상됐으며 PORV가 한동안 열린 상태로 있었던 탓에 핵분열 생성물과 핵연료는 원자로 냉각재 속으로 방출돼 버렸다.

냉각재의 누출도 멈추지 않아 방사능에 오염된 냉각재가 발전소의 보조 건물로 까지 퍼지고 말았다. 발전소의 보조 건물은 핵연료의 격납 경계 밖에 위치해 있어 이곳에 방사능 오염 냉각재가 도달했다는 것은 곧 방사능의 누출을 의미했다. 결국 보조 건물에서 고형 및 기체 형 방사능 오염물질이 외부로 방출됐다.

게다가 미국 원자력규제위원회(NRC)는 오염된 냉각수 16만ℓ를 인근의 서스쿼해나강에 투기할 것을 지시했다. 원전 전문가들은 사고가 일어난 2호기가 운전을 재개하기 힘든 수준의 파괴와 방사능 오염을 당했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영구 폐쇄를 결정됐다.

이후 누출된 방사능의 정화 작업도 이뤄졌다. 그해 8월부터 1993년 12월까지 무려 14 년간 10억 달러의 예산이 투입됐다. 하지만 사고 현장 인근의 방사능 유해 논란은 이제 시작일 뿐이었다.

끊이지 않는 방사능 유해 논란

사고가 일어난 지 몇 시간 내 미국 환경보호청(EPA)은 원자로 인근 세 곳에서 방사능 수치 측정을 실시했다. 측정 장소 의 숫자는 4월 1일 11개소로 늘었고, 다시 이틀 후에는 31개 소가 됐다.

그 결과를 바탕으로 미국 정부는 스리마일 원전 사고에 의한 방사능 누출치가 자연방사능 수치를 초과하지 않으며 주변의 물, 토양, 퇴적물, 식물에서도 방사능 오염이 검출되지 않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인근의 디킨슨대학도 사고지점 인근의 토양 표본을 검사, 동일한 결론을 도출했다.

이후에 진행된 다수의 과학적 연구들 또한 정부 조사 결과가 정확하다는 입장을 취했다. 물론 이러한 주장에 동의하지 못하 는 연구자들도 얼마든지 있었지만 말이다. 과연 사고 당시 누출된 방사능은 어느 정도였을까. 사고 조사특별위원회인 케메니 위원회가 원전 소유주인 메트로 폴리탄 에디슨과 NRC의 자료에 기반해 1979년 발표한 내용에 따르면 스리마일 원전 사고로 480페타베크렐(1페타베크렐=1,000조 베크렐)의 방사능 비활성 기체가 방출됐다고 한다.


베크렐(Bq)은 방사능 국제단위로 방사성핵종이 1초당 한 번의 핵붕괴를 일으키는 것이 1Bq다. 어쨌든 이들 비활성 기체는 보통 인체에 무해한 것으로 간주됐고 갑상선암을 유발하는 요오드 131은 단 481~629기가베크렐(109Bq)만이 방출됐다는 게 케메니 위원회의 발표였다.

관련기사



이 수치로 따져 보면 원자로 내의 방사능 총량 37엑 사베크렐(1엑사베크렐=1018Bq) 중 누출량은 일부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스리마일 원자로의 피해상황은 꽤나 심각했다. 노심의 반이 녹으면서 길이가 1.5m나 줄어들었고 연료봉의 지르코늄 피복의 90%가 손상을 입었다.

또한 20톤이나 되는 우라늄이 녹아 압력용기의 바닥에 고이면서 엄청난 크기의 코리움(corium, 노심 용융물) 연못을 생성했다. 그럼에도 노심용융 이후 방사성 물질을 차폐하는 원자로의 격납용기는 제 형태와 기능을 유지, 거의 모든 방사성 동위원소를 노심 내에 가두는 데 성공했다.

이러한 면을 감안한다면 방사능 누출이 심하지 않다는 미국 정부의 발표 도 어느 정도 설득력을 가진다. 하지만 반핵 성향의 정치단체들은 케메니 위원회의 설명을 정면 반박한다. 이들은 독자적인 방사능 측정을 거쳐 스 리마일 원전에서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바람을 타고 확산됐으며 원전으로부터 수백㎞ 떨어진 곳에서도 정상치의 5배나 되는 방사능이 검출됐다고 주장한다.

스리마일 원전의 방사능 방출 상태를 조사했던 랜달 톰슨 박사도 스리마일 원전 2호기의 방사능 수치는 사고 전과 비교해 수백 배가 높아졌다고 밝혔으며 여러 원전 내부자들 이 이 주장에 동의하고 있다. 과거 원자력 관련 기업의 중역을 지냈던 아니 건더슨도 그중 한사람. 그는 사고 당일의 원자력 압력 측정 데이터를 그 증거로 제시한다.

데이터에 근거하면 오후 2시를 앞두고 원자로에서 수소 폭발이 일어났으며 그 여파로 고농도의 방사능 물질이 누출됐을 가능성 이 높다는 것이다. 사고 후 인근 주민들의 건강에 이상이 나타나고 있는 점 도 미 정부 발표의 진정성에 의구심을 품게 하는 요인이다.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입안에서 쇠맛을 느꼈으며 홍반, 오심, 구토, 설사, 탈모 등을 경험했다고 한다. 애완동물이나 가축, 식물, 야생동물 등의 사망률도 높아졌다. 일부 학자들은 이것이 전신에 1시버트(Sv)의 방사선을 피폭 당했을 때와 정확히 일치하는 상태라고 설명한다. 1 Sv는 미 정부 공식 발표의 1,000배에 달하는 수치다. 이뿐만이 아니다. 사고가 일어난 1979년 스리마일 원전이 들어선 도핀 카운티의 영아사망률 역시 전년 대비 28% 상승했으며 출생 1개월 이내의 영아사망률은 무려 54% 증가했다.

또한 1980년~1984년 사이 현지 주민들의 암 발병 건수는 19건에 달했는데 이는 사고 전 예측됐던 2.6건과 비교해 7.3배나 된다. 이 같은 논란이 일자 스리마일섬 보건재단은 컬럼비아 대학 연구팀에 의뢰, 1990년부터 2 년간 역학 연구를 실시했다. 그러나 연구팀은 원전 사고와 암 발병 증가 사이의 연관 관계 규명에 실패했고 급기야 주민 2,000명이 스스로 변호사를 고용, 노스캐롤라이나대학 채프힐캠퍼스의 핵방사능 전문가인 스티븐 윙 박사에게 재조사를 의뢰했다.

그리고 윙 박사는 사고 후 2년 동안 사고지점 반경 16㎞ 이내 지역 주민들의 암 발병률, 폐암 발병률, 백혈병 발병률이 각각 약 0.034%, 약 0.103%, 약 0.139% 높아졌다는 조사결과를 내 놓았다.

2000년대 들어서도 피츠버그대학 연구팀, 아이오와대 학 연구팀 등이 또다시 역학조사를 실시했지만 암 발병률 및 사망률 상승은 인정하면서도 원전 사고와의 명확한 연결 고리를 찾는 데는 실패했다. 전문가들의 결과가 이처럼 차이를 보이면서 아직도 스리마일 원전 사고에 대해 크고 작은 논란은 완전히 사그라지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최악의 악몽, 체르노빌

하지만 스리마일 원전 사고조차 7년 후인 1986년 4월 26일 구 소련의 우크라이나 공화국에서 발생한 체르노빌 원전 사고에 비하면 '애교'에 불과했다. 체르노빌 사고는 레벨7에 해당하는 유일한 사고이자 명실공이 인류 최악의 원전 사고다.

당시 프리피야트 마을 인근에 위치한 체르노빌 원전의 4 호기에서는 원자로 정지 시에 관성으로 회전하는 터빈의 전력공급 가능 시간을 알아보는 실험이 진행 중이었다. 그런데 실험 도중 실험자들이 제어봉을 규정치 이하로까지 빼내는 실수를 저질렀다. 더욱이 원자로가 정지할 경우 재가동 시킬 일이 귀찮았던 그들은 비상 자동냉각장치까지 꺼버리는 등 안전수칙을 도외시한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행했다.

이와 같이 안전장치가 모조리 꺼져버린 원자로가 충분 한 냉각을 받지 못하자 갑자기 연쇄반응이 폭발적으로 증가, 원자로의 출력이 급격히 상승했다. 조작사들은 원자로 의 긴급 정지를 시도했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출력이 더욱 상승하면서 증기폭발로 이어졌고 폭발의 충격으로 격납용기가 파열됐으며 감속재인 흑연이 불타면서 최소 5엑사베크렐, 최대 12엑사베크렐의 방사성 물질이 누출됐다.

이 정도 의 방사성 물질은 히로시마에 투하됐던 원자폭탄 리틀보이 의 400배에 달하는 양이다. 이 방사능 물질들은 바람을 타고 이동하면서 우크라이 나·러시아·벨라루시 등 인접국들은 물론 동유럽·서유럽·북유럽의 상당지역, 심지어 우리나라에까지 방사능 낙진이 떨어졌다. 방사능 피해를 막기 위해 강제이주된 사람만 33 만 6,000여 명에 달한다. 4호기의 화재가 완전히 진압된 것은 5월 10일에 이르러서였다.



이후 소련 당국은 수개월에 걸쳐 연인원 60만 명 이 상의 해체작업자를 투입, 사고가 난 원자로와 주변지역을 철거하고 콘크리트로 완전 밀봉했다. 누출된 방사성 물질이 많은 만큼 인명피해도 컸다. 원자로 폭발로 인한 직접 사망자는 50여 명에 불과했지만 원전 인근 주민들과 소방대원, 해체작업자들이 엄청나게 높은 방 사능에 피폭됐다.

이 중 237명이 급성 방사능병(ARS)을 앓았으며 그중 31명은 사고 후 3개월 내에 사망했다. 25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체르노빌 사고에 따른 방사선 피폭이 원인 이 된 암 발병, 기형아 출산 등 피해자가 끊이지 않고 있는 상태다. 스리마일 사고 사례에서도 입증되듯 원전 사고의 특성상 정확한 집계는 불가능하지만 세계보건기구(WHO)는 체르노빌 사고에서의 피폭으로 목숨을 잃은 사람을 4,000명, 그린피스는 20만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명피해에 더해 주변 환경 및 생태계의 방사능 오염도 피해도 심각했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체르노빌 원전과 프리 피야트 마을, 그리고 원전 인근 30㎞ 지역은 지금도 출입금지구역으로 묶여있다. 또한 사고 후 한동안 소련과 유럽의 생물 중 방사능 축적으로 기형적 자손을 낳거나 사람이 먹을 수 없는 생물이 많아졌다.

특히 어류의 경우 유럽연합은 세슘 허용치를 1㎏당 1,000Bq로 정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키예프 저수지에서는 수년간 수천 Bq의 세슘이 들어있는 물고기가 잡혔다. 1990~1992년 사이에 벨라루시와 러시아 브랸스크에서 잡힌 어류는 ㎏당 무려 6만Bq의 세슘이 들어있기도 했다.

육상 동식물도 방사능 피해에 있어 예외가 될 수 없었다. 대표적인 케이스가 체르노빌 원전 인근의 이른바 '붉은 숲'이다. 체르노빌의 방사능 낙진에 닿은 소나무들이 빨갛게 변하며 죽어버리면서 이런 명칭이 붙었다.

당연히 이곳은 출입금지 구역이 됐으며 해체작업자들이 소나무들을 모조리 베어 구덩이 속에 묻어버리고는 모래로 두텁게 복토한 다음 소나무 묘목을 심었다. 하지만 새로 자라난 소나무들 중에서도 나뭇가지가 괴상하게 꼬이며 위로 뻗어나가지 못한다거나 거대증에 걸리는 등 이상현상이 많이 발견된다고 한다.

체르노빌 피해는 현재 진행형

현재 이곳의 토양에서는 자연방사선(연간 2.4mSv)을 웃도는 방사능이 검출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반인의 연간 방사능 허용 기준치가 연간 1mSv인 만큼 실로 두려운 수준의 수치다.

다만 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덕택에 이곳 동식물들의 생물학적 다양성은 상당히 풍요롭다. 황새, 늑대, 비버, 독수리 등 많은 멸종위기종들이 번성하고 있으며 부서진 원자로 건물의 구멍 속에 거주하는 새도 있을 정도로 방사능에 대한 내성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들 야생 동식물들에게 방사능이 장기적으로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해서는 검증된 바가 없다. 이 지역은 반감기가 약 30년 정도인 스트론튬 90과 세슘 137에 의해 오염되어 있으며 세슘 137의 농도가 제일 높은 곳은 곤충이 날아다니고 식물 뿌리가 영양분을 흡수하는 표토층이다. 때문에 일부 과학자들은 이곳이 앞으로도 수 세대 동안 방사능으로 고통 받을 수 있다고 설명한다.

아예 이 지역을 핵무기 또는 생화학 병기에 의해 괴멸한 곳의 전형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그 외의 지역에서도 체르노빌 사고의 여파는 오늘날까지 맹위를 떨친다. 일례로 독일의 경우 작년 사냥철에 포획된 야생 멧돼기 44만 350마리 중 1,000마리 이상에서 600Bq 이상의 방사능이 검출됐다.

2009년 노르웨이 농업부도 노르웨이에서 기르는 가축 1만 8,000마리는 도살을 앞둔 시점부터 방사능에서 안전한 사료를 먹여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체르노빌 사고에 따른 방사능 낙진 피해를 입은 노르웨이에서는 목초에서도 상당한 방사능이 검출되고 있기 때문이다. 많은 전문가들은 이 같은 모든 상황을 종합 고려할 때 체르노빌 사고의 여파가 앞으로도 최소 100 년간 이어질 것이라는 예상을 내놓고 있다.

스리마일과 체르노빌의 사례는 원전 사고가 얼마나 크고 장기적인 위험을 초래하는지 잘 알려준다. 특히 이 두 사고는 인재(人災)의 성격이 짙어 체계적 교육훈련과 확고한 안전관리시스템을 통해 예방이 가능했던 반면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그동안 안전하다고 자신해왔던 천재지변에 의해서도 원전이 시한폭탄으로 변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는 점에서 인류에게 또 다른 경각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현재 전 세계 정부와 원전 당국들은 자국 원전의 안전시스템을 점검·보완하는 데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스리마일 과 체르노빌 사고 때 그랬듯이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라야 한다.

후쿠시마 원전이 온몸으로 알려준 천재지변에 대한 대응책 마련에 그치지 말고 원전의 안전과 관련된 모든 사항, 특히 안전성을 자신하고 있는 부분들의 안전을 원점에서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가 이 기회마저 놓친다면 언젠가 제2의 스리마일, 제2의 체르노빌, 그리고 제2의 후쿠시마에 의해 인류는 혹독한 대가를 치려야 할지도 모른다.

글_이동훈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파퓰러사이언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더보기
더보기





top버튼
팝업창 닫기
글자크기 설정
팝업창 닫기
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