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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동! 산불전문조사반] 산불 방화범 잡는 CSI

올 봄 국내 최초의 산불전문조사반이 본격적인 활동을 개시했다.
산림기술사, 산불감식전문가, 산불 전공 교수, 산림·경찰 공무원 등 각 분야 전문가로 구성된 산불전문조사반은 전국 산불 발생 현장에 투입돼 과학적으로 발화 원인을 규명한다.
특히 산불이 방화로 판명되면 증거물을 확보, 범인을 검거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연평균 500건의 크고 작은 산불이 발생한다. 그동안 관련 부처에서 나름의 신속한 예방 및 진화 체계를 구축해 왔지만 산불은 매년 반복되고 있으며 점차 대형화되고 있는 추세다.


특히 얼마 전 울산 봉대산 일대에서 무려 17 년간 산불을 낸 방화범 김모 씨의 사례처럼 방화로 인한 피해도 끊이지 않고 있다. 전문가들은 매년 일어나는 산불 중 5% 이상이 방화 또는 방화로 의심되는 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럼에도 산불 방화범의 검거율은 30% 내외로 매우 저조한 실정이다.

이 같은 상황의 개선을 위해 산림청은 최근 22개반 163명으로 구성된 산불전문조사반을 출범, 올 봄부터 본격적인 활동에 돌입했다. 산불전문조사반은 산불 발생 시 신속히 산불현장에 투입돼 발화 원인과 발화 지점, 확산 경로, 사상자, 재산 피해 등을 규명하고 사법기관에서 가해자를 검거할 수 있도록 지도·감독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특히 산불전문조사반 내에는 지역을 불문하고 100㏊ 이상의 대형 산불이 발생할 경우 즉시 현장으로 출동할 수 있는 14명의 중앙산불전문조사반도 꾸려져 있다.

화재 흔적 통해 발화점 역추적

오늘날 거의 모든 산불은 사실상 사람에 의한 것이다. 그것이 방화이건, 실화이건 말이다. 하지만 산불은 대체로 일반인들의 출입이 곤란한 지역에서 발생하기 때문에 목격자 확보나 발화 지점 추적이 결코 쉽지 않다. 중앙산불전문조사반의 일원인 국립 산림과학원 산림방재연구과 구교상 박사에 따르면 현재 전체 산불 원인 중 입산자 실화가 42.3%로 가장 높은 비율을 차지한다.

이는 산불의 발화 원인을 명확히 규명하지 못했을 때, 그 원인을 뭉뚱그려서 입산자 실화로 보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또한 그간 일선 지방자치단체에서 온정주의에 얽매어 산불 발생 원인을 미상으로 분류하던 관행도 실화의 비중을 높이는 데 적잖은 영향을 미쳤다.

구 박사는 “발화 원인을 규명하고 가해자를 찾아내 입산자의 단순한 실화로 수사를 종결짓는 폐단을 줄이고 실화의 실제 원인을 찾아내는 것이 산불전문조사반의 구체적인 목표”라고 밝혔다. 실제로 조사반 출범 이후 벌써부터 상황은 차츰 개선되고 있다.

산불전문 조사반에서 산불감식전문가를 겸하고 있는 산림청 산불방지과 강신원 사무관은 “조사반이 업무를 개시한 뒤 산 불가해자 검거율이 향상되고 있다”며 “산림청은 조사반의 활동에 힘입어 올해 산불가해자 검거율을 40%까지 끌어올리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산불전문조사반은 어떤 시스템으로 움직이는 것일까. 강 사무관의 설명은 이랬다.

“최초 발화지점을 찾게 되면 발화의 원인을 추정할 수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먼저 현장에 투입된 소방 대원과 주민들을 탐문, 기초 정보를 취득하고 당일 기상정보를 확인한 후 과학적 조사기법에 따라 움직여야 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과학적 조사기법이란 감식지표를 기반으로 한다.

산불이 한 지역을 넘어 다른 지역으로 이동할 때는 이동 방향을 알 수 있을만한 뚜렷한 흔적과 특징을 남기기 마련인데 감식지표는 바로 이 같은 환경적 요소를 의미한다. 한 마디로 이를 활용하는 것은 넓디넓은 산 속에서 발화점이 어디인지를 찾는 일종의 테크닉이라 할 수 있다. 타다 남은 나무와 풀, 솔방울의 형태, 병·깡통·철사 등의 그을린 상태, 바위 등에 묻어 있는 얼룩 등 불의 확산 경로가 표시된 모든 것이 감식 지표가 된다.

강 사무관은 “이들 지표를 꼼꼼히 살피면 넓은 지역에서도 쉽게 발화점을 찾을 수 있다”며 “모든 흔적이 발화점으로 모아질 때까지 여러 지점에서 역추적해 가는 방식을 쓴다”고 전했다. 이러한 기법을 ‘지표를 이용한 산불 최초 발화지 조사기법’이라고 한다. 2년 전 산불 선진국 캐나다에서 도입됐으며 국내에서는 산불전문조사반에 의해 처음 활용되기 시작했다. 발화점을 찾은 다음에는 발화 원인의 규명이 관건이 된다.

발화점을 찾으면 발화 원인은 비교적 쉽게 추정 가능하다. 산불은 언제나 발화 지점에서 바깥으로 확산되면서 타들어가는 특징이 있고, 초기에는 소규모로 천천히 타 들어가기 때문에 발화점 부근에 연소되지 않은 물질을 다수 남겨둔다는 이유에서다. 구 박사의 말이다. “최초 발화점은 비교적 온전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닥불, 성냥개비와 같은 발화원을 찾을 가능성이 높은 편이죠.”

풀과 바위도 감식 지표

감식 지표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활용되는지는 몇 가지 구체적 예를 통해 설명 가능하다. 먼저 가장 흔한 지표는 타다 남은 나무다. 보통 화염이 나무줄기에 닿으면 불에 접한 면부터 타기 시작하므로 그쪽의 크기가 작아지고 연약해질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결국 나무는 연약해진 부분, 즉 불과 처음 접촉한 쪽으로 쓰러지게 된다. 이는 마치 나무를 넘어뜨릴 방향으로 도끼질을 하는 것과 동일한 효과다. 나무들이 쓰러져 있는 모양을 보면 불길이 진행해 온 방향을 알 수 있게 되는 셈이다. 불에 노출된 바위도 좋은 지표가 된다.

바위와 같은 불연성 물체들은 화염이나 재에 섞여 운반된 미세한 입자들로 인해 얼룩이 지기 때문에 바위 왼쪽에 얼룩이 생겼다면 불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진행됐음을 의미한다. 바위처럼 얼룩이 나타나는 불연성 물체들로는 맥주깡통, 양철판, 흙덩어리 등이 있다. 덧붙여 강한 불에 굵은 나무줄기가 탄 흔적이 마치 악어 피부 같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엘리게이터링(alligatoring)’은 일종의 연소 흔적으로 이 역시 불의 진행 방향과 연소 각도를 나타내는 지표로 활용할 수 있다.

만일 나무 앞부분보다 뒷부분이 새까맣게 그을렸다면 불이 앞에서 뒤로 확산됐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엘리케이터링은 크기나 밝기가 천차만별이며 크고 밝게 나타나는 경우 진행이 빠르고 고온인 화재, 작고 어두운 경우는 그 반대의 화재에 의해 연소됐음을 뜻한다.

이들 여러 지표의 감식을 위해 산불 전문조사반원들은 일반 화재감식과 마찬가지로 갖가지 도구를 이용한다. 증거 수집을 위한 장갑, 붓, 돋보기부터 증거물 촬영에 필요한 카메라 등 우리가 익히 알만한 물건들은 모조리 동원된다. 발화원이 자동차의 브레이크 패드 파편이나 배기장치의 불티가 될 수도 있어 작은 쇠붙이 입자들을 수집할 수 있는 강력한 자석을 사용하기도 한다.

산불 감식 현장에서만 쓰이는 독특한 도구도 있다. 산불의 확산 방향을 표시하는 깃발이 그중 하나다. 강 사무관은 “빨간색은 앞으로 전진한 산불, 파란색은 후진한 산불, 노랑색은 옆으로 이동한 산불을 의미하며 최초 발화지와 증거물은 흰색 깃발로 표시한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 진화 후 남아있는 불의 열기로 발화점을 추정하는 열화상카메라, 최초 발화점을 이용해 앞으로의 불길 확산 방향을 예측하는 산불확산 예측 프로그램 등이 활용되기도 한다. 하지만 어찌됐건 아직까지 산불 감식의 상당 부분은 기계장치보다는 전문 인력에 의존하고 있는 상태다.

이러한 감식전문가들이 현장에 투입된 후 최초 발화지를 추적하고 원인을 규명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산불의 규모에 따라 상당한 차이를 나타낸다. 규모가 작은 산불은 1~2시간, 대형 산불 또는 깊은 산속의 화재는 2~3일 정도가 소요된다. 물론 이 같은 과학적 조사기법과 장비의 도움에도 불구하고 감식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다.


우선 최초의 발화지로 추정되는 지점은 원인 규명과 증거 수집을 위해 반드시 현장 보존이 이뤄져야 함에도 진화 과정에서 훼손되는 경우가 많아 발화점 추정에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또 인력의 부족도 심각하다. 강 사무관은 “30여 명의 감식전문가가 주축이 돼 전국의 모든 산불 현장을 조사해야 하는 실정”이라며 “추가적인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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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정황으로 방화 여부 판단

그러나 뭐니 뭐니 해도 가장난감한 경우는 감식 지표를 동원해 최초 발화점을 찾았지만 아무런 증거가 남지 않아 발화원 규명이 쉽지 않을 때다. 실화라면 인화물이 현장에 남아 있을 수 있으나 고의적 방화라면 인화물이 제거되거나 불에 의해 멸실됐을 개연성이 높기 때문이다. 한국산지보존협회 자료에 따르면 방화는 인위적으로 발생한 산불의 약 20%를 차지한다.

지역에 따라 70% 이상인 곳도 있다. 방화에 사용되는 도구는 대개 성냥, 담배, 양초, 밧줄, 철사, 테이프 등이며 방화범들은 이 물건들을 단독적으로 사용하기도 하지만 다른 종류와 함께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대표적인 조합은 성냥과 담배다. 불붙은 담배를 종이 성냥갑 사이에 끼워놓고 현장을 떠나는 게 그것이다.

이때는 담배가 도화선, 성냥갑이 폭탄의 역할을 하게 된다. 중앙산불전문조사반 소속 강원대학교 방재전문대학원 이시영 교수는 “발화지점에서 담배가 발견됐을 때는 성냥갑과의 접착에 사용한 테이프나 끈, 고무밴드의 잔해를 찾아봐야 한다”며 “이들이 발견되면 흡연에 의한 실화가 아닌 방화로 볼 수 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앞서 밝힌 대로 증거가 남지 않는 방화도 적지 않다. 이 경우는 어떻게 해야할까. 이 교수는 “가령 라이터로 방화를 했다면 방화범이라이터를 챙겨가는 탓에 증거가 없을 수 있 다”며 “이처럼 증거의 완벽한 부재 역시 방화로 의심 가능한 지표가 된다”고 말했다.

이 외에도 실화와 방화를 판별할 몇 가지 정확이 더 있다. 일례로 발화 지점이 도주로나 퇴로와 인접해 있으면 방화를 의심해 볼만 하다. 방화범은 도주를 위해 도로와의 거리가 50m 내외로 가깝고도로에서 눈에 잘 띄지 않는 엄폐가 가능한 곳을 발화점으로 삼는다는 이유에서다.

반면 실화는 당시의 필요에 의해 불을 켠 것이므로 발화 지점과의 연관성은 없다. 또한 발화점이 다수 발견돼도 방화의 가능성이 높다. 화재의 확산을 꾀하기 위한 인위적·의도적 행위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2006년 발생한 서울 북한산 방화범은 일회용 라이터와 마른 나뭇가지로 불쏘시개를 제작, 매표소 부근에 불을 질렀는데 하산하는 동안 무려 22회나 계속해서 방화를 했다.

이와 관련 강 사무관은 “대다수 방화범들은 화재 발생 자체에 희열을 느끼는 성향이 있다”며 “이 점에서 수사관들은 화재의 최초 발견자, 진화 참여자, 목격자가 범인일 개연성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보다 과학적·전문적 조사

이와 달리 방화가 아닌 실화라면 쓰레기 소각, 농경지 소각, 차량 화재, 캠프 파이어, 흡연 등 상대적으로 발화원이 명백하다. 그만큼 증거물 수집과 용의 자 확보가 용이해 검거율이 78%에 이른다. 한편 현행법에 의거해 산불 방화범에게는 7년 이하의 징역이 구형되며 과실에 의한 산불이라도 3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지는 등 처벌 수위가 엄격한 편이다.

어쨌든 이번 산불전문조사반의 출범에 따라 우리나라도 이제 과학적 산불 감식의 첫걸음을 뗐다. 사실상 우리 나라는 미국, 캐나다 등 산불 선진국과 달리 산불이 발생하면 화재 진압에만 주력했을 뿐 누가, 어떻게, 어떤 이유로 불을 냈는지의 규명 노력은 부족했다는 점에서 이는 큰 의미를 갖는다.

강 사무관은 “산불 발생 원인을 과학적으로 추적 조사해 정확한 원인을 찾아내고 방화범 또는 실화범을 검거함으로써 동일한 유형의 산불이 반복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며 “조사반의 궁극적 역할이 바로 이것”이라고 피력했다.

현재 선진국들은 2000년부터 산불 전문조사관 제도를 정착시켰으며 교육 과정도 총 4단계로 체계화 돼 있다. 특히 미국은 산불조사관이 산불과 관련된 민·형사상의 재판에도 직접 참여할 정도로 권한이 크다. 이런 가운데 산림청은 산불 조사기능 강화를 위해 2009년 산불조사계를 신설하고 작년에는 산림보호법을 개정, 법적 기반도 마련했다.

그리고 작년 10월 국내 산불감식전문가들이 캐나다 정부가 실시하는 ‘산불조사 및 현장 감식’ 기술교육 과정을 이수하기도 했다. 이 같은 일련의 조치들이 산불전문 조사반의 출범으로 이어진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교수는 “지금껏 화재 사건은 전문기관이 아닌 곳에서 담당해 왔다”며 “산불전문조사반의 출범으로 산불의 원인이 정확히 규명되고 제대로 된 통계자료를 구축한다면 한층 올바른 산 불 정책이 마련돼 국가와 사회의 손실을 줄일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산불 감식 현장 체크리스트




1 현장 감식용 기본 자료와 도구 준비
2 관련 사항 기록
a 산불 신고 시간
b 신고자의 이름과 신원
c 산불 발견과정
d 기상 상황
3 발화점 인근의 사람 및 차량 신원 확인
4 발화점 파악 및 현장 보존
5 화재 원인 증거 확보를 위한 발화점 조사
6 증거 보존(훼손 방지를 위해 증거의 이동 제한)
7 모든 증거와 관련지점을 정확히 측정해 발화 지역의 스케치 작성
8 발화 지역과 주요 증거들을 모든 각도에서 사진으로 촬영
9 모든 기록과 정보, 물적 증거를 담당 사법기관에 제출, 또는 간이조사기록을 공식기록으로 작성








방화 도구


방화에 주로 쓰이는 도구는 성냥, 담배, 양초 등 이지만 아주 드물게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는 도구가 동원되기도 한다.

거울 돋보기처럼 태양빛에 초점을 맞추는 용도로 사용
타이어 인화성 물질을 묻힌 헝겊으로 싸서 불을 붙이고 언덕 아래로 굴림
동물 인화성 물질을 묻힌 헝겊을 동물의 꼬리 등에 매달아 불을 붙이고 방사
군용 예광탄 탄두 뒷부분의 발광물질 사용
불꽃놀이 화재 의도 규정이 어려워 별도의 패턴 분석 등을 통해 방화 여부 결정
기타 모기향, 케이크용 초, 석탄, 연탄, 화약


박소란 기자 psr@sed.co.kr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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