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한번 태어나면 죽음을 맞이할 수밖에 없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다. 물론 과학기술이 발달해 이 같은 숙명 또한 한낱 우스갯 소리가 될지 모른다. 오늘날 불로장생의 기적을 이뤄내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여러 괴짜 과학자들이 인체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꿔놓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런 시대가 도래하더라도 그 기회가 모두에게 공평하게 돌아갈까.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최근 개봉한 영화 ‘인타임’에서도 그렇다. 돈 많은 부자들만이 영원한 삶을 누릴 수 있다. 늘 부족한 시간에 쫓기는 가난한 자들에게 인생은 그저 생존을 위한 끝없는 투쟁일 뿐이다.
25세, 성장이 멈추는 순간
주인공 윌을 비롯한 영화 속 인물들은 모두 팔목에 생체시계가 주입된 채로 태어난다. 이 시계는 25세가 되는 순간 작동을 시작한다. 남은 시간은 1년. 부자는 걱정하지 않아도 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은 일을 해서 시간을 벌어야 생명을 연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하필 25세일까. 25세는 생물학적으로 인간의 신체가 성장을 멈추는 나이다. 키, 시력 등은 물론 뇌도 마찬가지다. 바꿔 말해 25세가 된 인간의 체세포는 성장을 멈추고 쇠퇴기에 접어든다는 얘기다.
피부를 보자. 25세가 지난 피부는 세포 분열을 유도하는 상피세포성 장인자(EGF)가 감소, 세포 재생 능력이 현저히 떨어진다. 주름이 생기는 것도 이 때문이다. 인타임에서처럼 시간을 벌기 위한 사투를 감행해야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25세가 넘으면 영화에 비할만한 ‘관리’를 요하는 셈이다.
노화 방지 호르몬 ‘클로토’
영화 속에는 노화현상을 조절하는 호르몬 ‘클로토(Klotho)’가 등장한다. 이를 통제함으로써 영원히 늙지 않는다는 설정이다. 이는 얼마나 신빙성 있는 얘기일까.
1997년 처음 발견된 클로토는 일부 세포의 세포막 안에 존재하는 단백질이지만 간혹 혈청이나 뇌척수액 속에서도 발견된다. 이들의 기능에 대해서는 아직 불명확한 점이 많다. 단 한 가지, 골밀도 수치를 유지시켜 건강한 뼈를 만드는 데 기여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지난 2005년 미국 텍사스대학 산하 사우스웨스턴메디컬센터의 쿠로오 마코토 교수팀은 클로토의 활동이 활발해지면 수명이 늘어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유전공학 기법을 이용해 실험용 쥐의 클로토를 과(過)발현시키자 평균 수명이 2년인 쥐의 수명이 20~30% 연장됐다는 것.
반면 클로토를 제거한 쥐는 3~4주까지 정상적으로 자라지만 이후에는 골다공증, 동맥경화 등 노화 증상이 나타나다 결국 2개월여만에 죽고 말았다.
그러나 클로토가 어떻게 노화를 방지하는지는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클로토가 과발현된 쥐의 혈액 속에는 고농도의 인슐린이 함유돼 있다는 정도가 확인됐을 뿐이다. 즉, 인슐린이 클로토의 체내 분비를 조절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아직은 이에 대한 추가 연구가 필요한 단계지만 이는 과도한 인슐린이 수명을 줄이고 노화를 앞당긴다는 기존 연구결과와는 완전히 상반되는 결과다. 어쨌든 현재 여러 연구자들은 클로토로 인해 인간의 노화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단초가 마련됐다고 본다.
하지만 회의적 시각 역시 적지 않다. 일례로 2008년 스페인 바르셀로나대학의 아돌프 디에스-페레스 교수팀은 인간의 수명을 연장시키는 장수 호르몬 혹은 장수 유전자는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연구팀은 114세에 사망한 남성과 장수하고 있는 그의 가족을 대상으로 연구를 수행했지만 장수에 관여하는 별다른 요인을 찾지 못했다. 또 장수 노인이 113세였을 때 그의 골밀도를 연구하고 유전자를 분석한 결과, 클로토에서조차 유전적 변이를 발견하지 못했다고 한다.
노화를 이기는 방법
노화는 누구나 겪는 삶의 일부다. 그렇지만 아직까지 누구도 노화의 근본 원인을 명백히 파악하지 못했다. 때문에 오늘날 영생을 위한 과학자들의 연구는 다양한 각도에서 이뤄지고 있다. 이 가운데 최근 학계에서 많은 지지를 받고 있는 학설로 ‘텔로미어(telomere) 이론’을 들 수 있다.
이 이론의 경우 DNA 염색체 끝 부분에 위치한 텔로미어라는 염색소립(chromomere)을 노화의 주범으로 본다. 텔로미어는 세포가 분열할 때마다 짧아지는데 너무 짧아지면 세포분열이 완전히 중단된다. 그러므로 텔로미어의 길이를 길 게 만들면 이론적으로는 수명을 연장할 수 있다는 논리다.
미국의 분자생물학자 빌 앤드류스 박사는 약 40여가지의 물질로 텔로미어가 짧아지는 것을 막거나 텔로미어를 재생시키는 방법을 찾아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 방법은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사용할 수는 없다. 현재 동물실험 단계에 있다.
한편 텔로미어 이론 외에도 DNA나 세포의 누적된 손상을 노화의 원인으로 보는 이론, 노화를 태생적으로 인체에 프로그래밍된 작용으로 보는 이론 등 다양한 노화 이론이 존재한다.
박소란 기자 psr@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