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저인망식 브랜드 전략 실적도 주가도 고공행진

LG생활건강이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최근의 주식 폭락 속에서도 LG생활건강의 주가는 꾸준히 상향 곡선을 그렸다. 증권사들 또한 앞다퉈 LG생활 건강의 목표주가를 올리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에서도 눈에 띄는 성장세가 나타났다. 도대체 LG생활 건강은 무엇 때문에 잘나가는 걸까?
한정연 기자 jayhan@hmgp.co.kr

2007년 가을. LG생활건강에서 고가 화장품 브랜드 마케팅을 책임지고 있던 나유정 상무가 차석용(58) 사장을 찾아갔다. ‘숨’이라는 발효 화장품 때문이었다. LG생활건강이 처음으로 개발한 획기적인 상품이었지만 문제는 인지도가 낮다는 데 있었다. 나 상무는 “인지도 문제를 해결하려면 딱 한 제품만 몇 년간 집중적으로 홍보하는 게 좋겠다”고 제안했고 차 사장도 이를 받아들였다.

꾸준히 ‘숨 시크릿 에센스’를 집중 부각하니 브랜드의 내공이 쌓여갔다. 300억대에 불과하던 숨37은 지난해 단일 브랜드 매출만 1,000억 원을 넘겼다. 화장품 업계 한 관계자는 “몇 년이 걸리는 마케팅 전략을 사장에게 보고하는 임원이나 이를 받아주는 CEO가 업계에 몇이나 있을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올해 독립 10주년을 맞은 LG생활건강의 최근 약진은 한편의 드라마라 할 만하다. 4년 새 매출이 두배 이상 급증해 지난해엔 2조8,200억 원을 기록했다.

마이너 계열사에서 주력기업으로
LG생활건강이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증하면서 주가는 사상 최고치를 고치고 또 고치는 중이다. LG생활건강의 주가는 그룹의 주력사인 LG전자 주가의 7배가량이 될 정도로 엄청나게 상승했다. 그룹 내 대표적인 비주류 계열사였던 LG생활건강에 엄청난 변화가 생긴 셈이다.

LG그룹 화학부문 계열사인 LG생활건강은 2001년 LG화학에서 중가 화장품과 치약, 비누 등 생활용품 사업부문을 떼어내 독립한 기업이다. 올해가 독립 10주년이다. 이 10년 중 최근 3년의 실적과 주가는 한 편의 드라마라 할 만하다. 2007년 매출 1조1,700억 원, 영업이익 1,200억 원을 올렸던 LG생활건강의 실적은 2010년 매출 2조8,200억 원, 영업이익 3,400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이런 성장세는 주가에도 엄청난 힘을 실어주었다. 2009년 초 17만원대였던 주가는 현재 50만 원을 상회하고 있다. 이 회사 주식을 2001년 4월부터 10년 동안 가지고
있었다면 36배가 넘는 시세차익을 올렸을 것이다. (분할 후 재상장된 2001년 4월 25일 LG생활건강의 종가는 1만3,650원이었다.) KTB투자증권 김민정 연구원은 “2007년 이후 매년 매출이 20%, 영업이익은 30%씩 급증하고 있다”며 “소비재 기업으로서는 놀라운 성적”이라고 분석했다.

왜 이런 극적인 일이 벌어진 것일까? 차석용 사장이 부임한 2005년을 되짚어봐야 한다. LG생활건강에 대한 당시의 시장평가는 냉랭했다. LG화학에서 독립한 그저 그런 대기업 계열의
생활용품 소비재 기업 정도로 인식되고 있었다. LG생활건강의 변신을 시장 전문가들이 “CEO 효과”라고 부르는 이유는 차 사장이 적극적인 인수합병(M&A)을 통해 기업 체질을 바꿔놨기 때문이다.

차 사장은 2007년 국내시장에서 상당한 점유율과 영업망을 보유한 ‘코카콜라 보틀링’을 매입해 이듬해인 2008년 흑자로 전환시켰다. 2009년에는 저가 화장품 업체인 ‘더페이스샵’을 인수해 기존 중middot;고가 화장품 라인업에 저가 제품을 가세시키는 포트폴리오 확장에도 성공했다. 올해 1월에는 1년 이상 공을 들인 해태음료 인수에 성공하면서 LG생활건강은 롯데와 함께 단숨에 국내 음료시장의 강자로 올라섰다.

쌍끌이 저인망식 브랜드 전략
재계의 한 관계자는 이 회사의 가파른 성장세에 대해 “생활용품에 화장품이 덧입혀진 정도였던 기업이 생활용품, 음료, 화장품이라는 3대 사업영역을 구축하면서 향후 해외 진출에 적합한 규모로 성장했다”며 “LG생활건강의 약진 비결은 선도적인 M&A에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M&A에만 LG생활건강의 성공 전략이 있는 것은 아니다. M&A를 통해 새롭게 편입되는 브랜드와 더불어 꾸준히 새로운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이 회사 한 관계자는 “브랜드
숫자가 계속 늘어나기 때문에 현재 정확한 숫자를 집계하기도 힘들 정도”라고 말했다.

덧입혀진 정도라던 화장품 부문만 봐도 성장세가 눈부시다. 발효화장품 ‘숨’ 외에도 300억원대였던 고급 브랜드 ‘오휘’의 매출이 5년 새 3,000억 원을 돌파했다. 지금도 LG생활건강은 새로운 브랜드를 꾸준히 출시하며 화장품 시장의 외연을 꾸준히 확대하고 있다.

LG생활건강 관계자는 “천연 허브 화장품 빌리프가 영국, 싱가포르, 베트남 등 해외에서 높은 관심을 받으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어 화장품부문 성장이 계속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특히 해외사업을 강화하고 있는 더페이스샵이 중국 시장에서 화장품 유통 경험이 많은 헝청(Heng Cheng)과 손잡고, 일본 시장에서 이온(Aeon) 그룹과 사업을 진행하면서 곧장 매출 상승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천연화장품 브랜드 빌리프는 영국 스코틀랜드 에든버러와 브리스토에 진출해 성과를 내기 시작했다.

이 회사는 M&A로 새롭게 편입되는 브랜드와 함께 꾸준히 새 브랜드를 만들어 내고 있다. 한 관계자는 “정확한 브랜드 숫자를 집계하기도 힘들 정도” 라고 말했다

M&A로 사업부문 황금률 구축
업계와 증권가는 LG생활건강의 약진에 생활용품과 화장품, 음료부문 3개 축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배경이 작용하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도이치증권은 10월 6일 LG생활건강에 대해 “2012년부터 실적 모멘텀이 가속도를 낼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53만9,000원에서 61만4,000원으로 상향 조정했다. 또 “원자재가 정상화와 해태음료부문 구조조정 등으로 2012년부터 새로운 실적 모멘텀이 기대된다고” 밝혔다. 증권가는 장기적으론 LG생활건강에 국내외 화장품 판매 채널 다변화와 생활용품 시장점유율 증가, 음료부문의 새로운 제품 출시와 해태음료의 흑자전환 그리고 3개 부문 간 시너지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했다. 도이치증권은 “2013년까지 연평균 성장률이 24.3%에 달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M&A를 통해 생활용품, 화장품, 음료의 삼각 축을 구축한 LG생활건강의 주가는 인수합병 이후 1년 사이 흑자전환하는 사례가 반복되면서 최근 유럽발 금융위기에서도 꾸준히 올라가고 있다.

이 같은 주가 상승은 제품 판매 활황에 힘입은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하이투자증권은 9월 보고서를 통해 “일본 화장품 시장이 경기침체 영향으로 2007년 이후 지속적인 역성장 추세를 보였지만, 1000~2000엔 저가품 시장에선 2007년 대비 5%의 플러스 성장세를 기록했다”며 “한류열풍과 일본대지진 이후 자국 생산 제품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는 등 LG생활건강의 더페이스샵 같은 저가 화장품에게 유리한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또 “2007~2011년 일본의 수입 화장품 시장에선 프랑스(-5.9%)와 미국(-5.6%)이 역성장한 가운데 한국은 34.1%나 증가했다”고 덧붙였다.

해외시장에서 찾은 신성장동력
LG생활건강의 성장세는 당분간 멈출 것 같지 않다. 최근 하이투자증권은 LG생활건강의 올 3분기 매출이 처음으로 9,000억 원을 넘어설 것이라고 추정했다. 생활용품 부문에서 라이벌 회사가 불미로운 사건으로 경쟁력을 잃었고, 업계 경쟁을 심화시켰던 유니레버가 생활용품 부문을 사실상 철수시키는 등 반사이익을 얻은 것이 다소 도움이 됐다는 평가다. 하지만 LG생활건강 성장의 해답은 화장품부문의 해외시장 진출에서 찾을 수 있다.

더페이스샵은 일본 진출 초기에 의외의 깜짝 성과를 보였다. 일본 현지 파트너인 이온(AEON) 그룹은 3년 안에 일본 내 더페이스샵 매장을 약 1,200개 확보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제대로만 추진된다면 국내 매출을 뛰어넘는 성과를 기대해볼 만도 하다는 게 업계의 분석이다.

하이투자증권은 LG생활건강의 사상 최대 실적을 점치며 “일본 등 해외 진출 성과가 가시화 될 경우 한 단계 더 단단해진 사업구조와 더불어 추가 주가 상승이 기대된다”고 전망했다.

"야근은 무능한 사람이 하는것

적게 일하고 창의력 개발하라"

조직문화 완전히 바꾼 차석용 사장의 남다른 경영철학


2005년 12월 구본무 회장은 침체에 빠진 LG생활건강을 일으킬 CEO 선임을 놓고 고민에 빠져 있었다. 그룹 내외부에서 적임자를 검토하던 구 회장이 고심 끝에 선택한 사람이 차석용 사장이었다. 차 사장은 구회장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취임 후 6년 동안 LG생활건강의 매출을 3배 가량 늘려 놓았고 주가도 18배나 급등하게 만들었다. 금융권에선 이를 “차석용 효과”라고 부를 정도다.

차석용 사장에겐 ‘승부사’나 ‘마이더스의 손’ 같은 수식어가 항상 따라붙는다. 그는 쌍용제지, 해태제과를 성공적으로 경영하면서 구본무 회장의 눈에 들었다. 차 사장은 LG생활건강에서도 승부사 기질을 버리지 않았다. 그는 취임 후 2년이 지난 2007년 코카콜라음료를 인수해 1년 만에 흑자 기업으로 만들었다. 2010년 1월에는 더페이스샵을 인수해 저가 화장품 시장에까지 보폭을 넓혔다. 올해 1월에는 해태음료를 사들여 연내 흑자전환을 기대하고 있는 상황이다.

대부분의 기업은 인수합병(M&A) 작업을 진행할 때 전담 태스크포스 팀을 꾸린다. 하지만 LG생활건강은 지금까지 한 번도 별도의 전담팀을 꾸리지 않았다. 차 사장이 수천 쪽에 이르는 영문 서류를 직접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이 회사 한 임원은 “코카콜라음료나 더페이스샵을 인수할 때도 차 사장이 직접 실무작업을 했기 때문에 별도의 팀이 필요 없었다”고 말했다.

차 사장에겐 인수합병에 대한 확고한 철학이 있다. 그는 말한다. “바다에서도 한류와 난류가 교차하는 곳에 좋은 어장이 형성됩니다. 서로 다른 사업 간의 교차지점에서 새로운 사업기회가 창출되지요. 기존 생활용품과 화장품 사업 사이에는 교차점이 한 개뿐이지만 음료 사업의 추가로 교차점이 세 개로 늘어나면 회사 전체에 활력이 높아지게 됩니다.”

차 사장은 이와 같이 M&A를 단순한 합병이 아닌 새로운 기회의 창출로 보고 있다. 그는 여름이 화장품 사업엔 비수기지만 음료 사업에선 성수기라는 점을 제대로 파악하고 M&A를 추진한다. M&A로 계절 리스크를 상쇄해 안정적인 사업구조를 확보하는 식이다.

차 사장은 화장품, 생활용품, 음료 부문에서 소비자와 접점을 찾는 마케팅을 강조한다. 그는 “마케팅이란 차별화한 좋은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 고객과 특별한 관계를 맺어가는 것”이라며 그 핵심 요소로 창의력을 꼽았다. 기업의 성공을 위해선 직원들의 창의력이 중요한 요소라는 얘기다. 그가 직원들에게 자기계발을 권하고, 최대한 적게 일을 하라고 주문하는 배경에는 이런 이유가 깔려 있다. 그는 “창의력은 자유로운 상태에서 나온다”고 줄곧 주장해 왔다.

차 사장이 지난 6년 동안 몸소 실천한 정시퇴근제와 유연근무제는 이제 완전히 LG생활건강의 사내문화로 자리잡았다. 그는 “야근은 무능한 사람이 하는 것”이라며 “적게 일하고 창의력 개발에 힘써야 한다”고 말해왔다. 차 사장 또한 오전 7시 30분에 출근해 오후 5시 30분이면 퇴근한다. 유연근무제는 1시간에서 2시간으로 늘어났다. 직원들은 오전 7~9시에 30분 간격으로 출근시간을 스스로 정할 수 있다.

차 사장의 파격은 이뿐만이 아니다. LG생활건강 사장실은 누구나 원하면 들어올 수 있는 곳이다. 구두 보고가 일상화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의 방에 여러 명이 모여 선 채로 짧은 회의를 하는 모습은 그 어느 회사에서도 보기 힘든 LG생활건강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차석용 사장은 “멋진 실패에는 상을 주고 평범한 성공에는 벌을 주겠다”며 도전을 최우선 가치로 삼아왔다. 차 사장의 지난 6년간의 실험은 지금까지는 성공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앞으로도 해태음료 흑자전환, 해외 시장 개척 등 난제가 많이 남아 있지만, 증권사들은 LG생활건강의 목표주가에 여전히 후한 점수를 주고 있다. 아직까진 LG생활건강의 ‘차석용 효과’는 든든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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