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두산 박용만 회장이 카피라이터로 변신한 사연은?

두산은 인재 욕심이 많은 기업이다. 115년 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인재를 찾기 위해서라면 회장이 투잡을 갖는 것쯤은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한다.
정운섭 기자 sup@hk.co.kr

은색 수트를 점잖게 차려입은 올백 머리의 중년 남성이 백팩을 메고 강당에 들어섰다. 정원 168석 강당에 200명 넘게 들어찬 젊은이들이 일제히 환호성을 질렀다. 중년 남성은 얼굴 가득 웃음을 머금고 단상에 올라 힘찬 목소리로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박용만입니다.”

지난 9월 초 서울의 한 대학에서 진행됐던 두산그룹 채용설명회는 그렇게 시작됐다. 설명회에 발표자로 나선 두산 박용만 회장(56)은 말을 이어갔다. “직장을 선택하는 중요하고 힘든 결정을 하는 여러분에게 회사 오너로서 직접 답을 드리는 게 옳은 일인 것 같아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강당을 빼곡히 메운 학생들의 눈이 빛났다. 박 회장은 이제는 그의 트레이드 마크가 된 백팩에서 자료를 꺼내 본격적인 설명을 시작했다.

두산이 1896년 작은 상점으로 시작해 연매출 24조 원대를 올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해온 이야기와 소비재기업에서 생산재기업으로 변신을 거듭하며 위기를 기회로 만들어온 그간 의 노력에 대한 이야기가 그의 입에서 거침없이 흘러나왔다. 박 회장은 말했다. “두산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가장 빨리 변하는 기업입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다양한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적극적인 인수합병 전략으로 변신과 발전을 거듭해왔습니다. 만약 이런 노력이 없었더라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학생들은 저마다 연설 내용을 노트에 메모하거나, 휴대폰에 녹취하며 그의 말을 경청했다. 일찌감치 취업 준비를 시작했다는 3학년 재학생 최한경 씨는 말했다. “설명회라기보다는 강연을 듣는 기분이었습니다. 오랜 세월 한 기업이 어떻게 탄생해서 경영철학을 확립했고 치열하게 생존해왔는지를 들으면서, 기업경영에 대해 새로운 흥미를 갖게 됐어요. ‘미래 1등 기업을 원한다면 두산으로 오라’는 회장님의 말씀이 정말 자신 있어 보였습니다.”

“직장을 선택하는 중요하고 힘든 결정을 하는 여러분에게 회사 오너로서 직접 답을 드리는 게 옳은 일인 것 같아 이 자리에 서게 됐습니다”

박 회장이 좋은 인재를 얻기 위해 대학을 누비며 동분서주하기 시작한 것은 2004년부터다. 두산 연강홀에 대학생을 초청해 진행했던 과거의 기업설명회를 포함할 경우 2002년부터 올해까지 햇수로 꼭 10년째다.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대기업 오너가 직접 채용설명회장을 돌아다니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두산은 박 회장 외에도 주요 계열사 CEO들까지 이런 ‘인재 사냥’에 동참하고 있다. 두산그룹 박용곤 명예회장의 차남인 두산중공업 박지원 대표를 비롯해 두산인프라코어 김용성 사장과 두산중공업 한기선 총괄사장까지 대학 채용설명회에 참여해왔다.

두산그룹 최고경영진은 촌각을 다퉈가며 적극적으로 산업현장을 누비는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공무를 소화하기에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경영진이 신입사원 채용설명회에 이처럼 시간과 공력을 쏟는 이유는 두산 전통의 인재 중심 경영철학 때문이다.

박 회장의 선친인 고 박두병 초대 회장은 인화를 가장 중요한 경영철학으로 삼을 만큼 인재를 중시했다. 그에 따라 이미 1950년대부터 인재육성을 위해 직원을 독일과 미국 등지로 유학보낼 만큼 인재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이런 경영DNA는 오늘까지 이어져 대학가를 발로 뛰는 CEO가 생겨나는 자양분이 됐다.

두산의 기업광고는 감성적인 메시지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광고가 더욱 눈길을 끈 건 광고를 제작한 스태프 명단에 ‘CW(카피라이터) 박용만’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카피라이터 박용만 회장
박 회장이 직접 참여하는 두산의 기업설명회는 다른 기업의 그것과는 조금 차이가 있다. CEO가 직접 자신과 기업이 원하는 인재상을 밝히고, 학생과 허심탄회하게 대화를 나누는 방식으로 진행되기 때문이다. 당연히 인사담당 실무자만 나서는 타기업 설명회보다 학생들에게 더 큰 흥미를 제공해 준다.

특히 이날 강연회에선 최근 대중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두산그룹 광고카피 ‘사람이 미래다’에 관한 이야기가 화제가 됐다. 이 광고 카피는 카피라이터들이 만든 게 아니라, 회장단 토론시간에 나온 아이디어에서 채택됐다. 박 회장은 말했다. “사람을 중심에 두고 있는 두산 그룹 입장에서 연공서열을 파괴하고 직급 승진의 개념을 없앤, 차별 없는 인재육성의 의지를 표현하기 위해 고민하다 보니 이런 광고 카피 아이디어가 나오게 됐습니다.”

최근 두산그룹이 내놓은 기업광고는 온라인상에서 꽤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시리즈 광고가 하나씩 전파를 탈 때마다 광고에 등장한 감성적인 카피는 트위터와 페이스북과 같은 소셜미디어를 타고 삽시간에 온라인 세상으로 전해졌다.

이화여대 4학년에 재학 중인 윤우리 씨는 말한다. “가만히 들어보면 정말 맞는 이야기라서 고개가 끄덕여지는 카피가 많아요. 왜 우산 쓴 남자가 나오는 광고 있잖아요. 거기서 나왔던 광고 카피를 듣고 그날 바로 남자친구한테 문자를 보내기도 했지요. 너도 그렇게 하라고.”

광고는 이렇다. 비가 내리는 어느 오후, 우산과 꽃다발을 양손에 든 남자가 담배로 보이는 흰색 막대를 입에 물고 있다. 화면에 천천히 남자의 상반신이 클로즈업되면서 내레이션이 흘러나온다. “그녀가 꽃을 좋아한다면 꽃을 선물할 것이고, 영화를 좋아한다면 함께 영화를 볼 것입니다. 그런데 혹시 그녀가 무엇을 싫어하는지는 알고 있나요?” 성우의 내레이션이 계속 이어질 때 화면 속의 남자가 손으로 입에 물고 있던 막대를 꺼낸다. 그리고 그건 담배가 아닌 막대사탕이다. 남자가 사탕을 들고 나지막한 미소를 짓는 동안 내레이션이 계속 이어진다. “좋아하는 것을 해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신뢰를 얻을 수 있습니다.”

‘사람이 미래다 - 우산편’ 광고는 이 감성적인 메시지만으로도 화제가 됐다. 하지만 이 광고가 더욱 눈길을 끈 건 광고를 제작한 스태프 명단에 ‘CW(카피라이터) 박용만’이라는 글자가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부 누리꾼은 박 회장과 동명이인일 수도 있다고 추측했지만, 그 주인공은 정말 박 회장이었다.

회장이 카피라이터라니 어찌된 일인가. 상황은 올해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세계 최대 건설기계 박람회 콘엑스포 전시회장에서 일어났다. 당시 박람회에 참관한 박 회장은 대학생 참관단 10여 명과 격의 없는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학생이 박 회장에게 “여자친구와의 문제점을 어떻게 극복할까”라는 질문을 던진 것. 그러자 박 회장은 “그녀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알고 있는가? 좋아하는 것을 해줄 때보다 싫어하는 것을 하지 않을 때 신뢰를 얻을 수 있다”라고 충고했다. 그 후 기업 광고를 제작 중이던 광고제작사에서 아이디어를 고심하던 중 박 회장이 남긴 그 어록을 광고 카피에 활용해보자고 제안했다.

광고를 기획한 오리콤 이정구 국장은 말한다. “기업PR광고이기 때문에 광고에 기업과 CEO의 철학을 담아야 했습니다. 회장님이 직접 남긴 말씀이 명료한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는 소재로서 큰 가치를 갖추고 있었어요. CEO가 직접 남긴 메시지인데다가 내용도 재미있고 참신했습니다. 그래서 광고에 그대로 카피를 실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아이디어를 올렸지요.”

오리콤은 두산그룹의 광고 계열사다. 때문에 이 국장은 모기업 대표에게 광고 아이디어를 보고하는 부하직원, 광고주에게 광고시안을 보여주는 광고기획자, 카피라이터에게 일을 제안하는 광고기획사 국장으로서의 복잡한 역할을 수행해야 했다.

박 회장은 흔쾌히 제안을 수락했다. 박 회장이 카피라이터로 데뷔하는 순간이었다. 이 국장은 말한다. “결국 회장님이 광고에 들어간 카피 하나하나를 직접 쓰고 다듬는 과정에 참여했습니다. 카피를 본인이 썼으니 저작권료를 받아야 하는 것 아니냐고 농담도 했었죠. 그 일이 계기가 돼서 지금도 광고 제작 과정에 참여하고 계세요. 평소 사진예술분야에 조예가 깊기 때문인지, 촬영과정 같은 세세한 부분까지 직접 챙기며 남다른 감각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투잡 Two Job 회장님’이라는 별명이 붙은 박 회장의 감각은 그 후 연타석 홈런을 쳤다. 우산편에 이어 전파를 탄 ‘사람이 미래다 - 카페편’ 역시 대박을 친 것. 박 회장이 자신의 트위터에 ‘누가 당신에게 부족한 점이 많다고 말하던가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좋아질 점도 많다는 것입니다’라고 써놓은 문구가 광고 카피로 변신했다.

이 메시지는 이번에도 젊은 세대의 감성을 흔들었다. 또 그 효과는 대학마다 발 디딜 틈 없이 채워진 두산그룹 채용설명회장 열기로도 나타났다. ‘무한한 가능성을 지닌 청년’을 찾는 박 회장의 염원이 또 한 걸음 앞을 향해 내디딘 셈이다.

이 국장은 말한다. “기업 대표가 직접 나서서 광고제작에 참여할 경우, 광고확산효과가 커지는 것은 당연합니다. 젊은 세대와 소통이 잘 되는 오너라면 더할 나위 없겠죠. 광고가 잘돼건 그렇지 않건 화제는 확실히 될 수가 있으니까 광고에 대한 대중의 피드백을 받기도 한결 수월해집니다.”

박용만 회장이 비즈니스에서 주로 쓰는 소통법은 마주 대하기이다. 소탈한 경영자로 잘 알려진 박 회장은 수시로 계열사 사무실을 방문해 일반 직원들에게 궁금한 내용을 직접 질문한다

핵심인력을 바라보는 예리한 눈
박 회장의 인재경영은 단순히 미래인력을 양성하는 데에 그치지 않는다.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력을 수급하는 감각은 오늘날의 두산을 만드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해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두산은 115년 역사를 가진 국내 최고 장수 기업이다. 하지만 변신에 가장 성공한 기업이기도 하다. 소비재 기업에서 생산재 기업으로 완벽하게 체질을 탈바꿈했다. 인수합병 분야에서도 능수능란한 솜씨를 보였다.

하지만 처음부터 체질개선과 M&A에 능한 회사는 없다. 새로운 분야에 대한 부족한 경험을 메우기 위해선 박학다식한 제너럴리스트보다 특정 분야에서 한우물을 파는 스페셜리스트가 필요했다. 두산이 1996년 매킨지의 자문을 받고 체질개선을 시작할 때부터 인연을 맺어온 파트너들을 줄줄이 영입한 것은 그런 이유에서다.

두산인프라코어 김용성 사장은 1992~2000년까지 매킨지 서울사무소 파트너로 일했다. 당시 매킨지에서 파견돼 두산의 구조조정과 신성장동력을 찾는 데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것이 결정적인 영입배경이 됐다. 그는 2001년 두산의 투자 컨설팅 회사 네오플럭스 사장으로 취임했고, 뒤이어 2003년에는 두산 전략기획본부 사장, 2008년에는 두산인프라코어 사장을 맡았다. 이 외에도 제임스 비모스키 (주)두산 부회장, 성낙양 두산동아 대표이사 역시 매킨지 출신으로 두산에 자리 잡은 핵심 인력들이다.

이 인력들은 대부분 공신력 있는 헤드헌터를 거쳐 영입됐지만, 박 회장의 예리한 안목이 중요한 역할을 한 것 또한 부정할 수 없다. 1996년 기획조정실장으로 두산의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했던 박 회장은 컨설팅 용역을 하면서 매킨지와 긴밀한 인연을 쌓았다. 매킨지의 스페셜리스트들을 지근거리에서 관찰하며 회사의 다양한 비전을 주고받던 이 시기에 두산의 미래를 책임질 핵심인력을 평가하는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 그리고 그 결과 두산은 불과 10여 년 만에 완벽하게 체질개선을 마치고 글로벌 기업으로 도약하는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박 회장에겐 늘 리듬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반박자 빠른 리듬이죠. 덕분에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과정 없이 핵심만 이야기하고, 늘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알고 보면 평범한 남자
이제 소통은 박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가 됐다. 그에겐 미래인력이건 전문인력이건 욕심을 내기 위해선 진정성 있는 소통이 중요했다. 이제 그의 이름 앞에 ‘소통의 리더십’이라는 수식어가 붙을 정도다. 그의 소통은 크게 내부적 소통과 외부적 소통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내부적인 소통은 비즈니스적인 소통을 말한다.

그가 비즈니스에서 주로 쓰는 소통법은 마주 대하기이다. 소탈한 경영자로 잘 알려진 박 회장은 수시로 계열사 사무실을 방문해 일반 직원들에게 궁금한 내용을 직접 질문한다. 많게는 하루에도 수십 차례 회의를 열어 직원들을 직접 마주 대한다. 하지만 길게 하지는 않는다. 불필요한 수식을 싫어하는 그에겐 핵심과 핵심을 마주하게 만드는 특별한 재주가 있다.

중요한 외부 미팅을 다닐 때도 어지간해선 별도 수행원을 대동하지 않고 직접 만나길 좋아한다. 두산 출신 한 퇴사자는 말한다. “박 회장에겐 늘 리듬이 있습니다. 남들보다 반박자 빠른리듬이죠. 덕분에 불필요하고 거추장스러운 과정 없이 핵심만 이야기하고, 늘 빠르게 일을 진행할 수 있었어요. 대화를 나눌 때 경쾌하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성격이 다소 급하다는 느낌도 들곤 했습니다.”

급한 성격은 박 회장 스스로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그런 자신의 성격을 조절하기 위해 그의 집무실 한 쪽에 모래시계가 자리 잡고 있다. 박 회장은 말한다. “분노가 끓어오를 때나 어려운결정을 할 때, 직관에 의한 생각을 그 즉시 말과 행동으로 옮기려 할 때 늘 모래시계를 엎어둡니다. 모래가 다 떨어지고 나면 신기하게도 생각이 바뀌게 되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신중한 결정을 내리면 후회하는 일이 적게 생깁니다.”

반 박자 빠른 박 회장은 젊은 직원들에게 갑자기 메신저로 말을 걸어 근황을 묻거나 번개모임을 소집하기도 한다. 두어 달에 한 번씩 직원들을 데리고 인근 식당에 가서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며, 격 없이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이런 박 회장의 소통 방식에 직원들은 긍정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두산그룹 홍보실 관계자는 말한다. “박용만 회장의 새로운 소통법이 그룹 내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얻고 있습니다. 권위주의가 사라지면서 내부적으로 긍정적인 효과가 나타나고 있어요.”

박 회장의 유쾌한 소통 노력은 뜻밖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 각종 조사기관이 젊은 층을 대상으로 조사한 다수의 설문에서 닮고 싶은 경영인 상위권 순위에 항상 오르고 있다.

외부적인 소통은 세상과의 소통이다. 잘 알려진 것처럼 박 회장은 유명한 트위터리안이다. 10월 14일 현재 팔로워 11만9,400여 명을 거느리고 있어 경영인 부문 2위에 랭크돼 있다. 그가 트위터를 통해 팔로워와 나누는 대화에도 역시 격식이 없다. 박 회장이 스스럼없이 노출하는 소소한 일상은 누리꾼 사이에 종종 화제를 몰고 온다. 박 회장이 10월 9일에 남긴 트윗 같은 경우가 대표적이다. ‘뷘마마 생일이라 밥먹고 케익까지는 오케이였는데 ㅋㅋ 한잔걸친 내가 “야! 이 아들놈들아 엄마 생일인데 노래해야지!”하고 노래방 예약했다. 거기까진 방실방실 웃더니 “춤도 추고 뭐 좀 더 해봐!!!”에선 아이디어 고갈인가보다 ㅋㅋ 밤새 시켜야쥐’

‘뷘마마(부인마마)’는 박 회장이 그의 아내를 부르는 애칭이다. 아내의 생일에 아들들과 함께 노래방에 가서 밤늦도록 춤을 추고 놀았다는 내용은 대중이 흔히 예상하는 재벌가의 생일 풍경과 왠지 동떨어진 느낌이다.

박 회장의 장남이자 유명 광고기획자인 박서원 빅앤트 대표는 말한다. “재벌가 생활이라고 뭐 특별한 건 없습니다. 드라마가 이상한 상상력으로 만든 세계에 대중들이 너무 익숙해졌나봐요. 아버지께서는 그런 시선 앞에 솔직하게 사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사람들과 편하게 이야기를 주고받는 걸 좋아하십니다. 좋잖아요. 사람 냄새 나고.”

박 회장의 유쾌한 소통 노력은 뜻밖의 결실을 맺기도 한다. 그는 각종 조사기관이 젊은 층을 대상으로 다수의 설문에서 닮고 싶은 경영인 상위권 순위에 항상 오르고 있다. 가장 오래된기업 두산의 CEO가 가장 젊은 방식을 통해 세상과 소통함으로써 그룹의 이미지까지 젊고 활기차게 바꿔놓고 있는 셈이다.

두산은 올해 하반기 대졸 신입사원을 계획보다 대폭 늘려 1,000명을 뽑는다. 이는 올해 초 계획했던 하반기 신입사원 채용 인원(673명)보다 49% 늘어난 사상 최대 규모다. 올해 상반기에 이미 채용한 367명까지 모두 합치면 연간 채용 인원은 1,370여 명이 된다. 두산이 다시 한번 젊고 패기에 찬 젊은이들에게 미래를 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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