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정경원의 ‘디자인 이야기’] LG전자의 디자인 액티브 경영


전 세계 가전업계에서 가전제품을 차가운 ‘기계’가 아니라 성실하고 충성스러운 ‘가정부’처럼 디자인하려는 노력이 전개되고 있다.
글 정경원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냉장고, 세탁기, 에어컨 등 가전제품들이 우리의 일 상생활에서 필수품으로 자리 잡은 지는 오래됐다. 도시든 농촌이든 가정마다 서너 가지의 가전제품 을 사용하게 마련이다. 이렇게 생활에 밀착되어 있 는 가전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은 무엇을 바라고 있 을까. 주부들에겐 가사를 꼼꼼하게 처리해주는 ‘도우미’ 역할을 기대하는 심리가 있어 전 세계 가전업계는 가전제품을 충성스러운 ‘가정부’ 같이 디자인하려 노력하고 있다.

가전제품에 활용되는 기술 수준이 점차 평준화되면서 디자인이 효과 적인 차별화 수단이 되고 있으며, 제품의 품격에 대한 주부들의 안목이 높아짐에 따라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선택 기준으로 떠오르고 있다. 많은 가전업체들이 디자인경영에 주력하는 것도 디자인이 경쟁력의 원천이 될 수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일본 디자인 전문지가 특집으로 다룬 LG전자

지난 9월 24일 발행된 일본의 ‘니케이 디자인 NIKKEI Design’ 10월호에는 ‘아 시아 가전업계 패권자로 군림하는 LG전자의 디자인 파워’라는 특집 기사 가 실려 있다. 여기서 흥미로운 것은 이 특집기사 의 기획 의도가 일본이 명실공히 디자인 선진국으 로 다시 도약하려면 한국으로부터 ‘디자인 액티 브 경영 Design Active Management’을 배워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에겐 아직 생소한 개념인 ‘디자인 액 티브 경영’은 디자인이 새로운 사업을 개척하기 위 한 촉진제 역할을 하고, 경영자와 비즈니스맨들이 미래를 개척하는 사업에 디자인을 충분히 활용하 여 새로운 시장과 생활을 현실로 구현시키는 경영 방식이다. 가주야 시모카와 편집장은 한국이 지 난 10여 년간 디자인 액티브 상태를 유지하고 있 다고 평가한다. 그는 이 같은 성공이 정부의 디자 인 진흥 정책과 서울특별시의 ‘디자인 서울’ 시정 덕분이라고 진단하고, 앞서가는 한국 기업들도 디자인 액티브 경영에 도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시모가와 편집장은 그런 기업의 대표적인 예로 LG 전자를 꼽았다. 그렇다면 LG전자 디자인 액티브 경영의 핵심은 무엇인가?

백가가전에서 선전하는 디자인 가치창조 경영

1958년 금성사로 출발해 1995년 LG전자로 이름을 바꾼 이 회사는 ‘우리 나라 최초’라는 꼬리표를 늘 달고 다닌다. 라디오(1959년), 흑백TV(1966 년), 컬러TV(1977년) 등을 국내 최초로 생산한 LG전자는 1995년 미국 최대 가전회사였던 제니스전자 Zenith Electornics를 인수해 디지털 HDTV의 원천기술까지 확보했다.

‘일등 LG’를 비전으로, ‘정도 경영’을 행동 방식으로 추구하는 LG전자 의 경영이념은 ‘고객을 위한 가치창조’와 ‘인간 존중의 경영’이다. 고객에게 정직하고 더 나은 가치를 제공하기 위해 꾸준한 이노베이션으로 실력을 배양하고, 구성원들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함과 동시에 능력과 업적에 따 라 공정하게 직원들을 처우하는 것이 LG전자 정도 경영의 핵심이다.


2010년 55조 원의 매출로 포춘코리아 500대 기업에서 6위를 차지한 LG전자는 세탁기, 냉장고, 에어컨 등 생활 가전 제품 부문에서 특히 강세 를 보이고 있다. 1999년 세계 최초로 ‘다이렉트 드라이브(DD) 모터’가 장 착된 세탁기를 출시했으며, 2005년에는 듀얼 스팀 세탁기를 개발하는 등 전 세계 세탁기 시장에서 매출액 및 수량기준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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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케이 디자인은 리서치 회사의 데이터를 근거로 LG전자가 아시아 3 대 백색가전(에어컨, 냉장고, 세탁기) 부문에서 시장점유율 1위를 장악하 고 있다고 보도했다. 냉장고 점유율은 25%를 넘었고, 에어컨의 점유율은 2년 동안 2배 이상으로 확대되었다. 현지 가전양판점의 판매가격을 보면 LG전자 제품이 결코 타사에 비해 낮지 않으므로, 저렴한 가격이 높은 시 장점유율의 요인이 아니라는 것도 증명되고 있다.

디자인을 주축으로 한 협업 시스템 마련

LG전자는 디자인 분야에서도 선구적인 구실을 해왔다. 1959년 최초로 산업디자이너를 채용해 독자적인 라디오 모델을 개발했고, 1983년에는 디자인종합연구소(현 디자인경영센터)를 설립하기도 했다. 2006년 6월 선포한 ‘디자인 경영’을 계기로 디자인을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하는 시 스템도 구축했다. 디자인팀이 주축이 돼 신제품의 콘셉트와 디자인을 개 발하고, 상품기획과 설계, 마케팅 등 관련 부서들이 협업 팀 Cross Functional Team을 구성해 제품을 설계 middot; 생산 middot; 판매하는 구조를 마련한 것이다.

이 체제를 안착시키기 위해 LG전자는 디자이너 중에서 미래의 변화를 잘 예측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베스트셀러 제품을 만들어 낸 ‘슈퍼 디자이 너’를 선정해 파격적으로 우대해주고 있다. 현재 회사 내에는 5명의 슈퍼 디자이너가 있는데, 북미시장에서 돌풍을 일으킨 트롬 세탁기를 디자인 한 성재석(42) 전문위원(임원급)도 그중 한 명이다. 역발상으로 글로벌 히 트 상품을 디자인하여 불과 3년여 만에 차장급에서 임원급으로 고속 승 진한 성 위원은 대용량 세탁기의 투입구를 크게 만들어 빨래를 편하게 집 어넣거나 뺄 수 있게 했다. 레드와 블루 같은 색채를 과감하게 도입해 세 탁기 시장을 화려한 색으로 물들였다. 이 제품은 현재 미국 드럼세탁기 시장에서 10분기 연속 판매 1위를 기록하고 있다.

LG전자는 글로벌 환경에 적극 대응하는 디자인개발을 위해 해외 주 요 거점 도시에 특성화된 디자인 조직을 운영하고 있다. 런던 디자인센터 는 2~3년 후 시장을 선도할 선행디자인의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베이징 과 미국 뉴저지 디자인센터는 현지 라이프스타일 기반의 디자인 창출로 큰 시장에서 당장 팔릴 물건을 개발하고 있다. 도쿄 디자인센터는 소재와 색채를 통한 표면처리 등 디자인 기술 연구에 중점을 두고 있다.

LG전자 디자인 경영의 3가지 성공요인

‘디지털 라이프 크리에이터’를 지향하는 LG전자 디자인경영의 힘은 구본 무 회장의 전폭적인 지원에서 나온다. “고객의 기대를 뛰어넘는 혁신적인 디자인을 선보여야 한다”고 강조하는 구 회장의 의지에 따라 2007년부터 LG전자와 LG하우시스, LG생활건강이 디자인 시너지 효과를 얻기 위해 ‘디자인협의회’를 운영하고 있다. 구 회장은 혁신적인 디자인 역량을 확보하 기 위해 우수한 인재를 지속적으로 채용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제도와 프 로세스를 잘 정비할 수 있도록 디자인경영센터에 큰 힘을 실어주고 있다.

인터페이스 디자인 분야의 최고 전문가이자 저명한 대학교수 출신인 이건표 디자인경영센터장(부사장)은 LG전자 디자인경영의 주요 성공 요 인으로 다음 3가지를 꼽았다. 디자인경영센터와 각 사업본부들과의 대등 한 협력, 경험디자인(XD) 전담 부서의 운영을 통한 사용자 니즈의 파악, 디자이너가 제품 개발에 적극 참여하는 ‘통섭형 프로젝트’의 추진이 그것 이다. 이런 사실들을 두루 살펴보면 ‘니케이디자인’이 왜 LG전자를 디자 인 액티브 경영의 모범 사례로 꼽는지 짐작할 수 있을 듯하다.

정경원 교수는...

한국디자인진흥원 원장을 역임한 바 있는 정경원 교수는 국내 산업디자인 분야를 대표하는 최고 전문가 중 한 사람이다. 현재 카이스트 산업디자인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며 서울시 문화관광디자인본부장(부시장)을 역임한 바 있다.

사진 LG전자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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