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리스는 고집스러운 시계다. 100년 넘는 역사 동안 줄곧 스위스 정통 기계식 시계만을 고집해왔다. 1980년대 전자식 시계의 범람으로 브랜드가 침체의 늪에 빠졌을 때에도 흔들림 없는 장인정신과 과감한 발상의 전환으로 위기를 극복하며, 오늘날의 명품 글로벌 시계 브랜드로 발돋움했다. 1982년 인수 후 30년 동안 오리스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온 율리히 헤르초크 회장을 직접 만나 브랜드 성공 비결과 한국 시장 전략에 대해 물었다.
정운섭 기자 sup@hk.co.kr
“소비자들이 오리스 시계를 직접 만졌을 때 비로소 이것이 진정한 시계라고 느낄 것이다. 속임수 장치가 아니라 진정한 시계에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다”
포춘코리아(이하 포춘) : 오리스를 비롯한 기계식 시계들이 1980년대 위기에 빠진 적이 있었다. 어떻게 그 위기를 돌파할 수 있었나?
율리히 헤르초크(이하 헤르초크) : 1982년 오리스를 인수했을 당시, 가장 큰 장애물은 각국의 딜러들이었다. 그들은 기계식 시계가 아닌 전자식 쿼츠 시계를 원했다. 딜러들은 소비자를 대변하기 마련이다. 값 싸고 저렴한 데다가 간단하고 사용하기 쉬운 일본의 전자식 시계가 있는데 굳이 기계식 시계를 고집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정작 기계식 시계가 지닌 가치를 다시 알아본 이들은 일본의 젊은 층이었다. 그들은 오리스 시계를 시계점이 아닌 패션매장에서 처음 만났다. 당시 일본에 진출해 있던 폴 스미스 매장 같은 곳이다. 폴 스미스는 오리스 시계의 오랜 마니아였기 때문에 그의 매장엔 우리 시계가 전시되어 있었다. 일본인들은 자신들의 시계 산업에서 만날 수 없었던 오리스의 독창적인 기계식 제품에 큰 호기심을 드러냈다. 그런 변화를 감지한 덕분에 이후 적극적인 일본 시장 개척에 나설 수 있었다. 그 후 전자식 시계의 본고장에서 오리스의 정통 기계식 시계가 인기를 얻게 되었다.
포춘 : 먼 이국 땅에서 나타난 그런 트렌드 변화를 어떻게 감지했나?
헤르초크 : 여행을 통해서다. 나는 여행을 즐겨 다닌다. 1985년 일본에 처음 갔고, 같은 해에 한국도 방문했다. 일본에 갔을 때 여러 가게들을 돌아다니며 기계식 시계를 바라보는 일본인들의 모습을 가까이에서 관찰할 수 있었다. 나보다 더 시계가 지닌 가치를 잘 알아보는 시계 마니아들을 그곳에서 만날 수 있었다. 나는 그때 기계식 시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확신이 섰고, 그 후 더욱 브랜드를 발전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할 수 있었다.
포춘 : 당시 다른 기계식 시계 브랜드들은 대부분 전자식 시계를 병행 생산하는 변화를 꾀했다. 오리스는 기계식 시계만을 고집했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
헤르초크 : 오리스는 시간에 대한 진정성을 가진 사람들을 위해 시계를 만들어 왔다. 이를 위해 오리스 역사의 모든 시간을 집중해왔다고 말씀드릴 수 있다. 시간을 알기 위한 도구 이상으로 시계를 생각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시계를 제작해 왔다는 얘기다. “아, 난 이 시계가 좋아, 이것을 보고, 듣고, 느끼고 싶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그들이다. 오리스 시계를 가지고 있으면 작은 부품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고, 시계 안에서 나는 소리도 들을 수 있다.
이런 특징들은 특별한 감성을 전달한다. 언제나 간편하게 시간을 알려주는 휴대폰이 넘치는 요즘 같은 세상에서도 시계는 시간 이상의 그 무언가를 알려준다. 그래서 우리는 오리스 시계를 ‘순수감성적인 조각’이라고 부른다.
소비자들이 오리스 시계를 직접 만졌을 때 비로소 이것이 진정한 시계라고 느낄 것이다. 속임수 장치가 아니라 진정한 시계에서 가치를 발견하게 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이 시계를 갖는 순간 10년, 20년, 30년 후에도 애용할 수 있는 시계, 대물림할 수 있는 보물이 될 수 있는 시계라고 느낄 것이다.
우리는 이런 기계식 시계의 가치를 이미 오래전에 보았다. 전자식 시계가 대세였던 시기에도 기계식 시계의 장점을 파악한 우리의 믿음은 변하지 않았다.
포춘 : 오리스 시계는 가치와 퍼포먼스에 비해 가격대가 그리 높은 편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리스 시계와 비슷한 기능을 지니고도 훨씬 고가에 판매되는 다른 브랜드가 많지 않나?
헤르초크: 다른 회사들은 마케팅이나 홍보에 투자해 좀 더 이익을 볼 수도 있다고 본다. 오리스도 300만~400만 원이면 충분히 고급스러운 시계라고 생각한다. 그 정도도 충분히 높은 가격이니까. 하지만 우린 이것을 ‘책임 있는 명품Responsible Luxury’이라고 부른다.
이런 가격 정책은 앞으로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우린 진정한 사람을 위해 진정한 시계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한다. 여기서 진정한 사람이란 돈을 벌기 위해 열심히 일하는 이들이다.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도 진정한 사람들이라 할 수 있다. 이런 사람들은 기계식 시계를 좋아하고, 오리스는 이들이 살 수 있을 만한 가격대의 시계를 지향한다. 2,000만~3,000만 원이 넘는 시계를 살 수 있는 사람은 매우 소수의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포춘 : 기자에게 추천할 만한 시계 스타일에는 어떤 것이 있나.
헤르초크 : 물론 오리스 시계를 권하고 싶다. (웃음) 중요한 점은 당신의 목표가 무엇인지, (원하는 시계가) 진정 당신을 위한 것인지, 돈은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고민해봐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진정한 가치를 중요시하는지 아니면 외형을 중요시하는지도 생각해 봐야 한다. 디자인을 중요시하고 내부는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이라면 오리스는 적합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한 가치를 떨어뜨리고 싶지 않다면 당신에게 기계식 시계를 권하고 싶다.
포춘 : 최근 소비자들의 트렌드는 어떤가?
헤르초크 :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을 분석하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북미, 유럽, 한국, 중국, 일본의 성향이 모두 다르다. 특히 일본과 중국의 차별성은 매우 두드러진다. 디자인 면에 있어 일본은 모던하고 시원한 스타일의 시계를 선호하고, 중국은 클래식하고 전통적인 시계를 좋아한다. 미국과 스페인 등에선 스포티한 시계가 각광받고 있다.
포춘 : 소득 수준이 높아지고 럭셔리 문화가 대중화되면서 한국 시장에 명품 시계 붐이 일고 있다. 향후 어떻게 한국 시장이 발전해 나갈 것이라고 보나?
헤르초크 : 한국은 기계식 명품 시계 시장의 시작이 다소 늦은 편이다. 그동안 한국 시장은 희소가치와 가격이 높은 시계 위주로 발전해왔다. 하지만 앞으로는 오리스 같은 브랜드가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게 될 것이다. 기성세대는 물론 젊은 세대까지도 기계식 시계의 매력에 눈을 떠가고 있기 때문이다. 맞는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런 추세는 마치 15년, 20년 전 일본의 젊은 세대들에게 불었던 바람과 흡사하다. 이런 변화는 결국 사람들 누구나 기계식 시계 한두 개 이상을 가지는 시대를 열게 될 것이라고 나는 믿는다. 지금 우리가 스마트폰을 너도나도 갖게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포춘 : 한국 시장에 대한 특별한 전략은?
헤르초크 : 우리가 그동안 해 온 것을 유지하는 것과 한국의 럭셔리 시장에서 좀 더 영향력을 갖는 것이 우리의 전략이다. 젊은 사람들이 F1처럼 움직이는 상품을 좋아하기 때문에 F1마케팅을 꾸준히 진행할 계획이다.
중국과 마찬가지로 한국에서도 스타 마케팅을 펼칠 생각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한국 유명 배우들의 몸값이 얼마나 비싼지에 따라 상황은 변할 수 있다. 내 생각엔 꽤 비쌀 것 같다. (웃음) 이런 여러 가지 것들이 우리가 발전하는 방식이다. 갑작스런 혁명이 아니라 한 걸음 한 걸음 신중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포춘 : 마지막으로 글로벌 브랜드를 꿈꾸는 한국 명품 기업에게 조언을 한다면?
헤르초크 : 26년간 한국을 지켜보며 느낀 강점은 굉장히 체계적인 교육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한 가지 더 필요한 덕목이 있다. 세계에서 확실하게 성공하려면 조금 더 자유로운 정신, 다시 말해 무한한 창의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가에게 가장 중요한 일은 회사가 지닌 최고의 강점을 발굴해 내는 것이다. 자신의 정체성과 DNA가 무엇인지도 명확하게 알아야 한다. 회사를 세계에 알리기 위해 오랜 시간 꾸준히 공을 들여야 한다는 점과 깨끗한 경영을 펼쳐야 한다는 점도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