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업 환경이 좋아졌다. 기술기업에 투자하는 벤처캐피털이나 직접 개인의 엔젤투자도 크게 늘었다. 투자유치의 시작과 끝은 항상 프레젠테이션이다. 투자를 받아내는 프레젠테이션의 성공 노하우를 알아봤다.
한정연 기자 jayhan@hmgp.co.kr
우선 대전제가 있다. 프레젠테이션 은 내용이 최우 선이다. 하지만 아무리 훌륭한 프레젠테이션이라도 투자 를 못 받는 일은 허다하다. 내용이 좋다고 방심해선 안 된다는 얘기다. 하루에도 수십 통의 사업계획서를 받아 5분 정도 검토하는 벤처캐피털리스트나 엔젤투자자에게는 형 식도 중요하다.
어느 시대에나 최고는 있다. 프레젠테이 션도 마찬가지다. 그 목적이 제품 소개인지 아니면 투자 유치인지 혹은 납품을 위한 경 쟁인지에 따라 기술적으론 다른 부분이 많 다. 하지만 최근 10년 정도를 살펴보면 프 레젠테이션 기법은 대략 비슷한 패턴을 보 이고 있다. 누가 뭐라 해도 이 시대 최고의 프레젠테이션 고수는 스티브 잡스다. 한 광 고업체 임원은 “프레젠테이션은 잡스 이전 과 이후로 나뉜다”고 말했다.
먼저 1990년대와 2000년대 각각 최고 의 CEO라 불리는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스 를 비교해 보면 알기 쉽게 현대 프레젠테이 션의 맥락을 파악할 수 있다.
이들의 첫 번째 특징은 두 CEO를 돋보 이게 해주는 배경이다. 빌 게이츠가 프레젠 테이션을 할 때 사용하는 배경색은 주로 파 란색이었다. 밝고 산뜻하고 신뢰감을 주는 파란색은 프레젠테이션 자체에 시선을 끌 어모으게 된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달랐 다. 잡스의 프레젠테이션 배경색은 짙은 남 색이 검은색으로 그라데이션 되어 있다. 잡 스가 택한 배경색은 프레젠테이션을 위한 자료에 시선을 뺏기는 것을 방지하는 역할 을 한다. 그는 배경보다는 상품과 그 자신 이 주인공이 되기를 원했다.
색감 자체로는 빌 게이츠의 선택이 옳다 는 의견이 많지만, 프레젠테이션의 주인공 이 무엇이 되어야 하는지에 대해선 잡스의 선택이 옳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무엇을 담 을지에 대해서도 두 사람은 달랐다. 빌 게 이츠는 한 장의 슬라이드에 상당히 많은 그 림을 담았다. 하지만 스티브 잡스는 오직 하나의 이미지만 담기 위해 노력했다. 복잡 한 IT 제품을 복잡하게 설명하지 않았다는 것은 잡스의 프레젠테이션을 설명하는 가 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빌게이츠는 슬라이드에 담긴 텍스트에 많은 기호를 담았다. 상단의 제목과 모든 텍 스트의 첫 줄은 기호였다. 잡스는 기본적으 로 빌 게이츠가 사용하는 텍스트의 3분의 1 정도만을 썼다. 한눈에 들어오게끔 글은 석 줄 이상을 넘기지 않는 경우가 대부분이 었다. 광고업계 한 임원은 “청중이 나 대신 슬라이드에 눈길을 주고 있다면, 그 프레젠 테이션은 실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 다.
포스트 잡스로 지목받는 손정의 일본 소 프트뱅크 회장은 스티브 잡스와도 다른 프 레젠테이션을 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소프 트뱅크 창립 30주년을 맞아 주주 앞에서 한 ‘소프트뱅크의 향후 30년간 비전’이라는 프 레젠테이션은 작은 화제를 몰고 오기도 했 다. 손 회장은 배경색이나 슬라이드에 담긴 개체 수, 글자 수에는 개의치 않았다.
손 회장은 2시간이 넘는 발표에서 “인간 의 가장 큰 고통은 고독”이라며 “타인의 행 복에 도움이 되는 기업이 되겠다”는 말로 기 업 이념과 비전을 정리했다. 가끔은 떨리는 목소리도 섞었다. 직원들이 직접 나오는 동 영상을 보여주기도 했다. 그럼에도 손 회장 의 프레젠테이션이 회자된 건 2시간에 걸쳐 진행된 발표가 끝나갈 때쯤 터진 그의 눈물 때문이었다.
손 회장은 자신의 외할머니 사진을 대형 스크린에 가득 띄웠다. 그는 한국인으로서, 또 가난한 고학생으로서 일본에서 힘들게 살아왔던 개인사를 솔직하게 털어놓았다. 그는 할머니로부터 ‘다른 사람의 행복을 위 해 살아야 한다’는 가르침을 얻었다는 일화 도 소개했다.
손 회장은 마지막 20여 분간 감정에 북 받친 듯 목소리가 갈라졌고, 급기야 두어 번 눈물을 보이기까지 했다. 청중은 그가 눈물 을 보일 때 가장 큰 박수를 보냈다. 그는 이 런 가르침을 소프트뱅크를 통해 구현하겠 다며 발표를 마쳤다. 포털에서 통신으로 사 업을 개척하면서 수년 동안 매년 1조 원씩 적자를 내고, 악의적인 루머에 시달렸던 손 정의 회장과 주주의 간극도 눈물을 통해 상 당 부분 메워졌다는 후문이다.
최고의 프레젠테이션은 목적과 내용에 따라 달라져야 한다. 빌 게이츠와 스티브 잡 스는 제조업이냐 비제조업이냐에 따라 각 기 다른 전략을 취했다. 손정의 회장은 주주 앞에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는 점이 달랐 다. 그렇다면 투자를 받기 위해서 창업자는 어떤 프레젠테이션을 해야 할까?
소프트뱅크벤처스코리아의 임지훈 책 임심사역은 “가장 중요한 것은 내용과 자신 감”이라며 “창업자가 자신이 하려는 사업에 선 내가 최고라는 자신감을 갖는 게 중요하 다”고 강조했다.
벤처캐피털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IR(기 업설명회)은 보통 가장 마지막 단계에서 이 뤄진다. 하지만 창업자가 처음에 낸 사업계 획서 그대로 프레젠테이션을 하게 되는 경 우는 거의 없다.
좋은 사업계획을 받으면 벤처캐피털리 스트가 직접 창업자를 만나고 함께 다듬어 프레젠테이션 슬라이드를 만들기 때문이다.
벤처캐피털은 꼭 그 회사의 사업모델이 좋아서 투자를 하는 건 아니다. 시장 자체 가 좋기 때문에 혹은 창업멤버들이 괜찮기 때문에 하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 한마디로 프레젠테이션 기술 정도는 함께 만들어 커 버할 수 있다. 다만, 그 안에 들어가는 내용 은 온전히 창업자의 몫이다.
게임업체 A사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다. 심지어 기사를 그대로 슬라이드에 복사해놓기까지 했다. A사 창업자는 ‘전체 시장은 이렇고 우리는 이런 게임으로 시장에서 1위를 하고 있다’ 는 간단한 내용으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 회사는 수십억 원의 펀딩에 성공했다. 온라인 학습업체 B사의 프레젠테이션 자료는 정반대였다. 한 장 한 장의 슬라이 드는 물음표로 시작했고, 프레젠테이션 자 료를 읽어 본 것만으로도 하나의 스토리를 읽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회사는 수억 원 정도의 소규모 펀딩을 받는 데 그쳤다.
이들 회사의 펀딩 규모가 다른 이유는 무 엇일까? 한 벤처캐피털리스트는 “어떤 팀 이 어떤 내용의 사업을 어떤 시장에서 하겠 다는 것인지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벤처캐피털의 판단은 옳았 다. A사는 매출과 순이익이 갈수록 늘어나 면서 업계 1위의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B 사는 1년 후에 사업을 접어야 했다. 임지훈 책임심사역은 아래와 같은 순서대로 프레 젠테이션 슬라이드를 준비하라고 충고한 다. 각 슬라이드는 1~2페이지 정도면 충분 하다. 애플 초기 멤버이자 성공한 개인투자 자인 가이 가와사키는 “프레젠테이션은 짧 을수록 좋다”고 주장한다. 청중의 시간을 최대한 덜 뺏는 것이 그나마 낫다는 의미 다. 엄지훈 책임은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다 음과 같이 작성하라고 충고한다.
회사 개요
‘우리 회사는 무엇을 하는 회사다’ 혹은 ‘우 리 회사가 제공하는 제품은 이런 것이다’라 고 바로 이해할 수 있는 설명을 넣는 게 좋다.
고객의 수요
‘왜 이 제품을 왜 써야 하나’에 대한 해답이 필요하다. 의외로 이런 부분을 고민하지 않 고 트렌드에만 맞춰서 사업을 구상하는 경 우가 많다.
제품 설명
2번에서 언급한 고객의 수요나 현재의 문제 를 어떤 식으로 해결할 것인지를 설명해야 한다. 기술적인 내용보단 들었을 때 ‘나도 한번 써보고 싶다’는 느낌을 갖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데모를 보여주는 것도 좋은 방법 이다.
시장 규모
가장 중요한 섹션이다. 벤처캐피털은 시장 이 크지 않은 곳에는 투자하기 어렵다. 벤 처캐피털이 투자를 한 후 엑시트(투자금 회 수)를 할 수 있는 규모의 산업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좋다. 회사가 추산하는 시장 의 크기를 증명하는 논리도 반드시 마련해 야 한다.
경쟁
‘경쟁사는 없다’고 단호하게 말하기보다는 잠재적 경쟁자를 포함해서 분석을 하는 게 좋다. 창업자가 ‘경쟁사보다 무엇을 더 잘하 는지 3가지만 말해달라’고 했을 때 대답을 못하는 경우가 많은데, 구체적인 설명이 가 능해야 한다.
금융
실제로 발생한 자사 혹은 경쟁사의 매출, 해외 사례를 활용해 추정 재무제표를 만드 는 것이 필요하다.
왜 투자를 받아야 하는가?
투자가 필요한 금액은 얼마이고, 왜 투자 를 받아야 하는지에 대한 설명이 필요하다. 돈을 투자받아서 어떻게 쓰려는지(Use of Proceedings)에 대해서도 합리적으로 설명 해야 한다.
창업 멤버
벤처캐피털은 ‘성공한 경험을 갖고 있는 사 람’에게 투자를 하고 싶어한다. 과거 성공한 경험이 있다면 이를 강조해야 한다. 회사 멤버들의 경험이 뛰어나기 때문에 사업을 잘 할수 있다는 것도 보여주는 게 좋다.
부록(Appendix)
구체적인 시장 조사자료나 상세한 기술 설 명이 이에 해당된다. 프레젠테이션 중 구체 적인 질문을 받을 때를 대비해 각종 자료를 준비해야 하지만, 이는 맨 뒤에 포함시키는 게 좋다. 그만큼 본문이 심플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