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지금 어느 때보다 많은 항공 여행객을 세계 각지로 보내고 있으며 그 목적지도 날로 늘고 있다.
특히 국제사회에서의 위상 강화에 발맞춰 세계의 굴뚝이라는 그간의 오명을 벗고 환경친 화적 항공 시스템 구축에 두 팔을 걷어붙이고 있다.
마치 친환경 항공여행이 무엇인지 다른 나라들에게 알려주듯 말이다.
STORY BY JAMES FALLOWS
ILLUSTRATIONS BY PETER AND MRIA HOEY
중국의 환경문제를 말할 때면 언제나 최우선 논점이 무엇인지를 놓고 논쟁이 벌어진다. 혹자는 현 상황의 심각성을 강조하고 혹자는 중국 정부의 문제해결 의지가 더 중요하다고 주장한다.
하늘과 토양, 수자원, 식품 원료에 이르기까지 중국은 지구상에서 가장 지독하게 오염돼 있는 국가다. 이를 직시한 중국은 공해의 저감과 청정에너지의 개발에 누구보다도 막대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으며 이 노력은 항공 분야에도 많은 영향을 미쳤다.
일반인들은 대도시의 심각한 대기 오염이나 암 발병률 상승을 초래하고 있는 수자원 및 식품의 중금속 오염에 비해 항공기의 유해물질 배출이 그리 긴급한 사안으로 여겨지지 않을지 모른다. 하지만 진실은 그렇지 않다. 중국에게 있어 항공기의 유해물질은 최우선적 개선이 필요한 환경문제의 하나다. 그리고 향후 항공우주산업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그 중요성은 더욱 커질 것이다.
실제로 9.11 테러 이후 10년간 서구국가들의 항공여행 수요는 별로 늘지 않은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중국의 수요는 4배나 늘었다. 또한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건설되고 있는 신규 공항은 10개 미만이지만 중국은 약 100여개의 공항이 새로 건설 중이며 그보다 많은 수의 기존 공항들이 확장공사에 한창이다.
이에 따라 거대 항공기 제작사인 보잉과 에어버스가 중국 시장을 놓고 벌써부터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중국 정부는 아예 자체적 제작 능력 배양을 위해 대대적 투자를 단행, 국영 항공기 제작사 중국상용항공기유한책임공사(COMAC)의 경우 지선 여객기 ARJ21과 간선 여객기 C919처럼 다국적 기업과 경쟁 가능한 모델의 개발에 성공하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산업분야의 성장이 그러했듯 중국의 항공산업도 환경에 치명적 결과를 초래할 것이 자명하다. 항공산업에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는 전 세계 배출량의 약 2%지만 기후변화에 미치는 영향은 4% 정도의 비중을 차지한다. 이산화탄소 등의 온실가스는 고공에서 배출될 때 환경에 가해지는 폐해가 더 큰 탓이다. 다시 말해 현 상황이 지속된다면 다른 산업계에서 온실가스 저감 노력을 펼치더라도 급성장하고 있는 중국의 항공산업에 의해 효과가 상실될 수 있다.
사실 과거의 항공 업계는 유해 배출물 문제를 애써 외면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미국과 유럽의 항공업계 리더들은 이 문제를 명백히 인식, 개선에 매진하고 있다. 이는 다분히 각국 정부의 강력한 규제와 환경에 대한 대중들의 인식 제고에 따른 반강제적 모양새가 강했지만 경제적 이유도 상당부분 작용했다. 모든 항공사를 막론하고 단일 항목 중 지출 비중 1위는 유류비로서 연료를 단 1ℓ라도 아끼면 그만큼 수익증대를 꾀할 수 있다는 데 주목한 것이다.
결국 전 세계 주요 항공사와 항공기 제작사들은 2009년 국제민간 항공운송협회(IATA)를 통해 오는 2050년까지 이산화탄소 순배출량을 2005년 수준의 절반으로 줄이겠다고 결의했다. 2050년이면 항공기의 항공여행객 수송거리가 2005년 대비 3배 이상 증가한다는 점에서 댐이나 발전소 건설기업과 경쟁해도 될 정도로 당찬 포부가 아닐 수 없다.
주지하다시피 중국은 신규 항공기를 가장 많이, 빠른 시간 동안 사들여 운용하는 세계 최대 시장이다. 때문에 중국 항공업계도 지속가능한 항공산업의 구현을 위해 흥미롭고 남다른 노력들을 전개하고 있다.
작년 봄 필자와 아내는 중국인 친구들과 함께 베이징에서 열린 록밴드 이글스의 콘서트를 보러 갔다. 마스터카드센터로 이름을 바꾼 베이징올림픽 우커송 농구장은 그들을 보기 위해 찾아온 인파로 인산인해를 이뤘다. 마스터카드센터와 필자의 아파트는 직선거리로 16 ㎞ 거리였다. 하지만 3시간여의 열띤 콘서트가 끝나고 경기장을 나와 집에 돌아가기까지 몇 시간이 걸렸다. 중국 친구들이 새로 산 아우디 승용차를 자랑하고 싶었는지 지하철을 이용하려는 우리를 굳이 데려다주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주차장 출구는 단 두 곳 밖에 없었고 그나마 폭이 좁아서 수천 대의 차량이 동시에 몰리자 엄청난 교통체증이 일어났다. 간신히 주차장을 빠져나온 뒤에도 시내 통과라는 더 큰 산이 기다리고 있었다. 고속도로와 유사한 베이징의 순환식 도로체계와 무수한 일방통행으로 인해 집에 도착하기 위해서는 꽤나 먼 길을 돌아가야 했다. 이렇게 길 위에 머문 시간이 길어질수록 우리는 더 많은 휘발유를 소비할 수밖에 없었다.
연료와 시간을 거리에 쏟아 부은 이번 드라이브는 유별나게 많은 에너지를 소모해야하는 중국 항공여행의 현실과 꼭 닮아 있다. 베이징 국제공항을 비롯해 중국 내 공항 주변의 항로는 중국군에 의해 통제되고 있는데 항공기들은 군이 허가한 좁디좁은 공역으로 지나가기 위해 줄을 서서 대기해야 하며 이는 교통체증을 유발하는 자동차들의 행렬과 다를 바 없다. 또한 중국군이 거의 모든 영공을 통제하면서 국적기들조차 종종 목적지로 가기 위해 우회 항로를 택한다. 순환도로를 타고 외곽으로 돌아가야 하는 자동차들처럼 말이다.
중국에서 항공기의 연착이 유달리 빈발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비효율적 항공교통 관제시스템 및 제한된 비행 가능 공역에 기인한다. 비행거리 1마일(1.6㎞)당 예상비행시간이 미국과 유럽보다 길고, 몇몇 비행단계에서 승객 1인당 연료소모량이 최대 두 배에 달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단적으로 말해 별다른 이익도 없어 보이는 비효율적 항공교통 관제시스템으로 말미암아 항공기들이 우회 항로를 선택하도록 만들면서 직선 항로와 비교해 두 배의 연료, 다시 말해 두 배의 유해물질을 대기 중에 뿜어내고 있는 셈이다.
중국군의 공역 통제에 따른 연료 낭비 요소는 또 있다. 현대의 여객기들은 보통 비행고도가 높을수록 연비가 향상돼 대다수 국가에서 상업용 여객기들은 3만 피트(9,144m) 또는 그 이상으로 순항고도를 잡는다.
그럼에도 중국군은 상업용 여객기의 순항고도를 약 1만~1만5,000피트 (3,048~4,570m)로 제한하고 있다. 항공전문가들에 의하면 고도 2만 피트 (6,096m) 이하는 공기밀도가 높아 항력이 크다. 공기저항을 이겨내기 위해 더 많은 연료소모가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이 같은 에너지 낭비는 마오쩌둥 시대에 지어진 중국의 낡은 건물에서도 나타난다. 단열성능을 기대하기 힘든 싸구려 자재가 쓰이면서 냉난방 비용이 선진국 건물의 두 배나 되는 것. 이 건물들을 친환경적 현대식 건물로 대체하려면 당연히 엄청난 시간과 돈이 필요하다. 하지만 에너지 낭비적인 항로의 개선은 단 하룻밤이면 충분하다. 그것도 아주 저렴한 비용으로.
공역(空域) - 비행 중인 항공기의 충돌을 막기 위해 필요한 물리적 공간.
현재 미국과 유럽에서 건설되고 있는 신규 공항은 10개 미만이다. 반면 중국은 약 100여개의 공항이 새로 건설 중이며 그보다 많은 수의 기존 공항들이 확장공사에 한창이다.
물론 여기에는 중국군의 협조가 필수적이지만 최첨단 항법기술, 특히 항공업계를 포함해 온갖 산업분야에서 혁신을 일으킨 GPS에 기반한 항법기술들이 이 변화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
구체적으로 1920년대 북미 국가에 최초의 계기비행 교육과정이 개설됐을 때만 해도 조종사들은 지상에 피운 모닥불이나 횃불에 의존해 자신의 항로를 파악했다. 원시적이나마 실질적 개념의 항법유도장치는 1930년대 초반 '4코스 라디오레인지(four course radio range)'가 효시다. 저 주파 무선수신기를 활용, 알파벳 A와 N의 모스 신호를 수신하여 위치를 파악하는 방식인데 A 신호음은 정상 항로에서 우측, N 신호음은 좌측으로 벗어났음을 의미했다. 이 소리를 기준으로 조종사가 항로를 조정하며 정상 항로에서는 두 신호음이 동시에 동일한 톤으로 들린다.
이후 1950년대초 360도 전방위의 모든 각도마다 서로 다른 신호를 발신하는 '초단파 전방향 무선표지(VOR)' 시스템이 개발되면서 2000년대 초반까지 전 세계의 주력 항법 시스템으로 자리매김했다. 관련장비를 탑재한 항공기는 A라는 VOR 무선국에서 동쪽 90도로 1,000㎞를 비행하고 B라는 무선국에서 서쪽 270도로 1,500㎞를 비행하는 식으로 항로를 설정할 수 있다. 하지만 진정한 항공여행의 혁명은 GPS의 등장 이후부터다. 자동차의 경우 GPS가 길을 잃어버리지 않도록 해주는 단순한 기능 을 했다면 항공기에서 GPS은 한 차원 다양한 혁신을 몰고 왔다.
먼저 VOR로 설정한 항로는 갈지(之)자처럼 이리저리 휘어진 모습이었던 반면 GPS를 이용하면 상대적으로 군더더기 없는 직선 항로의 설정이 가능해 시간과 연료를 아끼고, 이산화탄소 배출도 저감된다.
GPS는 또 대도시 인근 공항들의 오랜 골칫거리도 해결해주고 있다.
정확도 높은 실시간 GPS 데이터 해독과 최신 초정밀 자동조종시스템에 힘입어 이제는 불과 1~2m의 여유 폭만 있어도 새로운 항로를 설정할 수 있고, 특정 항로를 날아가는 항공기의 앞뒤 간격 역시 매우 좁아진 것이다. 때문에 항공기 날개폭의 1~2배, 기껏해야 수백m의 공간만 확보되면 도시 인근의 산이나 고층건물 사이를 비집고 안전하게 이착륙할 수 있 다. VOR 기반 항법시스템에서는 항로의 폭이 13~16㎞나 돼 도시 인근 공항들이 항공기 관제에 어려움을 겪었었다.
이러한 변화는 소음방지에도 효과가 있다. 정밀한 항로 설정이 가능한 만큼 소음공해에서 자유롭거나 최소화할 수 있는 루트를 확보할 여지도 크기 때문이다. 특히 GPS는 항공기의 공항 착륙 항로를 단축, 연료 절감 효과를 배가해준다. 향후 항공기를 활주로 쪽으로 막힘없이 활강하도록 해주는 최단 착륙 항로를 산출·적용하게 되면 기존 방식과 비교해 연료사용량을 3분의 1로 줄일 수도 있다.
실시간 GPS 해독과 초정밀 자동조종시스템 덕분에 과거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좁은 항로로도 항공기의 비행이 가능해졌다.
GPS를 활용한 항공기 유도시스템의 혜택은 전 세계 모든 공항이 누릴 수 있지만 중국에게는 남다른 메리트 하나가 더 있다. 지리적·정치적 이유로 원활한 항공망 구축이 이뤄지지 않았던 변방 지역에 항공편 연결을 활성화 시킬 수 있다는 점이다.
실제로 산시성 신장에서 티베트와 윈난성을 잇는 중국 서부는 오랫동안 항공기 출입금지 구역으로 남아있었다. 지구상에서 둘째가라면 서러워할 험난한 산악지대가 펼쳐져 있어 높은 산봉우리, 폭풍, 돌풍, 난기류 등 안전비행을 저해하는 환경요소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 항법시스템의 미비도 걸림돌이었다. GPS 이전의 항법시스템은 지상 수십㎞ 간격마다 설치된 레이더 기지와 항법용 비컨에 의존하고 있지만 이곳에는 설치가 거의 이뤄지지 않은 것. 정확히 말해 설치가 됐더라도 제 역할은 기대하기 어렵다. 레이더 전파나 무선 항법 신호는 오직 직진만 하는지라 비행 중인 항공기와 지상설비 사이에 주기적으로 높은 산이 가로막게 되는 티베트의 산악지대와 고원지대에서는 사실상 무용지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GPS는 다르다. 대규모 레이더망과 비컨망 없이 항공기 유도가 가능하다. 또한 GPS보다 앞선 고정밀 '필수항법성능(RNP)' 기술을 적용한다면 아무리 고립돼 있고 접근이 어려운 공항이라도 날씨에 상관없이 안전하게 접근할 수 있다. 미국 시애틀 소재 RNP 설계기업 네이버어스(Naverus)는 이들 중국 서부 지역의 공항 개항에 주도적 역할을 해왔다.
RNP 방식의 항법시스템은 1990년대 알래스카항공의 기장 스티브 풀턴에 의해 창안됐다. 그는 미 연방항공청(FAA), 알래스카주 당국과 함께 주변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고, 잦은 악천후로 인해 수시로 공항폐쇄 조치가 내려지는 알래스카 주노국제공항을 위해 RNP를 개발했다.
RNP 시스템은 자동조종시스템에 정밀한 경유점(way point)을 추가 입력한다. 이 경유점들을 따라오면 항공기는 험준한 산과 시야를 가리는 구름을 뚫고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 풀턴은 주노공항처럼 접근이 어려운 다른 공항에도 RNP가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음을 입증해냈고 얼마 뒤 알래스카주 내 30여개 이상의 공항이 이를 도입했다.
네이버어스는 2003년 풀턴이 동료 기장인 핼 앤더슨, 첨단기술 사업가인 댄 게리티와 공동 설립한 기업이다. 이들은 기술적 우수성을 바탕으로 브라질,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지의 공항과 계약을 체결했지만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중국 진출이었다.
필자가 2007년 베이징에서 풀턴과 그의 직원들을 처음 만났을 때 그들은 항공 역사에 길이 남을 프로젝트를 막 마친 상태였다. 세상에서 항공기 이착륙이 가장 어려운 공항 중 하나로 손꼽히는 티베트의 린즈공항에 RNP를 설치한 것이다.
린즈공항은 5,500~6,000m 높이의 산봉우리들 사이에 난 좁은 골짜기에 들어서 있다. 활주로의 고도가 해발 2,949m나 된다. 특히 이곳은 1년 중 약 300일간 비가 내린다. 나머지 60여일도 시계비행(VFR), 즉 조종사가 계기의 도움을 받지 않고 육안에 의존해 공항에 접근할 수 있는 맑은 날은 극히 드물다. 게다가 인접한 공항이라고는 각각 서쪽과 북동쪽 320㎞ 지점에 위치한 해발 3,570m의 라사공항과 해발 4,334m의 방다공항 뿐이다.
이처럼 주변 지형이 말도 못하게 가파른 탓에 2006년 1월 개항 이후 RNP가 설치되기 이전까지 린즈공항에는 소수의 경비행기를 제외하고는 여객기나 화물기가 착륙한 적이 없다. 풀턴은 당시를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장소를 정해서 최신식의 대형 공항을 세운 다음에야 그곳으로 비행하겠다는 사람이 있는지 찾기 시작한 거죠. 린즈공항은 일단 일을 저질러놓고 이게 잘한 짓인지는 나중에 생각하는 전형적인 중국식 인프라 건설 프로젝트라 할 수 있어요."
풀턴과 연구팀은 중국 항공당국을 설득, 린즈공항에 대한 RNP 설치 가능성을 타진키로 하고 직접 공항을 찾아갔다. 라사공항까지 비행기로 이동한 뒤 10시간이나 꼬불꼬불한 산악도로를 달려 도착한 린즈공항은 잘 포장된 긴 활주로를 가진 아름다운 최신식 공항이었지만 터미널은 예상대로 텅텅 비어 있었다.
그의 첫 작업은 휴대형 GPS 기기를 사용, 공항 주변 지형의 좌표와 고도를 정밀 계측한 것이었다. 원칙대로라면 국가안보라는 케케묵은 명목 하에 외국인이 중국 내에서 측량작업을 실시할 수 없었지만 기존의 지도는 오류가 너무 많아 항공당국도 이례적으로 측량을 허가했다.
"계측을 하면서 중국인들도 정확한 지리정보데이터 구축의 중요성을 인식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정보가 부정확하면 항공기는 추락하죠. 당연한 결과에요."
18개월에 이르는 계측 끝에 연구팀은 린즈공항의 안전한 접근 항로를 산출했다. 이 정보를 입력한 자동조종시스템도 시뮬레이터 상에서 정상 작동했다. 이제 남은 것은 실제 항공기를 활용한 실증이었다.
급기야 2006년 7월 12일, 풀턴은 중국 조종사 및 항공 당국자들과 함께 중국국제항공(에어차이나) 소속 보잉 757기의 조종석에 올라 린즈공항으로의 역사적 시험비행을 했다. 성공을 장담할 수 없는 비행이었던만큼 풀턴은 에어차이나 조종사들과 협의를 거쳐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시계비행이 가능한 날을 선택했다. 또 자동조종장치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거나 날씨가 악화되면 즉각 비행을 취소키로 했다.
활주로에 안착하기까지 마지막 6분의 비행영상을 유튜브에서 볼 수 있는데 눈을 뗄 수 없을 만큼 흥미진진하다. 항공기는 구름이 둘러싸고 있는 가파른 산봉우리 사이의 계곡을 곡예비행 하듯 움직인다. 자동조 종장치는 항공기와 활주로와의 표고차가 60m 밖에 되지 않은 착륙이 임박한 지점에서 산봉우리를 피하기 위해 S자 회전을 하기도 한다. 현장에 있었던 풀턴의 말을 빌리면 마치 계곡의 강물을 따라 떠내려가면서 발레를 하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마지막 장애물을 성공적으로 회피한 항공기는 비행방향을 활주로와 직선으로 맞추고는 정확히 착지했다. 그러자 조종석 안팎의 사람들로부터 박수가 터져 나왔다. 그들 중에는 에어차이나와 중국민항총국(CAAC)의 고위관료도 있었다.
"에어차이나의 고참 조종사가 제게 다가와 RNP를 완전히 믿게 됐다고 말하더군요. 만일 우리가 추락이라도 했다면 CAAC 국장을 비롯해 이 일에 관련된 모든 사람이 해고됐을 겁니다."
시험비행 6주 후 린즈공항에는 상업 항공사의 항공기가 RNP의 도움을 받아 구름과 악천후를 뚫고 첫 착륙에 성공했고 지금은 많은 항공기들이 기항하고 있다. 이 성과를 발판으로 네이버어스는 현존 세계 최고 고도 공항인 방다공항과 2015년 개항 예정인 티베트 나취공항(해발 4,436m)에도 RNP 도입 계약을 따냈다.
RNP의 가치에 주목한 GE가 2009년 네이버어스를 인수, 'GE 항공 PBN 서비스'라는 이름으로 운용하고 있으며 현재는 보잉과 에어버스도 RNP 관련 자회사를 거느리고 있다. 중국이라는 거대시장을 두고 안전성과 신뢰성을 향상은 물론 연료까지 절약할 수 있는 RNP 항법시스템 수주 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브라질 출신 조종사이자 네이버어스의 부사장이었던 세르지오 반 보리스는 베이징에서 필자에게 이런 말을 했다.
"지상 유도시설이 전혀 없는 공항에 안전하게 착륙할 수 있다는 게 RNP 항법시스템의 최대 장점입니다. RNP는 하늘의 고속도로라 할 수 있어요. 저희는 그 고속도를 닦는 엔지니어랍니다."
이론상 조류(藻類) 연료는 항공기의 실질 탄소배출량을 제로로 만들 수 있는 환경친화적 에너지다.
항법 시스템 개선과 함께 항공기의 공해 유발 문제를 해결할 또 하나의 유력한 대안은 바로 조류(藻類) 연료다. 처음 조류 연료가 연구됐을 때만해도 회의적 시각이 많았지만 2012년 현재 그 시각은 긍정적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중국은 조류 연료 분야에서 선두를 달리게 될 지도 모른다. 보잉을 포함한 다수의 기업들이 생물자원을 가지고 친환경 항공 연료를 생산할 가장 효율적 장소로 중국을 지목하고 있기 때문이다.
조류 연료는 그리 놀라운 개념이 아니다. 조류에는 석유 대체연료인 에탄올로 변환시킬 수 있는 셀룰로오스가 함유돼 있다. 문제는 생산성.
대량의 조류를 양식, 현 휘발유 가격 수준의 저렴한 비용으로 공급해야만 상용성을 갖출 수 있다. 그래서 세계 각국은 이미 이 비법을 찾기 위해 다수의 연구를 진행하고 있으며 이들 중에는 에너지 안보 차원에서 국가로부터 연구비를 지원받는 국책 프로젝트가 주류를 차지한다.
중국의 경우 정부당국과 공동전선을 구축한 보잉이 관련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이와 관련 보잉의 베테랑 엔지니어 알 브라이언트는 2008년 베이징올림픽 직후 베이징에 파견된 이래 중국 항공업계에서 조류 연료의 미래가치를 설파하는 전도사를 자처해왔다. 그는 2050년까지 항공여행 수요의 증가가 초래할 이산화탄소 배출량 예측 그래프를 발표자료로 애용한다. 보잉도 이 그래프를 전제로 지금 당장 실용적 바이오연료, 특히 조류 연료의 개발에 온 힘을 기울여야 한다는 주장을 펼친다.
그래프의 초록색 부분은 바이오 연료를 항공기의 주력 연료로 사용 했을 때 절감시킬 수 있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의미한다. 구형 항공기의 교체 효과[적색], 항공노선 및 항공관제 관리절차 개선 효과[회색]와 맞물려 조류 연료 중심의 바이오연료를 사용하면 항공여행 수요 증가에 맞춰 항공편을 늘리면서도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2009년보다 더 낮출 수 있다.
특히 조류 양식의 3대 요소는 햇빛과 물, 이산화탄소다. 그렇다. 조류를 키우려면 이산화탄소가 필요하다. 정확히 말해 조류는 이산화탄소를 먹이로 삼는다. 화력발전소 등에서 포집한 대량의 이산화탄소를 먹이로 제공하여 화석연료를 대체할 친환경 연료를 만들 수 있는 것이다. 시쳇말로 도랑 치고 가재 잡고, 마당 쓸고 동전 줍는 격이다.
이 점에서 현재 지적되고 있는 생산공정의 비효율성과 고비용 구조가 개선된다면 조류 연료는 궁극적으로 항공기를 탄소 중립에 가까운 친환경 이동수단으로 격상시킬 수 있다.
덧붙여 조류는 과거 최적의 바이오연료 원료로 집중적 조명을 받았던 사탕수수나 옥수수에서 나타난 사회적 폐해가 없다. 실제로 미국, 브라질, 스웨덴 등의 국가를 중심으로 대량의 사탕수수와 옥수수가 바이오연료로 변환되면서 전 세계 곡물가격이 상승하고 저소득층 식량난이 가중되는 예기치 못한 결과가 초래됐다. 또한 작물을 심어서, 기르고, 수확·가공하여 에탄올을 만들 때까지 투입되는 에너지가 에탄올 자체의 에너지보다 많아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비난도 제기됐다.
셀룰로오스 (cellulose) - 2개 이상의 당 성분이 결합된 구조의 다당류 섬유소. 당 사이의 결합을 인위적으로 끊어 단당류인 글루코오스로 전환시킨 뒤 발효 미생물을 넣어 발효시키면 휘발유의 대체연료인 바이오 에탄올이 만들어진다.
탄소 중립 (carbon-neutral) - 경제활동으로 배출되는 이산화탄소의 양만큼 대기 중 혹은 대기 중에 배출될 이산화탄소를 제거해 전체 배출량을 제로로 만드는 것.
이에 항공업계는 식량자원을 사용하지 않는 신개념의 바이오연료가 필요했다. 그 연료의 조건은 이랬다.
원료가 무엇이든, 어떤 종류의 연료가 생산되든 상관없이 가장 중요한 것은 현재의 항공유를 대체할 수 있는 수준의 에너지 효율을 내야 한다. 그리고 옥수수를 원료로 한 에탄올 이상의 탄소배출 억제 효과를 발휘하면서 상수원 고갈 등 장기적 환경피해가 없어야 한다.
또한 큰 비용이 들어가는 대대적 설계 변경 없이 기존의 제트 엔진 시스템에 적용 가능해야 한다. 가장 까다로운 조건은 전 세계 공항에 이미 비축돼 있는 제트연료와도 호환성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보잉의 브라이언트는 이렇게 설명했다.
"베이징에서 바이오연료를 가득 채우고 이륙했지만 목적지에 도착한 뒤 베이징으로 돌아오려면 일반 제트 연료를 보충 급유해야 할 수도 있어요. 그런데 바이오연료와 제트연료를 혼합해서 사용할 수 없다면 항공기를 띄울 수 없겠죠."
조류 연료는 이 모든 조건에 부합한다. 더욱이 조류는 단위 재배면적당 연료생산 효율이 옥수수, 대두 등 여타 바이오연료 원료 작물보다 5~10배나 우수하다. 생장 속도도 월등히 뛰어나 단 며칠 만에 연료 생산 공정에 투입할 수 있다. 브라이언트에 따르면 벨기에 국토 면적, 즉 우리 나라 경상도 면적 정도의 조류 생산시설 하나만 있으면 전 세계 모든 항공연료 수요를 충당할 수 있을 정도다.
필자가 인터뷰한 미국과 중국의 과학자들 중에는 조류를 통해 신속하고 경제적으로 충분한 양의 연료를 생산할 수 있을지 의문을 제기한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보잉의 계산으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상회하고, 제조 기술이 충분히 발전되면 조류 바이오연료의 경제성이 확보된다.
이에 따라 보잉은 중국 전역의 국책연구기관들과 공동으로 지속가능한 연료, 특히 조류 연료 관련 프로젝트를 활발히 추진하고 있다. 현재 중국과학원 산하 칭다오 바이오에너지·바이오공정기술연구소를 위시한 중국 대학과 기술연구소들은 조류 연구 분야에서 세계 최고 수준의 기술력을 인정받는다. 때문에 향후 중국에서 도출될 연구성과들은 인류의 친환경적이고 지속가능한 항공여행을 실현해줄 수도 있다. 그런 날이 오면 우리는 환경문제에 대한 최악의 소식과 최고의 소식이 같은 장소에서 들려오는 아이러니한 현실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