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소모적인 전쟁은 언제쯤 끝날 수 있을까.
STORY BY Tom Clynes
ILLUSTRATION BY Daniel Schumpert and Jason Briney
"오늘은 연구실 입구에 폴리스라인 테이프가 쳐져 있지 않네요. 일단은 시작이 좋아요."
고기후학자 마이클 만 박사는 한 손에 커피 잔을 든 채 다른 손으로 연구실의 열쇠를 끼워 넣으며 이렇게 말했다. 그가 책상 앞에 앉아 창문의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자 산더미처럼 쌓인 책과 학회지, 편지들이 눈에 들어왔다. 연구실의 한 구석에는 하키 스틱도 보였다.
"미들버리대학에 강의를 나갔을 때 학생들이 선물해 준 거예요. 호신용품 삼아 놓아두고 있죠."
펜실베이니아주립대학 지구시스템과학센터장인 그는 몇 달 전 우편물을 한아름 안고 연구실에 들어왔다. 책상에 앉아 한 편지봉투를 열고 편지를 꺼내는 순간, 봉투 속에서 하얀 가루가 손 위로 쏟아졌다. 본능적으로 탄저균일수도 있다는 생각이 떠오른 만 박사는 숨을 참고 화장실로 달려가 손을 씻었다. 다행히 미 연방수사국(FBI) 조사 결과, 백색 가루는 옥수수 녹말로 밝혀졌다. 필자는 이런 경험담을 너무 태연히 얘기하는 그가 너무 놀라웠다.
"이제 그런 일은 삶의 일부가 됐어요. 평범하지 않다는 걸 인식하지 못할 정도로 제게는 일상이에요."
사실이다. 현재 기후 과학자들은 그가 말한 '평범치 않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할 만큼 무수한 위협과 협박에 노출돼 있으며 그 빈도와 강도는 날로 심해지고 있다. 미국 로렌스 리버모어 국립연구소(LLNL)의 한 연구자는 한밤중에 들린 노크 소리에 대문을 열어보니 죽은 쥐가 놓여있었다고 한다. 또 MIT의 한 연구자는 올해 1월 자신과 아내를 협박하는 편지들을 무려 2주일간이나 우편함이 꽉 차도록 받았다.
그나마 이것은 작년 호주에서 벌어졌던 사건에 비하면 양반이다.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이 기후 과학자들에게 올가미를 휘두르고, 자녀를 성폭행하겠다고 위협하면서 정부당국이 학자와 가족들을 안전가옥으로 대피시켰다.
이렇듯 거칠고 물리적인 공격에 더해 법적, 정치적 공격도 가해진다.
이미 여러 기후 연구기관들이 골치 아픈 소송에 휘말려 있다. 지난 2005년 만 박사를 비롯한 몇몇 기후연구자들의 국회 청문회 출석을 앞두고 텍사스주 조 바튼 하원의원은 정보공개법(FOIA)을 악용하기까지 했다.
연구하기에도 바쁜 연구자들에게 그동안의 연구과정과 컴퓨터 프로그램, 과거 금전출납 내역 등을 담은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 제출을 요구하며 심리적으로 압박한 것. 바튼 의원은 연구자들이 일생동안 수행해온 모든 연구를 보고하고, 연구의 타당성을 밝히라고도 요청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오클라호마주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은 2010년 발표한 보고서를 통해 만 박사를 포함한 17명의 주요 기후 과학자들이 잠재적 범죄행위를 저질렀다고 주장했다. 기후변화의 위험을 사실과 다르게 말함으로써 연방 허위진술금지법 등 3개 법률와 4개 규정을 위반했다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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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가 만 박사를 연구실에서 만난 것은 올 2월 하순으로 펜실베이니아 주 중부는 아직 겨울이었지만 밖의 온도는 15℃를 웃돌았다. 그는 하와이에서 열린 학회에서 돌아와 자신의 새로운 저서 '하키스틱과 기후전쟁 (The Hockey Stick and the Climate Wars)'의 홍보를 위한 출장을 떠나기 앞서 잠시 짬을 내줬다.
1990년대 후반 만 박사는 지구의 평균표면온도가 이산화탄소(CO₂)의 증가에 비례해 급격히 상승할 것임을 보여주는 그래프를 개발했는데 하키스틱처럼 끝부분에서 급격하게 휘어진 그 그래프는 기후변화 관련 논쟁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했다. 수십 년간의 동료평가를 통해 검증된 이 그래프는 기후 과학자들에게 더 없이 확실한 지구온난화의 증거였다.
반면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에게는 매우 잘못된 정치적 의제를 지지하는 수천 명의 과학자가 날조한 오해들 중 최악의 거짓말일 뿐이다.
만 박사의 그래프는 기후변화에 관한 정부간 패널(IPCC)이 2001년 발표한 제3차 평가보고서에 삽입됐다.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과 데이비스 구겐하임 감독이 2006년 제작한 다큐멘터리 '불편한 진실'에서도 이 그래프는 핵심적 논거 자료로 쓰였다. 다큐멘터리가 전 세계적 반향을 일으키면서 노벨상위원회는 지구온난화 방지의 중요성을 널리 알린 공로를 인정, 2007년 앨 고어와 IPCC를 노벨평화상 수상자로 선정했다. 덕분에 만 박사도 IPCC의 일원으로서 수상의 영광을 나눴다.
이와 동시에 불편한 진실은 기후변화 지지자나 회의론자 모두에게 엄청난 충격을 주면서 지구온난화 문제를 문화전쟁의 영역으로 끌어올렸다. 만 박사 역시 그 전쟁에 휘말렸음은 당연하다.
"그 이후 삶이 엉망진창이 됐어요. 사람들은 제 이메일을 해킹하고, 인터넷 게시판과 신문광고를 통해 비난을 퍼부었죠. 가족들까지 협박을 하더라고요. 저는 미 국립과학재단(NSF), 영국 하원의회 등 여러 기관에서 8차례나 조사를 받기도 했어요. 물론 거짓말이나 정보를 오용했다는 증거는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매번 제 연구방법이 타당했고 데이터는 신뢰할만하다는 결론이 내려졌죠. 그럼에도 무죄가 확정되면 곧바로 다음 조사를 받아야하는 신세였어요."
이 사건 이래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은 만 박사를 강박적 거짓말쟁이, 사기꾼, 희대의 정신병자로 부른다. 히틀러, 스탈린, 악마에 견주거나 새로운 세계 질서를 수립하려는 과학자 도당의 배후 인물이라는 모략을 펼치는 사람도 있다.
필자와 만나고 있을 무렵에도 만 박사는 FOIA 관련 자료 요청과 두 건의 소송 때문에 힘겨워하고 있었다. 소송 중 한 건은 주(州) 검사가 만 박사의 예전 직장이었던 버지니아대학에 그의 이메일과 관련서류를 요청한 것이었는데 일주일 뒤 대법원이 대학의 손을 들어주며 승소로 마무리됐다. 그러나 버지니아대학은 학자의 개인 이메일 공개가 학술연구를 방해할 수 있음을 인정받기 위해 60만 달러를 써야했다.
"어느 정도는 저와 제 가족이 견뎌내야 한다는 것은 저도 알아요. 하지만 이건 도가 지나쳐도 한참 지나쳐요. 과학적 연구내용을 밝혔을 뿐인데 이런 꼴을 당하다니요. 그 사람들을 보세요. 단순히 강짜를 부리는 게 아니에요. 조직적으로 과학을 불신하려 한다고요."
동료 평가 (peer review) - 발표된 논문이나 보고서에 대해 해당분야의 학자 및 연구자들이 동등한 입장에서 내용을 검증하고 평가하는 행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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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싱턴 DC의 스테이크 식당 모튼스는 변호사들과 로비스트들이 즐겨 찾는 장소다. 이곳에서 만난 스티브 밀로이는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이 일에 전적으로 매진하는 사람은 저희 25명 정도에요. 저희들이야 말로 기후변화 회의론자 가운에 핵심이라 할 수 있죠. 일종의 소수정예 독립군이랄까요."
현재 뉴스전문채널 폭스 뉴스의 해설자로 활동 중인 그는 '정크사이언스(junkscience.com)'라는 웹사이트를 운영 중이다. 그의 표현을 빌자면 이 사이트는 '지구온난화의 위험을 과장하는 허풍쟁이'들을 공격하는 전초기지 역할을 하고 있다.
최근 세간에서는 밀로이와 같이 주류 기후과학에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을 '부정론자(denier)'라 칭한다. 그들 자신은 의심하는 사람, 회의론자, 현실주의자라는 호칭을 더 선호하지만 말이다.
한때 담배 업계의 로비스트로 일했던 밀로이는 1990년대에 담배 산업의 로비 자금이 바닥을 드러낼 즈음 기후변화 부정론자가 됐다. 당시 는 보수주의 및 자유주의 진영의 싱크탱크들이 기후과학에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던 시기로서 밀로이는 석유산업으로 억만장자 반열에 오른 찰스 코크와 데이비드 코크의 자금을 지원 받아 그들의 메시지를 대중에게 전파하고 있다. 코크 형제는 세계 최대 비상장기업으로 유명한 코크 인더스트리즈의 회장과 부회장이다.
현재 밀로이를 위시한 강경 부정론자들은 점조직 형태의 '비대칭 전쟁'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 점에서 민간 정책연구단체 '걱정하는 과학자들의 모임(UCS)'의 아론 헤르타스 언론담당관은 부정론자들이 기후 변화 따위는 존재치 않는다는 내용을 담은 '정보 미사일' 형태의 밈을 발사하고 있다고 강조한다.
"이 미사일의 내용은 처음에는 무작위로 발송되는 스팸메일 서버에서 머물지만 점차 블로그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대변되는 온라인 세상에 등장하게 됩니다. 그리고 확산과 증폭을 거듭하면서 결국 토크쇼의 게스트나 정치가의 입을 통해 터져 나오죠. 이것이 지속적으로 반복되면 부지불식간에 적지 않은 사람들이 진실로 믿게 되요. 이런 구조 덕분에 부정론자들은 돈이 없더라도 자신들의 공격에 힘을 실을 수 있는 겁니다."
기후변화에 대해 입을 여는 과학자들은 즉각 부정론자들의 표적이 된다. 밀로이와 그의 동료인 마크 모나코는 예전에 기후 과학자들을 공개 태형에 처해야 한다는 극단적 주장을 폈으며 모나코의 경우 자신의 웹사이트(climatedepot.com)에 기후 연구자들의 이메일 주소를 공개, 수천통의 항의 메일이 발송되도록 종용하고 있다. 밀로이는 필자를 만나기 수주일 전 책 홍보를 위해 캘리포니아를 찾은 만 박사 앞에서 기후변화가 쓸데없는 우려임을 폭로하고, 애먹이는 질문을 하는 영상을 찍어 제출하는 사람에게 500달러의 포상금을 걸기도 했다.
만 박사는 이런 밀로이를 가리켜 '악명 높은 기업들을 위해 무엇이든 하는 멀티플레이어 부정론자'라 말한다. 반면 밀로이는 자신을 '미국적 생활양식을 파괴하려는 세력과 실존적 전쟁을 치르는 전사'로 묘사한다.
"모든 종류의 친환경은 정부가 국민들의 모든 삶을 통제하도록 종용하려는 교활한 책략에 지나지 않아요. 아직까지 저는 인체 유해성이 입증된 환경공해를 본 적이 없습니다. 간접흡연, 오존층 파괴, 농약 등이 위험성이 과장된 대표적인 사례에요."
비대칭 전쟁 (asymmetric warfare) - 양측의 전투력 차이가 상당할 때 약한 쪽에서 자살폭탄 공격, 사이버 테러 등 비 정통적 군사전술을 구사하는 전쟁 방식.
밈 (meme) - 유전적 방법이 아닌 기억이나 모방 등에 의해 유전자처럼 다음 세대로 전해지는 문화 요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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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 의해 유발된 기후변화가 지구의 기후를 바꿔놓을 수 있다는 증거가 나온 것은 1950년대 중반이다. 기후모델 시뮬레이션을 통해 대기 중 CO₂농도 증가가 온실효과를 높여 지구온난화가 초래된다고 드러난 것. 그때까지만 해도 연구 데이터는 조잡했고, 연구자들도 의견을 개진할 때 확신이 없었다. 그러나 1990년대 중반에 이르러 1995년 IPCC 보고서의 결론, 즉 "여러 증거들을 종합했을 때 인간이 지구 기후에 막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뒷받침해줄 연구결과들이 속속 도출됐다.
이후 자연적 현상이 아닌 인공적 이유로 기후변화가 일어나고 있다는 증거는 더 뚜렷해졌고, 현역 기후 과학자 중 98%가 이것이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라는 데 동의한다. 다만 몇 가지 사안에 대해서는 아직 과학적 확증이 없어 의견이 모아지지 않았다. 일례로 대기 중의 에어로졸과 다양한 고도의 구름, 지구 복사의 변화, 영구동토 및 심해저에서 배출되 는 기체 등이 기후에 미치는 영향은 연구자들의 이론이 엇갈린다.
UCS의 수석연구자인 프란체스카 그리포 박사에 따르면 이는 과학계에서 흔한 일이지만 부정론자들은 학자들의 사소한 의견 차이를 파고든다. 특정 부분에서 꼬투리를 잡아, 집중 부각시킴으로써 대화의 흐름을 삼천포로 빠뜨리는 것이다.
교토의정서가 채택된 이음해인 1998년 미국석유협회(API)는 태스크 포스팀을 조직, 590만 달러 이상의 자금을 써가며 기후과학의 신뢰도를 낮추고 온실가스 배출 억제를 위한 지원 정책의 확대를 막으려 했다. 그 과정에서 흡연과 암의 연관성을 부정하며 의회와 미국 국민들을 호도하기 위해 사용됐던 수단과 밀로이 같은 인물들이 대거 동원됐다.
추후 유출된 '지구 기후과학 커뮤니케이션 플랜'이라는 제목의 메모에 의하면 이 태스크포스팀의 전략은 과학이 지닌 불확실성에 의거해 기후변화 주장에 대응하는 논거를 구축하는 것이었다. 또한 뜻을 같이 하는 과학자들을 모아 교육시키고, 사례비를 지급하는 방식으로 언론과 대중들에게 기후 과학을 의심하게 만들자는 계획도 적혀 있었다. 다음은 이 메모의 한 구절이다.
"과학의 불확실성이 상식이 되고, 현 과학기술에 의존해 교토의정서를 준수하는 것이 비현실적으로 보일 때 승리가 달성될 것이다."
이들의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인지 2001년 3월 조지 부시 행정부는 기후과학의 불확실성 때문에 경제성장을 저해할 수도 있는 행동을 정당화하기 어렵다고 선언하고 교토의정서에서 손을 뗐다. 이 파장은 계속 커졌고 지금까지도 교토의정서의 성공적 이행과 미국 내 환경정책들의 진행을 방해 또는 정지시키고 있다.
그런데 과학자도 아닌 사람들로 이뤄진 작은 집단이 어떻게 국가 지도자들을 움직여 그동안 제시된 일관되고 확고한 과학적 증거를 좌시하도록 만든 것일까?
무사안일주의
미국 텍사스테크대학의 기후과학자 캐서린 헤이호 박사는 출간을 앞둔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저서에 기후변화 부분을 리뷰해줬다. 하지만 깅리치는 극우 보수논객의 비아냥을 받고 그 내용을 삭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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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후 수십 년 내에 해수면 높이가 몇 m나 상승한다는 주장은 공상에 불과합니다."
미국의 싱크탱크인 경쟁기업연구소(CEI) 마이론 에벨 에너지·지구온 난화정책부장이 워싱턴 로비스트들의 메카인 K스트리트로 향하는 택시 안에서 한 언론사 기자와 전화 인터뷰를 하며 내뱉은 말이다. 기자는 지구온난화가 해수면 상승을 가속화시켜 미국 해안의 범람이 잦아질 것이라는 새로운 연구결과에 대한 에벨의 의견을 듣고자 했다. 에벨의 말은 계속됐다.
"증거가 결정적이지 못해요. 남극의 빙상은 작아지기는커녕 더 커지고 있어요. 전문가들이 말하는 진실이란 바로..."
에벨은 자신을 과학자라고 칭하지 않는다. 그의 전공은 경제학이며 밀로이와 마찬가지로 1998년 결성된 API 테스크포스팀 멤버였다. 하지만 빈약한 과학지식에도 불구하고 기후문제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듣기 위한 언론인들의 행렬은 멈출 줄 모른다. 대다수 과학자들이 줄 수 없는 두 가지, 다시 말해 기후과학에 대한 비판적 시각과 저녁 뉴스 및 조간신 문에 즉시 실릴 만한 강력한 어조의 논설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마감 시간에 쫓기는 언론인들에게 에벨은 이상적인 정보 공급원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를 찾는 언론인은 과학적 의견에 비과학적 의견을 슬쩍 첨가함으로서 겉으로는 공정해 보여도 실상은 대중들을 현혹시키는 기사를 내고 있는 것일지 모른다. 만 박사는 이렇게 설명했다.
"양쪽 입장을 모두 반영해야 균형 잡힌 기사라고 말하지만 이 문제는 전혀 달라요. 예를 들어 기자라면 지구가 둥글다는 증거가 차고 넘친다는 것을 알 겁니다. 그런데 지구가 평평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입장을 다뤄야 기사의 균형이 잡히나요? 그런 류의 기사를 싣게 되면 대중들은 지구의 모양에 대해 과학적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고 생각하게 되요."
에벨이 타고 있던 택시의 라디오에서는 '내일은 기상관측 사상 가장 무더운 3월 15일이 되겠습니다'라는 일기예보가 흘러나왔다. 그때 그의 휴대폰이 울렸고 전화번호를 본 그는 필자를 보며 말했다.
"PBS 방송국 뉴스프로그램 프로듀서에요. 해수면 상승을 주장하는 사람들을 인터뷰하고 있는데 어떤 식의 부정적 질문을 해야 할지를 알고 싶어 하더라고요."
전화를 받은 에벨이 프로듀서에게 전했다.
"별 문제도 아닌 것에 귀중한 자원을 막대하게 투입하고 있어요. 기후 모델 연구자들은 기후모델에 예측 능력이 없음을 절대 인정하지 않을 겁니다. 그저 위험한 상황이 일어날 수도 있다고 주장하겠죠."
그리고 에벨은 이런 말로 전화를 마무리했다.
"예, 살다 보면 별일이 다 있을 수 있죠. 내일 지구에 소행성이 떨어질 수도 있잖아요."
"부정론자들의 괴롭힘과 협박 때문에 연구결과를 널리 알리는데 소극적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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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 중에는 정치적 성향은 보수적이지만 인위적인 기후 변화에 대해서는 학계의 입장을 지지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그들의 정당이나 이데올로기는 부정론자들의 공격을 거의 막아주지 못하고 있다.
복음주의 개신교인으로 보수당인 공화당을 지지하는 미국 텍사스 테크대학의 기후 과학자 캐서린 헤이호 박사도 그런 경험을 했다. 그녀는 2007년 친환경 기업가 정신을 다룬 뉴트 깅리치 전 하원의장의 저서 공저자로부터 기후변화 부분의 과학적 사실을 검토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하지만 깅리치는 지난해 공화당 대통령 후보 경선 도중 극우 보수논객인 러시 림보가 그 사실을 알고 헤이호 박사를 '기후 아가씨'라며 비아냥거리자 그녀가 쓴 부분을 책에서 삭제해버렸다. 헤이호 박사는 그 소 식을 듣고 트위터에 이런 글을 남겼다.
"쓰레기 같은 책에서 내 글을 삭제해줬다니 기분이 좋다. 돈 한 푼 받지 않고 투자한 100시간 넘는 시간을 차라리 아이와 놀아주는데 썼어야 했는데..."
그녀의 시련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 글을 올린 다음날 보수주의 싱크탱크인 미국전통협회(ATI)는 텍사스테크대학에 그녀가 공공의 시간과 자원을 사용해 책 편찬에 협력했다며 FOIA를 요청했다.
"제 개인에 대한 살해 협박이나 욕이 가득한 이메일은 지워버리면 끝이에요. 하지만 이 사건 후 소송과 조사에 대응하느라 강의, 연구 등 본연의 업무 수행에 필요한 시간이 엄청나게 낭비됐어요."
2009년 설립된 ATI 환경법센터는 만 박사를 포함한 다수의 기후 과학자들의 전·현직 직장에 소송을 걸고 있는 대표적인 기관이다. 이들은 항상 연구자들의 개인 이메일과 연구기록을 얻고자 노력한다. 데이비드 슈네어 센터장은 이 같은 활동이 매우 정당하다고 강조한다.
"저희는 돈을 받고 움직이는 부패한 기관이 아닙니다. 좋은 과학과 적절한 정부 시책을 옹호하며 비밀 정보를 폭로하는 것을 표방해요. 국민들은 정부가 자신의 세금을 어떻게 쓰는지 알권리가 있으니까요. 저희 요구에 대응할 필요를 못 느끼는 과학자라면 국책 연구소에서 일하거나 정부의 자금을 지원받을 자격이 없어요."
정부 소속 기후 과학자로 알래스카에 머물렀던 기후 과학자 제프리 글리슨 박사와 찰스 모네트 박사는 지난 2006년 북극해에 북극곰들의 사체가 떠다닌다는 내용을 담은 보고서를 발표한 적이 있다. 익사한 것으로 보이는 북극곰의 사체는 북극의 얼음이 녹는데 따른 환경피해에 대한 사회적 우려를 불러 일으켰다.
이후 이 사실은 만 박사의 지구온난화 그래프와 함께 '불편한 진실'에도 수록되며 부정론자들의 맹렬한 공격 대상이 됐다. 그리고 2010년 두 사람은 결국 보고서의 진실성 문제로 미 보건부(HHS) 감찰관실의 조사를 받았다. '환경적 책임을 위한 공무원 모임(PEER)'의 이사이자 두 과학자의 법정대리인인 제프 루크에 따르면 이 조사는 지금도 진행형이다.
"2년 이상이 흘렀지만 어떤 판결도 내려지지 않았죠. 조사기간의 마지노선도 없어요. 누가 이런 조사를 시작했고 지금껏 유지시키고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때문에 두 사람의 삶은 지옥이 됐습니다."
루크가 전한 바로는 모네트 박사는 다시는 논문을 발표하지 않겠다고 맹세했고 글리슨 박사는 알래스카의 연구소를 떠났다. 물론 이는 다소 특별한 사례다. 미 항공우주국(NASA) 고다드우주센터의 기후 모델 연구자로 현재 ATI와 소송을 진행 중인 개빈 슈미트 박사는 부정론자의 공격으로 인해 학계를 떠난 과학자는 극소수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는 이러한 말을 덧붙였다.
"괴롭힘과 협박을 당하면 자신의 연구결과를 널리 알리는데 소극적이 되는 것만은 사실이에요. 이렇게까지 심할 줄은 몰랐다는 소리가 튀어나올 수밖에 없어요."
헤이호 박사도 동일한 취지의 발언을 전했다.
"제 아이와 단두대를 거론한 이메일을 받았을 때 어떻게 할지 모르겠더군요. 부정론자들은 이렇게 해서 과학자들의 사기를 꺾으려 한다는 걸 알지만 부끄럽게도 여자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일정 부분 굴복하고 말았어요. 이런 꼴을 당하면서까지 기후 연구를 계속해야하는지 스스로 되물은 적이 한 두 번이 아니에요."
부정론자의 거두
경쟁기업연구소(CEI)의 마이론 에벨[위]은 언론에 기후과학의 불확실성을 전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 석유산업으로 억만장자가 된 코크 인더스트리즈의 찰스 코크와 데이비드 코크 형제[우측]는 다수의 부정론자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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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과학자들이 해야 할 말을 못하게 되는 것과 달리 기후연구프로그램에 대한 부정론자들의 공세는 더욱 강화되고 있다. 작년 미 공화당 하원의원들은 온실가스가 공중보건에 악영향을 미친다는 미 환경보호청(EPA)의 발표를 철회시키는 데 만장일치로 동의했으며 미 하원 과학 우주기술위원회 위원장인 공화당의 랄프홀 의원은 10명의 동료 의원들과 함께 미 에너지부(DOE), EPA, NSF 등의 기후과학 및 기후변화 대응 연구나 대기 배출물 억제 프로그램의 예산삭감 또는 중단을 요구했다.
상원의회가 예산삭감 요청의 상당수를 철회시키고는 있지만 미 해양 대기관리처(NOAA)는 운이 좋지 못했다. 기후 관련 부서들의 통합과정을 조사한 홀 의원이 연구 예산 20%를 삭감하는 법안을 통과시켜 버린 것이다. 미국 지구기후변화연구프로그램(USGCRP)의 전 수장이었던 릭 플리츠 박사는 현 상황을 이렇게 토로했다.
"정부 기관과 정부 연구자들은 예산안과 제안서에서 '기후'라는 단어를 빼내고 있어요. 원활한 통과를 위해서죠. 지금은 모든 정부기관이 기후변화가 국가에 미치는 영향을 인식하고 대처계획을 세워야 할 때인데도 말이에요."
사실 이는 비단 미국에 국한된 상황은 아니다. 전 세계적으로 탄소세, 탄소배출권, CO₂ 배출저감 등의 프로그램이 정치권의 인식 부재 때문에 난항을 겪고 있다. 캐나다가 작년 12월 과도한 비용을 이유로 교토 협약을 탈퇴한 것이 단적인 예다. 매년 열리는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서도 각국 이해관계가 엇갈려 전향적 합의 도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럼에도 미국 부정론자들의 활약이 가장 두드러진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버지니아주 티파니의 부정론자들은 주민들을 움직여 해수면 상승에 대비하려던 시 당국의 계획을 백지화시켰다. 주민들은 이 지역이 미국 내에서 해수면 상승에 두 번째로 위험하다는 NOAA의 발표까지 음모론으로 치부했다.
또한 올 4월 테네시주 의원들은 진화론과 기후변화에 대한 과학계의 정설에 대해 교사들이 수업시간 중 의문을 표명할 수 있는 권리를 인정했다. 얼마 전에는 학교에서 기후과학에 이의를 제기하는 커리큘럼을 짤 수 있도록 허가하려는 계획이 드러나며 기후 과학자들을 아연실색케 만들기도 했다. 미국의 현실은 많은 일선 과학 교사들이 "기후변화 문제가 진화론과 창조론의 싸움처럼 끝없는 논쟁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현실이 개탄스럽다"고 말할 정도가 된 것이다.
이에 과학계는 이렇게 자문하고 있다. 어떻게 해야 기후변화 문제를 다시 과학의 영역으로 되돌릴 수 있을까?
"사람들이 과학자를 불신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우리는 반격을 개시할 겁니다. 부정론자들은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결과를 곧 보게 될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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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들은 현재 부정론자들에 대한 반격을 준비하고 있다. 슈미트 박사가 다른 연구자들과 함께 만든 온라인 포럼 '기후의 진실(realclimate.org)'도 그 같은 노력의 일환이다. 여기서 기후 과학자들은 그릇된 정보에 신속히 대응하는 한편 기후변화 문제가 주류 담론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다각적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작년에는 과학자들이 힘을 합쳐 소송에 휘말린 동료와 연구소를 지원하는 기후과학 법률보호 기금을 창설하기도 했다. 만 박사의 말이다.
"사람들이 과학자를 불신하도록 내버려둘 수는 없어요. 우리는 반격을 개시할 겁니다. 부정론자들은 잠자는 사자를 건드린 결과를 곧 보게 될 거예요."
이와 관련 전문가들은 지난 2월 환경단체 태평양연구소의 공동설립 자이자 기후 분석가인 피터 글리크 박사의 사건을 상기시키며 반격의 방법에 있어 부정론자들의 맹목성을 흉내 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그것은 오히려 자승자박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글리크 박사는 가짜 신분을 사용, 환경규제에 반대하고 기후 연구를 쓰레기 과학이라 치부하는 미국 하트랜드연구소의 재정 상태와 추진계획이 담긴 파일을 구해 배포한 바 있다.
이 사건은 2009년의 일명 '기후 게이트(Climate gate)'와 판박이다. 기후 게이트는 해커들이 기후 과학자들의 이메일을 해킹, 유출시킴으로써 IPCC의 보고서 작성에 참여한 일부 과학자가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부각 시키려고 데이터를 조작했다는 논란을 촉발시킨 사건이다. 8차례의 조사 끝에 과학자들이 부도덕한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게 증명됐지만 이 사건은 기후변화 회의론자들의 힘이 되살아나는 계기가 됐다.
아마도 글리크 박사는 과학 옹호론자들 사이에 이런 효과를 내고자 하는 의도였을 것이다. 하지만 학계는 그를 비난했다. 과학자로서 무책임한 행위이며 기후변화에 대한 공개적인 논의를 오히려 저해할 수 있다는 우려에서였다. 시카고 소재 하트랜드연구소의 본사 회의실에서 만난 조 바스트 소장의 어조는 더욱 강했다.
"글리크는 편집증적이고 망상적인 인물로서 고의로 법을 수차례 위반한데다 대중을 속이고 기만했어요. 그의 범죄는 지구온난화를 강하게 주창하는 사람들이 나쁜 행동을 하는 부류라는 사실을 재차 입증한 겁니다."
그는 테이블 쪽으로 몸을 내밀고 이렇게 덧붙였다.
"우리의 적들은 그 사건을 '부정론자 게이트'라고 불러요. 저희는 '거짓말 게이트'라고 부르죠. 공개된 문서에서는 우리의 일이 타당하고, 정당하며, 진실하다는 것 외에 어떤 증거도 발견할 수 없을 겁니다."
그러나 그의 말과 달리 문서에는 놀라운 내용이 담겨있다. 그중에서 가장 놀라운 것은 하트랜드연구소의 기후 업무 관련 예산의 대부분을 한 명의 개인이 대고 있다는 사실이다. 문서상 '익명의 독지가'로만 명기 된 그 사람은 지난 5년간 무려 1,270만 달러를 기부했다. 이 연구소의 기후 프로그램에는 기후 과학계의 정설에 이의를 제기하는 학교 커리큘럼 지원, 부정론자들을 위한 기후변화 국제회의 개최가 포함돼 있다.
그는 필자와의 만남을 마무리하며 부탁의 말을 남겼다.
"우리를 부정론자라고 부르지 마세요. 회의론자도 괜찮고 온건론자, 현실주의자도 좋아요. 하지만 부정론자는 아니에요."
이런 당부가 무색하게 몇 주 후 하트랜드연구소는 새로운 광고캠페인을 시작했다. 시카고의 아이젠하워 고속화도로에 내걸린 이 광고판에는 우편물 테러를 통해 32명을 살상한 테드 카진스키의 사진 아래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
"저는 아직 지구온난화가 사실이라고 믿습니다. 당신은 어떠세요?"
부정적 인물을 내세워 반어법적 표현으로 대중에게 어필하는 이 광고는 지구온난화 지지자들을 범죄자와 동급으로 취급한다. 연구소 측은 광고를 시작하며 다음과 같은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인간이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것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은 대개 매우 극단적 성향을 띱니다. 때문에 지구온난화를 가장 활발하게 옹호하는 것도 과학자가 아닌 살인자, 독재자, 정신병자들인 것입니다."
광고는 하루 만에 철거됐지만 하트랜드연구소는 2탄, 3탄도 준비하고 있었다. 9명을 살해한 연쇄 살인범 찰스 맨슨과 오사마 빈라덴이 다음 주자였다.
세계 각국 지도자들에게 기후변화 방지를 위한 대승적 차원의 협력을 요구하는 그린피스의 홍보 포스터[좌측]. 미국 오클라호마주 제임스 인호프 상원의원[위]은 지구온난화 자체를 부정하는 대표적 정치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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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년 IPCC 팀을 이끌었던 벤자민 샌터 박사는 "세상에는 비합리적 목소리를 내는 사람들이 있지만 갈수록 과학적 증가가 명확해지고 있고, 지구온난화의 메커니즘도 그 증거를 토대로 좀더 철저히 규명되고 있다"고 강조한다. 담배의 유해성이 과학적으로 명백하게 규명됐듯 기후변화 역시 앞으로 갈수록 부정론자들이 자신의 주장을 펴기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는 찰스 코크 재단이 캘리포니아대학 버클리캠퍼스의 물리학자 리처드 뮬러 박사에게 연구비를 지원한 사례에서 극명히 드러난다. 뮬러 박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부정론자 측에 선 극소수의 과학자 중 한명이었으며 코크 형제는 기후 과학자들의 엉터리 분석과 기후 관측장비의 신뢰성 상실 등을 근거로 지구온난화가 사실이 아니라는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할 증거를 찾기 위해 그에게 15만 달러를 지원했다.
연구팀은 2년여의 시간 동안 3만9,000개소의 기후관측소에서 16억개의 측정값을 확보, 과거의 데이터와 비교했다. 그런데 결과는 코크 형제의 예상과 정반대였다. 작년 10월 뮬러 박사는 지구의 지상 평균기온이 1950년 이후 약 0.89℃ 상승했다는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기후 과학계의 정설과 일치하는 수치였다.
"부정론자들이 타당한 지적을 했기에 2년 전에는 회의적 생각을 품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전의 연구들이 결코 편향되지 않았음을 확인했어요. 지구온난화는 진실입니다."
개별 과학자들에 더해 몇몇 보수적 싱크탱크들이나 기후 변화를 부정하는 단체에 돈을 주던 사람들도 그간의 강경한 입장에서 조금씩 탈피하고 있다. 1980년대 이래 주류 기후과학계의 주장에 맞서 온 조지 C.마셜연구소의 제프 퀴터 소장은 지난달 자신의 사무실에서 필자에게 "기후변화는 거짓이 아니다"며 "인간의 활동은 분명 기후변화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인정했다. 또한 석유화학기업 엑슨모빌은 반(反) 기후과 학 활동 지원 예산을 2006년부터 지금까지 78%, 금액으로 환산해 270만 달러나 줄였고 다른 석유기업들도 비슷한 전철을 밟고 있다.
앞서 언급한 하트랜드연구소의 광고판이 나붙었을 때도 보험사 스테이트팜, 거대 주류기업 디아지오 등 이 연구소의 최대 후원자들이 즉각 후원금 규모 축소 의사를 천명했다. 바스트 소장은 웹사이트를 통해 광고 게재를 사과할 생각이 없으며 계속해서 메시지를 전달하겠다고 호기롭게 밝혔지만 주지하다시피 단 하루 만에 무릎을 꿇었다.
특히 최근에는 미국 국민들의 여론 변화도 감지된다. 스탠퍼드대학 존 크로즈닉 교수 등 4개 대학 연구팀이 공동 수행한 설문 조사에서 미국인의 83%가 지구온난화를 현실로 믿고 있으며 국가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응답한 것. 크로즈닉 교수는 시민들이 일상생활에서 기후변화를 체감하게 된 것이 변화의 촉매가 됐다고 분석한다.
"과거의 지구온난화는 과학자들의 입과 논문 속에서만 존재했다면 지금은 일반인 스스로 기후가 변했음을 느끼고 있어요. 누구나 한번쯤은 친구나 동료에게 이런 말을 해본 경험이 있을 거예요. '예전보다 꽃이 일찍 피네. 겨울에도 예전처럼 춥지가 않아.'"
그는 또 자신이 조사한 사람들의 71%는 다른 나라의 움직임과 상관 없이 미국이 CO₂ 배출 억제 정책을 실시해야 한다는 생각에 찬성표를 던졌다며 필자에게 되물었다.
"국민들의 시각이 이런데도 정치인들은 왜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는 걸까요?"
"우리는 지구 기온이 상승했다는 예전의 연구들이 결코 편향되지 않았음을 확인했어요. 지구온난화는 진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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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을 방불케 하던 3월 중순의 어느 날 오후. 인호프 상원의원은 워싱턴의 대표적 보수주의 싱크탱크인 헤리티지재단의 연단 위에 서 있었다.
자신의 새 책 '거대한 거짓말: 지구온난화 음모가 당신의 미래를 위협하는 방법'을 홍보하기 위해서였다.
주변을 둘러보니 150여명의 청중들 사이에는 CEI의 마이론 에벨, 마크 모나코의 웹사이트에서 활동하는 부정론자이자 인호프 의원의 책 대부분을 대필해줬을 것으로 의심되는 마크 모라노 전 보좌관이 보였다. 중장년층이 대부분인 청중들은 인호프 의원의 거침없는 분노와 파워포인트를 활용한 프레젠테이션에 완전히 매료된 모습이었다. 인호프 의원은 호응에 힘을 얻어 이렇게 주장했다.
"인간에 의한 지구온난화 주장은 히스테리와 공포, 엉터리 과학에 의존해 미국인들을 가지고 논 역대 최대의 사기극이지 않습니까? 저는 분명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는 화석 연료를 놓고 벌이는 전쟁을 언급했고, 유엔이 지구 기후에 관심을 보이는 것은 권력, 자치권, 통제력을 얻기 위함이라 단정했다. 또한 2009년 코펜하겐에서 열린 15차 기후변화 당사국 총회에 홀로 날아가 참가국들의 허를 찌르는 1인 특공대 노릇을 했던 경험을 자랑스럽게 떠들어댔다. 2010년 자신의 자녀들이 앨 고어의 주장이 거짓임을 입증하기 위해 워싱턴의 집 앞에 이글루를 지었다며 사진도 보여줬다. 그는 청중들이 모두 떠나간 뒤 필자에게 말했다.
"저는 모든 사람을 사랑합니다. 고어와 저는 좋은 친구사이였고, 지금도 그를 친구로 여겨요. 그것이 저와 제 경쟁자들 사이의 차이점이죠."
그의 강경한 믿음과는 달리 미국의 다른 지역들처럼 인호프 의원의 지역구인 오클라호마주에서도 매년 수은주가 올라가면서 인간이 촉발한 기후변화를 믿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크로즈닉 교수에 따르면 그를 뽑아준 유권자 중 압도적 다수가 여기에 속한다.
그래서 필자는 그의 고향에서 일어난 기후변화의 징후에 대해 질문하지 않을 수 없었다. 작년 여름 오클라호마의 평균 기온은 30.5℃로 기상 관측이 실시된 이래 가장 더웠고, 작년 봄의 가뭄은 수백명의 농부가 가축에게 줄 물이 없다면서 키우기를 포기했을 만큼 지독했으며, 토네이도 시즌은 유례없이 길었기 때문이다. 인호프 의원은 손사래를 쳤다.
"지구온난화 같은 것은 일절 없다니까요. 지구는 사실 조금씩 추워지고 있어요. 그 증거는 얼마든지 있습니다."
필자가 만난 과학자 중 대부분은 인호프 의원이 지목한 17명의 과학자의 가장 지독한 괴롭힘과 협박에 시달렸다고 입을 모았었다. 하지만 당사자의 생각은 전혀 달랐다.
"저는 그 사람들을 조사하라고 요청하거나 지시한 적이 없어요."
그러면서 그는 언론담당자를 바라봤다. "내가 그런 적이 있나?"
필자는 인호프 의원의 표정을 살폈다. 정말 모르는 듯 했다. 하지만 언론담당이 고개를 끄덕이자 이렇게 말했다.
"좋아요. 아마도 기후 게이트가 벌어진 직후에 조사의 필요성을 제기했을 겁니다."
필자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언젠가는 과학이 인간이 유발한 기후 변화에 대해 인호프 의원 자신도 납득할 수 있을 정도의 증거를 내놓을 수 있을 것 같은지를 묻는 질문이었다. 그는 짜증 섞인 표정으로 시계를 쳐다보며 답했다.
"당신 같은 사람들에게 그런 질문을 받을 때마다 저는 이렇게 말해요. 이미 그럴 거라고 믿고 있으면서 뭐하러 묻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