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증권리서치는 이런 추세에 힘입어 국내 전자책 단말기 시장 규모가 올해 456억원에서 2013년 2,967억원, 2015년 3,599억원으로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기도 했다.
아직은 가깝고도 먼 듯 느껴지는 전자책. 정말 우리 삶 속 깊숙이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자료제공: 한국산업기술진흥원 기술과 미래
직장인 홍지연 씨는 지하철 안에서도, 카페 안에서도 책을 놓지 않는다. 해외여행을 가는 비행기 안에서도 그녀의 독서는 계속된다. 시간이나 장소에 따라 다양한 책을 번갈아가며 읽지만 그녀의 가방은 가볍다. 바로 전자책(e북) 덕분이다.
손안의 도서관으로 불리는 전자책이 스마트폰과 태블릿 PC의 보급 확대에 발맞춰 젊은 층을 중심으로 새로운 독서 문화를 형성하며 빠르게 자리잡고 있다. 올 1월 교보문고와 아이리버가 손잡고 출시한 전자책 단말기 '스토리 K' 는 출시 10일 만에 초기 물량 4,000대가 완판 되기도 했다. 9만9,000원이라는 부담 없는(?) 가격과 게임, 인터넷 등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모두 없애고 전자책 단말기 기능에 집중한 디버전스 전략이 소비자들에게 적중했다는 평가다.
디버전스 (divergence) - 다양한 기능이 하나의 기기에 융합되는 컨버전스와 반대되는 개념으로 기기 본연의 기능에 충실한 것을 말한다. 디버전스 제품들은 기능이 단순해 사용편의성이 뛰어나고, 가격이 저렴하다는 게 특징이다.
준비는 끝났다
이처럼 단말기 보급이 늘어나면서 전자책 시장도 급성장하고 있다. 한국전자출판협회와 문화 체육관광부 자료에 의하면 2010년 1,975억원 규모였던 국내 전자책 시장은 지난해 2,891억 원으로 46% 이상 성장했다. 출판업계도 올해 전자책 출시 본격화를 선언하며 콘텐츠 개발과 단말기 사업에 속속 뛰어들고 있다.
미국은 이미 전자책이 종이책 시장의 10% 규모를 형성한다. 2007년 등장한 아마존의 '킨들'을 시작으로 전자책 전용 단말기들이 속속 출시되며 세계에서 가장 앞서 전자책 시장이 형성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국내는 2009년경 전자책 단말기가 선보이기는 했지만 30〜40만원대에 이르는 값비싼 가격으로 인해 소비자들로부터 외면당했다. 또한 볼 만한 콘텐츠도 거의 없어 얼리어답터의 시선 정도만 끌었을 뿐이다.
특히 화려한 컬러와 다양한 동영상 기능으로 무장한 스마트 기기에 반해, 흑백의 전자책 전용 단말기는 경쟁력에 있어서 크게 뒤처지는 느낌이었다.
하지만 전자책 콘텐츠가 급격하게 늘어나고 있고, 단말기 가격이 낮아지면서 시장은 다시금 변화의 조짐을 보이고 있다. 현재 교보문고는 11만여종, 인터파크는 7만여종의 콘텐츠를 공급 중이며 예스24를 비롯한 인터넷 서점과 이동통신사들이 다양한 종류의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업계에 따르면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전자책 단말기는 어느새 약 3만대에 이른다.
전문가들은 시대적 트랜드를 감안할 때 국내 전자책 시장 규모가 앞으로 더욱 커질 것으로 내다본다. 물론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기는 하다. 미국의 경우 비밀번호만 넣으면 전자책을 손쉽게 구매할 수 있는 반면 국내에서는 공인인증서나 휴대전화 인증 등 상대적으로 복잡한 절차를 거쳐야 한다. 또한 단말기 간의 호환성 문제도 전자책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올해 전자책 시장의 전망이 '맑음'이라는데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한다. 이제 전자책 시장의 관전 포인트는 '전자책이 기존 종이책 시장을 대체할 수 있을까'가 아니라, '수천 년을 이어온 종이책의 역사를 전자책이 어떤 모양새로 이어받을 것인가'이다.
2009년부터 지난해까지 국내에서 판매된 전자책 단말기는 어느새 약 3만대에 이른다
1인 출판 시대 성큼
소설가 지망생 이나윤 씨는 오랜 시간 탈고한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다녔지만 번번이 퇴짜를 맞았다. 아무리 열심히 글을 써도 출판사에서 책을 만들어주지 않으면 세상의 빛을 볼 수 없었던 게 기존의 상황이었다. 그러나 나윤 씨는 최근 1인 전자출판에 주목하고 아예 스스로 책을 출판하기로 결정했다.
요즘 아이패드, 갤럭시 탭 등 태블릿 PC용 책과 잡지를 제작하는 업체들은 얼굴에서 웃음을 감추지 못한다. 급격한 제작비 감소 덕분이다. 실제로 전자책 제작을 외주대행시키는 업체의 경우 작년 봄에는 100페이지의 잡지를 만들어 아이패드에 업로드하는 비용으로 약 600 만원이 들었다. 이것이 지난해 가을쯤 400만원대로 떨어졌고 지금은 300만원이면 충분하다. 그래픽 수준과 멀티미디어 효과에 의해 편차가 있기는 해도 전반적인 가격이 급락하고 있다는 건 확실하다.
이는 스티브잡스 효과에 힘입은 바 크다. 애플의 앱스토어가 애플리케이션에 더해 전자책 보급의 장이 되면서 누구나 손쉽게 전자책에 접근할 수 있는 통로가 생겼다. 지리적 한계를 넘어 전 세계인을 대상으로 할 수 있는 거대 판로가 구축된 셈이다. 새로운 성장동력 마련에 고심해 온 출판업계의 관심이 집중되자 그 욕구를 채워줄 수 있는 전자책 제작대행 전문업체들이 속속 등장했고, 이들의 경쟁이 제작비용 하락으로 이어지고 있다.
앱스토어라는 존재는 또 글을 쓰는 작가나 일반 개인에게도 기회가 됐다. 판로가 마련된 이상 굳이 출판사를 거치지 않고도 언제든 직접 출판과 판매가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이른바 1인 출판시대가 열린 것이다.
그러던 중 지난 1월 메가톤급 변혁을 일으킬 수 있는 폭탄이 떨어졌다. 애플이 개인용 전자책프로그램 '아이북스 오서(iBooks Author)'를 무료로 내놓은 것. 한글 서체가 고딕체만 지원되는 등 기존 외주제작업체의 플랫폼에 비해 만족스러운 수준은 아니지만 공짜라는 막강한 파괴력을 바탕으로 1인 출판을 주류 트렌드로 부상시킬 파괴력을 지닌 존재임은 틀림없어 보인다. 또한 장기적 관점에서 전자책 제작비용의 무한하락을 이끌어낼 요소이기도 하다.
애플의 선제공격에 SK플래닛도 올 2월 안드로이드 기기용 웹기반 전자책 저작 툴을 공개했다. T스토어를 운영하는 SK플래닛은 전자책 전용 웹사이트 '트레이드 올 북스'에서 작가들의 작품을 자유롭게 제작·판매할 수 있게 도와주고 있다. 이미 T스토어에는 약 8만종의 전자책이 등록돼 있으며 누적 거래금액이 1,000억원에 달한다.
기업의 시대, 개인의 시대
이 같은 트렌드의 반작용으로 타격을 입을 수 있는 곳도 생겼다. 기존에 1인 출판서비스를 해주던 교보문고의 '퍼플'과 전자책 오픈마켓인 '유페이퍼', '북씨' 등이 그렇다. 이들은 자칫 중장기적으로 매출 저하가 나타날 지도 모른다.
미국의 경우만 해도 기존 업체들의 발 빠른 대처가 전개 중이다. 아이북스 오서의 최대 피해자라 할 수 있는 아마존의 '킨들 다이렉트 퍼블리싱', 반즈앤노블즈의 '퍼블릿' 등이 더 많은 저자들을 확보하기 위해 파격적 조건을 내걸고 있다. 일례로 아마존은 작년 가을 작가에게 지급하는 인세를 35%에서 70%로 대폭 인상한 바 있다.
물론 이는 기업 중심의 얘기일 뿐 작가 입장에서는 제작·유통·소비라는 3박자를 한눈에 파악하며 저작물을 만들 수 있고, 소비자 역시 저렴하고 손쉽게 많은 작가들의 다양한 저작물을 접할 수 있다는 점에서 바람직한 기술적 진보가 아닐 수 없다.
1인 전자책 시장은 1990년대 중반의 초창기 인터넷 시장과 닮았다. 당시 인터넷 홈페이지 는 글씨와 그림 몇 개로 구성됐지만 제작에 1억원 정도가 들었다. 지금은 약 500만원이면 온갖 멀티미디어적 효과를 구현한 화려하고 다양한 기능의 홈페이지를 가질 수 있다.
전자책도 이와 마찬가지로 제작비용 하락이 불을 보듯 뻔하다. 단지 인터넷 시장과 다른 점은 1990년대가 '기업의 시대'였다면 지금은 '개인의 시대'라는 사실이다. 또한 인터넷망은 구축을 위해 정부가 나섰어야 했을 만큼 막대한 투자가 요구됐지만 전자책은 인터넷이라는 토대 위에서 애플과 SK플래닛 등이 이미 완벽한 시장을 만들어 놓았다.
1인 전자책 시장이 한 번 탄력을 받으면 상상을 초월할 수 없는 빠른 속도로 퍼질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견해가 나오는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다. 과연 전자책이 스마트폰과 유사한 혁신 2012적 충격을 다시 한번 일으킬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되지 않을 수 없다.
고품질의 전자책 전용 콘텐츠들이 다수 확보되지 않으면 전자책은 디바이스 시장의 확대에 맞춰 기생해야 할뿐 스스로 시장 확대를 주도하는 자가발전은 요원해진다.
넘어야 할 산
그러나 전자책이 마냥 장밋빛인 것만은 아니다. 그간의 씨앗이 탐스러운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해결해야할 과제들이 적지 않다.그중에서도 전자책을 구매하고, 읽는 데 있어 사용자들이 불편함을 느끼고 있다는 게 가장 심각하다. 이는 단순히 소비자들의 디바이스와 뷰어 차원의 얘기가 아니다. 전자책 관련 시스템 환경이 가진 한계를 말한다.
구체적으로 말해 전자책은 그 특성상 아이패드와 같은 태블릿 PC나 킨들과 같은 전용 단말기 사용자들이 주 고객이다. 스마트폰으로도 구입과 독서가 가능하지만 화면의 크기가 너무 작아 독서에 집중하기 어렵다는 점에서 활용도가 낮다. 그런데 아이패드, 안드로이드 기기, 킨들 등은 저마다 독자적으로 콘텐츠를 확대하고 있으며 플랫폼 간에는 콘텐츠가 공유되지 않는다. 아이패드에서 구입한 전자책을 갤럭시 탭이나 킨들로는 볼 수 없다는 뜻이다.
문제는 스마트 디바이스의 교체주기가 짧은 편이라는 것. 지금은 갤럭시 탭을 사용하고 있지만 내년에는 아이패드4로 갈아타 있을 수 도 있다. 이렇게 디바이스가 교체될 경우 기존 전자책은 무용지물이 되며, 이는 종이책 소비자들이 전자책으로 쉽게 넘어오지 못하도록 하는 걸림돌이 되고 있다. 다시 말해 플랫폼 경쟁에서 절대적 비중을 점하는 강자가 나타나거나 플랫폼 상호간 콘텐츠 공유가 가능해지지 않는다면 전자책 시장의 활성화는 크게 저해될 개연성이 높다.
전용 콘텐츠 개발도 시급
킬러콘텐츠의 부재도 무시할 수 없는 걸림돌의 하나로 꼽힌다. 양적으로는 수년 전과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증대됐지만 질적 성장은 극히 미미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의 전자책 콘텐츠는 이미 출시된 종이책의 내용을 전자책으로 변환시킨 것이 절대 다수다. 전자책을 읽을 수 있는 디바이스가 없는 사람들은 굳이 디바이스를 새로 구입해야하는 부담을 가질 필요 없이 그냥 종이책을 읽으면 되는 것이다.
이를 감안할 때 소비자들에게 신선하게 다가갈 만한 고품질의 전자책 전용 콘텐츠들이 다수 확보되지 않으면 전자책은 디바이스 시장의 확대에 맞춰 기생해야 할뿐 스스로 시장 확대를 주도하는 자가발전은 요원해진다.
사실 현재의 출판사들은 종이책 중심의 고정관념을 갖고 있어 전자책에 최적화된 콘텐츠 생산이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 책 분량을 정할 때 보통 200페이지 이상 돼야 책으로 여기고, 최소 수천부는 팔릴 수 있어야만 출간의 기회를 주는 것이 그런 고정관념의 예다.
하지만 전자책은 생산 비용이 종이책에 비해 월등히 낮아 한층 다양한 시도가 가능하다. 독자가 전자책에 기대하는 콘텐츠도 바로 그러한 다양성의 산물일 것이다.
게다가 요즘 젊은이들은 15분 이상 집중해서 글을 읽지 못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활자는 디지털 콘텐츠의 아킬레스 건에 해당한다. 그래서 인기 있는 전자책 콘텐츠 개발은 생각처럼 쉽지 않다.
그럼에도 콘텐츠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이전되고, 그것이 다시 모바일화 되는 사이클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막을 수 없는 시대적 흐름이다. 속도가 느릴지는 몰라도 책 또한 같은 방향으로 진화할 수밖에 없다.
결론적으로 전자책 시장의 잠재력은 무궁 무진하다. 아직은 그 진가가 100% 발휘되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최근 전자책을 위해 기획된 다양한 출간물들이 등장하고 있는 만큼 전자책이 또 다른 독서 문화를 창출할 날도 그리 멀지는 않을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