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원자력의 생산과 이용에 있어 최우선은 단연 안전성의 확보다. 그리고 그 최전선에 원자력 안전규제 전문기관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이 있다. 원전과 방사성동위원소 사용시설 등의 안전을 책임지고 있는 KINS의 정기검사 현장을 쫓아가봤다.
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원자력발전소 정기검사는 원자로 시설이 처음 허가받은 상태대로 성능이 유지되고 있는지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다. 원자력 시설은 방사선, 사용 압력 등 다양한 운전 환경 때문에 성능이 저하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주로 핵연료 교체를 위해 운전이 정지되는 기간 동안 정기검사를 수행한다. 이때 KINS의 검사를 통과하지 못하면 원전을 재가동할 수 없다.
이와 관련 최근 시설용량 100만㎾급 신고리 1호기에 대한 정기검사가 이뤄졌다. 신고리 1호기는 국내에서 최초로 건설된 개선형 한국 표준형 원전(OPR1000)으로 지난 2011년 2월 28일 상업운전을 개시한 이래 첫 주기(309일) 동안 한 번의 고장 없이 안전운전이 이뤄지고 있는 상태다.
정기검사를 총괄 책임지고 있는 정대욱 PM은 "검사에 소요되는 기간은 총 54일"이라며 "발전소에 따라 다르지만 신고리 1호기는 상업 운전 돌입 이후 첫 번째 검사라는 점에서 검사 항목이 많고 기간도 꽤 긴 편"이라고 밝혔다.
그는 또 "검사 기간 동안 원자력 시설의 성능과 운영기술 능력에 관해 총 61개 항목의 점검이 수행된다"고 설명했다.
이를 위해 KINS는 검사 대상 시설별로 팀을 꾸려 검사반장, 현장 검사원, 본부 검사원 등 총 47명의 검사원을 투입했다. 이중 실제 검사를 담당하는 현장 검사원들은 검사 기간 동안 자기가 맡은 분야의 철저한 검사를 위해 여러 차례 현장에 투입되는 게 상례다. 정 PM에 의하면 가동 중인 원전에 대한 정기검사는 기본적으로 현장에서의 서류검사, 현장 확인 검사, 면담검사가 행해진다.
원전의 시설별로 해당 검사원들이 수행하는 원전 성능검사는 원자로 본체, 냉각계통, 계측 및 제어계통, 핵연료 물질의 취급 시설과 저장시설, 방사성폐기물 폐기시설, 방사선 관리시설, 원자로 격납시설, 원자로 안전계통, 전력계통, 동력변환계통 및 기타 원자로 안전에 관계되는 시설 등 총 11개 분야로 구분해 진행된다. 또한 비상운전절차서, 인적요소, 운전경험 반영에 대한 점검 등 운영기술능력 분야도 검사의 대상이다.
정 PM은 "원전 운영 중 발생했던 사고의 후속조치 관련 사항 등 운전 이력, 최근 동향, 주요기기의 설비 변경, 보수 교체 내용에 따라 중 점검사항목이 정해진다"고 전했다.
SCENE 1 수검자 면담검사
검사원들은 현장에서 수감자를 만나 서류 검사를 통해 절차서의 유무를 확인하는 한편 그 적합성을 검토한다. 또한 각종 시험 점검 결과와 운전 이력 등을 평가한다.
PM에 따르면 검사원들은 정기검사 중 현장에서 겪는 가장 큰 어려움 중 하나로 수검자와의 면담검사를 꼽는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해야 하는데다 검사원의 직분상 문제를 찾아내는데 주력하다 보니 이에 대응하는 수검자들과 불편한 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기 때문이란다.
"면담검사를 하다보면 수검자가 지적사항에 대해 인정을 못하는 사례가 종종 발생해요. 서로 얼굴을 붉히면서 큰 소리가 나기도 합니다. 하지만 일을 풀어나가야 하는지라 매번 화를 내기도 어렵죠. 대개는 서류검토 후 다시 이야기를 나누는 방법으로 대응하는 편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다툼을 회피하기 위해 얼렁설렁 넘어가는 일은 절대로 없다. 원전의 안전에 문제가 되는 것이 없는지 찾으러 온 것이기 때문에 매몰차게 몰아붙이기도 하고, 본의 아니게 싫은 소리를 하기도 한다.
"수검자들이 내세우는 현장 논리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설득의 기술이 필요합니다."
SCENE 2 감시계통·측정기계 점검
방사선 관리시설 검사원은 방사선 방호를 위해 수행하는 프로그램과 방호 활동이 잘 수행되고 있는지를 검사한다. 작업 및 오염관리의 적절한 수행 여부를 확인하고 방사선 감시계통과 방사선 측정기기의 건전성을 확인하는 것. 원전 출입자들이 반드시 지참해야 하는 방사선량계 등 방사선 측정기기의 건전성도 검사항목에 속한다.
다른 검사 현장의 경우 안전모 하나로 준비가 끝나지만 이곳의 검사원들은 방사선에 노출될 수 있는 만큼 현장에 출입하기 위한 사전절차부터 대단히 까다롭다. 온몸을 감싸는 방호복을 입고, 손과 발에는 팔꿈치와 무릎까지 올라오는 장갑과 양말을 착용해야 한다. 또 방사선 피폭 여부를 확인할 수 있는 방사선량계를 부착하고 전용 신발을 신어야 한다.
정규환 방사선안전평가실 연구원은 "방사선 안전에 관한 사항은 명확히 주지하고 있는 때문에 그에 대한 어려움은 크지 않다"며 "다만 점검을 위해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야 하는 등 검사 지점에 접근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는 게 애로사항이라면 애로사항이다"고 말했다. 정 연구원은 또 "작업장이 넓어 점검할 부분이 많은 데다 짧은 시간에 집중해서 살펴봐야 해 늘 긴장을 놓치지 않고 검사를 수행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SCENE 3 격납 건물 종합 누설률 시험
격납건물은 사고 발생 시 방사성 물질이 외부로 유출되지 않도록 설계돼야 한다.
검사자들은 이런 격납건물의 종합 누설률 시험을 통해 설계기준사고가 발생했을 때의 상황을 가상으로 설정, 격납건물의 차폐 능력을 검증한다.
그 과정은 이렇다. 가압장치를 이용해 인위적으로 격납건물의 내부압력을 설계기준사고 시 최대압력으로 높인다. 이후 건물 내 압력이 일정해지면 24시간 동안 누설여부를 검사하게 된다. 이때 제한치 이상의 누설률이 측정되면 격납건물의 기밀 건전성에 문제가 있는 것이다. 본 시험을 마친 뒤에는 결과를 검증하기 위해 재차 확인시험이 수행된다.
김도형 리스크평가실 연구원에 의하면 시험을 위해서는 격납건물의 모든 관통부를 잠궈야 하기 때문에 검사기간은 준비기간을 포함해 꼬박 일주일, 보통 100시간이 소요된다. 이때 가압 전 준비상태, 본시험 완료 후 종결조건 충족 여부 확인, 확인시험 등은 반드시 검사원의 입회하에 검사가 이뤄진다.
"시험단계가 여러 단계로 나뉘어 있어 다음 단계로 넘어갈 때 정확한 판단이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자칫 잘못된 판단 하에 시험이 진행되면 결과의 신뢰성이 사라져 모든 시험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죠."
5년마다 주기적으로 수행되는 이 시험은 가동 중인 원전의 정기검사 중 가장 큰 시험으로, 이번 신고리 1호기의 경우 담당검사원이 새벽 4시에 입회 검사를 수행했다.
설계기준사고 (design basis accident) - 원자력 시설은 공중의 안전을 위해 발생 가능성이 희박한 사고에 대해서도 안전한 수습이 가능하도록 구조·계통·기기를 설계하는데 이 같은 설계를 위해 상정된 일련의 가상사고를 뜻한다.
SCENE 4 소화수 펌프 성능 검사
화재방화 계통에서는 소화수 공급 설비, 옥내외 소화전 설비, 살수 및 스프링클러 설비, 가스계 소화설비, 화재감지·경보설비 등이 관련기술지침에 따라 이행되고 있는지가 검사된다.
이상규 계통성능실 연구원은 "화재 발생 시 소화수가 공급되려면 소화수 펌프가 원활히 작동돼야 하므로 설정된 압력조건에서 펌프의 성능을 확인한다"며 "3대의 주 소화수 펌프 중 다량의 소화수 누출이 일어나는 것은 없는지, 1차 펌프의 가동 실패 등에 의해 소화수의 압력이 떨어질 경우 다른 펌프가 백업해주는지와 같은 사항을 살핀다"고 설명했다.
물론 검사를 위해 실제 화재를 일으킬 수는 없으므로 모의신호를 통해 정해진 압력 이하로 압력을 낮추고 각 펌프의 가동을 살펴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한편 원전의 소화수 펌프는 전원 상실 사태에 대비해 전기 구동 펌프 외에 디젤 연료 펌프 등을 추가로 갖추고 있다.
SCENE 5 운영기술능력 관리점검
정기검사 중 수행하는 대부분의 검사항목은 발전소 시설의 성능과 관련돼 있다. 반면 운영기술능력 분야는 발전소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기술 능력이 검사대상이다. 비상상황 발생 시 이를 완화하거나 발전소를 안전한 상태로 유지하기 위한 비상운전절차서의 유지 관리가 적합한지, 인적 오류 발생의 최소화를 위한 운영 및 관리가 적합하게 유지되는지를 확인한다.
정규환 연구원은 "인적요소의 관리점검은 발전소를 운영하는 사람들과 기계와의 관계성에서 출발한다"며 "이는 발전소 운영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적 실수를 최소화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라고 강조했다.
SCENE 6 운영기술능력 관리점검
신고리 1호기는 작년 9월 시운전 중 원자로 건물의 살수 격리 밸브가 비정상적으로 개방돼 원자로 냉각재가 원자로 건물 내부로 살수되는 상황이 발생했다. 이 때문에 건물 내부에 존재 가능한 살수 잔존물에 대한 점검과 부식 영향 평가 등의 조치가 필요했다.
이를 위해 검사원들은 이번 정기검사를 통해 주요 기기와 배관, 지지대 등에 대한 점검이 적절히 수행됐는지를 검증했다. 특히 이 과정에서 원자로 헤드 상부 구조물 내부의 살수 잔존물 유입 등을 알아보기 위해 분해 점검을 실시했다. 실제로 점검 결과, 원자로 항부 헤드와 증기발생기 등에서 살수 잔존물의 흔적이 발견됐고, 시정조치를 완료했다.
SCENE 7 도출된 문제점 처리
정기검사를 수행하다보면 관련요건에 미흡한 사안이나 개선점이 발견되기 마련이다. 이렇게 검사원들에 의해 도출된 문제점들은 지적, 권고, 현장조치 사항 등으로 나뉘어 처리된다. 지적사항이 발생한 경우 검사원은 해당 전문실장과 논의를 거쳐 사업자에게 통보를 한다.
정 PM은 "수검자들은 검사원의 지적 내용에 대해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에 꼼꼼히 살펴보는 과정이 필요하다"면서 "정기검사 결과, 운전에 문제가 없음을 인정하는 임계허용을 받지 못하면 원전을 다시 가동할 수 없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KINS는 검사원들의 검사 결과를 최종적으로 취합하는 임계전 회의를 통해 검사 결과를 종합 평가하며 안전위원회의 허가를 거쳐 발전소가 재가동에 돌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