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정보기업 J.D. 파워가 지난 6월 발표한 고객만족도 조사결과를 보면 자동차 구매자들을 가장 짜증스럽게 하는 문제는 소음도, 가속 성능도 아니었다. 아니 운전에 직접적으로 관련된 것 자체가 아니었다. 1위는 바로 미흡하기 짝이 없는 음성인식 기능이 차지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운전자들은 최신 자동차라면 당연히 첨단정보기술을 갖춰야 한다고 여긴다. 때문에 자동차는 그 기대에 걸맞은 환경을 제공해줘야 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자동차 제조사들은 컴퓨터 기술의 진보를 따라잡지 못했다. 애플이 아이폰의 새 모델을 내놓는 데는 1년이면 충분하지만 GM이 신차를 위해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를 개량하려면 몇 년이 걸렸다.
그런데 이제 상황이 바뀌고 있다. 자동차 기업이 스마트폰 앱을 개발하는 프로그래머들에게 대부분의 소프트웨어 개발을 맡기고 있는 덕분이다. 이미 USB 케이블로 휴대폰과 자동차를 연결, 휴대폰 속 음악이나 전화번호부를 차량의 컴퓨터에 업로드할 수 있다. 이 점에서 BMW그룹 기술사무국 소속 엔지니어인 데이비드 블룸은 앞으로 스마트폰이 자동차의 컴퓨터로써 각종 응용프로그램들을 실행하는 소프트웨어들을 호스팅하게 될 것으로 내다본다.
"스마트폰은 고객이 자동차로 가져온 강력한 공짜 컴퓨터라고 할 수 있죠."
특히 스마트폰은 내비게이션 스크린, 계기판, 음성알림 등의 요소들을 최적화할 수 있다. 당연히 그 과정도 스마트폰 업데이트만큼이나 용이하게 말이다.
다만 운전자가 과도한 디지털 정보에 노출될 경우 주의력이 분산되면서 사고를 낼 우려가 있다. 이를 막기 위해 엔지니어들은 차량과 운전자의 소통 방식 자체를 바꾸려 하고 있다. 예를 들어 올해 초 아우디가 내놓은 증강현실 헤드업디스플레이(HUD)는 차량 속도, 제한 속도, 내비게이션 정보 등을 앞유리에 투사해 전방을 주시하며 관련정보를 취득할 수 있게 해준다.
촉각을 통한 정보 전달도 가시화되고 있다. 2013년 캐딜락 XTS 세단은 운전석에 진동 모터를 삽입, 사각지대에서의 차량 접근 등 위험요소를 진동으로 알려준다.
카네기 멜론 대학과 AT&T 연구소의 연구자들도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지시를 진동으로 전달하는 핸들을 설계하고 있다. 자동차를 선회시켜야 할 때는 20개의 작은 진동모터가 진동수를 높여가며 시계방향 또는 반시계 방향으로 진동, 운전자에게 가야 할 방향을 알려주는 식이다. AT&T의 엔지니어 케빈 리에 의하면 인간의 뇌는 이들 개별적인 진동을 합성해 연속적인 하나의 움직임처럼 느낀다고 한다. 연구팀은 현재 자동차 제작사들과 접촉 중이며 이러한 햅틱 핸들이 상용차에 장착될 날을 학수고대하고 있다.
2 콤팩트 내연기관
2025년이면 법률에서 정한 자동차의 표준 연비가 ℓ당 23㎞대로 높아질 전망이다. 때문에 자동차 제조사들은 지금보다 작은 엔진을 개발하고, 터보차저나 전자식 직접연료분사장치 등을 통합해 1ℓ의 연료로 조금이라도 긴 거리를 주행토록 하기 위해 필사적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례로 2012년형 BMW 328i에는 4실린더 터보차저 엔진이 탑재돼 있다. BMW가 1999년 이래 처음으로 사용하는 4실린더 엔진이다. 이 엔진은 기존의 6실린더 엔진보다 연비가 우수한데다 토크도 훨씬 강력하다. 포드 역시 멀지 않은 장래에 피에스타 모델에 3실린더 터보차저 엔진을 장착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그러나 터보차저나 직접연료분사장치만으로는 연비 향상에 한계가 있다. ℓ당40㎞를 넘는 고연비를 달성하려면 엔지니어들은 내연기관 자체를 근본부터 뜯어고쳐야 한다. 그래서 이와 관련한 노력들이 최근 시작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 소재 스퀴데리그룹은 개별 피스톤을 압축과 동력행정에 사용, 연비를 50% 끌어올리는 시제품 엔진을 실험 중에 있으며 미시건 소재 에코모터스는 실린더 속에서 마주보고 있는 두 개의 피스톤이 반대방향으로 움직이는 일명 대향(對向) 피스톤-대향 사이클(OPOC) 엔진을 개발하고 있다. 이 엔진이 완성되면 경차의 경우 연비 42㎞는 무난하다. 에코모터스는 5~7년이면 양산이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3 탄소섬유
강도가 강철의 5배나 돼지만 중량은 3분의 2에 불과한 탄소섬유 강화플라스틱(CFRP)이 레이싱카에 쓰인지도 2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제작에 엄청난 시간과 노동력이 필요한 탓에 일반 차량의 차체 소재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았다. 하지만 최근 생산공정이 효율되며 가격하락이 나타나고 있다.
이에 맞춰 BMW는 내년 CFRP 차체를 가진 최초의 양산형 모델인 'i3' 전기자동차를 시판할 계획이다. '라이프 모듈'이라 불리는 i3의 CFRP 섀시는 중량이 120㎏에 불과하다.
이를 위해 BMW는 1억 달러를 투자, 미국 워싱턴에 탄소섬유 제조를 담당할 BMW 워싱턴 벤처라는 자회사를 세웠다. 여기서는 머리카락 굵기의 10분의 1에 불과한 탄소섬유 필라멘트 5만개를 꼬아 탄소섬유 실을 만든다. 이 실을 독일로 가져와 직조한 뒤 압축해서 액체플라스틱에 적시면 CFRP가 탄생한다. 그리고 단 10분이면 차량용 부품으로 성형된다.
항공우주업계에서 쓰는 탄소섬유 실도 필라멘트 6,000개짜리인 지라 BMW는 기존보다 적은 수의 실로 CFRP를 만들 수 있다. 전체 공정은 여러 시간이 소요되지만 가벼운 중량으로 인해 i3의 육중한 리튬이온 배터리팩 무게를 충분히 감당해낸다. i3가 경쟁모델보다 작고 저렴한 배터리팩으로 160㎞의 주행거리를 지닐 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실제로 닛산 리프의 배터리팩 출력은 24kWh지만 i3는 21kWh로 동등한 주행거리를 달성했다.
BMW는 내년부터 연간 100만개 이상의 탄소섬유 부품을 생산할 방침이다. BMW 워싱턴 벤처의 요르그 폴만 사장은 아직까지 탄소섬유 가격이 알루미늄보다 비싸지만 i3의 대량생산이 본격화되면 알루미늄 수준의 가격경쟁력을 갖출 수 있을 것으로 본다.
"10년 내에 모든 일반 승용차에 탄소섬유 부품이 쓰일 것으로 예상돼요. 그때는 속도, 연비, 내충격성 등에서 월등한 개선이 이뤄질 겁니다."
4 차량 간 커뮤니케이션
현재의 고급 자동차들은 차선 이탈을 막아주고, 앞차와 너무 근접하면 알아서 제동을 해주며, 졸음운전 여부도 파악해 깨워준다. 이런 기술들의 궁극적 지향점은 자동차가 알아서 목적지까지 데려다주는 자율주행이다. 이를 구현하려면 가장 먼저 도로 위의 다른 차량들이 언제, 무엇을 할지 정확히 알고 반응해야 한다. 차량 간의 커뮤니케이션이 이뤄져야 한다는 얘기다.
이 점에서 유럽연합이 지원하는 사르트르(SARTRE) 프로젝트의 성과를 주목할 만하다. 지난 5월 연구팀은 대형 트레일러 한 대와 3대의 볼보 승용차로 이뤄진 차량을 스페인의 고속도로에 풀어놓았다. 이들은 6m 간격으로 일렬로 늘어서서 시속 80㎞로 도로를 달렸다. 그런데 놀랍게도 4대 중 운전자가 운전을 하고 있는 차량은 선두에 선 트레일러 하나뿐이었다.
이 프로젝트의 목표는 열차를 모방한 반(半) 자율주행 시스템의 개발. 트럭, 버스 등 프로페셔널 운전자의 차량을 다른 차량들이 자율주행 형태로 적정거리를 유지하며 뒤쫓는 메커니즘이다. 일단 대열에 합류하기만 하면 후미 차량의 운전자는 아무것도 할 필요가 없다. 핸들과 액셀러레이터, 브레이크에서 손과 발을 떼는 것은 물론 커피를 마시며 신문을 보거나 아예 누워서 잠을 자도 무방하다.
수석 엔지니어인 에릭 찬 박사에 따르면 이 같은 일렬주행 방식은 차량의 공기저항을 줄이고, 경제속도 주행을 꾀할 수 있어 연비 향상과 20%의 배기가스 배출 저감 효과까지 발휘한다.
5월 실험에 투입됐던 자동차는 볼보의 고급 양산형 모델에 채용된 것과 동일한 카메라와 레이더, 레이저 레이더 센서로 차선과 다른 차량들을 감지한다. 연구팀이 개발한 별도의 소프트웨어가 각 센서들의 데이터를 취합하고, 그에 맞춰 프로세서가 차량 전체를 제어하는 식이다. 또한 와이파이 45안테나를 통해 다른 차량들과 서로의 데이터를 교환한다.
특히 사르트르 프로젝트팀은 이 모든 기술들이 지금 당장이라도 실용화 가능하다는 사실을 강조한다. 앞으로 넘어야할 최대 장벽은 법적, 심리적 문제다. 교통당국이 자율주행 차량의 운행을 허가하는 법률을 제정해야하고, 자율주행 중 일어난 사고의 귀책사유도 명확히 해야 한다. 무엇보다 운전자들이 사르트르 시스템의 안전성을 받아들여야 한다. 연구팀은 이들 장애물이 모두 치워지려면 앞으로 10년은 족히 걸리 것으로 보고 있다.
[2012년 5월호 '칙칙폭폭 자율주행자동차' 기사 참조]
5 초고용량 축전기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잔량은 집 주변에서 서행 운전할 때는 예측 가능한 속도로 천천히 소진된다. 하지만 수시로 급가속을 하는 고속도로에서는 소진 속도가 빠르고 불규칙적이어서 언제 어디서 재충전을 해야 할지의 판단이 어렵다.
배터리와 초고용량 축전기를 결합하면 이 문제가 해결된다. 일반 배터리와 달리 초고용량 축전기는 다공성 활성탄소로 코팅된 두 개의 전극 사이에 전자장을 형성, 그 속에 전력을 저장한다. 때문에 콘센트에서 나온 전력을 즉시 저장하고, 방전 속도로 매우 빠르다. 전기자동차의 배터리 충전시간 단축과 가속력 증대를 꾀할 수 있는 것이다.
단지 현존 최고 수준의 초고용량 축전기도 축전량이 동일 크기 리튬이온배터리의 단 5%에 지나지 않는다. 이 정도로는 전기차 구동이 불가하다. 하지만 보조동력이라면 얘기가 다르다.
푸조 등 완성차메이커들은 현재 제동 시의 마찰열을 전기로 변환해 저장하는 회생제동시스템(RBS)이나 정차 시 엔진시동을 꺼서 연료를 아껴주는 시작-정지시스템에 초고용량 축전지 채용을 시험 중이다. 이것이 성공하면 배터리에 무리를 주는 임무를 초고용량 축전지에 넘겨주는 방안을 모색하게 된다. 이와 관련 MIT 전기공학과 조엘 쉰달 박사는 탄소나노튜브를 활용한 초고용량 축전기의 성능 제고 방안을 연구하고 있다.
"가장 좋은 것은 하이브리드 방식입니다. 전체 전력 저장량에 최적화된 배터리와 가속 시 필요한 최대 전력을 공급을 이뤄줄 초고용량 축전기를 함께 탑재하는 거죠."
연구자들은 또 전극의 소재를 분자 단위로 개량, 더 많은 전력 저장이 가능한 초고용량 축전기를 개발 중이다. 이런 노력에 의해 향후 초고용량 축전기가 리튬이온 배터리의 축전량을 넘어서게 되면 전기차의 아킬레스건으로 꼽히는 느린 충전시간 문제가 사라진다. 지금은 아무리 빨라도 30분이 소요되지만 이때는 단 몇 분 만에 충전을 끝낼 수 있다.
REPORTED AND WRITTEN BY JOSH DEAN, SETH FLETCHER, SETH PORGES ABD LAWRENCE ULRICH
ILLUSTRATIONS BY Graham Murdo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