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율주행자동차나 무인전투기, 휴머노이드 등 첨단과학기술의 산물들과도 우리보다 수십 년은 앞서서 만났다. SF 영화를 놓고 미래를 예언하는 용한 점쟁이라 표현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과거의 미래에서 현재의 현실이 된 인기 SF 영화 속 기술들을 만나보자.
이동훈 과학칼럼니스트 enitel@hanmail.net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로봇 택시
영화: 토탈리콜 (1990년)
현실: 투겟데어 PRT (Personal Rapid Transport)
최근 리메이크되며 화제를 모으고 있는 1990년작 토탈리콜. 이 영화를 봤다면 주인공인 아놀드 슈왈제네거가 화성에서 악당들을 피해 로봇이 운전하는 택시에 올라탄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당시 이 로봇택시는 상상에서나 가능한 존재였다. 하지만 22년이 지난 지금 아랍에미리트(UAE) 아부다비의 외곽에 조성 중인 신도시 마스다르시티에 가면 그런 택시를 실제로 탈 수 있다. 네덜란드 기업 투겟데어(2GetThere)가 개발한 근거리 이동용 개인 궤도 자동차 'PRT'가 그 주인공.
태양광 발전을 통해 생산된 전기를 동력원 삼아 궤도를 따라 움직이는 PRT는 이미 10대가 도입돼 월 2만5,000여명의 승객들을 목적지로 실어 나르고 있다.
2016년으로 예정된 마스다르시티의 건설이 완료되면 총 3,000대가 85개 정류장 사이를 하루 13만 가량 운행하게 된다.
PRT에는 당연히 인간 운전자가 없다. 승객이 행선지 인근의 정류장을 입력하면 알아서 그곳까지 논스톱으로 데려다준다. 투겟데어는 이동시간이 최대 10분을 넘지 않도록 정류장의 위치를 선별 배치할 계획이다.
최대 시속은 40㎞며 4명의 성인과 어린이 2명이 동시에 탑승할 수 있다. 현재는 하루 18시간만 운행하지만 궁극적으로는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용될 예정이다.
홀로그램 디스플레이
영화: 어벤저스 (2012년)
현실: BMW 3시리즈 헤드업디스플레이
영화 어벤져스에 등장하는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는 자신의 집 지하에 마련된 연구실에서 홀로그램 디스플레이로 첨단 기술을 개발한다. 텍스트와 그래픽, 설계도, 동영상 등도 모두 이를 통해 확인한다.
현재 세계 각국의 연구자들이 이 같은 기술의 구현을 위해 다각적인 노력을 전개하고 있다. 이미 상용화된 것으로 대상을 좁히면 BMW 3시리즈와 5시리즈에 채용된 헤드업디스플레이(HUD)가 가장 유사한 모습을 띠고 있다. 이 장치는 별도의 기기 없이 차량 전면 유리 자체에 현재 속도, 주행 중인 도로의 제한속도, 내비게이션 정보 및 진행 방향 등이 시현된다. 계기판과 내비게이션 화면을 보기 위해 다소간의 위험을 무릅쓰고 고개를 아래로 떨어뜨릴 필요가 없는 것이다.
BMW 외에도 아우디의 A7, A6 등 고급 차종에 이와 유사한 HUD가 탑재돼 있으며 국내 완성차메이커로는 기아자동차가 올 5월 출시된 K9에 내비게이션, 도로표지판, 장애물 접근 알림, 차선이탈 경보시스템(LDWS) 및 차간거리제어장치(SCC) 관련 정보를 표시해주는 HUD를 최초 장착했다.
더 진보된 기술로는 GM 등이 개발 중인 팝업 디스플레이를 들 수 있다. 이 기술은 차량의 대시보드 위에 영상을 홀로그램으로 띄운다. 또한 구글은 미션 임파서블: 고스트 프로토콜에 나온 안경 디스플레이를 현실화할 '구글 글래스 프로젝트'를 가동 중이다.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영화: 레드 플래닛 (2000년)
현실: LG OLED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화성 식민지 개척에 대한 이야기를 다룬 레드 플래닛이 개봉한 2000년만 해도 종이처럼 휘어지는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는 그야말로 꿈의 디스플레이였다.
하지만 연구자들의 지속적인 노력에 힘입어 상용화 시기가 코앞으로 다가왔다.
삼성모바일디스플레이, LG디스플레이, 소니 등 유수의 기업들과 연구소들이 원천기술을 확보하고 있으며 지난 6월 코닝은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위한 플렉시블 유리
'윌로우 글라스 (Willow Glass)'를 발표하기도 했다.
주지할 만한 사실은 디스플레이 강국이라는 명성답게 국내 기업들이 세계 시장을 선도하고 있다는 점이다. 삼성과 LG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를 활용한 플렉시블 디스플레이 개발에 주력하고 있는데 이미 시험생산라인을 가동 중에 있고, 올해 말 또는 내년을 기해 양산형 제품을 내놓을 전망이다.
LG디스플레이의 경우 파주공장에서 내년부터 10인치(25.4㎝) 태블릿 PC용 패널을 겨냥한 3.5세대(730×460㎜) 플렉시블 OLED를 생산할 것으로 알려져 있다. 미국 현지에서는 애플이 2013년형 아이폰에 플렉시블 디스플레이를 채용할 것이라는 설도 들리는 상태다.
물론 초기 제품들은 영화에서처럼 완전히 접거나 둘둘 말아서 휴대할 수 있는 수준에는 미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실시간 매핑 공
영화: 프로메테우스 (2012년)
현실: 구글 스트리트 뷰 매핑카
영화 프로메테우스에는 매우 신선한 미래기술이 하나 등장한다. 우주선 승무원들이 고대 외계인의 동굴로 내려가기 전에 안으로 던져 넣은 공이 그것이다. 이 공은 하늘을 날며 동굴 내부 곳곳을 스캔해 정확한 홀로그램 지도를 만들어낸다. 이것이 실제로 존재한다면 내부 구조를 알 수 없는 미지의 장소를 탐사해야 할 때 더없이 유용할 것이다.
현실로 돌아오면 도시의 거의 모든 장소를 실사로 보여주는 구글의 스트리트 뷰가 우리에게 프로메테우스의 공이 만든 것과 유사한 지도를 선사한다. 그리고 이 지도의 제작에 동원되는 매핑카(mapping car)가 공의 역할을 한다.
이 매핑카들은 도로 곳곳을 구석구석 달리며 파노라마 이미지를 생성한다. 차량 지붕의 카메라가 360도 전방향의 이미지를 담는 동안 GPS는 정확한 위치를 표시한다. 또한 3대의 레이저 스캐너가 차량 전방 50m, 180도 각도의 지도를 매핑한다. 3G, 와이파이 등 무선이동통신 핫스팟을 탐지하는 안테나도 탑재돼 있다.
자동차로 갈 수 없는 곳은 어떻게 할까. 구글은 자전거, 스노모빌, 심지어 짐수레에도 이 매핑장치를 부착해 빈틈없는 매핑을 완성한다. 구글은 또 이 기술로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등 빌딩내부의 지도를 제작하기도 한다.
다만 프로메테우스의 공은 아마도 카메라보다는 인공위성이 극지의 빙원 지형 파악을 위해 사용하는 레이저레이더(laser rader) 시스템을 이용하는 게 아닐까 싶다.
만능 복제장치 리플리케이터
영화: 스타 트렉: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 (1987년)
현실: 오브제 코넥스 (Connex)
SF 영화의 고전이자 최고의 걸작으로 손꼽히는 스타트렉이 TV시리즈로 방영됐을 때 두 번째 시리즈인 더 넥스트 제너레이션에서 환상적인 기계가 시청자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다름 아닌 모든 물질을 분자단위까지 완벽하게 복제해주는 '리플리케이터(replicator)'다.
물론 현실 세계에 이런 기계는 존재치 않는다. 그러나 그에 준하는 기계는 있다. 3D 프린터다. 도면만 있다면 아무리 복잡한 구조의 기하학적 물체라도 동일한 외형을 가진 복제물을 가질 수 있다.
실제로 1984년 찰스 헐이 최초의 3D 프린터를 발명한 이래 그 속도와 정확성은 비약적 발전을 이뤘다. 특히 미국 3D 프린터 전문기업 오브제가 개발한 코넥스의 경우 한 번에 한 가지 재료만을 사용하는 대다수 3D 프린터와 달리 동시에 두 가지 재료로 프린팅이 가능하다. 프린팅을 잠시 멈추고 원료 카트리지를 갈아 끼울 수도 있어 2종의 원료와 9종의 혼합물 등 물건 하나를 제작하면서 총 11종의 수지를 쓸 수 있다. 덕분에 다양한 색상과 질감, 유연성을 지닌 물건이 나온다.
그런데 만일 뜨거운 홍차 한잔을 두 잔으로 만들 수도 있는 완벽한 개념의 리플리케이터가 당신의 손에 쥐어진다면 가장 먼저 무엇을 복제하고 싶은가? 잘은 몰라도 일단은 리플리케이터 자체를 복제해야하지 않을까. 사용 중 고장이라도 나서 못쓰게 되면 미리 복제해놓지 않은 것을 평생 후회하며 살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