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LLUSTRATION BY Ryan Snook
1964년 윤활유 전문가인 영국 센트럴랭커셔대학의 피터 조스트 교수는 매우 까다로운 패러독스를 논하기 위해 영국기계학회(IMechE)에 동료들을 불러 모았다. 그를 고민에 빠뜨린 패러독스는 이랬다.
전 세계 공장의 기계들은 과거보다 좋은 상품을 대량생산하고 있지만 작업 속도를 높이면 쉽사리 고장이 난다. 그 가장 직접적 원인은 마찰이다. 마찰에 의해 윤활유가 소진되면 베어링이 마모되고, 종국에는 금속 부품까지 깨질 수 있다.
그런데 공장주들은 마찰을 줄이기 위해 별다른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다. 단순히 윤활유를 조금 쳐주고, 기계를 잠시 손보는 것이 전부다. 자신의 이익과 직결된 문제인데도 말이다. 도대체 왜 그런 것일까.
조스트 교수와 공학자들은 열띤 토론 끝에 공장주들이 자신에게 뭐가 필요한지를 정확히 모른다는 결론을 내렸다. 윤활작용은 유체역학, 야금학, 물리학 등 많은 학문과 연관돼 있으며, 생산의 모든 측면에 영향을 미치고 있지만 대다수 사람들은 이 사실을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후 조스트 교수는 마찰에 대한 세상의 시각을 바꿔보기로 결심했고 '마찰공학(tribology)'이라는 새로운 학문영역을 만들었다. 당시 그는 마찰공학자들에 의해 영국의 제품생산비용이 연간 5억1,500만 파운드가량 절감될 수 있을 것으로 예견했다.
이 예상은 정확히 들어맞아 오래지않아 마찰공학자들의 연구에 힘입어 전 세계의 생산비용이 줄기 시작했다.
오늘날 이들의 연구는 인공관절의 마찰력 감소에서부터 지구 지각판의 마찰 분석을 통한 지진예측 모델에 이르기까지 전분야로 확산됐다. 대중들의 시각을 바꾸는 노력 역시 계속 진행 중이다.
일례로 작년 3월 미 아르곤국립연구소(ANL)과 핀란드 국가기술연구센터(VTT)의 마찰공학자들은 자동차업계가 윤활첨가제, 표면코팅 등 이미 확인된 기술만 제대로 적용해도 향후 20년 내 차량의 비효율성을 61%나 제거할 수 있다는 내용의 보고서를 발표했다.
그로인한 경제적 이익은 연간 7,000억 달러로 추산됐다. 연구팀은 특히 이것이 연간 3,861억ℓ의 연료소비량 감소 효과도 발휘한다고 강조했다. 이 정도면 매년 9억6,000만톤에 이르는 이산화탄소 배출 저감을 꾀할 수 있다. 마찰력을 줄이는 것만으로 에너지 절약은 물론 지구를 구할 수도 있는 것이다.
그렇다. 마찰공학은 자동차에 더해 항공기, 선박, 심지어 세탁기의 효율성도 높일 수 있다. 이렇게 아낀 석유 1ℓ, 가스 1㎥, 전기 1W는 신음 중인 지구를 되살릴 강력한 치료제가 될 것임에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