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중저가 화장품 시장을 연 미샤가 최근 치열한 전투를 치르고 있다. 후발 주자에 시장 1위 자리를 내준 뒤 7년 만에 잠시 정상에 올랐으나 수성에 실패하고 다시 총공세에 나서는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미샤는 다시 1등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사진 이종철 부국장 bellee@hk.co.kr
미샤는 지난 12월 한 달 내내 세일에 들어갔다. 전 제품을 최대 50%까지 할인했다. 유례가 없는 일이었다. 소비자들은 즐거웠지만 미샤의 속사정은 조금 달랐다. 미샤는 2012년 내내 전쟁을 했다. 시장 1위 자리를 놓고 뺏고 빼앗기는 치열한 고지전을 치르며 고단한 한해를 마감해야 했다.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숍 1위 자리를 두고 미샤는 더페이스샵과 치열한 경쟁을 치러왔다. 미샤와 더페이스샵의 1위 경쟁은 2005년 이후 미샤가 더페이스샵에 밀리면서부터 시작됐다. 2000년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숍 시장을 연 미샤는 2003년 말 출발한 더페이스샵에 발목을 잡혔다. 이후 미샤는 2011년 4분기가 돼서야 간신히 1위를 탈환했다. 7년만의 일이었다. 그러나 더페이스샵이 곧바로 반격에 나서 2012년 들어 미샤는 다시 2위 자리로 밀려났다. 그리고 지금 한 치의 양보 없는 치열한 싸움이 전개되고 있다. 2012년 3분기까지 미샤가 올린 누적매출은 2,858억 원으로 더페이스샵(2,916억 원)에 근소하게 뒤졌다. 하지만 두 회사의 1, 2위 경쟁은 막판까지 예단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2011년에는 미샤가 하반기 영업을 잘해 매출 3,303억 원을 올려 더페이스샵(3,255억 원)을 제친 바 있다.
대부분의 화장품 업체는 상반기보다 하반기 매출이 떨어지는 경향을 보인다. 반면 미샤는 지난 4년 동안 하반기 매출이 더욱 늘었다. 연말 세일이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미샤는 지난 2009년 이후로 해마다 연말에 정기 세일을 진행하긴 했지만 한 달 내내 세일을 한 건 이번이 처음이었다. 연말장사를 마지막 승부수로 삼은 것이다.
익명을 요구한 국내 화장품 제조사 관계자가 말한다. "한 달 동안 세일을 벌인 것은 경쟁업체인 더페이스샵(12일), 네이처리퍼블릭(10일), 더샘(10일) 등 다른 브랜드숍과 비교해도 이례적입니다. 연말에 매출을 바짝 끌어올려 더페이스샵을 따돌리기 위한 노림수겠죠. 세일 기간을 늘려서라도 1등을 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을 겁니다."
실제 미샤는 영업마진은 줄더라도 매출 규모를 키워 1위를 차지하겠다는 전략을 사용해 왔다. 2011년 미샤의 영업이익률은 10.2%였지만 더페이스샵은 16.19%였다. 2012년 상황도 비슷하다. 2012년 3분기까지 실적을 기준으로 봤을 때 미샤의 영업이익률은 12.74%로 더페이스샵(18.44%)에 비해 눈에 띄게 떨어지는 모습이다. 이에 대해 미샤는 "연간 프로모션 계획에 따라 겨울 정기 세일을 시행하는 것입니다. 할인 판매를 해도 워낙 매출 증가율이 높아서 이익은 훨씬 많이 남습니다"라고 설명한다.
상처받은 자존심
1위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싸움 속에서 잡음도 끊이질 않았다. 2012년 11월에는 서울시시의원이 미샤를 공격했다. 서영진 서울시의원은 2008년 서울메트로가 지하철 역사 내 네트워크형 화장품 전문매장 사업자를 선정하는 과정에서 미샤를 운영하는 에이블씨엔씨에 독점권을 주는 특혜계약을 체결했다고 주장했다. 미샤는 즉각 보도자료를 내 "전자 공매시스템인 온비드를 통해 적법한 절차를 거쳐 매장 입찰을 진행했고 60개 매장에 대한 운영권을 낙찰받았다. 그러나 당시 직전 사업자였던 이동통신매장이 독점 운영권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미샤가 낙찰받은 운영권이 독점 운영권으로 간주된 것 뿐"이라며 의혹을 부인했다.
2012년 초엔 미샤가 경쟁업체인 더페이스샵을 보유한 LG생활건강을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했다. 미샤의 광고 영업을 방해했다는 명목이었다. 미샤는 2011년부터 여성지와 패션 잡지 앞쪽에 광고를 넣기 시작했다. 결국 4개 매체에 광고를 실을 수 있었지만 추가로 계약한 한 잡지사가 미샤 광고를 못 싣겠다고 통보하면서 사건이 시작됐다. 미샤는 정황상 LG생활건강이 힘을 써 미샤 광고가 빠지게 됐다고 결론 내렸다. 신고접수 후 공정위는 조사를 벌여 LG생활건강에 혐의가 없다고 결론 내렸다.
법정 다툼도 진행 중이다. 미샤는 2011년부터 수입화장품과 경쟁에 나섰다. 2011년 출시한 미샤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는 일본 업체인 SK-II와, 미샤 '나이트 리페어 사이언스 액티베이터 앰플'은 에스티로 더 제품과 경쟁했다. '더 퍼스트 트리트먼트 에센스'는 출시 1년 만에 120만 병 이상 판매됐고, '나이트 리페어 사이언스 액티베이터앰플' 역시 출시 10개월 만에 80만 병 이상 판매됐다. 화장품 업계를 뒤흔든 일종의 사건이었다. 하지만 역풍을 맞았다. SK-II가 제품 비교 광고 건으로 소송을 걸어 현재 재판이 진행 중이다.
박현명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이 말한다.
"국내 화장품 시장이 좋고, 특히 미샤는 중저가 제품이기 때문에 경기도 덜 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경쟁업체들과 문제를 일으키면서 업계에 부정적인 이미지를 심어주고 있어요. 노이즈 마케팅 차원에서 그런 것인지 몰라도 기업 이미지가 나빠져서 좋을 일은 없잖아요."
어쩌면 미샤는 국내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숍을 개척한 주인공이라는 자존심에 상처를 입은 것인지도 모른다. 자존심을 회복하는 과정은 매끄럽지 못했지만 말이다.
회심의 반격
2000년대 초반만 해도 이런 경쟁 구도는 없었다. '거품을 뺀 화장품'이란 콘셉트로 중저가 화장품 브랜드 시장을 연 미샤는 사실상 독주 체제를 구축했다. 2000년 서영필 회장은 에이블커뮤니케이션(2003년 에이블씨엔씨로 사명을 변경했다)을 창업해 미샤 브랜드를 시장에 내놓았다. 성균관대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후 피죤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한 서영필 회장은 가격은 저렴하지만 품질에선 뒤지지 않는다는 품질 제일주의를 내세우며 '3,300원짜리 화장품'을 선보였다. 그의 전략은 선풍적인 인기를 끌며 국내 화장품 시장에 지각변동을 일으켰다.
미샤는 창업 4년 만에 매출액 1,000억 원을 훌쩍 넘기며 중저가 브랜드 화장품 전성시대를 열었다. 그러나 2003년 12월 '자연주의 화장품'이라는 콘셉트를 앞에 내세운 더페이스샵이 나오면서 저울추가 조금씩 기울었다. 더페이스샵이 미샤와 차별화하기 위해 시작한 지하철 역내 로드숍 진출 전략이 들어맞았기 때문이다. 2005년에 미샤는 급기야 더페이스샵에 중저가 브랜드 1위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서 회장은 미샤의 해외사업에 전념하기 위해 2006년 미국으로 떠났다. 하지만 미샤가 더페이스샵에 밀리는 등 위기에 직면하자 1년 만인 2007년 말 경영 일선으로 복귀했다.
잠시 대주주로 물러나 있던 서 회장이 대표이사로 경영에 복귀한 이후 미샤는 전투력을 회복하기 시작했다. 미샤는 고가 수입제품을 겨냥한 미투제품을 쏟아냈다. 소비자들이 한번 써보니 좋다며 입소문을 퍼뜨리자 대박을 터뜨렸다. 그 힘을 바탕으로 미샤는 급기야 7년 동안 고정돼 있던 순위까지 뒤엎었다. 더페이스샵으로선 무척이나 당황스러운 사태였다. 오래도록 '노세일' 정책을 지향했던 더페이스샵은 할 수 없이 세일을 진행하며 맞불을 놨다. 박현명 신한금융투자 연구원이 말한다. "2008년 10월 에이블씨엔씨 주가가 922원까지 떨어졌습니다. 하지만 그해 흑자를 기록하며 턴어라운드에 성공해 재기의 발판을 마련했어요. 지속적인 실적 개선에 주가도 완만한 우상향곡선을 그리다 2011년 하반기부터 천정부지로 치솟기 시작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지만 서 회장의 히트제품이 통했던 거죠."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부침을 겪으며 좌충우돌하는 미샤를 바라보는 시장 전망은 그래도 호의적이다. 에이블씨엔씨는 2012년 12월 21일부터 코스피 200에 신규 편입됐다. 코스피200은 한국거래소 유가증권시장 전 종목 가운데 시장 대표성, 유동성, 업종 대표성을 따져 200종목을 선정해 시가 총액을 지수화한 것이다.
코스피200 편입으로 에이블씨엔씨의 주가는 크게 올랐다. 배은영 NH농협증권 연구원이 말한다. "지난 2008년 이후 꾸준히 상승하면서 현재 주가는 역대 최고 수준에 도달해 있습니다. 특히 외국인들은 코스피 200 주요 종목으로 바스켓을 구성한 뒤 이를 대량으로 매매하기 때문에 외국인 유동성 유입으로 주가가 상승한 것으로 풀이하고 있어요."
배 연구원은 하반기 신제품 출시 및 매장 수 확대, 규모의 경제 효과로 여타 중저가화장품 업체와는 다른 차별화된 고성장세를 지속할 것으로 내다봤다. "10~15% 정도 점포 수가 증가하고, 신규 출점한 점포 매출이 정상화 되면 매출과 영업이익이 급증할 겁니다. 합리적인 화장품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견인차 역할을 계속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습니다."
사실 LG생활건강이 2010년 1월 3,889억원을 들여 더페이스샵을 인수하면서 미샤는 더욱 힘든 상황을 맞았다. LG생활건강은 경쟁사 아모레퍼시픽을 따라잡기 위해 중저가 브랜드가 필요했다. 더페이스샵은 그런 면에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 업계에서는 LG생활건강이 뒤를 받치고 있는 더페이스샵이 아무도 넘보지 못할 절대 강자 체제를 구축하리라 예상했다.
2005년 이후 7년간은 더페이스샵 천하였다. 미샤가 경영진이 중간에 교체되는 등 여러 가지 사건에 휘말리며 부침을 겪는 동안 더페이스샵은 꾸준히 1위를 유지했다.
하지만 미샤는 7년 만에 순위를 반짝 역전시키며 이변을 만들었다. 이에 대해 더페이스샵은 "본사의 올해 목표대로 성장하고 있다. 앞으로도 절대 1위는 놓치지 않을 것"이라 공언한다. 1분기 만에 1위를 뺏긴 미샤는 "우수한 제품력과 합리적인 가격을 소비자들이 알고 있다"며 1위 탈환에 문제 없다는 입장이다. 시장 개척자와 대기업 브랜드가 벌이는 싸움은 올해도 계속 이어질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