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국민연금 주주권 행사와 경제민주화

김승열의 ‘Law & Business’<br>기관투자자의 적극적 주주권 행사는 기업 이해당사자의 상호이익에 기여할 수 있을까? 국민연금의 사례를 통해 바람직한 방향을 모색해봤다. 김승열 법무법인 양헌 대표변호사·KAIST 겸직 교수

경제민주화가 시대적인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이른바 ‘공정 경쟁체제’를 구축하기 위한 각계의 노력 또한 활발하다. 이 같은 노력을 하나의 ‘사회적 인프라 구축’이라고 한다면,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경제활동의 주체인 기업 자체의 민주화다. 기업 내 민주화에선 합리적인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구조의 확립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그 바탕 위에서 기업을 중심으로 한 각 주체들 간-경영자와 투자자 간, 임직원과 채권자, 채무자, 거래처 상호간-이해관계의 적정한 조정이 가능해진다.

물론 기업의 소유자는 자본을 투입한 투자자이므로 투자자의 최대이익이 가장 중요한 목표라 할 수 있다. 그렇지만 주주이익의 극대화가 무리한 기업경영으로 이어질 경우, 기업뿐 아니라 모든 이해관계자들에게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 따라서 최근에는 무조건적 주주이익을 무조건적으로 추구하기보단 이해관계인 상호간에 적정한 이익을 도모하고 조정하는 방향으로 기업경영이 이뤄져야 한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를 통해 기업의 사회적 존재가치가 높아지면, 장기적인 관점에서 투자자에게도 이익이 돌아간다.


국민연금은 자기자본이 투입된 개별기업에서 의결권을 행사할 때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적정한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여기에선 경영자에 대한 적절한 통제 혹은 자율성 부여를 어떻게 제도화할 것인가 하는 점이 중요한 포인트가 된다. 이는 기업의 합리적 지배구조 문제로서, 그동안 많은 회사법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되어 왔다. 기업의 기초자산에 자본을 투입한 투자자와 기업 운영을 책임지는 경영자 사이에서 나타날 수 있는 상반된 이해의 간극, 이른바 ‘대리인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해법은 그리 쉽게 도출되지는 않는다. 현행 회사법의 지배구조 체계는 그간 많은 연구와 개정을 통해 상당한 발전을 이루었다고 평가되지만, 기업의 실제 운영에 있어서는 아직도 많은 문제점이 드러나고 있는 게 현실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적극적 주주행동주의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는 소수주주들이 집단화를 통해 의결권을 행사하고, 전문성을 가진 기관투자가가 사외이사와 감사의 파견, 의결권행사 등을 통해 주주로서의 역할을 강화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원래 주주행동주의는 주주권의 적극적 행사로 해당기업의 지배구조를 합리적이고 투명하게 함으로써 기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주주들의 이익을 도모하자는 의미에서 태동되었다. 무엇보다 이는 경영자의 전횡을 통제해 투자자들의 적정한 이익을 보장하게 해준다는 점에서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이에 따라 이해관계의 상충이 적은 국민연금과 같은 공공적 기관투자가들의 역할이 그 어느 때보다도 중요하게 되었다.

국민연금의 예를 더 자세히 살펴보자. 국민연금은 2012년 현재 일본, 노르웨이, 스웨덴에 이어 세계 4대 연기금으로 지위를 굳건히 하고 있다. 그러나 이에 따른 부작용도 만만치 않다. 첫째는 과도한 지분보유 문제다. 국민연금은 국내 주요상장사의 최대주주 내지 2~3대 주주인 경우가 상당히 많다. 대기업 계열사의 단일 소유지분만 놓고 보면 재벌총수보다 더 많은 지분을 보유한 경우도 적지 않다. 재무적 투자자에 불과한 국민연금이 특정기업에 대해 과도한 지분을 보유하는 현상은 점진적으로 해소되어야 할 것이다.

주주권 행사에서 적정성을 담보하는 것 또한 국내 자본시장에서 상당히 중요하고도 민감한 사안이다. 예컨대, 국민연금은 자기 자본이 투입된 개별기업에서 의결권 등을 행사할 때 투자자와 종업원, 채권자, 거래처, 채무자 등 모든 이해관계인들의 적정한 이익을 고려해야 한다. 이러한 의결권 행사 원칙은 장기적으로 국민연금의 적정한 투자이익 보장에 기여할 것이라 예상된다.

공적 연기금이라는 국민연금의 특성상, 어느 정도의 정치논리가 개입되는 건 현실적으로 불가피한 일이라 여겨진다. 하지만 특정정치권력의 영향권에 놓여 주주권이 남용되거나 제약되는 일이 없게 하기 위한 제도적인 안전장치는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이를 위해선 우선 국민연금 자체의 합리적인 지배구조가 확립되어야 한다. 아울러 모든 주주권의 행사는 적정하게 공시되어 그 투명성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 언론과 여론 검증과정을 통해 주주권 행사가 자연스럽게 관리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최근 국민연금과 관련된 한 사례가 논란이 되고 있다. 모 자동차부품 회사의 상장폐지를 위한 공개매수가 행해졌을 때, 국민연금은 주요주주로서 주주권을 행사해 이에 반대했다. 그리고 이러한 권한 행사에 대해 많은 비판이 가해졌다. 하지만 경영의 투명성과 기업의 건전성 측면에서 본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예를 들면, 소액주주 관점에선 해당 기업이 상장기업의 지위를 유지하는 게 이익이 된다고 볼 수도 있다. 해당 기업 모든 이해관계자의 적정한 이해조정이라는 측면에서도 상장기업 지위 유지는 어느 정도 긍정적인 부분이 있다. 혹자는 국민연금의 주주권 행사가 국내기업 보호라는 정치논리에 의해 행사되었기 때문에 기업의 자율성을 저해한다는 비판도 하고 있다. 물론 충분히 일리가 있다. 그러나 장기적 투자이익이나 사회적 책임 등의 관점에서 본다면, 비판만 할 수 있는지 의문이 들기도 한다.

국민연금은 투자지분의 범위 내에서 투자대상 기업 모든 이해관계자들의 적정한 이익이 보장되도록 소위 ‘사회적 기업성’을 발휘해야 한다. 이는 국민연금의 장기적인 투자이익을 높이는 데 기여할 뿐만 아니라, 경제민주화를 실현하기 위한 초석이 될 수 있다. 당연히 투자대상 기업의 실질적인 지배구조 합리화에도 기여할 수 있다.

이를 위해선 절대적으로 국민연금 내의 합리적인 지배구조가 확립되어야 한다. 나아가 국가권력이나 정치권력으로부터 부당히 압력을 받는 일 또한 없어져야 한다. 이 과정에서 제도적 뒷받침과 언론의 역할이 중요하다. 범국민적인 관심 또한 모아져야 한다.


김승열 변호사는…

서울법대와 미국 노스웨스턴대 로스쿨을 졸업하고 뉴욕 소재 폴 와이스 Paul Weiss 로펌을 거쳐 현재 법무법인 양헌의 대표변호사 겸 카이스트 지식재산대학원 겸직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방통위, 환경부, 교과부, 보건복지부 고문변호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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