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금융 경제·금융일반

건설업계에 부는 모진 '칼바람'

최근 워크아웃에 들어간 쌍용건설의 빈 사무실 모습. 건설업체 부도 공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소형 건설사들의 문제였지만 올해 들어선 상위권 업체들도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건설경기가 얼어붙으면서 업계에 매서운 '칼바람'이 몰아치고 있다. 도급 순위 13위인 쌍용건설도 워크아웃에 내몰릴 정도로 자금 경색에 시달리고 있다. 이제는 중견 건설업체뿐만 아니라 대형 업체들도 안심할 수 없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건설업계를 살릴 뾰족한 방법은 없어 보인다.
하제헌 기자 azzuru@hk.co.kr


경의선 전철 탄현역에 내리면 높이 솟은 주상복합 건물 단지를 볼 수 있다. 8개 동, 2,700가구가 들어서는 이곳은 국내에서 가장 큰 주상복합아파트 단지다. 4월 입주를 앞두고 있는 이 단지는 두산건설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사업이었다. 이 아파트 단지를 만드는 데 2조 원가량이 들어갔다. 2조 3,000억 원 정도였던 지난해 두산건설 매출액과 비슷한 수준이다. 두산건설은 이 아파트를 2009년 12월에 분양했다. 하지만 부동산 시장은 매운 추위 만큼이나 엄동설한이었다. 부동산 경기가 고꾸라지고 있었다. 2008년 터진 세계 금융위기 여파가 국내 부동산 시장에 엄습했다. 설상가상으로 건설업체들이 민간주택 분양가 상한제를 피해 분양승인을 받은 단지들을 밀어내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시장엔 신규 분양 주택보다 미분양 주택이 더 많았다. 두산건설도 이런 환경에 자유로울 수 없었다. 분양률이 바닥권을 맴돌면서 두산건설에 유동성 위기가 다가왔다. 악몽의 시작이었다.


합치고 떠넘기고 자르고

"그래도 두산건설은 사정이 좋은 편이라고 봐야겠죠. 그룹에서 어떻게 하든지 건설을 살리겠다고 나서고 있으니까요. 그나마 비빌 언덕이 있는 거죠. 그룹 계열사가 아닌 건설 전문 업체였다면 손도 못 쓰고 고꾸라졌을 겁니다." 한 부동산 업계 관계자의 설명이다. 최근 두산건설은 그룹 지원을 통한 유동성 확충 방안을 마련했다. 4월 중 유상증자를 통해 4,500억 원을 마련하고, 두산중공업이 가지고 있던 보일러 사업을 가지고 와 모두 1조 원 가까이 자본금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 밖에도 두산건설은 매각 후 재임대 방식으로 서울 논현동 사옥을 파는 방안도 추진하고 있다. 두산건설은 보도자료를 통해 "최근에 건설업체의 유동성과 관련한 우려감이 확산되고 있으나, 두산건설은 1조 원 규모의 유동성 확충 방안을 마련한 만큼 유동성과 관련한 리스크는 사실상 없다"고 강조했다. 금융권에서도 두산건설의 조치에 긍정적인 기대를 내비쳤다. 그러나 부동산 시장의 '꾼'들 사이에선 여전히 회의적인 시각이 존재한다. 부동산 시장에 밝은 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두산건설이 예전처럼 기운을 차릴 수 있을지에 대해선 의문이 듭니다. 그동안 건설업계를 보면 자금지원을 받고도 결국은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에 들어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죠. 임광토건 같은 경우도 부도나기3개월 전부터 시장에서 말이 많았습니다. 부도난다, 팔린다, 여러 소문이 있었는데 결국 그대로 됐어요."

건설업체 부도 공포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중견 건설사들만의 문제였다. 하지만 올해 들어선 상위권 업체들도 안심하기 어려운 상황을 맞고 있다. 쌍용건설이 워크아웃을 신청하면서 우려는 현실로 다가왔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말한다. "쌍용은 해외 수주액이 상당합니다. 올해 이미 3조 원가량 됐어요. 적격 업체 심사를 거친, 앞으로 따낼 수 있는 수주액도 20조 원이 예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도 쌍용이 쓰러진 거예요."

건설업계는 끝없는 겨울을 보내야 할 형국이다. 업계 10위권에 있는 대형 건설사들마저 위기설이 나돌 정도로 국내 건설업계는 심각한 국면에 직면해 있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재벌 그룹 계열 건설사들에선 건설경기 장기 침체에 대비해 사업 포트폴리오를 바꾸려는 움직임도 포착된다. A 건설사 직원은 말한다. "특히 그동안 개발사업을 했던 부서에 일절 움직이지 말라는 지시가 위에서 떨어졌어요.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거죠. 결국에는 개발사업 인력을 빼서 건설관련 주변 사업을 하고 있는 그룹 내 타 계열사로 재배치했습니다." 해외플랜트 수주로 자신만만하던 재벌 그룹 산하 대형 건설사들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중공업과 주택사업을 병행하던 대기업 그룹 계열 B사는 주택사업부분을 통째로 그룹 내 건설 전문 계열사인 C사에 넘겼다. B사는 짐스러웠던 주택사업에서 손을 떼고, C사는 어려울 때 힘을 더 비축해 두자는 계산이었다.

상위 20대 건설사 중 워크아웃 중인 금호건설을 제외하고 쌍용건설이 올해 처음 워크아웃을 신청했다. 금융권에서는 7~8개 업체가 부도위기에 직면해 있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결국 건설사들이 내놓을 수 있는 가장 쉬운 자구책은 인력감축이다. 그 여파로 시장침체와 함께 업계 전반으로 구조조정이 확산되고 있다. 100위권 건설사 가운데 분기별 실적을 공시하는 61개 업체 중 26곳이 유럽발 재정위기 여파가 본격적으로 나타난 지난 2011년 3분기 이후부터 1년 동안 직원을 감축했다. 이 기간 동안 GS건설 직원은 6,845명에서 6,616명으로 229명 줄었고, 현대산업개발의 경우 1,774명에서 1,736명으로 38명 감소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벽산건설은 419명에서 306명으로 113명 감소했다. 벽산건설은 지난해 말 기존 임원 9명을 5명으로 줄이는 등 구조조정을 다시 실시해 임직원이 250여 명까지 감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풍림산업은 260명, 동양건설산업은 174명, 우림건설은 205명, 범양건영은 189명으로 각각 직원 수를 감축했다. 이들 26개 건설사가 1년간 줄인 직원 수는 약 2,200명에 달한다. 경기 위축으로 대형 건설사들도 임원을 줄이거나 건설사업 부문을 다른 사업과 통합하는 조직 개편에 나서는 등 조직 슬림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불황의 그림자는 건설사들의 수주액을 보면 명확하게 드러난다. 지난해 1~10월 종합건설사 1만1,409곳의 국내 건설 수주액은 82조2,000억 원으로, 1개 업체당 평균 72억1,000만 원이었다. 이는 2011년 평균치 (95억9,000만 원)보다 24.8% 줄어든 수치다. 하지만 더 큰 문제는 올해에도 건설업계의 어려움은 계속된다는 것이다. 부동산 시장이 좀처럼 회복 기미를 보이지 않는 데다 건설 물량이 줄어들 요소가 적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4대강 사업 등 대형 SOC 사업이 업황 부진에서 그나마 버팀목 역할을 했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나 공공기관도 4대강 사업 이후 재정 여력이 줄어들어 신규 발주를 할 여유가 부족한 실정이다. 무엇보다 주택 시장 거래 침체가 심각한 상황이다. 김민형 한국건설산업연구원 정책연구실장은 말한다. "공공과 민간 모두 수익성이 악화돼 '체격은 좋은데 체질은 나빠지는' 현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대형 건설사는 보호 장치가 있어 그나마 괜찮지만, 외국 진출도 쉽지 않고 특화된 물량을 잡기도 어려운 중견 건설사들은 진짜 위기상황입니다."


끊기 어려운 악순환

"10위 안 건설사 중에서도 그룹사가 자금이나 수주 지원을 하지 않는 회사는 1~2년을 버티기 힘들 겁니다. 사채 시장에서 돈 구하기도 쉽지 않아요. 일부 중견 건설사들이 사금융에서 돈을 구하기 위해 SOS를 치고 있지만 그쪽도 부동산 경기가 없는 걸 아는 상황이라 쉽게 나서지 않고 있거든요." 건설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건설업계에서는 현재와 같은 불황이 1~2년간 지속될 경우 10위권 건설사마저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자금사정이 나빠지고 있는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지만 결국 모든 것이 부동산 경기 악화 → 분양률 하락 → 집값 하락 → 신규 계약 축소 → 건설사 수익 하락 → 공사 미수금 증가 → 금융기관의 대출금 회수 → 금융기관 신규 차입 어려움 등 악순환으로 연결된다.

금융기관들은 신규 대출을 옥죄면서 기존 대출금 회수에 나서고 있다. 한국은행이 밝힌 지난해 3분기 기준 예금 취급 기관의 건설업 대출은 49조5,290억 원이었다. 2011년 4분기(49조9,857억 원) 이후 1년째 49조 원대에 머물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로 유동성 위기에 내몰리는 건설사들이 급증하고 있는 가운데, 금융권이 건설업 대출을 일정 수준에서 관리하고 있는 것으로 한국은행은 분석하고 있다. 건설업 대출은 당분간 큰 폭의 변동은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 경기가 회복되지 않는 한 금융권이 건설업의 여신심사 기준을 완화할 가능성이 낮은 만큼, 건설업 대출은 정체 또는 하락할 것으로 보인다. 금융기관들이 건설업 대출을 제한하고 있는 가운데 직접적인 자금조달 창구도 사실상 모두 막혀 있다. 유상증자도 일부 중대형사를 제외하고는 어려운 게 현실이다. IPO의 경우 실적 부진 등 내부 지표가 나빠진 데다 영업환경 악화, 건설주 하락 등 외부적인 문제가 얽히고 설켜 상장을 하더라도 제값을 받기가 어렵다.

대한건설협회가 내놓은 '국내 건설수주 동향 자료'를 보면 2012년 건설 수주액은 101조5,000억 원으로 전년 대비 9조2,000억 원(8.3%) 감소했다. 이는 5년 이래 최저 수준이다. 특히 세계 금융위기 직전인 2008년 수주액 120조 원에 비해 무려 20조 원(17%)이나 줄어들었다. 지난해 공공공사 수주액도 34조776억 원으로, 전년 대비 7.0% 감소했다. 공사 수주는 어렵고 자금을 조달하기도 힘들어져 건설사가 겪는 유동성 문제는 더욱 악화될 전망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 김민형 실장은 말한다. "건설업계를 바라보는 금융권의 시각이 갈수록 차가워지고 있는 만큼 자금조달은 더욱 어려워질 겁니다. 특히 올해 회사채와 프로젝트파이낸싱 등 만기가 돌아오는 채권이 몰리면서 위기에 몰리는 건설사가 더 많이 생길 수 있어요."


체질 개선해야 살아남는다


위기에 처한 건설업계가 정상화되기 위해선 여러 가지 대책이 필요하다. 현재 건설업 위기는 부동산 시장 장기 침체가 가장 큰 원인이다. 부동산 시장 거래 활성화는 주택사업을 주로 해온 건설업체들에겐 필수불가결한 사안이다. 특히 프로젝트 파이낸싱 대출 이자 연체를 불러온 주된 원인이 '신규아파트 입주율 하락'인 만큼 금융권이 미납 중도금 연체료를 감면해주는 조치 등이 필요하다는 게 건설업체들의 주장이다.

건설업계는 자금 지원도 요구하고 있다. 지난해 8월 정부는 '건설업 금융지원 강화방안'을 발표해 건설업계에 8조 원을 지원하기로 했다. 하지만 여전히 부족하다는 반응이 나오고 있다. 내수 시장의 먹거리가 줄어들고 있다는 점을 감안해 SOC 투자를 확대할 필요성도 제기되고 있다. SOC 예산이 3년 연속 감소해 여기에 의존해온 건설업체들이 일감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왔다. 이 밖에도 해외 건설 사업 시 정부와 금융권의 보증 확대, 저가 경쟁으로 건설사들을 부도 위기로 내모는 최저가 낙찰제 개선 등이 단기적인 대안으로 꼽히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단기 대안은 대증처방에 불과하다는 지적이다. 건설업계가 직면한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장기적인 안목의 체질 개선, 신성장 사업 발굴 등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특히 계속되는 정부 지원은 만성적인 체질 약화만 부추긴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변창흠 세종대학교 교수는 말한다. "그동안 건설업이 너무 과도하게 외형적 확장을 한 게 문제였습니다. 무리하게 사업을 벌여 놓은 건설사까지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해결해줄 수는 없는 일이에요. 국가가 개입하기보다 시장 자율 기능에 맡겨야 합니다." 실제로 지난 정부가 10여 차례 부동산 관련 대책을 내놓았지만 별다른 효과가 나타나지 않았다. 특히 4대강 사업에 집중된 공공 예산과 보금자리주택사업이 민간 건설사들의 위기를 불렀다는 지적이다. 이주형 한양대 도시대학원 교수는 말한다. "건설 경기가 사양길에 접어든 데는 보금자리 사업 이후 주택 시장 왜곡 현상이 심화된 것도 원인으로 꼽힙니다. 앞으로는 수요와 공급이라는 경제 기본원칙을 준수한 정책이 나와야 해요."

결국은 건설산업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 사회·경제적 구조 변화에 따라 건설산업의 니즈도 변하고 있다. 신공법 개발이나 IT 등 다른 산업과의 융합을 통해 미래 수요를 창출할 신동력사업 발굴에 나서야 한다. 무작정 국민 세금을 퍼부어 회생시키는 건 한계에 다다랐다. 대마불사는 깨진 지 오래다. 대마가 되기 위해선 스스로 노력하는 게 가장 확실한 방법임을 깨달아야 할 때다.


현재와 같은 불황이 1~2년 지속될 경우 10위권 건설사들도 심각한 유동성 위기에 빠질 것으로 전망된다.

건설업계가 위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선 장기적인 안목의 체질 개선, 신성장 사업 발굴 등 자구 노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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