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하마 인근의 넓디넓은 카리브해
청명한 바다 한가운데 떠있는 선박 위에서 비키니 차림의 여성이 검붉은 피를 흩뿌린다. 그녀의 옆에는 수영복을 입은 남성이 큰 낚시 바늘에 창꼬치의 대가리를 꿰고 있고, 보트의 앞에서는 한 사람이 모형로켓과 주사기를 합친 듯한 장비를 만지작거린다. 그리고 그 옆에 생선의 내장으로 온몸이 뒤범벅 된 필자가 앉아있었다.
이곳은 바하마의 어업금지구역으로 우리 일행은 연구목적으로 허가를 받아 상어 낚시를 준비하는 중이었다. 상어를 잡고자 편집증적인 행동을 보이고 있는 우리의 모습을 봤다면 누구도 연구자라고는 생각할 수 없겠지만 말이다. 게다가 이들은 마치 해적처럼 미신까지 믿고 있었다. 상어가 낚일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자 책임자가 심드렁한 말투로 필자에게 말했다.
"이봐요. 당신이 불운을 가져온 것 같네요."
포획을 포기하고 다른 곳으로 이동하려는 순간, 400㎏이나 되는 낚싯줄을 감아놓은 얼레가 미친 듯이 풀려나가기 시작했다. 낚싯줄과 연결된 부이도 수면을 반으로 가르며 멀어져갔다. 그와 동시에 잠수복을 입은 카메라맨이 5만 달러짜리 고해상도 방수카메라를 집어 들었고, 한 연구자는 상어를 묶을 스틸 케이블과 무선드릴을 챙겼다. 또 다른 연구자는 앞서 언급한 로켓처럼 생긴 장비에 손을 뻗쳤다.
사실 이 장비야 말로 연구팀이 이곳에 나온 가장 근본적 이유였다. 센서와 위성발신기가 내장된 플라스틱 튜브가 들어있었는데 다름 아닌 신개념 상어 추적 태그였다. 기존의 제품은 상어에 장착한 뒤 몇 달 가량 작동되지만 이 태그의 수명은 수십 년이나 된다. 몇 초마다 한 번씩 상어의 움직임을 기록하며, 가능할 때마다 그동안 기록한 데이터를 전송한다.
연구팀의 기대대로 작동된다면 지금까지의 연구로는 알 수 없었던 상어의 많은 비밀들이 풀리게 될 것이다. 물론 그렇게 되려면 일단 이 태그를 상어에 부착해야하고, 그보다 먼저 상어를 잡아야 한다.
그런데 풀려나가던 낚싯줄이 힘없이 늘어지더니 빈 바늘만 물속에서 딸려 나왔다.
“바다는 멋진 스위스 시계와 같아요. 부속들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는 모르지만 가장 큰 스프링 하나가 빠져버리면 고장 날 것이 분명하죠.”
지구의 바다에서 상어가 정확히 어떤 역할을 하는지는 아직 많은 부분이 베일에 쌓여있다. 상어의 수명은 수십 년에 이르지만 과학자들은 보통 수개월 동안만 상어의 행적을 추적해왔던 탓에 모르는 부분이 많을 수밖에 없다. 어떤 루트로 이동하는지, 어디서 짝짓기를 하고 새끼를 낳는지 자세히 알지 못한다. 특히 이보다 더 중요한 사실, 즉 상어가 해양생태계를 건강하게 유지하는데 어떻게 공헌하는지도 미지수다.
학계는 바다에 대한 상어의 기여도가 클 것이 확실하다고 믿는다. 아프리카 사바나의 사자, 북극의 북극곰처럼 상어 또한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라는 이유에서다. 이들 최상위 포식자들은 필연적으로 생태계 유지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문제는 이런 상어들이 현재 멸종 위기에 처해있다는 것. 지금 이 순간에도 매일 25만 마리의 상어들이 부수 어획과 샥스핀을 노린 사람들의 불법포획으로 죽어가고 있다. 해양생태학자들에 따르면 샥스핀 수요 때문에 전 세계 400여종의 상어 중 수십 종이 멸종 위기에 직면했다. 상어의 개체수가 수십 년 전에 비해 90%나 줄어들었다는 주장을 펼치는 학자들도 있다.
미국 마이애대학의 해양보존프로젝트 책임자인 닐 해머슈라그 박사는 앞으로 상어의 개체수가 더 줄어들거나 자칫 완전히 멸종됐을 때 바다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경고한다.
"바다는 멋들어진 스위스 시계와도 같아요. 우리는 각 부속들이 어떻게 맞물려 있는지 모르지만 가장 큰 스프링 하나가 빠져버리면 고장 날 것이라는 점은 분명합니다."
34세의 해머슈라그 박사는 거의 매주 낚시 바늘과 태그를 가지고 플로리다 남부의 바다로 나간다. 이를 통해 그는 현 기술의 한계를 절실히 느꼈다. 기존의 태그는 너무 비싼데다가 오래 쓰지도 못한다는 게 그가 느낀 한계였다.
이에 그는 2년 전 엔지니어 마르코 플래그와 함께 새로운 태그의 개발에 돌입했다. 이렇게 탄생한 '해머태그(HammerTag)'는 최소 수년, 최장 수십 년 동안 쉬지 않고 작동한다. 또 기존 태그와 비교해 1,000배는 많은 데이터를 얻을 수 있으며 가격도 수백 달러나 더 저렴하다.
해머슈라그는 해머태그의 데이터를 통해 과학계가 처음으로 상어들의 산란 장소와 사냥터가 정확히 어디인지 알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상어의 일생을 파악해 어느 시기에 가장 취약한지도 알아낼 수 있다.
"이 같은 자료들이 충분히 축적될 경우 환경단체들이 입법부를 압박, 최적의 시기와 장소에서 확실한 방법으로 상어를 지켜낼 수 있는 법안을 제정할 수 있어요. 강력한 법안의 보호가 없으면 상어 개체수는 계속 줄어들 것이며, 바다 생태계도 망가져갈 겁니다."
무죄 방면
포획된 귀상어는 탈진해 죽을 때까지 몸부림을 치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가급적 빠르고 부드럽게 태그 부착을 마치고 놓아줘야 한다.
필자는 해머슈라그 박사의 상어 태그 부착 작업 현장에 함께 가기로 약속했다. 하지만 갑작스런 감기몸살로 바하마행 항공기를 놓쳐버렸다. 그리고 꼬박 24시간을 앓은 뒤 해머슈라그 박사에게 연락을 취해 바하마에서 수상항공기를 타고라도 꼭 현장을 찾아가겠다는 의사를 전했다. 그의 연구선은 이미 바하마의 수도인 나소를 떠나 해안에서 40㎞ 떨어진 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고맙게도 그는 흔쾌히 허락했다. 맥주 5박스를 사다 달라는 부탁과 함께였지만 말이다.
나소에 도착한 필자는 맥주를 구입하고 수상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평생 동안 바하마에서 살았다는 조종사 폴은 연구선이 베리 제도의 섬들과 암초 사이 어딘가 있을 거라며 30분쯤 걸릴 거라고 알려줬다.
백만장자 후원자들이 자신의 선박을 연구선으로 빌려준다. 연구자들이 치러야할 대가는 그들이 누군지 밝히지 않는 것뿐이다.
해머슈라그 박사팀이 바다 위의 선박에서 연구를 한다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일반적인 해양과학연구의 연구비 수준을 알고 있었던 필자는 선상생활이 결코 편하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직접 본 현실은 예상과 달랐다.
연구선에는 로봇 잠수정, 6인승 헬리콥터, 완벽한 잠수 장비, 서핑보드, 제트스키가 실려 있었고 고무보트는 소형, 중형, 대형 등 3대나 됐다. 내부 역시 기대 이상이었다. 영화 세트장을 방불케 하는 고급 인테리어에 여러 명이 들어갈 대형 월풀 욕조까지 갖췄다. 선박 운용을 맡은 제복 차림의 선원들과 호주 출신의 주방장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됐지만 해머슈라그 박사에게는 돈 많은 후원자들이 있었고, 이 선박은 그들이 빌려준 것이었다. 편의를 제공받는 대가로 연구팀은 한 가지 비밀만 지키면 됐다. 선주가 누구인지 밝히지 않는 것이다.
수상항공기가 베리 군도에 안착하자 곧바로 고무보트가 다가왔다. 짐을 옮겨 실은 필자는 고무보트 운전자에게 물었다.
"혹시 제가 늦어서 보지 못한 것이 있나요?"
"방금 전 3m짜리 귀상어 한 마리와 뱀상어 두 마리를 잡았어요."
"닐은 어디에 있죠?"
"뱀상어에게 손가락을 제대로 물려서 치료를 받고 있어요."
정말 그는 이날 제대로 물렸다. 피를 사방에 뿌린 것은 물론 무려 15바늘이나 꿰매야 했을 정도였다. 연구선에서 만난 그는 걱정스런 표정으로 반창고를 붙이고 있었다.
"그렇게 대수로운 일은 아니에요. 상어 이빨에 손가락을 스쳤을 뿐이죠. 공격당한 게 아니랍니다."
그는 필자를 안심시키려는 듯 상어에 대한 이런 저런 지식을 잔뜩 풀어놓았다. 예를 들어 매년 전 세계에서 백상아리가 인간을 공격하는 횟수는 80건 정도지만, 인간이 다른 인간을 물어뜯는 횟수는 미국 뉴욕주에서만 평균 1,600건이나 된다고 했다. 또 상어는 기수(汽水)에선 인간을 먹이로 인식하지만, 카리브 해처럼 맑은 바닷물에서는 그렇지 않다고 한다.
그리고 일반적인 생각과 달리 상어들은 최종 공격단계에서는 시각이나 후각에 의존하지 않고 주둥이 부분의 전자기 감각 기관으로 방향을 조절한다는 설명이다. '로렌치니 기관(ampullae of Lorenzini)'이라 불리는 이곳은 작은 구멍에 겔(gel) 성분이 채워져 있다.
해머슈라그의 판단에 의하면 이날의 사고도 로렌치니 기관 같은 상어의 초감각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태그를 부착하기 위해 상어를 선박의 뒷부분으로 끌어올릴 때 금속 프로펠러의 존재를 느낀 상어가 격렬히 몸부림쳤고, 이 과정에서 의도치 않게 상어의 이빨이 그의 손가락을 스쳤다는 것이다.
산소 공급
태그를 부착하는 동안 연구자들은 상어의 아가미에 산소수(oxygenated water)를 공급한다. 상어가 계속 숨을 쉬도록 하기 위함이다.
해머슈라그 박사와의 대화를 마치고 선실에 짐을 풀자마자 누군가 방문을 노크했다. 태그 부착 작업을 직접 보러갈 시간이 된 것이다.
필자는 연구원들과 함께 실제 작업이 이뤄질 작은 선박에 올라탔다. 갑판에 낚싯줄 얼레와 대형 낚시 바늘들이 흩어져 있는 것을 보면서 왠지 이 작업이 스포츠 낚시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배의 한쪽에는 구멍이 뚫린 파이프와 양동이들이 놓여있었는데 연구원들은 '상어 유인 장비(shark attractant device)'의 약자를 따 SAD라 불렀다. 생선 내장을 채워서 바다에 던져 넣으면 밤새도록 피 냄새를 퍼뜨린다고 했다.
상어를 꼬여낼 밑밥은 아이스박스 속에도 잔뜩 들어있었다. 창꼬치, 강꼬치, 그루퍼 같은 어류의 머리와 수십ℓ의 생선 피가 그것이다.
목적지로 이동해 낚시바늘을 드리우자마자 밑밥이 뿌려졌다. 작은 선박의 주변 바다는 생선 내장과 피가 퍼저나가며 붉고 희게 물들었고, 표면에는 기름이 뜨면서 광택이 돌았다. 그러는 동안 '더티 커트(dirty curt)'라는 별명의 현장기술자는 다이버들에게 반짝이는 물체를 착용하지 말라고 주의를 줬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해머슈라그 박사 연구실의 매너저인 버지니아 안살디가 사람들에게 물었다.
"혹시 브라이언(필자)에게 왜 더티 커트라는 별명이 붙었는지 알려준 사람이 있나요?"
해머슈라그 박사가 답했다.
"아직 없어. 그리고 굳이 설명해주지 않는 게 좋겠어."
상어가 잡히기를 기다리는 동안 배 위에서는 주기적으로 생선 조각을 꺼내어 손가락 크기로 자르는 작업을 했다. 몸에 고약한 냄새가 배는 일이었지만 그것말고 마땅한 소일거리도 없었다. 오후 내내 단 한 마리의 상어도 미끼를 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저녁이 가까워지면서 열대 폭풍이 비를 퍼부어댔고, 더티 커트는 철수를 결정했다. 실망한 필자에게 한 연구원이 이렇게 귀뜸했다.
"가져온 밑밥을 모두 뿌렸으니 내일은 뭔가 잡힐 거에요. 최악의 경우라도 탐사 마지막 날인 모레에는 상어와 만날 수 있을 겁니다."
해양생물 추적 태그는 매우 간단한 장치다. 튼튼한 케이스 안에 센서와 통신기기를 넣고, 해양생물에 부착할 수 있는 연결부가 마련돼 있다. 일부 제품은 위성 데이터 전송 기능을 갖췄지만 대다수는 회수될 때까지 오직 데이터를 기록·저장한다. 또 자력계를 내장해 위치와 이동방향을 한층 정밀히 측정하는 것도 있고, 주변의 빛으로 자신의 위치를 대강 파악하는 것도 있다.
그러나 이들 모두는 첨단기술과는 거리가 멀다. 위성 전송 기능을 지녔다고 해봤자 전송속도가 1초당 1비트에 불과하다. 내장 프로세서들은 하나 같이 싸구려 전자손목시계나 구식 전자레인지에 쓰이는 것들이다. 가장 뛰어난 태그보다 서랍 속 2G 휴대폰이 훨씬 첨단에 가깝다.
뭔가가 낚싯줄을 물었다. 그러자 혼수상태에 빠진 듯 잠잠했던 배 안에 갑자기 활기가 넘쳐났고 모두가 정신없이 장비를 챙겼다.
상황이 이럴진데 도대체 왜 해양학자들은 지금보다 우수한 성능과 긴 수명을 지닌 저렴한 태그를 개발하지 않았던 것일까. 해머태그의 설계자인 마르코 플래그에게 이 질문을 던졌다.
"첨단 전자기기일수록 전력소모량이 많아요. 바다에서 그만한 전력을 얻는 것은 매우 어렵죠. 특히 그런 조건을 충족시킬 태그라면 적은 예산에 쪼들리는 과학자들이 구입하기 힘들만큼 비쌀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플래그는 개발비나 상업성 따위는 걱정하지 않았다. 독학으로 기술을 익혀서 미 육군 특전단과 심해 작업팀에 장비를 납품해 돈을 벌고 있었기 때문이다. 필자가 바하마의 바다를 누비고 있을 때도 그는 잠수함 전쟁 게임용 수중 위치탐지 시스템과 산소가 떨어진 줄도 모르고 탐사에 빠져 있는 연구자들을 위한 경보장치를 개발 중이었다. 그에게 태그의 개발은 부업에 불과했다.
"18년 전 5m 크기의 대백상어의 공격으로 부상을 당한 적이 있어요. 그 경험이 아니었다면 태그 개발은 시작하지 않았을지도 몰라요."
상어의 공격은 캘리포니아 중부 해안에서 그가 다이버 위치 탐지용 비컨의 시제품을 테스트하고 있을 때 일어났다. 수심 15m에서 갑자기 대백상어가 나타나 몸통을 물어뜯은 것. 그가 착용 중이던 산소통에 이빨이 박히면서 상어가 도망가지 않았다면 목숨을 잃었을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다.
"보트로 올라가 살펴보니 다행히 내장이 보일 정도로 심각한 상처는 아니었어요. 15바늘 정도 꿰매고 일상으로 돌아왔죠."
평생 동안 상어라는 단어도 듣기 싫은 경험임에 틀림없지만 플래그는 이 사고를 계기로 진보된 태그의 필요성을 절감, 직접 개발을 결심한 것이다. 특히 그의 태그 개발은 해머슈라그 박사를 만나면서 완전히 새로운 길로 접어들었다.
"해머슈라그 박사는 태그에 대한 제 생각을 밑바닥부터 재정립하게 해줬어요. 해머태그가 탄생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입니다."
당시 해머슈라그 박스는 상어의 수명보다 오랫동안 작동되는 태그를 만들어야 한다고 주문했다. 누구도 풀지 못했던 숙제였지만 플래그는 전원부터 다시 생각해봤다. 해양 동물용 태그 제작사들은 보통 배터리를 선호하고, 태양전지의 사용은 기피했는데 상어는 태양전지가 작동할 만큼 얕은 수심에 오래 머무르지 않는다는 지레짐작 때문이었다.
플래그는 자신의 등에 태양전지를 부착하고 수심 30m까지 잠수, 그간의 짐작이 옳았는지를 검증했다. 놀랍게도 태양전지는 햇빛이 해수면의 2%에 불과한 물속에서도 효율적 충전이 이뤄졌다.
이렇게 새로운 전원을 찾은 그는 곧바로 전력관리시스템에 손을 댔고, 센서 작동과 위성데이터 송신 방식을 개선해 전력 소모량을 90%나 줄였다. 여기에 재충전 없이 2년간 사용 가능한 백업 배터리를 추가했다.
"계산 결과, 약 50년까지 작동하겠더라고요."
이처럼 초기 해머태그의 에너지 효율이 필요이상(?)으로 매우 높았기에 그는 압력 센서, 3축 가속도계, 온도센서, 자력계 등 기존의 태그에는 없었던 센서를 추가로 장착했다. 전력소비를 다소 늘리는 대신 연구자들이 더 정밀하고 다양한 데이터를 동시에 얻을 수 있도록 조치한 것이다.
데이터 수집량이 늘어난 데 대응해 전송시스템도 개선, 해머태그는 위성 접속이 가능할 때라면 언제든 데이터를 전송할 수 있다. 덧붙여 상어가 아무런 움직임 없이 상어는 살 수 없는 수심까지 내려간 사실이 감지될 경우 태크는 상어가 죽었다고 판단, 소형 폭발물을 터뜨려 몸에서 분리되며 수면으로 떠올라 마지막 데이터를 전송한다.
이뿐만이 아니다. 해머태그는 성능과 효율의 탁월한 비교우위에도 불구하고 가격은 오히려 더 저렴하다. 기존 제품들은 개당 최대 5,000달러나 되는 반면 해머태그의 양산형 모델은 그 절반인 개당 2,500달러 수준이다. 그야말로 저비용 고효율의 태그가 아닐 수 없다.
방생
상어들은 물 밖에 나오면 힘이 빠진다. 해머슈라그 박사가 태그 부착 작업이 끝난 황소상어를 바다로 밀어내고 있다.
상어 포획 둘째 날 연구팀은 이곳저곳을 뒤졌다. 수심이 얕아 육안으로 바닥이 보이는 장소에서 소득이 없자 수심이 1,800m나 되는 해구 근처로 자리를 옮겼다. 그동안에도 더티 커트는 포획 계획을 세우느라 분주했다.
"해류에 의해 미끼들이 수심 깊은 곳으로 내려갈 겁니다. 앞으로 30분 내에는 상어를 볼 수 있을 거예요. 제가 장담하죠."
30분 뒤 그의 장담은 흰소리가 됐다. 상어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후 연구원들은 더 열성적으로 밑밥을 뿌렸다. 그래도 낚시바늘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그날 밤 선원들이 귓속말로 필자를 탓하는 소리가 들렸다.
"지난 이틀 동안 아무 것도 잡지 못했어. 그 사람이 온 뒤부터 이상하게 일이 꼬인다니까."
이윽고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이 밝았다. 필자는 혹시나 하는 생각에 그동안 입었던 티셔츠 대신 연구원들과 동일한 티셔츠를 입었다. 일체감을 통해 저주(?)를 끊었으면 하는 바람이었다. 그러나 이 정도로는 만족스럽지 않았던지 상어 포획용 소형 선박에 승선하자 더티 커트가 다가와 부적을 쥐어주며 말했다.
"이걸 차지 않으면 승선할 수 없습니다."
미끼로 쓰는 그루퍼의 눈을 꿰어 만든 목걸이였다. 악취가 코를 찔렀지만 아무 말 없이 목에 걸었다.
셋째날도 하루 종일 밑밥 뿌리기에 몰두했다. 그럼에도 일몰을 4시간 앞둔 시간까지 상어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더티 커트는 마지막 승부수를 던지기라도 하듯 물살이 빠르기로 이름난 처브 암초와 버드 암초 사이로 선박을 이동시켰다.
"깔대기 모양을 한 이곳의 물길로 상어가 이동할 때 잡을 수 있을지도 몰라요."
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뭔가가 낚싯줄을 물었다. 낚싯줄에 연결된 부이도 미친 듯이 출렁거렸다. 그러자 혼수상태에 빠진 듯 잠잠했던 배 안에 갑자기 활기가 넘쳐났다. 모두가 정신없이 장비를 챙겼다.
필자의 임무는 바다 속에서 상어의 시선으로 태그 부착 작업을 촬영하는 것이었다. 재빨리 부적을 벗어버리고 웨트슈트로 갈아입은 다음 물로 뛰어들 채비를 마쳤다.
더티 커트가 얼레를 감아 낚싯줄을 거둬들였다. 그런데 낚싯줄에는 전혀 팽팽함이 없었고, 낚시바늘이 텅 빈 상태로 끌려나왔다. 실망한 표정의 더티 커트가 선박의 이곳저곳을 둘러보더니 내팽개쳐진 부적을 발견하고 필자에게 소리쳤다.
"누가 마음대로 목걸이 벗으랬어요!"
차가운 시선이 쏟아지는 걸 느낄 수 있었다. 어떤 대꾸도 하지 못한 채 부적을 다시 들어 목에 걸었다. 어색함이 절정에 달할 무렵 무전기에서 어떤 사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며 어색함을 깨뜨렸다. 수십m 떨어진 곳에 있던 어선에서 상어 낚시 중인 우리의 모습을 보고 도움을 주고자 했던 것이었다.
"안녕하세요. 혹시 상어를 찾고 계신 것이 맞는다면 물살을 따라 내려가 보세요. 귀상어 한 마리가 보일 겁니다. 저희가 물고기를 손질하고 있을 때 모습을 보이더라고요."
귀중한 정보였다. 우리는 1.6㎞ 정도를 내려가 수심이 얕은 곳에 닻을 내렸다. 일몰 시간이 다가오고 있던 터라 여기서도 성공하지 못하면 이번 출정은 이대로 끝이었다.
해머슈라그 박사가 벌떡 일어나더니 우리 모두가 기다렸던 한 마디를 외쳤다. “상어다!”
해머태그는 단순히 신개념 해양생물용 추적 태그가 아니다. 해양생물 연구의 대대적 패러다임 전환을 암시하고 있다.
실제로 플래그는 언젠가 전 세계의 바다에 데이터 수신스테이션을 세우고, 태그가 보낸 정보를 모두가 공유하는 날을 꿈꾼다. 여러 해양생물에 부착된 무수한 태그들이 와이파이로 송신한 데이터가 곧바로 클라우드 서버에 모아져 과학자들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그런 날 말이다. 이 날이 오면 상어는 물론 태그 부착이 가능한 모든 해양생물들의 생애 관찰이 가능해질 것이며, 태그가 보내온 정보로 바다 전체의 생태계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이와 관련 해머슈라그 박사는 중장기적으로 해머태그에 또 다른 기능을 추가하고 싶어 한다. 그 일환으로 갑자기 높은 가속도가 감지됐을 때 내장 비디오카메라가 작동되는 태그를 구상 중이다. 이런 태그가 개발되면 연구자들은 연구실에 앉아 물고기를 사냥하는 상어의 모습을 지켜볼 수 있다. 바다를 바라보는 완전히 새로운 세상이 열리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한 달 동안 고작 5~6번 위치를 보고하는 기존의 태그로도 연구자들은 꽤 많은 지식을 쌓았다. 한 연구팀은 귀상어가 당초 예측됐던 해역으로부터 수백 ㎞ 북동쪽에 출몰한다는 사실을 알아내기도 했다.
"대백상어는 수심 800m까지 잠수할 수 있죠. 하와이와 캘리포니아 사이에 위치한 일명 '상어 카페(shark cafe)'에도 종종 모여요. 상어와 바다를 보호하려는 과학자들에게 이런 정보는 값을 따질 수 없을 만큼 귀중합니다. 제대로 알지 못하면 지켜낼 수도 없으니까요."
인간들의 샥스핀 수요 때문에 전 세계 400여종의 상어 가운데 수십 종이 멸종 위기에 직면해 있다.
일몰까지 1시간 남짓 남은 시간. 연구팀은 기대를 내려놓고 복귀를 위해 장비를 챙기기 시작했다. 서로 위로를 하듯 옆에 있는 사람과 가벼운 농담을 나누기도 했다. 필자는 해머슈라그 박사가 누구보다 실망이 클 것이라는 생각에 그를 쳐다봤다. 그의 눈은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는데 정확히 어딜 보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눈으로 무언가를 추적하고 있다는 느낌이 전해졌다.
추적하는 대상이 무엇인지 궁금해지기도 전에 갑자기 그가 벌떡 일어섰다. 그리고는 우리 모두가 기다려마지 않았던 한 마디를 외쳤다.
"상어다!"
낚싯줄이 풀려나가면서 부이가 수면 위에서 물보라를 일으키며 춤을 췄다. 플래그는 몸을 날려 태그 부착용 장비를 챙겼고, 더티 커트는 상어의 앞뒤에 각각 철사와 밧줄로 만든 올가미를 씌울 준비를 했다.
상어와의 거리가 9m 정도로 좁혀지자 해머슈라그 박사는 그 상어가 흑기흉상어라고 말했다. 이름만큼 녹록치 않은 녀석이었다. 1분 정도 물속에서 강하게 몸부림치다가 1분 정도는 탈진한 듯 표류하는 패턴을 반복했다. 그때마다 연구원들은 만의 하나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 이리저리 몰려다니며 적절히 대응해야 했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흘러서 필자는 자신 있게 부적을 벗어내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 몇 초 동안 발헤엄을 치며 호흡을 가다듬은 뒤 3~4번 몸을 돌려서 혹여 또 다른 상어가 근처에 없는지 확인했다. 낚싯줄에 걸린 흑기흉상어 외에 다른 상어는 없었다.
사투 끝에 잡은 이 상어는 과학적 관점에서 완벽 그 자체였다. 태그를 부착하기 좋을 만큼 나이를 먹었고, 덩치도 컸다. 동시에 어부나 먹이와의 싸움으로 생긴 상처가 전혀 없을 만큼 젊기도 했다.
필자는 30cm 정도 떨어진 거리에서 바다의 최상위 포식자와 대면했다. 연구원들이 낚싯줄을 당겨 상어를 선박으로 끌어올리는 동안 손으로 만져보고 싶었지만 실행에는 옮기지 않았다. 과학자도 아니고, 상어의 보호에 어떤 도움을 준적도 없는 필자가 연구자들보다 먼저 상어에 손을 대는 것은 월권이라는 생각에서였다.
상어가 선박 가까이 딸려오자 더티 커트가 능숙한 솜씨로 등지느러미와 가슴지느러미 사이에 올가미를 채웠다. 또한 선박 후미로 끌려올라온 상어의 입 속에 누군가 산소수 펌프와 연결된 PVC 파이프를 넣었다. 태그를 부착하는 동안 상어가 숨을 쉴 수 있도록 하려는 조치였다.
안살디를 비롯한 연구원들은 매우 신속·정확하게 작업을 이어갔다. 아니 그래야만 했다. 상어의 스트레스를 최소화해야하기 때문이다. 자칫 과도한 스트레스가 가해지면 탈진에 빠져서 태그를 부착하고 놓아줘도 며칠 내에 죽는 경우가 있다. 안살디는 주사기로 상어의 정맥에서 혈액을 채혈하고, 유전자실험을 위해 지느러미의 일부를 떼어낸 뒤 등지느러미에 3개의 구멍을 뚫고는 나일론 줄로 해머태그를 고정시켰다.
이윽고 작업이 완료됐고, 해머슈라그 박사는 모든 연구원들이 물 밖으로 나온 것을 확인한 뒤에 낚싯줄을 풀어 상어를 바다의 품으로 되돌려 보냈다. 이제 이 상어의 모든 움직임은 인공위성을 거쳐 그에게 세세히 전달될 것이다.
불법 전리품
불법 상어 포획자들은 샥스핀을 잘라낸 상어들을 바다로 던진다. 이 상어들은 제대로 헤엄을 치지못해 죽고 만다.
필자가 동행한 바하마를 포함해 해머슈라그 박사팀은 수차례 상어 낚시를 떠났다. 그리고 수주일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다량의 데이터들이 속속 답지하기 시작했다. 이즈음 해머슈라그 박사와 플래그는 해머태그의 결함을 발견하기도 했다. 데이터 전송 횟수가 예상보다 적었던 것. 이에 플래그는 태그가 데이터 전송 타이밍을 놓치지 않도록 수면감지센서를 업그레이드했다. 그러나 이런 단점에도 불구하고 해머태그를 통해 연구팀에게 엄청난 양의 정보가 전달됐다. 특히 한 번은 한 해양학자가 야생에서 포획된 뱀상어의 몸에서 해머태그를 발견, 해머슈라그 박사에게 돌려주기도 했다. 이 태그에는 20만건이나 되는 데이터 포인트가 기록돼 있었으며, 상어의 생태에 대한 놀라운 사실들을 알 수 있었다.
"이 뱀상어는 야간에 자주 수심 300m까지 잠수했어요. 수심 390m에서 두 시간이나 버틴 적도 있죠. 그곳에서 몸을 뒤틀다가 해수면으로 올라와서는 다시 그곳으로 들어가는 행동을 반복하더군요. 정확히 무슨 짓을 한 건지는 알 수 없어요. 아마 밤새 다른 상어들과 싸움을 벌인 건 아니었을까요?"
해머태그 해부도
상어의 행동양식은 바다 최대의 수수께끼 중 하나지만 기존의 상어 추적 태그로는 이를 밝혀내기 어렵다. 작동가능 시간이 수개월에 불과한 탓이다. 과학자들은 본질적으로 측정이 불가한 것은 이해하지도 못하니 당연한 귀결이다. 하지만 해머태그는 다르다. 가격이 수백달러나 저렴하면서도 수년이나 작동돼 상어의 생애주기 전체의 기록이 가능하다. 데이터 저장량도 1,000배나 많다. 혹여 상어가 죽으면 내장된 소형 폭발물이 터져 몸에서 분리된 뒤 수면 위로 떠올라 마지막 데이터를 전송한다.
태양전지/자력계
해머태그의 태양전지는 수직 시정(垂直視程)의 두 배 거리에서도 에너지를 모은다. 수직 시정이 수심 15m라면 30m 속에서도 전력이 생산·저장되는 것. 해수면 근처라면 20분만에 배터리가 완충된다. 또한 수중에서는 GPS가 무용지물이므로 자력계로 자기장의 강도를 분석, 상어의 이동 방향을 알아낸다.
부이
합성 발포재로 제작된 해머태그의 상단부는 태그가 상어의 몸에서 분리됐을 때 부이(buoy)의 역할을 한다.
위성 안테나
상어가 수면 근처로 올라올 때 '아르고스(ARGOS)' 위성에 데이터를 전송한다. 하루 최대 32바이트의 패킷 데이터 120개를 보낼 수 있다. 하루 동안 벌어진 모든 세부상황의 요약 정보를 보내기에 충분한 능력이다.
수심 센서
합성 발포재 상단부 속에 채용된 압력센서가 태그의 내장프로세서에 수심 정보를 전달한다.
탑재장치
백업용 배터리, 온도센서, 3축 가속도계가 모듈 형태로 내장된다. 이중 가속도계의 데이터는 상어가 휴식중인지, 먹이를 추적 중인지 알려준다.
폭발물
상어의 움직임이 일정기간 멈추면 태그는 상어가 죽은 것으로 판단, 소형 폭발물을 터뜨린다. 몸에서 분리된 태그는 수면 위로 떠올라 그동안 저장한 데이터를 전송한다.
노즈콘 (Nose Cone)
해머태그와 상어가 연결되는 부위다. 태그의 강제 회수를 위해 소형 폭발물을 터뜨려도 상어 몸에 남는다.
부착방식
해머태그는 두 가지 방식으로 부착할 수 있다. 작은 상어는 송곳 모양의 기기를 이용하고, 큰 녀석의 경우 등지느러미에 구멍 3개를 뚫어서 나일론 줄로 묶는다.
부수 어획 그물 등의 어구(漁具)에 당초 목표로 하지 않은 어류가 부수적으로 포획되는 것.
기수(汽水) 해수와 담수가 만나는 지점에서 형성되는 염도가 낮은 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