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거대 글로벌 제약회사를 경영하기에 좋은 때일까, 아니면 끔찍한 시기일까? 나쁜 소식은 미국 정부가 건강보험개혁법에서 약속한 지출 삭감을 달성하기 위해 의약품 공급업체에 지불하는 비용을 긴축하려 하고, 돈이 궁한 유럽 정부들도 의료 및 의약품 비용을 줄이려 한다는 사실이다. 반면 희소식은 베이비 붐 세대가 도움이 절실한 연령에 접어드는 이때에 현대 의학이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질병 정복에 가까워지고 있다는 점이다. 획기적인 백혈병 치료제 글리벡 Gleevec 를 비롯해 진통제 엑세드린 Excedrin , 감기약 테라플루 Theraflu 등 소비자 브랜드를 생산하는 스위스 제약회사노바티스 Novartis 가 이런 세계에서 방향을 잡도록 하는 것이CEO 조 히메네스(53)의 임무다. 그는 최근 포춘의 제프 콜빈 Geoff Colvin 과 만나 암 정복과 R&D 최대 활용법, 인구가줄어드는 러시아가 왜 성장 시장인지 등 다양한 주제에 대해이야기를 나눴다. 다음은 히메네스와의 인터뷰 내용을 발췌· 편집한 것이다.
Q 노바티스는 제약 연구의 선두 주자 중 하나다. 현재 가장 기대되는 분야는 어떤 것들이 있나?
향후 5~10년간 제약 개발에서 획기적인 발전을 보여줄 분야 중 하나는 ‘종양학(Oncology)’이다. 기술이 정말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인간 게놈의 딥 시퀀싱 deep sequencing *역주: 첨단 염기서열 분석법이 가능해지고 비용이 저렴해지면서,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발견을 가능하게 해주는 데이터가 풍부해졌다. 또한 ‘재생 의학(regenerative medicine)’도 향후 10년간 성장 분야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나이가 들면 근육, 시력, 청력의 감퇴가 아주 흔하게 나타난다. 기술의 폭발적 발전 덕분에 우리는 이런 분야에서 혁신적인 신약들을 발견하고 개발할 수 있게 됐다.
의학 연구의 본질이 변하는 것 같다. 예전에는 불가능했던 엄청난 양의 데이터 분석 작업이 본질이라면, 새로운 전문분야 개발이 필요한 것 아닌가?
맞다. 오늘날 이용 가능한 데이터의 양을 고려할 때, ‘생물 정보공학(bioinformatics)’역량이 매우 중요해질 것이다. 이는 데이터를 찾아내고 이해하는 역량을 말한다. 예컨대 특정한 유형의 암을 일으키는 구체적인 돌연변이들에 대해 제대로 이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이는 우리에겐 IT가 신약 발견의 핵심적 부분이 됐다는 것을 의미한다. 미래에는 의학, 과학, 정보 기술이 융합되어야 의학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의 의료 지출이 지금 추세로 계속 늘어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증가세는 멈춰야 한다. 이것이 거대 제약회사에겐 궁극적으로 좋은 일인가, 아니면 나쁜 일인가?
무엇보다도 필요한 일이다. 이런 지출의 증가(특히 미국에서)를 계속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탄탄한 재정적 토대를 마련해야 한다. 하지만 의약품 비용이 전체 의료 지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일반적으로 15% 또는 그 미만이다. 입원비, 의사 진료비, 간호비가 지출의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그러므로 제약회사들에 꼭 좋다거나 나쁘다고 할 수 없다.우리의 임무는 혁신적인 신약을 발견하고 개발하는 일이다. 특정 질병 분야의 의료 관행을 바꿀 신약을 개발한다면, 그 약들은 보상을 받을 것이다. 서서히 좋아지는 신약은 앞으로 사라질 공산이 매우 높다. 그러나 약효가 획기적인 신약은 계속 보상의 혜택을 누릴 것이다.
노바티스는 블록버스터 약품 개발에 관련된 의학적 돌파구를 찾는 과정에서 다른 회사들과는 다른 방식을 취하는 것 같다. 당신 회사의 접근법을 설명해 달라.
그렇다. 우리는 다른 접근법을 택했다. 약 10년 전부터 우리는 이 방식을 ‘경로 접근(pathway approach)’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특정 질병?주로 환자 집단이 매우 동질적인 희귀 질환 증세를 보인다?의 분자 경로(molecular pathway)를 이해하는 방식이다.
그 경우는 환자 집단이 매우 작을 수 있는데.
숫자가 적더라도 동질적인 환자 집단의 경우, 해당 질환과 그 질환에 이르는 분자 경로를 연구할 수 있다. 우리는 이들에 대한 연구를 통해 그 경로를 차단할 약을 개발한다. 그 다음에는 같은 경로를 통해 영향을 받는 다른 질병들에까지 기계론적으로 확대할 방법을 찾으려 한다. 따라서 블록버스터 약품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대신 한가지 약이 한 가지 질병을 치료하는 것에서 벗어나 셋, 넷, 심지어 다섯 가지 다른 질병에 적용되는 것으로 블록버스터의 정의가 크게 바뀐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어떤 것이 있나?
노바티스의 종양 치료제 ‘아피니토’ Afinitor가 좋은 사례다. 아피니토는 mTOR(인간 세포 내 단백질의 한 종류) 저해제다. mTOR의 경로는 다양한 유형의 질환과 관련돼 있다. 처음에 우리는 아피니토를 신세포암(신장암)용으로 개발했고, 그 후 다른 여러 가지 암에 실험하기 시작했다. 최근에는 유방암용으로 승인을 받아 이제 매년 22만 명 이상의 유방암 말기 환자에게 도움을 줄 것이다. 신세포암(신장암)으로 시작해 유방암으로 범위를 확대한 아피니토는 이렇게 다른 여러 가지 용도로 활용할 수 있는 약품이다. 이 모두를 합치면 아피니토는 블록버스터가 될 것이다.
R&D는 노바티스와 마찬가지로 경쟁사들도 엄청나게 투자하는 분야다. 다른 회사들에 비해 R&D 비용 1달러당 더 많은 성과를 거두는 비결은 무엇인가?
좋은 질문이다. 누구나 연구·개발의 생산성을 높이려고 노력한다. 그동안 우리는 몇가지 중요한 점을 발견했다. 첫 번째는 훌륭한 과학자들을 찾아야 한다는 점이다. 그래서 우리는 과학자들이 있는 곳에 연구소를 지었다. 특정 장소로 모이라고는 하지 않았다. 미국과 유럽에 연구소를 세웠고 지금 상하이에 하나를 더 짓는 중이다. 인재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찾아가고 있다. 그것이 최우선 순위다. 두 번째는 연구·개발에 지속적으로 충분히 투자하는 것이다. 노바티스는 매출의 20% 정도를 연구·개발에 투자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 제약 사업에 매년 90억 달러 이상을 투자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좋은 인재와 적절한 규모의 투자가 결합되면, 성공의 첫 단추가 제대로 끼워진 것이라 할 수 있다.그 다음이 적절한 접근법이다. 어떻게 약을 발견하고 개발할지에 대해 다른 관점에서 다가가는 것이 바로 우리의 경로 접근이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서유럽 시장 외에 노바티스가 성장할만한 지역은 어떤 곳이 있나?
중국 사업은 규모가 막대할 뿐만 아니라 계속 성장하고 있다. 중국은 최근 노바티스의 10대 시장에 진입했다. 작년에는 24%의 성장세를 보였다. 중국 정부는 도시 및 농어촌 지역 국민의 의료상황을 개선하겠다는 계획을 대대적으로 추진 중이며, 우리는 이것이 지속적으로 성장할 분야라고 보고 있다. 또 다른 성장 지역은 러시아다. 하지만 인구 감소가 큰 문제다. 그래서 러시아 정부는 인구 감소를 역전시키는 방향으로 의료에 대한 접근을 개선하겠다는 약속을 내놓았다. 우리는 그 외에도 다수의 개발도상국들을 성장 지역으로 보고 상당한 투자를 하고 있다.
그런 시장들은 구미 시장과 상황이 매우 다르지 않나?
대부분의 의료 비용을 국민들 본인이 직접 부담한다.사실이다. 투약 비용의 대부분이 자기부담이다. 하지만 동시에 중국의 경제 성장과 인구의 절대 규모를 생각해야 한다. 중국인들은 우리가 중국에서 출시한 많은 혁신적인 약들을 원하기 때문에 기꺼이 자기 돈을 내고 산다.
아프리카 쪽의 전망은 어떤가?
아프리카는 차세대 신흥 시장이라고 생각한다. 앞으로 5년 내에 성장하지는 않겠지만, 우리는 지금 바로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에 인프라 구축을 시작해야 한다. 특히 나이지리아와 케냐 같은 국가들은 연 6~7%씩 성장하고 있다. 이런 나라들의 의료 인프라는 아직 걸음마 단계에 불과하다. 하지만 이곳에서도 곧 신흥 중산층이 부상할 것이다. 5~15년 사이에 아프리카가 노바티스에 엄청난 성장 잠재력을 제공할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H.J. 하인즈에서 근무한 몇 년을 포함해 2007년 노바티스에 합류하기 전까지 당신은 커리어의 대부분을 소비제품 분야에서 보냈다. 함께 일하는 동료들만큼 기술적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리더들에게 해 줄 조언이 있다면?
의사나 과학자가 아닌 내가 과학에 기반을 둔 회사를 경영하는 건 매우 흥미로운 도전이다. 누구의 말을 듣고, 누구의 말은 듣지 말아야 할지 판단할 수 있을 만큼의 과학 지식은 필요하다. 자신의 강점을 살리라는 조언을 해주고 싶다. 업계 밖의 전반적 판도를 보고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이해한 뒤, 이를 활용하는 방향으로 회사를 포지셔닝하는 능력이 내 강점이었다. 특정 업계 출신이 아니라는 점이 오히려 장점이 될 수도 있다. 업계 내부의 사고방식에 얽매이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리더십 시리즈 이 시리즈의 원래 제목은 ‘최고경영진의 전략(C-Suite Strategies)’이다. 포춘 선임기자 제프 콜빈이 최고경영인들과 나눈 인터뷰 내용을 담고 있다. 포춘 홈페이지(fortune.com/leadership)에서 이번 인터뷰의 일부 동영상은 물론, 찰스 슈왑 Charles Schwab, GE의 제프 이멜트, P&G의 A.G. 래플리, 뉴욕시 전 교육감 조엘 클라인, 핌코의 모하메드 엘-에리언, 휴매나의 마이클 매칼리스터 등과 가진 인터뷰 동영상도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