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폭탄 탐지 인공 개코

SNIFF TEST<br>현존 최고의 폭발물 탐지기는 견공이다. <br>과학자들이 이들의 폭탄 탐지 능력에 도전장을 던졌다.





2012년 말 미국 앨라배마주 옥스퍼드 소재 퀸타드 쇼핑몰.


크리스마스 시즌을 맞아 쇼핑몰은 선물을 사려는 고객들로 북적였다. 그리고 필자는 청바지 뒷주머니에 TNT를 넣은 채 인파 사이를 지나고 있었다. TNT를 빻아서 118㏄ 용량의 나일론 백에 넣은 상태였기에 폭발 위험은 전혀 없었지만 아무 것도 모르는 사람들을 보며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실 이 TNT는 폭탄탐지견 '슈그'의 대테러 훈련을 위한 것이었다. 슈그는 미국 오번대학 산하 탐지견연구소(CDRI)에서 훈련을 받고 있는 검은색 래브라도 리트리버로 매주 한 번씩 오렌지색 조끼를 입고 이곳에서 실전연습을 하고 있다. 이날 슈그는 폭탄에서 나오는 휘발성 분자의 냄새를 맡고 필자를 잡아내야 한다.

CDRI의 훈련교관들은 지난 1년간 슈그의 후각을 다듬어 필자가 휴대했던 폭발물처럼 매우 분명하고도 위험한 징후를 탐지할 수 있도록 훈련시켜왔다. 개에게 있어 후각은 가장 원초적이자 핵심적 감각으로 인간의 시각만큼 중요한 데이터들이 수집된다. 인간과 비교해 평균 1만배, 최대 100만배나 뛰어날 만큼 민감하기도 하다.

때문에 필자는 TNT 분말의 냄새를 전혀 맡을 수 없지만 슈그는 다르다. 온갖 냄새를 풍기는 수천 명의 사람들 속에서도 거의 즉각적으로 폭탄의 존재를 냄새로 인지한다. 특히 슈그는 세계 최고 수준의 탐지견을 배출해온 CDRI에서도 최신, 최고의 훈련프로그램을 이수하며 이른바 '증기 흔적 탐지견(Vapor Wake Dog)'으로 키워지고 있다.

기존의 폭탄탐지견은 폭탄이 들어있는 자동차나 가방 앞에 가야 폭탄의 존재를 알아채지만 증기 흔적 탐지견은 사람이 붐비는 공공장소에서 특정 증기 분자의 냄새를 정확히 찾아내 이동경로를 쫓아간다. 폭탄이 이동한 곳의 주변 공기 냄새만으로도 추적이 가능한 것. 수많은 군중을 일일이 수색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고, 소수의 용의자를 검문하는 것으로는 보안에 구멍이 뚫릴 수 있다는 한계를 극복할 최고의 폭탄테러 방지책인 셈이다.

필자가 쇼핑몰의 중앙광장으로 걸어가자 코를 쳐들고 있는 슈그가 보였다. 급히 방향을 틀어 한 상점의 쇼윈도를 구경하는 척하다가 슈그가 쳐다보지 않을 때를 기다려 약 3m 거리를 두고 재빨리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향기로 가득한 목욕용품 상점에 들어서는 순간 등 뒤에서 강아지가 발톱으로 바닥을 긁는 소리가 들렸다. 슈그였다. 모든 훈련이 완료되면 이보다는 소란스럽지 않은 방식으로 폭발물 탐지 사실을 알렸을 테지만 어쨌든 이날 실습은 성공이었다.

임무성공에 대한 포상으로 던져준 공을 물고 이리저리 날뛰는 슈그를 보며 쇼핑객들이 미소를 지었다. 필자가 진짜 테러리스트였다면 이 녀석이 방금 자신의 목숨을 살려줬다는 사실은 전혀 모른 채 말이다.

슈그는 사람들로 붐비는 쇼핑몰, 그것도 바디용품과 향수들이 가득한 매장 앞에서 3m 밖으로 지나간 소량의 TNT를 탐지해냈다. 그런데 만일 테러리스트가 탐지견을 발견한 뒤 멀리 피해가거나 탐지견이 배치되지 않은 공공장소를 타깃으로 폭탄테러를 가한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다. 개는 인간이 가진 냄새 탐지장비 가운데 제일 정밀하며, 인간은 1만년 이상 개를 훈련시켜오면서 그들의 후각 능력을 극대화할 방법을 알고 있다. 하지만 개는 만능이 아니며, 완벽하다고 보기도 어렵다.

일례로 CDRI에서의 훈련비용은 개 한 마리당 무려 3만 달러가 넘는다. 또한 태어난 직후부터 훈련이 시작돼야 하지만 탐지견의 자질을 가진 순종견이나 우수한 훈련교관의 숫자는 매우 제한적이다. CDRI에서 배출되는 탐지견의 수가 연간 수백마리를 넘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게다가 개는 지각이 있는 생명체다. 인간과 마찬가지로 졸기도 하고, 두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수명에 제한이 있으며 실수도 저지른다.

지난 4월 일어난 보스턴 마라톤 대회 사고는 폭탄테러가 분명히 실존하는 위협임을 만천하에 상기시켰다. 이를 막기 위해선 탁월한 후각을 가진 탐지견이 더 많이 배치돼야 한다는 점도 분명해졌다. 그리고 여기에 더해 신뢰성 높고, 대량생산이 가능하며, 여러 장소에 손쉽게 배치할 수 있는 탐지장비가 개발돼야만 개들로는 커버할 수 없는 보안상의 구멍을 메울 수 있다는 인식이 강하게 확산되고 있다. 개들의 후각을 능가하는 '인공 전자 코'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보스턴 마라톤 대회 폭탄테러에서 드러났듯 우리에게는 탐지견과 그들의 후각이 필요하다.



펜타곤 산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은 지난 1997년 바로 그런 역할을 할 기기의 개발을 위한 프로그램을 런칭했다. 지뢰 탐지용 인공 코가 그것.

군사기술 연구기관인 DARPA가 이 분야에 뛰어든 것은 전장의 병사야말로 현실에서 폭발물의 위협에 가장 자주 노출되는 부류인데다 전장이 아닌 장소에서의 폭탄 탐지 필요성도 계속 커져갔기 때문이다.

1988년 팬암 103편 항공기가 폭탄테러에 의해 스코틀랜드의 로커비 상공에서 폭발하며 270명이 숨졌고, 1993년에는 이슬람 원리주의자들이 뉴욕 세계무역센터의 지하주차장에서 자동차 폭탄 테러를 가하기도 했다. 또 1995년에는 티모시 맥베이가 그 유명한 오클라호마 연방청사 폭탄테러를 벌여 168명의 인명을 앗아갔다. 이런 시대적 배경에 힘입어 DARPA의 프로젝트는 일명 '개코 프로그램 (Dog's Nose Program)'이라 불리면서 국가안보상 높은 우선순위를 부여받았다.

3년여의 연구 끝에 이 프로그램의 연구자들은 폭발물과 직접 접촉하지 않고 주변 공기의 냄새만으로 폭발물 존재 유무를 탐지하는 인공 전자 코 기술의 초석을 마련했으며, MIT 화학자 티모시 스웨거 박사는 형광 폴리머를 활용해 아이디어를 구체화했다. TNT의 화학 분자가 형광 폴리머에 닿으면 형광이 사라지면서 주변에 TNT가 있음을 알려주는 방식이었다.

이는 '피도(Fido)'라는 명칭의 휴대형 TNT 탐지기 개발로 귀결됐다. 아프가니스탄 등지의 탈레반들이 자주 사용하는 급조폭발물(IED)이 대부분 TNT를 함유하고 있어 지금도 전장에서 널리 쓰이고 있는 기기다. 하지만 피도 이후 전자 코 기술의 발전은 정체됐다.

극단적으로 말해 후각은 일종의 화학물질 탐지시스템이다. 사람을 포함한 동물들은 후각 수용기에 화학분자가 달라붙으면 뇌로 전기신호를 보내 그 분자의 정체를 해독하는데 기계의 경우 질량분석기로 수용기와 뇌의 뉴런 역할을 대신한다.

폭발물을 비롯한 거의 모든 냄새는 분자들이 일정 패턴으로 조합된 산물로 인공 전자 코가 개의 코와 같은 폭발물 탐지 능력을 발휘하려면 극소량의 냄새 분자 속에서 폭발물의 분자 조합을 감지해야 한다.

이와 관련 TNT는 전자 코로 감지가 용이한 물질이다. 증기압이 상대적으로 높아 많은 분자들이 공기 중에 방출되기 때문이다. 피도 탐지기 또한 이런 방식으로 TNT를 발견한다. 반면 다른 흔한 폭발물, 그중에서도 C-4 폭약의 주성분인 RDX나 셈텍스 폭약의 성분인 PETN는 증기압이 매우 낮다. 평형상태에서 ppt(1조분의 1), 주변의 공기로 분자가 퍼져나갈 때는 ppq(1,000조분의 1) 수준까지 냄새 분자의 공기 중 함량이 떨어질 수도 있다.

미국 워싱턴주 리치랜드 소재 북서태평양국립연구소(PNNL)의 선임연구자 데이비드 앳킨슨 박사에 따르면 이 정도 극미량의 분자는 아주 최근까지도 탐지 자체가 불가능했다.

필자가 올 1월 연구실을 방문했을 때 그는 오랜 연구의 최종 결실을 눈앞에 두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농담조였지만 또렷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다.

"저희 시스템만 있다면 앞으로는 개가 필요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그가 가리킨 연구실의 구석을 보니 구리 파이프로 만든 기다란 주둥이를 가진 복사기 크기의 기계가 한 대 있었다. 부품 사이에 전선들이 어지럽게 얽혀 있는 채였다. 그는 부품 대다수가 상용제품이어서 기계 자체는 특별히 복잡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작년 가을 앳킨슨 박사팀은 이 장치로 대단한 성과를 거뒀다. 주변 공기에 퍼진 극미량의 RDX와 PETN 증기 분자를 탐지해낸 것. 기계를 이용한 최초의 탐지였다. 그것도 기존의 화학물질 감지 장치와 달리 가열하거나 농도를 높이는 등의 물리·화학적 추가공정 없이 증기 흔적 탐지견처럼 공기 중에서 폭탄의 냄새를 맡아 그것이 폭탄의 증기 분자임을 확증해냈다. 폭탄테러에 가장 많이 이용되는 폭발물들을 직접 탐지할 길이 열린 것이다.

“개는 1초당 최대 10회나 코를 킁킁거리고, 매번 약 0.5ℓ의 공기를 흡입하죠. 하지만 현재의 인공 코는 1초당 2㎖도 처리하지 못해요.”



앳킨슨 박사가 자신의 걸작을 자랑하는 동안 연구팀의 로버트 유잉 박사가 시연을 준비했다. RDX가 묻은 유리판을 집어든 그가 말했다.

"RDX는 평형상태에서의 증기압이 5ppt에 불과해요. 특히 이 표본은 1년 전에 만들어서 지금껏 실외에 방치돼 있었죠. 냄새가 훨씬 약해졌다는 얘깁니다."

유잉 박사는 RDX 표본을 기계의 구리 파이프 앞에 가져간 뒤 다시 말을 이었다.

"파이프를 통해 흡입된 공기가 이온원으로 전달되죠. 이온원에서는 폭발물의 분자와 대전입자가 선별적으로 짝을 짓습니다. 이를 질량분석기가 받아서 분석을 하는 겁니다."

분석결과를 그래프로 보여주는 컴퓨터 모니터를 확인하니 표본을 갖다 댄 지 몇 초 만에 선이 급상승했다. RDX에 이어 진행된 C-4와 셈텍스의 표본도 완벽히 감지해냈다. 향후 상용모델이 출시된다면 공공안전에 큰 도움이 될 것이 확실해 보였다.

하지만 이 장비를 연구소 밖으로 꺼내 현장 배치하는 데는 넘어야할 장벽이 적지 않다. 일단 올 4월 현재 탐지 가능한 폭발물의 종류가 9종뿐이다. 이 숫자를 더 늘려야 한다. 앳킨슨과 유잉 박사는 연구비만 추가 지원되면 다른 화학 분자도 탐지할 수 있도록 기기를 개량할 자신이 있다고 말하지만 말이다.

또 일선 현장에서 쓰이려면 크기의 축소도 필요하다. 아직은 고성능 질량분석기 중 가장 작은 모델의 크기가 레이저 프린터 수준이다. 경찰이나 보안요원들이 들고 다닐 수 있을 정도로 대폭적 다이어트를 해야 한다.

"소형화를 꾀하려면 핵심부품인 진공펌프의 소형화부터 이뤄야 합니다. 현재 DARPA가 이를 위한 연구프로젝트에 자금을 지원하고 있죠. 이 연구성과가 질량분석기에 적용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말이에요."

만약 앳킨슨 박사팀이 성능과 크기의 개선에 성공한다면 이 시스템을 적용할 수 있는 대상은 무궁무진하다. 공항의 금속 탐지기나 전신 투시 스캐너와 접목시켜 테러 예방 능력을 극대화할 수도, 군용 무인 로봇이나 무인 트럭에 탑재해 인간 병사와 개를 보내기에 너무 위험한 지역을 정찰할 수도 있다.

특히 배낭에 넣을 수 있는 크기로의 소형화에 성공할 경우 정말로 절실한 사람들에게 공급, 많은 인명을 구하게 된다. 아프가니스탄에 파병된 군인, 철도역·카레이싱 대회·퍼레이드 등 공공장소 및 대형 행사를 경비하는 경찰관들이 그들이다.

물론 인공 전자 코 연구자는 앳킨슨 박사 외에도 많다. MIT 연구팀은 벌의 봉독에서 추출한 펩티드로 탄소나노튜브를 코팅해 특정 폭발물의 분자만 선택적으로 결합되도록 함으로써 폭발물을 감지하는 기술을 연구 중이다. 또 프랑스-독일연구소(ISL)의 데니스 스피처 박사팀은 수놈 누에나방의 더듬이를 모방한 미세전자기계시스템(MEMS) 형태의 화학물질탐기기를 개발하고 있다. 수놈 누에나방의 더듬이는 공기 중에 떠다니는 단 한 개의 암컷 페로몬 분자까지 탐지한다.

이들의 연구는 전 세계의 대테러 능력을 대폭 향상시켜 줄 것이 자명하다. 하지만 인공 코를 개의 코만큼 민감하게 다듬으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 피도 탐지기의 제작사인 플리어 시스템즈의 선임연구자 마크 피셔 박사에 따르면 냄새를 맡는 방법도 그중 하나다.

"어떤 인공 코를 막론하고 첫 단계는 냄새 분자를 탐지기에 접촉시켜야 합니다. 개는 1초당 최대 10회나 코를 킁킁거리며, 그럴 때마다 약 0.5ℓ의 공기를 흡입하죠. 반면 킁킁거리지 못하는 피도의 공기 처리량은 1분당 100㎖ 이하에 불과해요."

앳킨슨 박사의 탐지기도 1분당 20ℓ로 피도보다는 낫지만 개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그리고 이보다 더 심각한, 아니 어쩌면 불가능할지도 모르는 문제도 있다. 바로 후각 자체의 메커니즘을 정확히 이해하는 것이다.

“개는 냄새라는 신비한 언어의 원어민이에요. 반면 인간 과학자들은 이제 철자법을 배우는 수준이죠.”



후각은 가장 오래 된 감각기관이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인간이 가장 알지 못하는 감각기관이기도 하다.

실제로 혹자는 후각을 생명의 시작과 동시에 등장한 태초의 감각이라 칭한다. 원시 수프를 떠다니던 단세포 유기체들은 먹이를 찾거나 위험요소를 피하기 위해 화학물질 탐지체계를 갖고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놀라운 사실은 인간의 오감 중 오직 후각만이 뇌에 후각신경구(olfactory bulb)라는 전용 처리영역을 갖고 있다는 점이다. 여타 감각과 달리 획득한 냄새 정보를 곧바로 뇌의 고등처리영역에 보내지도 않는다. 후각 수용기에 냄새 분자가 달라붙으면 전기신호가 후각신경구와 대뇌 변연계를 거쳐 대뇌피질로 전달된다. 대뇌 변연계는 감정과 기억을 관장하는데 냄새를 맡으면 그 냄새와 관련된 추억이 함께 생각난다거나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환자들이 특정 냄새만으로 사고 상황이 떠올라 극도의 공포에 휩싸이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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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후각의 기본 구조는 모든 포유동물들이 동일하다. 종(種)에 따라 냄새에 얼마나 민감한지의 차이가 있을 뿐이다. 개나 설치류처럼 후각이 생존의 필수적 감각인 동물들은 수천 종의 냄새를 정확히 구별한다.

신체구조와 냄새를 맡는 방법 역시 후각과 밀접하다. 개를 예로 들면 일단 코의 위치가 많은 냄새 분자들이 머물러 있는 땅과 가깝다. 킁킁거리는 빈도도 인간보다 잦으며, 그 방식이 훨씬 효율적이다. 처음에는 날숨을 뿜어 주변의 잡냄새를 몰아낸 뒤 공기를 흡입, 타깃의 냄새 분자를 더 많이 후각 수용기와 접촉시킨다.

냄새를 잘 맡는 개는 후각 수용기의 숫자도 인간보다 10배나 많다. 게다가 인간은 뇌 기능의 5%만 후각에 할당돼 있지만 개는 35%에 달한다.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후각·미각센터의 리처드 도티 소장에 의하면 청각과 시각은 19세기 들어 이해도가 높아졌으나 후각의 기전이 처음 과학적으로 설명되기 시작한 것은 50년이다.

"후각의 생리학적 기제는 수십 년 전에야 규명되기 시작했죠. 그런데 후각 연구에 많은 사람들이 뛰어들수록 실체에 다가가기가 더 복잡해지고 있어요."

커피 냄새, 휘발유 냄새 등 우리가 알고 있는 거의 모든 냄새는 여러 화학물질로 이뤄진 화합물 냄새다. 즉 탐지기는 모든 화학물질의 증기 분자를 흡입, 그 조합을 정확히 알아내야 한다. 휘발유의 냄새 분자를 흡입해놓고 경유나 등유로 착각해서는 안 된다는 얘기다. 도티 소장은 이를 코드에 빗대어 설명한다.

"활성화된 단백질들이 어떻게 조합돼 있는지가 바로 냄새의 코드라 할 수 있습니다."

개처럼 폭발물 냄새를 잘 인지하는 탐지기를 개발하려면 냄새의 코드를 해석, 그 냄새와 냄새를 만드는 조합을 알려줄 인공 후각 수용기를 프로그래밍해야 하는 것.

재차 말하지만 앳킨슨 박사팀의 탐지기는 여러 면에서 이러한 과정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일 뿐이다. 커다란 과학적 진전임에는 틀림없지만 수만 년에 걸쳐 자연이 수행한 생체공학적 진화의 결과와 비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개의 후각은 우리의 상상을 뛰어넘을 만큼 섬세해요. 꿈속에서도 냄새를 맡을 정도랍니다. 이를 보면 개는 냄새를 개념화할 능력이 있는지도 몰라요. 인간처럼 뇌가 생각을 시각화하는 대신 후각화하는 거죠."

이뿐만이 아니다. 동물은 메타데이터를 냄새로 전달할 수도 있다. 전신주의 냄새를 맡는 개는 여러 정보가 적힌 게시판을 읽고 있는 것과 같다. 또한 개는 다른 종의 페로몬을 감지할 수 있으며 후각으로 공포와 암, 당뇨병까지 알아낼 수 있음이 과학적으로 입증됐다. 미국 필라델피아 소재 모넬화학감각센터의 게리 보샹 소장도 사람들이 서로 만날 때보다 쥐들이 서로의 냄새를 맡을 때 얻는 정보가 훨씬 많다고 설명한다.

"화학적 코드의 해독이 철자법을 익히는 것이라면 메타데이터의 해독은 문법을 마스터하는 수준이라 볼 수 있어요. 개가 냄새라는 신비한 언어의 원어민이라면 인간 과학자들은 이제 막 알파벳을 배우고 있는 거죠."

“개처럼 모든 기능을 갖춘 기계의 개발은 불가능해요. 개와 기계는 경쟁이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정립해야 합니다.”



냄새의 복잡성에 대해 미국 오번대학 CDRI의 폴 웨고너 부소장만큼 잘 아는 사람은 몇 없다. 행동과학자로서 개의 후각을 20년 이상 철저히 연구해온 그는 수인사를 나눈 뒤 필자에게 이렇게 말했다.

"CDRI를 떠날 때쯤에는 개를 예전처럼 바라보지 못하실 겁니다."

CRDI는 애팔래치아산맥의 기슭에 위치한 예전 미군기지의 일부를 부지로 사용하고 있다. 매년 100~200마리를 낳아 교육시키고 있는데 래브라도 리트리버가 대다수며 벨기에 말리노이즈, 셰퍼드, 독일 쇼트헤어드 포인터 등도 기른다.

웨고너 부소장은 태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어린 강아지들이 머무는 야외 견사로 필자를 안내했다. 일반 견사와 달리 바닥이 쇼핑몰이나 공항, 경기장 등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매끄러운 타일로 되어 있었다.

"훈련은 생후 첫 주부터 시작돼요. 젖을 떼고 나면 플로리다주와 조지아주의 교도소로 보내져 시끄럽고, 부산스러우며, 돌발 상황이 빈발하는 환경 속에서 재소자들과 생활하며 사회성을 기른 다음 제게 다시 돌아오죠. 1년간의 훈련을 마친 뒤에는 미 철도여객공사, 국토안전부(DHS), 경찰청, 미군 등에 보내집니다."

웨고너 부소장은 그동안 개의 후각능력을 수치화하기 위해 오랜 노력을 기울였다. 얼마나 미량의 냄새 분자까지 감지하는지, 여러 냄새를 감지하도록 훈련하면 전체적인 냄새 감지 효율이 떨어지는지, 기온·바람·피로도 등이 감지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지와 같은 연구를 수행했다. 또한 폭약의 종류만 해도 무한대에 가깝다는 점에서 동일 종류의 물건 냄새를 얼마나 세분화할 수 있는지도 연구했다.

이런 웨고너 부소장은 인공 전자 코와 같은 첨단 기술의 등장으로 언젠가 개가 대테러 현장에서 퇴출될 것이라는 일부의 판단에 동의하지 않는다.

"우리는 여전히 잠재력이 뛰어난 개를 선택·교배·출생시키는 하는 법, 더 효과 좋은 탐지견 및 운용요원 훈련법 등을 배워가고 있습니다."

그는 심지어 개들을 자기공명영상장치(MRI)로 촬영, 특정 냄새 분자에 의해 발화되는 뉴런의 전기신호를 파악하기 위해 MRI 속에서 소음과 지루함을 견뎌내는 방법까지 훈련시켰다. 이런 뇌 신경신호 정보를 훈련교관에게 실시간 알려주는 시스템이 구축된다면 탐지 정확도를 한 차원 업그레이드 시킬 수 있다.

"RDX와 PETN에 반응하는 뉴런이 다를 경우 탐지견의 뉴런 정보로 폭탄의 종류를 알 수 있어 폭탄처리반의 대응력을 높일 수 있습니다."

CRDI의 개들이 가진 온갖 재능을 필자에게 시연한 웨고너 부소장은 자신의 연구실로 돌아와 컴퓨터에 저장된 동영상을 보여줬다. 그가 '자율 개 내비게이션'이라고 명명한 실험 영상이었다.

영상에 등장한 '메이저'라는 이름의 래브라도 리트리버는 구글의 스트리트 뷰 매핑카에 장착돼 있는 것과 유사한 촬영장비를 등에 매고 있었다. 컴퓨터가 사전 입력된 지도 정보를 바탕으로 '삐' 소리가 나는 전자음을 활용해 개에게 좌회전, 우회전, 전진을 지시했고 메이저는 자신이 훈련받은 데로 그 지시에 맞춰 정확히 움직였다.

"메이저의 등에 부착된 카메라와 GPS가 메이저의 위치 및 냄새 맡는 상황을 노트북으로 실시간 전달합니다. 이동 중 폭발물을 감지하면 노트북에서 경보가 울리고, 지도에 그 위치가 표시돼요."

메이저와 같은 훈련을 받은 탐지견은 넓은 장소를 신속히 수색해야 하는 상황에서 매우 유용할 것이다. 고층빌딩에 30분 뒤 폭발하는 시한폭탄이 설치됐다고 가정해보자. 휴대형 인공 전자 코로는 시간 내에 모든 공간의 탐지가 어렵다. 하지만 메이저라면 홀로 뛰어다니며 순식간에 한 층의 탐색을 마칠 수 있다.

"개처럼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기능을 갖춘 기계의 개발은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개와 기계는 경쟁 상대가 아닌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수립해야 해요."

이 시점에서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웨고너 부소장이나 앳킨스 박사, 다른 말로 탐지견 훈련에 매진하는 사람이나 인공 전자 코 연구자는 목표가 같다는 점이다. 바로 폭탄 테러 방지다.

“개가 뛰어난 부분도, 기계가 뛰어난 부분도 있어요. 한쪽의 단점을 다른 쪽에서 보완한다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죠.”



웨고너 부소장의 지적대로 증기 흔적 탐지견 1개팀이 매일 뉴욕의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전체를 수색하는 것은 너무나 비능률적이다. 앳킨슨 박사의 인공 코를 주요 지점에 배치해 놓았다가 경보가 울렸을 때 탐지견을 투입하는 게 누가 봐도 합리적이다.

피도 탐지기의 제작사인 플리어 시스템즈가 별도의 개 연구팀을 운용 중인 것도 마찬가지 이유에서 이해할 수 있다. 킵 슐츠 팀장은 이것이 단순히 개와 탐지기를 비교 연구하기 위함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관련업계가 바보가 아니라면 개와 기계를 조화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갈 거예요. 개가 뛰어난 부분도, 기계가 뛰어난 부분도 있으니까요. 한쪽의 단점을 다른 쪽에서 보완해 더 나은 해결책을 찾을 수 있죠."

슐츠 팀장은 또 개와 인공 코 기술을 함께 발전시켜야 한다는 웨고너 부사장의 의견에도 동의한다.

"아직은 컴퓨터와 개를 결합하려는 연구에 많은 투자가 되고 있지 않지만 10~15년 뒤 CDRI팀의 연구는 우리에게 상상 이상의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개 또한 만능이 될 수는 없다. 일례로 여행객들의 여행가방이 끊임없이 쏟아져 나오는 공항의 수화물 컨베이어 벨트에서 탐지견은 집중력을 잃어 오판을 일으킬 수 있다. 이 같은 지점에는 인공 코의 설치가 제격이다. 기계는 지치지도, 지루해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슐츠 팀장은 필자와의 기나긴 전화통화 끝에 이렇게 전했다.

"센서가 언젠가 탐지견들을 모두 몰아낸다고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을 거라고 말하고 싶네요. 물론 탐지견들도 센서를 절대 몰아내지 못할 거예요."



폭탄 탐지 인공 전자 코

미국 북서태평양국립연구소(PNNL) 데이비드 앳킨슨 박사팀은 작년 가을 공기 중의 냄새로 폭발물을 탐지하는 인공 코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RDX, PETN, 폭발성 젤라틴 등 널리 쓰이는 폭발물들은 공기 중 농도가 ppq(1,000조분의 1)에 불과할 만큼 냄새가 퍼지지 않는데 기존 탐지기는 이의 감지가 불가능해 용의자를 직접 검색해야만 했다. 반면 앳킨슨 박사팀의 탐지기는 특정 타깃의 냄새 분자만 포착하기 때문에 신속성과 정확성이 뛰어나다.

1.탐지기의 진공펌프가 직경 2.5㎝의 구리 파이프를 통해 분당 1~5ℓ의 속도로 공기를 흡입한다. 이때 공기 중의 폭발물의 증기 분자가 빨려 들어간다.
2. 증기 분자가 이온원으로 전달되면 대전 친화력이 높은 질산염(NO₃) 이온과 충돌하며 달라붙어 부가물, 즉 집단분자(cluster molecule)가 생성된다.
3. 긴 구리 파이프는 이런 반응시간을 약 2초까지 연장하는 효과를 낸다. 때문에 폭발물 분자를 더 많이 이온화시킬 수 있다.
4. 질량분석기 앞쪽에 형성된 전기장이 대전된 이온들을 폭 600미크론(μ) 정도로 줄 세워 질량분석기에 보낸다.
5. 질량분석기가 이온을 분석, 분자량을 측정한다. 현재 PETN, PETN, RDX, C-4, 셈텍스, 무연화약, 폭발성 젤라틴 등 9종의 폭발물 감지가 가능하다.



냄새 천재들

수중 물고기 탐지 : 알바트로스는 하늘에서도 물고기의 냄새를 맡는다. 비행 중 눈으로 보이지 않는 먼 곳의 먹이를 향해 진로를 바꾸는 것이 연구에 의해 밝혀진 것. 이 새는 한 방향으로 날면서 한 번에 수㎞의 해역을 관찰한다.

3D 입체 냄새 : 미국 동부의 두더지가 냄새를 스테레오, 즉 입체로 맡는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 이들은 눈이 퇴화된 데다 청력도 거의 사용하지 않기 때문에 냄새를 입체로 맡아 자신과 먹이의 위치 파악에 활용한다.

짝짓기 : 누에나방은 코가 없다. 그러나 후각수용기로 뒤덮인 더듬이를 갖고 있다. 이 더듬이로 모든 냄새를 맡지는 못하지만 수놈 누에나방의 경우 1.6㎞ 이상 떨어진 암컷의 페로몬 분자 한 개까지 감지한다.

단백질 탐지 : 상어는 아가미 호흡을 한다. 때문에 코는 오직 냄새 맡는 용도로만 쓴다.
그중에서도 먹이사냥에 최적화돼 있는데 1ppb 수준으로 희석된 먹이의 아미노산 분자를 감지할 수 있다.

선택과 집중 : 개는 냄새 구분 능력이 탁월하다. 미국 오번대학 산하 CDRI에서 훈련받은 탐지견은 수천 명의 학생들로 북적이는 대학캠퍼스에서 24시간 전에 걸어갔던 특정인의 이동경로를 추적한다.

후각 수용기 (olfactory receptors) 공기 중의 화학 물질에 반응해 후각 신경을 흥분시키는 코 속의 신경 세포.
이온원 (ion source) 질량분석기나 이온가속기에서 가속시킬 음이온 또는 양이온을 발생시키는 장치.
봉독 (bee venom, 蜂毒) 꿀벌의 산란관에서 나오는 독액. 신경통, 류머티즘, 요통 등의 민간요법으로 쓰인다.
펩티드 (peptide) 두 개 이상의 아미노산이 펩티드 결합된 화합물.
원시 수프 (primordial soup) 지구 생명 탄생의 원천이 된 수용액. 원생액(原生液)이라고도 하며, 생명의 기원을 설명하는 가장 유력한 이론의 하나다.
메타데이터 (metadata) 데이터에 관한 구조화된 데이터. 쉽게 말해 다른 데이터를 설명해 주는 데이터를 뜻한다.
그랜드 센트럴 터미널 (Grand Central Terminal)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44개의 플랫폼을 갖춘 세계 최대 기차역.
폭발성 젤라틴 (blasting gelatin) 면화약(guncotton, 綿火藥)을 니트로글리세린에 녹인 폭약.
아미노산 (amino acid) 단백질 분자의 가장 기본적인 구성 물질.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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