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IT

인터페이스 터미네이터

END OF THE INTERFACE<br>인간과 컴퓨터 사이의 대화 방식을 재정립하려는 두 명의 열혈남아들

올해 3월 미국 텍사스주 오스틴에서 개최된 연례혁신컨퍼런스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인터랙티브’. 미국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캠퍼스의 대학원생이자 동작인식 컨트롤러 개발 기업 리프 모션의 설립자인 24세의 데이비드 홀츠가 민간우주기업 스페이스 X의 창립자 엘론 머스크에 앞서 단상에 올랐다. 머스크 다음의 발표자는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을 일깨운 ‘불편한 진실’로 유명한 앨 고어 전 미국 부통령이었다. 청중들이 그를 본 무대에 앞서 분위기를 띄울 바람잡이 처럼 느꼈던 것도 물의는 아니었다.

하지만 마치 영화 ‘반지의 제왕’의 호빗족이 연상되는 외모와 헝클어진 머리, 헐렁한 폴로셔츠, 지갑을 넣어 앞주머니가 툭 튀어나온 바지 등 홀츠의 모습은 머리 다듬을 시간조차 없는 괴짜 혁신가들이 잔뜩 모인 SXSW에서도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그의 옆에 서 있던 친구이자 동료, 리프 모션의 공동설립자인 마이클 버크왈드는 보이지도 않을 정도였다.


청중의 생각에는 아랑곳하지 않는다는 듯 홀츠는 구속받지 않는 열정과 묘한 자신감을 뿜어내며 ‘사용자 인터페이스(UI)의 실종’이라는 주제로 발표를 이어갔다. 인간과 컴퓨터의 소통방식에 대한 얘기였다.

“저는 우리가 언어적 장벽에 구애받지 않고 어떤 컴퓨터라도 로그인해서 조작할 수 있는 세상을 희망합니다. 이를 구현할 기술은 누구나 직관적으로 이해하고 다룰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버크왈드가 홀츠의 말을 이었다.

“전자기기의 발전을 가로막는 장애물은 비용이나 전력효율, 사이즈가 아니라는 점이 갈수록 분명해지고 있습니다. 문제의 핵심은 조작 편의성입니다. 지금껏 편의성을 높인다고 드롭다운(drop-down) 방식의 메뉴나 단축 키 같은 것들이 개발됐는데 이들은 사용법을 배우고 익혀야만 다룰 수 있는 것들이죠.”

그 순간 노트북과 태블릿 PC를 보며 머리를 숙이고 있던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두 사람을 주시했고, 홀츠는 리프 모션의 제품 시연을 시작했다.

단상 위 테이블에 컴퓨터와 함께 놓여 있던 리프 모션 컨트롤러는 아이폰을 축소한 듯한 모습이었다. 이 컨트롤러는 자신의 위쪽 226.5ℓ 부피의 원추형 공간에서 일어나는 모든 움직임을 1마이크로미터(㎛, 1,000분의 1㎜) 단위까지 감지한다. MS의 동작인식 컨트롤러인 키넥트보다 월등히 우수한 민감도다.

홀츠가 컨트롤러 위에서 손을 흔들자 컴퓨터 화면에 5개의 손가락 움직임이 서로 다른 색깔로 표현됐다. 이후 손가락을 조금 씰룩거리자 화면이 줌인(zoom in)됐다. 단 1㎝ 이내의 손가락 움직임으로 컴퓨터를 제어한 것이다.

다음은 3D 시현이었다. 화면 속 손가락 움직임이 표시된 5개의 선이 회전하며 깊이감을 갖춘 3D 이미지가 나타나자 몇 사람이 ‘헉’하는 소리를 내기도 했다. 홀츠는 별 것 아니라는 채 자신의 두 손을 3D로 화면에 표시했고, 양손을 움직여 가상의 점토를 떼어낸 뒤 주물럭거리면서 사람 얼굴을 만들었다. 그리고 다시 손을 이용해 화면을 회전시켜 얼굴 모형을 3D로 보여줬다.
시연을 마친 홀츠는 단 한마디로 발표를 마무리했다.

“보시다시피 저희는 앞서 말씀드린 기술을 실현해냈습니다.”

청중들의 박수갈채가 쏟아졌다. 그날 이후 며칠간 호기심에 가득 찬 많은 사람들이 오스틴컨벤션센터에 마련된 리프 모션의 홍보부스로 몰려들었다. 이들 대다수는 이전까지 리프 모션을 듣도 보도 못했지만 직접 시연을 해보며 홀츠가 강연에서 말했던 바가 무엇인지 깨달았다. 리프 모션은 단순한 동작인식 컨트롤러가 아니며, 사람들이 디지털 정보를 실물처럼 자연스럽게 다루게 해줄 혁명적 세상의 신호탄이라는 것을 말이다.

“컴퓨터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서든 이런 인터페이스의 적용이 가능합니다. 태블릿 PC나 휴대폰은 물론 로봇 수술 등에도 활용할 수 있어요.”

어느 날 오후 리프 모션의 홍보부스로 수백 명의 소프트웨어 개발자들이 홀츠와 버크왈드를 만나기 위해 찾아왔다. 이들 중 일부는 이미 개발한 리프 모션용 앱을 자랑스럽게 공개하기도 했다. 일례로 어떤 개발자는 암호 입력이나 망막 스캔 대신 손에 있는 그 사람만의 독특한 생체정보로 신원을 파악하는 보안 앱을 소개했고, 어떤 이는 노트북 앞에 리프 모션 컨트롤러를 놓고 손동작만으로 소형 무인기를 조종해 주변을 놀라게 했다. 나머지 개발자들도 리프 모션을 직접 체험하며 이 장치가 가진 가능성과 앞으로 열릴 미래를 예감한 듯 미소 지었다.

하지만 홀츠에게 있어 이런 광경은 예전부터 자신의 거의 모든 시간을 쏟아 부어 가며 계획했던 혁명의 시작일 뿐이었다.





국 플로리다주의 해안마을 포트 로더데일에서 성장한 홀츠는 글을 읽고 쓰기 이전부터 기술에 집착을 보였다. 노인들이 많고, 젊은 사람은 거의 없었던 마을인 탓에 이웃에 친구가 없었던 그는 자신의 손에 들어오는 전자기기라면 무엇이든 차고로 들고 가서 분해하며 놀았다.

“동네 사람들에게 못쓰거나 안 쓰는 것들을 얻었죠. 한번은 자기 컴퓨터를 부숴서 갖다 주기도 했어요.”

당시 홀츠는 분해한 전자기기의 부품을 관찰하고, 그 부품에 새로운 용도를 부여하려 했다. 이 같은 해커 정신은 부모에게서 물려받은 것 같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실제로 홀츠의 모친은 어릴 적 로켓을 만들어 발사하다가 앞마당에 직경 2m가 넘는 구덩이를 패게 했고, 부친은 소년시절 집 안에 화학실험실을 차려놓기도 했다.

“할아버지께서 아버님이 다른 지역의 대학으로 진학한 후 실험실에 숨겨 놓은 유해물질들을 치우기 위해 소방서에 신고까지 하셨다고 하더라고요.”

8살 무렵 홀츠는 호기심의 방향을 뭔가를 분해하는 것에서 만드는 것으로 돌렸다. 시작은 종이비행기였다. 한번은 실험을 통해 어떻게 접은 종이비행기가 가장 성능이 뛰어난지 검증했는데 그런 차이의 발생 원인을 이해하려고 유리, 카드보드지, 대형 선풍기, 무게균형시스템(weight & balance)을 활용해 풍동실험실을 직접 제작하기도 했다.

특히 중학교 시절 풍동실험에 대한 집착이 커지면서 초음속 환경 구현이 가능한 실험실 제작에 나섰다. 한쪽에 고압 헬륨, 다른 쪽에 진공 체임버가 위치한 구조였다. 안전을 우려한 부모님이 설득 끝에 제작을 무산시켰지만 홀츠는 다른 계획으로 응수했다. 스티븐 호킹의 저서 ‘시간의 역사(A Brief History of Time)’를 읽고 특수상대성이론을 실험할 길을 찾은 것. 해발고도가 다른 전 세계 여러 지점에 시계를 놓아두고 모니터링 하는 방법이었다.

“이렇듯 다양한 실험을 하면서 컴퓨터가 강력한 도구임을 깨달았어요. 컴퓨터가 있으면 한층 강해진 것 같은 기분을 느꼈죠.”

하지만 어느 순간 그는 컴퓨터 활용의 역효과를 느꼈다.

“중학교 때 독학으로 소프트웨어를 활용한 정밀 설계와 3D 모델링 기법을 습득했어요. 그런데 맨손으로는 점토를 가지고 원하는 모양을 금방 만들 수 있지만, 컴퓨터를 이용하면 동일한 작업이 5시간이나 걸리더라고요.”

홀츠는 도대체 뭐가 문제인지, 왜 컴퓨터가 맨손보다 못한지 고민에 빠졌다.

“컴퓨터는 분명 강력한 도구예요. 저도 컴퓨터로 무엇을 해야 할지 잘 알고 있었죠. 그렇다면 남은 결론은 입력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이었어요. 생각해보세요. 점토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쉴 새 없이 마우스와 키보드를 클릭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을 직접 사용하는 겁니다.”

바로 이 생각이 차후 리프 모션 태동의 모태가 됐다.

버크왈드와의 만남은 학교에서 이뤄졌다. 그는 논쟁을 정말 좋아하는 친구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교육제도와 대통령 제도 같은 진지한 담론을 놓고 토론을 벌였다. 반면 학교는 두 사람의 무한한 호기심과 상상력을 받아주기에는 너무 좁았다. 홀츠의 끝없는 질문, 특히 수학과 과학에 대한 심오한 질문에 답을 해줄 수 있는 교사는 없었다. 게다가 플로리다애틀랜틱대학에 진학한 후에도 이런 상황은 별반 나아지지 않았다.

대학을 마친 홀츠는 노스캐롤라이나대학교 채플힐캠퍼스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전공으로 응용수학을 선택한 그에게 대학원은 파라다이스였다. 문제를 철두철미하게 이해하고 있는 뛰어난 수학자들이 주변에 널려 있었기 때문이다.

“제가 매료된 것은 그뿐만이 아니에요. 노스캐롤라이나대학은 수학자도 물리학자만큼 다양한 장비를 다뤄볼 수 있는 세계 유일의 대학입니다. 대형 풍동실험실과 파도 풀까지 갖춰져 있어 파동의 이면에 감춰진 수학적 원리를 이해할 수도 있어요.”

물론 그 정도로 홀츠의 성이 차지는 않았다. 그래서 여러 연구팀에 지원해 자신의 연구주제와 상관없는 10여개의 프로젝트를 떠맡았다. 미 항공우주국(NASA) 랭글리연구센터와의 레이저 레이더 연구, 막스플랑크 플로리다 연구소와의 신경과학 프로젝트, 노스캐롤라이나대학과의 유체역학프로젝트, 화성 메탄연구프로젝트 등이 그의 손을 거쳤다. 그렇지만 여행을 끝내고 집으로 돌아오듯 결국 그는 자신이 제일 좋아하는 분야, 즉 제스처 기반 인터페이스로 연구의 무게중심을 옮겼다.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내가 해결하려던 문제는 이게 아니야. 이 정도면 웬만큼 필요한 기술과 소양을 갖춘 것 같아.’라고요.”

그리고 그는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NASA에서 연구를 하다가 창업을 할지, 아니면 지금 당장 창업을 할지에 대해 깊은 고민에 빠졌다. 최종 선택은 후자였고, 입학 1년 만에 스스로 대학원을 떠났다.



SXSW 행사가 폐막한 지 한 달쯤 후 필자는 샌프란시스코의 한 지하실에 마련한 리프 모션의 본사 회의실에서 홀츠를 만났다. 홀츠와 버크왈드가 함께 살고 있는 아파트에서 한 블록도 떨어지지 않은 곳이었지만 홀츠에게는 이 지하실이 곧 아파트였다. 아파트까지 오고가는 시간이 아까워 여기서 배달음식으로 끼니를 때웠고, 빈 백(bean bag) 의자에서 잠을 잤다.

미국의 여느 신생 IT 벤처들과 마찬가지로 리프 모션도 회의실에 독특한 이름을 붙였다. 갤럭티카, 데스스타 등 공상과학 영화에 나오는 우주선 이름이었다. 특히 우리가 있던 엔터프라이즈는 무척 적절한 이름이었다. 스타트렉의 주인공들은 엔터프라이즈호의 홀로덱(holo deck)에서 전투시뮬레이션 홀로그램을 통해 훈련을 하는 등 컴퓨터와 온몸으로 상호작용하는데 이는 리프 모션이 지향하는 바와 정확히 일치하기 때문이다.

홀츠와 버크왈드가 창업 초기 개발목표로 삼은 것도 홀로덱과 유사한 인터페이스였다. 첫 시제품은 그리 보기 좋지 않았다. 네트워크에 연결된 8개의 박스를 활용, 홀츠가 ‘홀로데스크(holodesk)’라고 불렀을 만큼 넓은 공간의 움직임을 감지했지만 배낭 두 개를 가득 채운 전자부품을 30분간이나 설치해야 했다.

지독히 내성적인 버크왈드는 2010년 홀츠와 전도유망한 기업에 대해 토론한 것을 기억한다. 이 토론을 통해 그는 시제품이 투박할수록 더 큰 기회가 될 수 있음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때 버크왈드는 21세에 불과했지만 이미 조지워싱턴대학을 조기졸업하고 자주바(Zazuba)라는 온라인 상장기업을 설립해 운영한 뒤 마다가스카르에서 1년간 어린이 교육용 초저가 PC인 OLPC(One Laptop Per Child) 보급 운동에도 참여했던 터였다.

“워싱턴 D.C.에서 재회한 뒤 중학교 시절처럼 홀츠가 구상 중인 이른바 홀로데스크 기술에 대해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눴어요. 며칠 뒤 저희는 공동창업을 결정했죠.”

사실 동작인식 인터페이스의 개념은 새로운 것이 아니다. 오래전부터 무수한 연구자와 발명가들이 그 꿈의 실현을 위해 애썼다. 그러나 그런 유형의 물건이 현실세계에 데뷔한 것은 불과 7년 전이다. 2006년 출시된 닌텐도의 위(wii) 컨트롤러를 통해서다. 다만 위 컨트롤러는 여러 모로 혁신적 장치였고, 게이머들에게 새로운 재미를 선사했음에도 게임 이외의 용도로는 부적합했다.

이후 막대기, 장갑 등의 형태로 동작제어 인터페이스를 구현하려는 시도가 이어졌다. 최근 제품으로는 근육의 전기신호를 이용하는 미국 탈믹 랩스의 암 밴드형 컨트롤러가 있다.

그렇다면 기존의 방식 중 기술적으로 가장 진보한 것은 무엇일까. 바로 MS의 X박스용 ‘키넥트’다. 홀츠와 버크왈드가 창업을 결심한 며칠 뒤에 출시됐는데 앞에 서서 몸을 움직이기만 하면 될 뿐 다른 것은 전혀 필요가 없다.

키넥트에 적용된 기술은 ‘구조 광’이다. 실내에 여러 줄기의 빛을 비추고, 사람 혹은 물체가 그 빛을 막는 패턴을 파악해 동작을 인식한다.

문제는 구조 광의 경우 골프 스윙처럼 큰 행동에는 양호한 반면 손가락 움직임 같은 작은 행동의 탐지능력은 취약하다는 것. 그러려면 엄청나게 많은 빛줄기를 쏘아야하며, 모든 빛줄기의 상태를 실시간 파악하기 위해서는 터무니없을 만치 큰 처리능력이 요구된다.

MS가 키넥트 2.0 버전에 구조 광 대신 ‘타임 오브 플라이트(Time-of-Flight, ToF)’라는 기술을 채용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 기술은 레이더에 가깝다. 적외선을 쏜 다음 물체에 부딪쳐 되돌아온 시간을 센서로 분석한다. 이에 힘입어 ToF는 탐지대상과의 거리, 다시 말해 공간적 깊이감까지 인지가 가능해 해당 물체의 3D 이미지를 렌더링할 수 있다.

정밀성은 어떨까. 구조 광과 비교해 훨씬 뛰어나다. 얼굴 표정, 손목 회전 등을 감지할 수 있다. 하지만 리프 모션의 기술에는 못 미친다. 사람이 1m 이상 떨어져 있어야 제 능력을 발휘한다. 그 이내의 거리에서는 정확성이 낮다.


리프 모션의 물체인식 기법은 이와는 완전히 다르다. 은은한 빛을 발산한 뒤 아날로그 카메라로 촬영해서 얻은 정보를 비교·분석한다. 물체의 곡선이나 특정부위에 나타나는 미묘한 명암 차이를 확인하고, 물체가 움직이면서 발생하는 음영의 변화를 추적하는 메커니즘이다. 리프 모션은 이렇게 얻은 이미지 데이터를 3D 모션으로 실시간 변환하는 방법에 대해서는 함구하고 있지만 아마도 홀츠의 탁월한 수학 실력에 그 비밀이 숨어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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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크왈드는 리프 모션 컨트롤러가 지닌 최고의 강점은 이 모든 과정이 조금의 지연도 없이 실시간으로 이뤄진다는 점이라고 강조한다. 키넥트가 시간 지연으로 한동안 비난을 받았던 것과는 대조적이다.

“저희 기기는 중앙처리장치(CPU)의 코어 하나, 그것도 일부만 사용합니다. 특수 마이크로칩 같은 것은 없어요. 센서와 카메라 역시 기성품이죠. 단적으로 말해 저희가 한 모든 일은 10년 전에도 충분히 할 수 있었던 것이에요.”



티미디어 편집 툴 개발사인 아비드테크놀로지의 창립자 빌 워너는 홀츠와 버크왈드가 워싱턴 D.C.에서 공동창업을 결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리프 모션의 계획을 듣고 기꺼이 최초의 투자자가 되기로 약속했다.

“모든 위대한 발명품에는 혁신적 아이디어가 밑바탕 되어 있지만 막상 작동원리를 들어보면 ‘맞아! 그렇지!’하고 맞장구를 치게 되죠. 리프 모션의 기술도 그동안 왜 누구도 그런 생각을 못했었는지 한탄스러울 만큼 단순해요. 전문성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들처럼 창의적으로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그런 아이디어를 떠올리지 못한 겁니다.”

워너는 홀츠가 제스처 제어의 문제를 철저히 이해함으로써 다른 모든 사람들이 놓치고 있던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홀츠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들은 많아요. 하지만 이런 사람들의 통찰력과 이해력은 다른 사람들이 따라잡기 힘들죠. 홀츠는 달라요. 그것이 무엇이든 정말 단순하게 구현해냅니다. 그가 지닌 타의추종을 불허하는 능력이 바로 이것이에요.”

창업 후 홀츠와 버크왈드는 역할을 분담했다. 홀츠는 수학적 문제 해결에, 버크왈드는 홀츠의 구상을 사업화시키는 작업에 집중했다. 홀츠는 결국 수학적 문제를 풀어냈고, 최대 당면과제는 상용성 확보가 됐다. 투박하기 그지없는 8개의 네트워크 박스를 일반 소비자에게 판매 가능하며, 다른 회사의 제품과 통합시킬 수도 있는 상품으로 변신시켜야 했다.

이윽고 2012년 애플 중역 출신의 벤처투자자 앤디 밀러에게 두 사람이 찾아왔다. 익히 그들의 명성을 들어 알고 있었던 밀러는 전자기기로 가득한 배낭을 내려놓는 홀츠를 보며 젊은 아인슈타인을 떠올렸다고 한다.

“수인사를 나누고 그리 오래지 않아 제품 시연을 부탁했어요. 말로만 들었던 그 엄청난 장치가 어떤 것일지 너무 궁금했거든요. 홀츠가 배낭을 뒤적이는 동안 버크왈드와 얘기를 나누려는데 그 친구들이 ‘설치가 끝났습니다. 이게 그겁니다.’하는 것 같은 표정을 짓더라고요. 테이블 위에는 작고 예쁜 상자 하나만 있었죠.”

밀러는 앞뒤 생각할 것도 없이 리프 모션에 엄청난 돈을 투자했다. 몇 개월 후에는 이 회사의 사장 자리까지 맡았다.

“홀츠와 시간을 보낼수록 정말 놀라운 사람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아시다시피 저는 스티브 잡스와 함께 일하는 행운을 누렸어요. 그 경험으로 볼 때 홀츠는 잡스와 같은 유형의 사람이에요. 생각이나 지식이 정말 넓고도 깊어요.”

밀러의 합류로 리프 모션의 설계는 한층 업그레이드됐다. 애플의 앱스토어에서 착안해 ‘에어스페이스 스토어(airspace.leapmotion.com)’라는 리프 모션 컨트롤러용 앱스토어도 만들었다. 또한 리프 모션 컨트롤러의 시연 동영상을 올리자 급속도로 퍼져나가며 첫 주에만 1만5,000명의 개발자들이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지원했다.

“파트너십을 맺고 싶다는 사람과 업체들의 이메일이 수천통 답지했습니다. 그걸 모두 읽는데 일주일이나 걸렸답니다.”

올 3월말 샌프란시스코에서 개최된 게임 개발자 컨퍼런스(GDC)에서 NASA 제트추진연구소(JPL)의 휴먼인터페이스 엔지니어 빅터 루오 박사는 리프 모션 컨트롤러를 앞에 놓고 560㎞나 떨어져 있는 행성탐사로버 ‘애슬리트(ATHLETE)’의 원격조종을 시연하고 있었다. 중량 900㎏의 애슬리트는 6개의 다리를 가진 비행이 가능한 로버다. NASA가 리프 모션의 시스템을 이용해 애슬리트의 다리와 사람의 손동작을 일체화시킨 응용프로그램을 개발해내면서 루오 박사는 손가락을 구부리는 것만으로 로버의 다리 제어가 가능했다.

루오 박사가 팔을 들자 대형 스크린에 애슬리트의 제트엔진이 점화되며 하늘로 치솟는 모습이 나타났다. 단상에 서 있던 NASA의 제프 노리스 박사는 화면을 보며 이렇게 말했다.

“저희는 누구나 로봇 아바타를 원격조종해 몰입감 높은 가상 우주탐사를 경험하는 미래를 열고자 합니다. 그것도 단순히 화면의 2D 영상을 보는 것이 아닌 홀로그램 속에서 외계행성에 실제로 서있는 듯한 체험을 하는 그런 미래 말입니다.”

NASA의 이날 시연은 리프 모션의 신뢰도를 크게 높여줬고, 이런 종류의 시연은 그 이후로도 계속 이어졌다.



프 모션이 시제품 컨트롤러와 개발자 키트를 발송하기 시작한 지 몇 달이 지나자 초기버전 앱을 활용한 시연 동영상들이 쇄도하기 시작했다. 일례로 애덤 소머즈라는 전자음악가는 ‘에어하프(AirHarp)’로 명명된 하프 연주 앱의 시연 영상을 보냈다. 또 구글 어스는 리프 모션 지원 기능을 추가했다. HP의 경우 일부 PC 구입 고객에게 리프 모션 컨트롤러를 번들로 제공할 것이며, 향후에는 관련기술을 아예 자사 제품에 이식할 계획이라고 발표했다.

리프 모션 컨트롤러는 박스에서 꺼내 컴퓨터의 USB 포트에 연결하는 즉시 커서 등 기본적 기능 제어가 가능해진다. 하지만 버크왈드는 이 제품의 궁극적 목적은 마우스, 키보드 같은 기존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대체가 아니라고 강조한다.

“리프 모션 컨트롤러가 성공해서 컴퓨터와 인간의 소통방식에 근본적 개선이 이뤄진다면 그 효용성은 무궁무진합니다. 노트북, 데스크톱, 스마트폰, 태블릿 PC, TV, 의료 수술, 로봇, 심지어 자동차에 이르기까지 컴퓨터가 들어가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리프 모션의 기술이 채용될 수 있습니다.”

컴퓨터 인터페이스의 역사에서는 지금껏 두 번의 패러다임 변혁이 있었다. 첫 번째는 1980년대 중반 애플에 의해 명령어 기반 인터페이스가 마우스 기반의 그래픽 인터페이스로 바뀐 것이고, 두 번째는 애플이 멀티터치 모바일 기기를 세상에 내놓을 때였다. 리프 모션의 최초 투자자인 빌 워너는 기술적으로 볼 때 이 두 번의 변혁 모두 인간과 컴퓨터의 소통을 더 직관적으로 바꿔서 둘 사이의 간극을 최대한 좁히려했던 것이라 평가한다.

“마우스는 사람의 손동작을 스크린 속에서의 동작으로 연결시킨 최초의 인터페이스에요. 손으로 직접 만지는 터치스크린은 손과 화면의 거리를 더욱 좁혔고요. 이 점에서 리프 모션은 손이 미치는 범위를 스크린 속으로 확장시킬 존재입니다.”

향후 리프 모션 컨트롤러와 같은 동작인식 인터페이스가 어떤 분야에 어떻게 적용될지 정확히 예측하기는 쉽지 않다. 멀티터치 기술이 앵그리 버드 같은 게임을 낳을 거라고 누구도 확신하지 못했던 것과 마찬가지다.

단지 제스처 인터페이스가 기존의 모든 인터페이스를 퇴출시키지는 못할 것이 확실하다. 멀티터치가 그랬듯 리프 모션 컨트롤러도 일부 용도에서는 뛰어난 반면 그렇지 못한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스프레드시트의 조작은 리프 모션 컨트롤러를 사용하더라도 별달리 나아질 게 없다. 차라리 손에 익은 지금의 방식이 더 효율적일 수도 있다.

특히 가장 자연스럽고 진보된 3D 응용프로그램 일지라도 아직은 한계가 있다. 촉각 자극이 전무하다는 것도 그중 하나다. 3D 모델링을 할 때 촉각이 느껴지지 않아 실제 찰흙을 만질 때와 동일한 손재주를 발휘하기 어렵다.

홀츠에게 이에 대해 물었더니 별것 아니라는 투로 대답했다.

“디지털 기기의 특성상 현실에서 얻을 수 있는 것보다 많은 정보를 얻도록 할 수 있습니다. 손가락이 닿으면 색이 변한다던지 하는 식으로요. 그리고 언젠가는 가상 촉각자극을 줄 수도 있을 거예요. 이미 도쿄대학 연구팀이 집속 초음파(focused ultrasound)를 이용한 가상촉각 원천기술을 개발하기도 했죠.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 그런 기술들을 많이 볼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십분 양보해 촉각은 그렇다고 치더라도 제스처 인터페이스의 한계는 또 있다. 사용자는 3차원 공간 안에서 손을 움직이지만 결과물은 2차원 스크린 속에 있다는 점이 그것이다. 이는 방향감각 상실을 유발할 수 있다. 홀로덱 같은 장비가 개발되지 않는 한 이 문제는 피할 수 없으며, 지금보다 월등히 뛰어난 3D 디스플레이 기술이 요구된다.

홀츠는 구글 글래스 등의 고글 또는 헬멧형 디스플레이에 리프 모션 시스템을 통합시킬 수 있다면 최적의 해결책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디스플레이를 쓰는 순간 홀로덱 안에 있는 것과 같은 동일한 느낌을 가질 테니 말이다. 그렇다면 현재 리프 모션이 구글과 이런 기기의 개발을 논의하고 있을까.

“자세한 건 말씀드리지 않는 편이 좋을 것 같네요. 아무튼 그렇게 하는 것이 타당하다고 생각해요.”



[SPEC]
크기 : 1.3×3×7.6㎝
중량 : 45g
동작인식 공간 : 226.5ℓ
인식 정밀도 : 1㎛
가격 : 80달러
구입 : leapmotion.com

[apps]
제스처 혁명
리프 모션 컨트롤러가 가져다줄 혁명적 세상



원격 조종
롤링(rolling), 피칭(pitching), 요잉(yawing) 등 항공기의 움직임을 손으로 흉내 내면 실제 항공기가 그대로 재현하는 제어시스템이 이미 개발돼 있다. 이 방식은 주로 소형 무인기 조종 앱에 적용되고 있지만 최근 미 항공우주국(NASA)이 중량 900㎏의 비행 가능 행성탐사 로버 ‘애슬리트(ATHLETE)’의 제어에 활용하기도 했다.



로봇 수술
리프 모션의 시스템은 1㎛ 수준의 탁월한 정밀도에 힘입어 로봇 팔을 이용한 정밀 외과 수술에 채용이 가능하다. 같은 맥락에서 오지의 응급환자, 전투 현장의 부상병, 우주비행사 등의 원격 진료 및 치료에도 높은 효용성을 발휘할 수 있다. 또한 로봇 팔의 원격 정밀 제어 기술은 지구 반대편의 제트전투기 수리 등 다양한 원격 정밀 작업에 유용하다.



3D 디자인
3D 모델링에 쓰이는 캐드(CAD) 소프트웨어에 대한 실망은 데이비드 홀츠가 리프 모션 컨트롤러 개발을 결심한 큰 계기가 됐다. 그가 디자인 소프트웨어 기업 오토데스크와 첫 파트너십을 맺은 것도 이 때문이다. ‘리프 플러그인’을 이용하면 손으로 점토를 주무르듯이 쉽고 빠르게 3D 모델을 만들 수 있다.



보안
암호 기반 컴퓨터 보안의 취약성이 날로 커지면서 생체인식 보안시스템의 채용이 늘고 있다. 하지만 홍채인식 같은 기술은 아직 부담스러울 만큼 비싸다. 반면 미국 바텔연구소는 얼마전 개인 특유의 손 모양과 움직임에 기반한 신원확인용 앱을 개발했다. 리프 모션시스템과 이 앱만 있으면 손을 흔드는 것만으로 간단히 신원이 확인된다.



교육
리프 모션의 제스처 제어시스템은 학생과 복잡한 시각 자료와의 상호작용을 가능케 해준다. 화학물질의 분자구조나 DNA 모델을 학생들이 직접 만들어 볼 수 있는 것. ‘엑소플래닛(Exoplanet)’이라는 앱을 통해 우주탐사까지 할 수 있다.
홀츠는 이를 두고 사람들이 세계와 소통함으로써 기초물리에 대한 이해를 높이는 것과 같다고 비유한다. 제스처 제어는 실제 실험과 유사한 수준의 가상 탐험을 구현해주기 때문에 아무리 추상적인 개념이라도 실감나고 직관적으로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사우스 바이 사우스웨스트(SXSW) 인터랙티브 South by Southwest interactive
구조 광 (structured light) 빛에 고유한 특성(패턴)을 부여해 물체를 인식하는 기술.

파퓰러사이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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